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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별 수업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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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로 열고, 배움으로 연결하기

대화로 열고, 배움으로 연결하기

성장교실 7월 교육과정 - 배움 중심·융합 수업

박종호(풀무농업고등학교 국어 교사)

대화로 나아가는 수업

배움은 늘 더디다. 달리 말하면, 배워야 할 것이 더디게 사는 법인지도 모르겠다. 더디게 산다는 것은 계절이 주는 색과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고, 살아가는 이야기로 울고 웃을 수 있다는 것이고, 스스로의 마음을 늘 ‘지금’으로 돌려놓도록 돌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딘 삶은 괄시받기 일쑤다. 당장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구조 속에서 더디게 산다는 것은 도태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괄시 속에서 우리는 더딤의 자리를 ‘효율’에 양보하며, ‘대화’보다는 ‘대학’을, ‘성품’보다는 ‘성적’을 좇아 살아간다. 학생, 학부모, 교사라는 교육 주체들은 이상하게도 교육에서 늘 비켜서 있다. 교육의 상황이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와 닮아 있다고 생각하니 쓴 마음이 입가를 따라 조소로 번진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노란 버스 네 대가 높은 건물가로 줄지어 늘어선 모습을 보았다. ‘초등사관’이라는 현수막이 구름 낀 옥상에서 아래로 매달려 있었고, 하얀 불빛이 철제 창문으로 차갑게 새어 나왔다. 그곳에서 배우는 것은 지식일까, 부모의 욕망일까, 사회로의 순종일까. 어릴 적 가슴에 새긴 경쟁은 단절로 자라난다. 우리 교육에서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꼽으라면 아마 공감과 연대의 단절이라 하겠는데, 경쟁으로의 이러한 맹목은 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내가 배움 중심·융합 수업을 공부하고자 했던 것은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첫 단추가 되었다. 대화로서의 교육, 삶으로서의 교육, 연대로서의 교육을 실천하는 공부. 조소만으로 세상이 바뀌진 않는다. 올바른 공부를 한 사람은 본인과 타인, 그리고 삶에 대한 긍정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강신주가 말했듯, 나도 올바른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조소보다 작은 실천 하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융합 수업 설계하기

