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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별 수업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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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위기라고 느끼는 당신에게

지금이 위기라고 느끼는 당신에게

박진희(쌍용고등학교 영어교사)

나는 어떤 교사인가?

▲나무학교 성장교실에서 받은 ‘사랑’의 쪽지
성명: 박진희, 최초임용일 : 2003-03-01, 부서명: 충청남도교육청 천안쌍용고등학교, 직위/호봉: 교사(중등)/27호봉, 재직상태: 재직. 여기까지가 충남교육청 나이스 인사기록카드 첫 번째 줄 내용이다. 우와... 내가 벌써 27호봉이라니... 아직도 마음은 20대 열정으로 뜨거운데... 그래도 그때보다 (여전히 실수는 하지만) 덜 흥분하고, 덜 당황하고, 빨리 회복한다.

세 번의 위기

나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사실 주변 교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우리의 최대 위기는 교직 첫해가 아닐까 싶다. 나의 첫 발령지는 천안농업고등학교(현 천안제일고등학교). 학생과 나의 나이 차는 겨우 6∼8살, 아침에 등교한 학급 아이들 중 몇 명은 점심 먹고 말없이 집에 가고 오후에 다른 몇 명이 말없이 등교했다. 한 학기를 잘 부탁하는 마음으로 학교밖에서 밥을 사줬던 반장은 무단조퇴를 꾸짖는 내 앞에서 밥값이라며 만 원짜리를 찢어서 내 얼굴에 던졌다. 서로 사이가 안 좋아 갈등이 있었던 여학생들의 학부모들은 밤 11시에 전화해 학교 앞이니 나오라며 ‘심야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가출한 학생을 찾으러 신부동 골목을 헤매기도 하고 장기결석을 한 학생의 집을 직접 찾아갔다가 엉망인 집 상태를 보고 눈물을 왈칵 쏟기도 하였다.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그때 나는 어떻게 버텼을까. 첫 번째 버팀목은 부모님이었다. 다행히 본가가 천안이어서 ‘엄마 밥’을 먹고 출퇴근을 할 수 있었다. 부모님께선 아침마다 울상인 나에게 항상 ‘지나면 별거 아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두 번째 버팀목은 발령 동기와 또래 선생님들. 점심을 함께 먹고 믹스커피를 마시며 ‘사회초년생활’의 단쓴단쓴맛을 함께 느끼고 필 받는(?) 날은 방과 후에 다 같이 모여(열 명이 넘었다) 새벽까지 마시고 웃고 떠들었다. 세 번째 버팀목은 선배 교사들이었다. 퇴직을 얼마 앞두신 선생님이 ‘미스 박’이라고 부르면서 커피 심부름을 시켰을 때 나 대신 불같이 화를 내주셨던 선배님, 오조오억개의 실수 끝에 첫 학기 성적처리를 드디어 끝마쳤을 때 꼭 안아주셨던 선배님이 계셨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너무 감사하다.
두 번째 위기는 육아였다.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사정상 육아휴직을 할 순 없었고, 친정엄마만 믿고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집도 엉망, 학교도 엉망이었다. 수업 연구는커녕 예민한 아기 때문에 새벽에도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더는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으로 살길을 찾기 시작했다. 선배 교사 중에 한 분이 교원대 파견을 추천해 주셨다. 대학원에 가서 연구하면서 본봉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합격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셨다. 그 당시 나는 합격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친정엄마께 양해를 구하고 한 달 동안 교무실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간절함이 통했던 것일까, 결과는 합격이었다.
교원대 파견 기간은 나에게 삶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시험을 위한 공부를 했다면 대학원 공부는 오롯이 ‘나’를 위한 공부였다. 시간표를 조절하여 일주일에 두 번만 출석하여 육아에도 도움이 되었고, 교수님과 교과서를 편집하는 일을 함께하면서 수업에 대해 좀 더 넓고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위한 독서는 그동안 해왔던 ‘암기’를 위한 독서와는 완전히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상황이 전보다 나아졌고 둘째가 생겨 ‘육아휴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다. 첫째 때문에 생긴 나만의 육아 철학은 ‘아이는 만 3세까지 엄마 손으로 키운다’였다.
세 번째 위기는 복직 후에 찾아왔다. 3년 만에 돌아온 학교는 생각보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수업은 ‘거꾸로 수업’을 하고 있단다. 수업을 거꾸로 한다고? 이게 무슨 말이지? 수업 영상을 다음팟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직접 만들어야 한단다. 내가 아는 팟은 에어팟뿐인데…. 1년 동안 겨우 적응한 전자문서시스템은 K-에듀파인으로 다시 바뀐단다.
교사가 된 이래 처음으로 학교 화장실에서 울었다. 신규교사 때보다 학교가 더 낯설게 느껴졌다. 14명이 근무하는 교무실에 애 엄마는 나 혼자였다. 다들 더 젊거나 싱글이어서 대화의 공통 주제도 찾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복직하면 교내에 교사 독서 모임을 만드는 것. 내가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남편이 직장에서 독서 모임을 하는 것이 너무 부러웠기 때문이었다. 이름부터 정했다. ‘미래를 달리는 교사들’. 굳이 학교 이름은 넣지 않았다. 내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더라도 이 이름으로 계속 독서 모임을 하기 위해서였다. 쿨메신저로 열심히 홍보하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날마다 정성껏 간식을 준비했다. 학교에 ‘전문적 학습공동체’의 예산이 있어 회원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책 추천을 하면 그 예산으로 구입하여 함께 읽었다. ‘책’이라는 공통 주제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올해 5년차. 현재 ‘미래를 달리는 교사들’은 융합수업을 연구하는 전학공으로 살짝 ‘업그레이드’되어 있다.
사실 이렇게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던 것은 ‘나무학교’ 덕분이다. 교내 전학공을 운영하면서 전학공을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주변 선생님들(이제는 후배 선생님들)에게 수소문했더니, ‘나무학교’를 추천해 주었다. 학교 밖 전학공 활동을 하면서 더 많은 것들을 배워 우리 학교 선생님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성장교실부터 신청했다. ‘나무학교’의 성장교실은 한마디로 나에게 ‘컬처쇼크’였다. 20대, 30대 선생님들이 황금 같은 토요일에 ‘공부’를 하러 충남 각지에서 모였다니!!! 그들의 진지한 모습에 나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다. 수업 연구는 화장실에서 울면서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문적 학습공동체는 말 그대로 전문성을 ‘함께’ 키워나가는 공동체였던 것이다. 이런 문화가 모든 학교에 퍼지고 잘 돌아가면 좋을텐데…. 지금 나는 나무학교에서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고 있다. 앞으로 어느 학교에 가더라고 함께하는 문화를 실천하면서 근무하고 싶다.
▲학생들과 함께한 순간

