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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든 문장들

‘나’를 만든 문장들

이세로(석문중 국어 교사)
나는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주제에 꽂히면 그 주제에 대해 제법 긴 시간 빠지게 된다. 주로 버스를 타는 시간이나 샤워하는 시간에 생각을 즐긴다. ‘평양냉면에 겨자와 식초를 곁들이는 것이 더 맛있을까?’ 같은 쓸데없어 보이는 주제부터―사실 아주 중요한 주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와 같은 답도 없는 주제까지 별별 생각을 한다.
요즘은 스마트폰의 매콤한 재미에 빠져 생각할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하고 있어 크게 반성하고 있다. 그렇지만 종종 내 머리를 뎅-하고 울리게 하는 문장들이 머릿속에 들어올 때가 있다. 그중 교사로서의 나를 만들어준 몇 가지 문장들을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첫 번째 문장 - “차별하는 교사가 되어라.”

스물셋 어느 가을. 문법을 가르치던 교수는 우리에게 문득 이런 말을 던졌다. 오해할 여지가 있어 보이지만 ‘사랑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쏟아라’라는 말이었다.
반려견의 문제에 대해 짚어주는 프로그램을 열심히 찾아보던 때가 있다. 답이 없어 보이는 반려견을 능숙하게 훈련 시키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전문성을 뽐내던 개통령(?)을 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 행동을 보이는 반려견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에게 빌런은 개를 키우는 사람이었다. 제때 필요한 교육이나 사랑을 주지 못했을 때 개들이 문제 행동을 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해소해 주니 거짓말처럼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된다는 것에 나는 시원함을 느꼈다.
물론 아이들이 개라는 뜻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원인이 있고, 반드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할 수 있음을 믿는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변화가 먼 미래일 수도 있다.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나는 제법 사랑통이 크다. 소진된 에너지가 채워지는 속도도 빠른 편인 것 같다. 긍정적 변화의 결과를 마주하는 희열은 못 느끼더라도 사랑이 필요한 학생에게는 내게서 넘치는 사랑을 나눠 주고, 다른 것이 필요한 학생에게는 또 내가 줄 수 있는 선에서 그것을 준다. 미래에라도 그걸 생각해주면 고맙겠지만 아니면 말지 뭐.

두 번째 문장 - “그 아이는 숨을 쉬러 가는 걸 거예요.”

자유학기제 신뢰 서클
그럼에도 우리는 현재를 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기다리기란 쉽지 않다. 당장 나를 힘들게 하는 학생들을 보면 사랑을 나눠주리라는 다짐이 흐릿해진다.
한 학생이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휴대폰을 하다 들어온다는 제보가 빗발쳤다. 선생님들의 신경이 많이 집중돼있는 학생이었다. 선생님들과 차를 마시며 다른 교과 시간에도 그 학생이 자주 화장실에 가는지 이야기 나눴다. 어떡하면 좋을까 이야기가 계속되던 차에 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아이는 숨을 쉬러 가는 걸 거예요.”
담백했다. 아이를 나무라는 선생님들에 대한 질타도, 아이에 대한 불쌍함도 아니었기에 그 담백함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물론 잘못된 행동에 대한 용서의 의미는 더더욱 아니었다.
1학년 자유학기 주제선택 시간에 국어 교과와 연계하여 신뢰 서클을 운영해 왔다. 말하고 듣는 것을 연습해보자는 취지였다. 긴 시간을 투자하여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의미 있었지만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떄로는 힘들었다. 그럴 때 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서로의 에너지를 쏟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있다. 교사로서의 사명감으로 아이의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문제 행동을 왜곡하지 않겠다는 식의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함이다. 화가 난다는 감정은 그것만으로도 나를 힘들게 했다.
아이가 문제 행동을 보이는 것이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내 마음속 화를 애틋함으로 바꿔줬다. 내 생각에 아이들과의 마찰 상황은 아이들을 혼낼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화를 낼 때 생기는 것 같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도하다가 뜻하지 않게 내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 아이의 상황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쟤는 왜 저럴까. 왜 나를 힘들게 할까. 내가 뭘 어떡해야 할까. 규칙을 지키게 해야겠다.
(후) 그럴 수도 있겠다. 급우들의 시선이 괴로웠겠다. 그래도 규칙은 알려주고 지키게 해야지.

세 번째 문장 - “상황에 맞게 변할 줄 알아야 한다.”

요즘은 역할에 대한 고민이 많다. 6년 차 교사이고 학교에서 요구하는 나의 역할도 많이 바뀌고 있다. 뭐든 열심히 하는 신규교사에서 이제는 좀 ‘잘’해야 하는 입장이랄까? 아무도 눈치 주지 않지만 새로 오시는 신규 선생님들을 만나면 괜히 뜨끔하다.
신규교사 때 아이들에게 모진 말 하기가 힘들다는 고민을 은사님께 말씀드렸다. 은사님께선 스치듯 말씀해주셨다. “상황에 맞게 변할 줄도 알아야 해. 네가 하기 싫은 역할을 누군가가 대신하고 있을 수도 있어.”
내가 모든 상황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는 소리로 받아들인다면 교직 생활이 너무나도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역할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보다는 교실에서 나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정도는 해보기로 했다. 물론 내가 가진 에너지로 그것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도 반드시 거쳐야겠지만 말이다.
‘나는 어떤 선생님인가?’에서 ‘올해의 나는 어떤 선생님이어야 할까?’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느라 오래 고민했었지만, 이제는 마음이 편안하다. 호랑이 선생님인 나, 천사 같은 선생님인 나, 아이들이랑 재밌게 놀아주는 나, 강의식 수업을 하는 나 모두 교사 이세로다. 언제 어떤 이세로가 나타날지 모르지만!
당진 학교밖교사학습공동체 '당수발' 회원으로서의 이세로

맺으며 - “누구나 멋진 모습이 있다. 당신에게도”

모든 사람을 만나진 못했지만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나는 누구나 멋진 모습과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들이 유독 자신에게 가혹한 것 같다. 부끄럼이 많으신 건지 아이들에게는 칭찬봇이지만, 자신에게는 야박한 선생님을 많이 뵌 것 같다. 사실 나도 그렇다.
“축제나 예술을 수단으로 사람들이 원한 것은, 자신이 더욱 강해졌고 더욱 아름다워졌으며 더욱 완전해졌다고 느끼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예술 작품을 만들고 축제 행사를 하는 것이 아무 생산성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봤던 드라마의 대사 중 ‘자랑은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라던 배우의 말도 머리에 스쳐 지나간다. 그런 점에서 나무학교 수업 축제가 참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나를 뽐내고 서로를 격려하는 자리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잘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멋지십니다. 당신.

이세로
갈참나무처럼 도움이 필요한 다양한 곳에서 내가 가진 것을 즐겁게 나누고 싶은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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