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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별 수업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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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바라보기

다르게 바라보기

박상배(천안용곡중 역사교사)

추천 책: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김영사)

이 책은 사실 마냥 재미있거나 쉽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작가가 박학다식함을 다소 뽐내는 듯한 느낌마저도 듭니다. 또한 보편적인 사고에 끊임없이 의구심을 던지고 자신의 주장이 정답인 양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런 이 책에서 제가 찾은 묘미는 농업혁명을 ‘인류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대표로 하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와 ‘상상의 힘’입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이 문단을 읽었을 때 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책의 성격을 보여주는 정수이자 제가 알던 사실(사실은 사실이 아닐 수 있는)과는 다른 시각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류에게 풍요를 가져다준 시발점은 농업혁명이라고 배웠을 겁니다. 저 또한 공부한 대로 농업혁명이 가져온 긍정적으로 보이는 결과의 중요성을 아이들에게 역설하였습니다. 한 번도 이러한 내용에 의문을 품어보거나 다르게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충격은 평소의 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과연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과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유연한 사고를 하는지. 돌아본 저는 굉장히 수동적인 사람이라는 평가가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수업에까지 이어져 아이들의 사고 확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진도 빼기 강의식 수업만 주구장창 펼치고 있었습니다. 교과서 속 활자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다양한 상상을 하게 했더라면 지루해하고 잠만 자는 아이들이 그리 많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얼마 전 손흥민 선수의 23번째 골을 시청하면서 소위 ‘국뽕’이 차올라 대한민국의 SON임을 자랑스러워했던 새벽이 있었습니다. 제가 소속감을 느꼈던 그 국가의 개념뿐만 아니라 체제, 법률, 회사 등까지도 상상에 의해 생겨난 질서이며 허구일 뿐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인류는 그것들을 믿으며 그 속에서 속박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몸뚱아리 없는 실체라고 여겼던 저는 이러한 시각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하지만 인류를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올려놓았고 그 거대한 허구를 만든 상상의 힘의 대단함 또한 느꼈습니다. 한 번은 이슬람교도로서 힌두교도를 아내로 맞이한 무굴 제국 아크바르 황제의 관용 정책을 가르치는 수업 중이었습니다. 장난기 많은 학생이 “그럼 소고기랑 돼지고기 중 무얼 먹나요?”라고 질문하면서 갈등에 빠진 왕궁 요리사를 걱정하는 엉뚱한 상상까지 하였습니다. 웃음 터지던 수업과 함께 저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상상에 놀랐습니다. 별것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이런저런 상상을 마음껏 하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수업이 때로는 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상하는 과정을 통해 유연한 사고를 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요즘에는 휴대폰 속에 갇혀 보여주는 세상만 보는데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그 상상들이 미래를 바꿔놓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겨났습니다. 새처럼 날고 싶다는 상상으로 비행기를 만들어낸 라이트 형제처럼 말이죠.
역사 교과를 맡던 차에 국어 선생님께서 역사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한 이 책을 추천해주셔서 읽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다소 지루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옆길로 빠져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고 저와 수업에까지 연결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추천하는 글에 이렇게 느낀 것들을 감상문 마냥 적은 이유는 이 책이 제가 느낀 것처럼 파격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많은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흘려보냈던 것들에 ‘과연? 정말? 어떻게?’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반론을 불러올 수도 있을 자신의 시각을 주장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지만 그 속에서 인종, 젠더, 종교, 경제 등 다양한 주제를 건드립니다. 지루하지만 정말 흥미롭습니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을 던지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어보시고 작가의 발칙한 통찰에 공감하기도, 의문을 품어보기도 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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