위기를 잘 넘기는 세 가지 방법

이제 보니 나 자신이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나무 같기도 하다. 이런 걸 성장이라고 하나? 세 번의 위기를 넘긴 나 자신을 토닥여주고 싶다. 만약 이 글을 위기를 맞닥뜨린 선생님이 읽고 있다면 위기를 잘 넘기는 세 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첫째, 주변에 나를 도와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어려움이 생기면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옆자리 선생님이든, 선배 교사든, 후배 교사든 두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줄 사람이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둘째, 실패하는 것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사도 실패할 때가 있고,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그래서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는 ‘나만의 방법’을 만들어 놓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은 주말에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한 다음 암막 커튼치고 푹 자기, BTS 노래 듣기, 비가 촉촉하게 오는 날 명상 음악 들으며 나무가 많은 길 드라이브 하기이다.
셋째,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가져보자. 위기가 닥쳤다는 것은 내가 익숙해져 있던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새롭고 낯선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새롭고 낯선 길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기회라고 생각해보자. 남들이 어렵다고 해도 나에게는 할만할 수 있고, 어쩌면 전에 가던 길보다 더 좋은 목적지로 나를 이끌어 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항상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것이다.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나의 학생들, 나의 가족들, 나의 친구들을 사랑할 수 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사야말로 진정으로 ‘이타적인 교사’라고 생각한다. 나의 마음을, 나의 몸을 항상 챙겨주고 보살펴주자. 그리고 되도록 많이 웃어주자.
나무학교를 만나 나무처럼 쑥쑥 자라는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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