융합 수업을 설계하며 우리는 우선 융합 수업과 배움 중심 수업에 관한 이론 공부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어떻게 그것을 공부할지를 고민했다. 그 대답은 책이었다. 책을 나누어 발제하고, 줌에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책은 ‘배움의 공동체(손우정)’와 ‘협력적 수업 설계(이은상)’로 정했다. ‘협력적 수업 설계(이은상)’는 ‘학습자 중심 수업과 협력적 수업’, ‘협력적 수업 설계 가이드’, ‘협력적 수업 설계의 실제’로 구성되어 있어, 파트 하나당 선생님 한 분께서 맡아 준비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배움의 공동체(손우정)’는 ‘아이들은 배우기를 원한다’, ‘교사는 전문가다’, ‘수업을 이야기하다’로 구성되어 있었고, 비슷한 방식으로 파트를 나누어 줌으로 발제하였다.
▲ 배움의 공동체(손우정)
▲ 협력적 수업 설계(이은상)
여덟 분의 선생님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은 저녁 아홉 시였다. 다들 퇴근 후 혹은 학교에 남아 있으면서도 줌으로 접속해 귀한 시간을 내어주셨다. 줌으로 만날 때 어색함을 지우려 늘 입이 분주했지만, 이내 편하게 토의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모임에서의 발제는 11시라는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고, 다음 시간에는 교육과정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물음을 던지며 마쳤다.
배움 중심·융합 수업을 준비하는 두 번째 만남에서 자연스레 마주한 질문은 ‘이 주제들을 하루 만에 풀어낼 수 있을까?’였다. 이에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뉘었다. 첫째, 한나절은 배움 중심 수업을 하고, 한나절은 융합 수업을 하자는 의견. 둘째, 하나의 주제에 하루를 꼬박 쓰자는 의견이었다. 이야기를 하며 각 주제를 따로 나누게 되면 하나의 주제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의견이 조금씩 힘을 얻었다. 그래서 융합 수업을 주로 하되,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배움 중심 수업을 녹여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방향이 나오니 ‘융합 수업을 주어진 시간 내에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까?’라는 질문이 곧바로 따라왔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활동형으로 가닥을 잡아 토의를 나누었다. 강의식으로 진행한다고 해서 그 짧은 시간 동안 융합 수업에 관한 내용을 모두 전달할 수 없을 뿐더러, 주제가 융합 수업이니만큼 선생님들 서로가 대화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다음 만남에 직접 융합 수업을 설계해보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융합 수업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선생님들과 함께 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드디어 어떻게 교육과정을 운영할지 구체적인 개요가 정해졌다. 융합 수업 이론과 모형을 간단히 설명하고, 다양한 교과 선생님들을 미리 모둠으로 편성해서 수업을 직접 설계하고, 갤러리 워크로 다른 모둠 선생님의 융합 수업 사례를 살피는 방식으로 진행하고자 목표를 세웠다.
세 번째 모임은 대면으로 진행했다. 천안에 모여 식사를 하고, 예정대로 직접 융합 수업을 설계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수업을 설계하면서 마주했던 어려움은 모형에 따라서 순서대로 설계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설계 단계에서 분석 단계로 회귀하기도 하고, 설계 단계 중에도 교과별 평가 기준, 성취기준을 수시로 바꾸어야 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우리는 우선 ‘기후 위기’를 큰 주제로 설정하고, ‘온실가스’라는 세부 주제를 다시 세워 교과별로 수업을 설계해 보았다. 선생님들께서는 교과별로 자연스레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셨고, 아래와 같은 과목별 성취기준 및 세부 목표가 설정되었다.
<표 > 과목별 성취 기준 및 세부 목표 설정 단계
이어서 우리는 통합 목표를 설계했다. 통합 목표는 교과별 세부 목표를 최대한 아우를 수 있게 설정했다. 그러나 교과목 특성상 억지로 맞출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이에 과목들이 가능한 내에서 두루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되, 교과별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목표를 설정했다. 맥락을 중심으로 융통성 있는 목표를 다음과 같이 만들었다.
온실가스를 해결할 수 있는 개인적, 사회적 노력을 찾아보고,
이에 대해 토론하며 나아가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다.
다음은 최종 평가 계획을 설계했다. 이때 최종 산출물 하나로 어떻게 모든 과목에서 평가를 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이 주를 이루었다. 개별 교과를 살려 평가하되, 하나로 묶어볼 수 있는 포트폴리오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환경 신문 제작’이라는 활동으로 최종 평가 계획을 설계했다.
▲ T-CID 모형
T-CID 모형은 재구성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즉, 각 과정을 생략할 수도, 교육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 수정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이에 최종 평가 계획 다음 단계인 ‘문제 상황 시나리오 설계 과정’은 생략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PBL 수업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좋은 질문을 줄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으로 모여, 이를 포함하기로 했다. 문제 상황 시나리오는 학생들의 흥미와 몰입을 유도할 수 있기에 최대한 학생의 입장에서 관련이 높은 상황 혹은 질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래서 수학 여행을 시나리오에 넣어 다음과 같이 문제 상황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지구의 온도가 1.5도 이상 오를 경우, 해수면이 상승해서 우리가 지금 수학여행으로 가는 통영에 다시는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신문 기사를 보니 매년 평균 기온의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개인적, 사회적 노력은 무엇이 있을까?’
융합 수업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부족하고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융합 수업 설계’라는 과제를 푸는 열쇠는 대화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대화하는 과정에서 다른 과목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당장 수업에 활용하려면 학교의 상황에 따라 또다시 재구성되는 과정들이 필요할 것이다. 수업을 구성하며 나는 상황마다 달리 모습을 만들어 내는 융합 수업이 우리들의 대화와 닮아있다고 느꼈다. 사람마다 경험과 살아온 역동에 따라 대화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모습(대화)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연결과도 닿아있는 듯했다. 융합 수업을 준비하면서 작은 연결이나마 이루어질 수 있음에 그 시간이 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고 자료
▲ 배움 중심 수업의 원리
▲ 융합 수업 워크 시트
<참고 문헌>
이은상(2022). 학생 중심 수업을 위한 협력적 수업 설계. 서울 : 푸른칠판.
손우정(2022). 배움의 공동체. 서울 : 해냄.
박종호
함께 배우는 꿈을 꾸며, 부지런히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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