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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권 논란에 대한 보통 교사의 견해

최근 교권 논란에 대한 보통 교사의 견해

권리는 ‘이해할 수 있게’ 보장되면서 제한되어야지

양철웅(온양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최근 학교에서 연달아 터진 어처구니 없고 슬픈 사건으로 인해 '교권'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한 명의 교사로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교육 현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지만, 정서적 학대와 같은 모호한 법 조항과 모호한 교사의 교육할 권리로 인해서 많은 선생님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현상을 이해해보기 위해서 여러 기사와 문헌들을 뒤적이며 생각을 정리해봤고, 이 생각을 함께 나누고자 숲소리에 글을 쓰게 되었다.

교권이란: 권위와 권리

교권이란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교총에서 발간한 자료(교총, 2022)에는 "교권이란 교원이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일정기간의 훈련을 통하여 획득한 전문지식과 능력의 소유자로서 권위를 인정받고, 부과된 책임과 임무를 이행하는 데 있어서 부당한 간섭과 침해로부터 자신과 자신의 업무를 보호하고, 전문직에서의 안정된 생활과 최대한의 능률을 기하기 위한 신분상의 보장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이라고 서술했다. 교권이라는 단어에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교권의 큰 축으로 '권위'와 '권리'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교권이라는 말에는 '권위로서의 교권'이라는 의미와 '권리로서의 교권'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교육부의 자료(교육부, 2017)를 보면, '권리로서의 교권'은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육자로서의 권리'(수업권, 생활지도권, 평가권 등등),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권리',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 등이 있다고 제시되어 있다.
먼저 '권위로서의 권리'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권위'라는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 또는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신'(표준국어대사전)을 의미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타인이 나를 따르게 하는 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때 권위로써 타인이 나를 따르게 하는 것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다. 어떤 강제력을 동원하여 상대가 어떤 행위를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권위를 주장하는 '주장자'와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가 있다면, 주장자의 권위를 수용자가 받아들일지 말지를 스스로 판단하여 수용할 때 권위가 성립한다.
'권위'의 개념을 바탕으로 '권위로서의 교권'을 살펴보자. 권위로서의 교권은 '학생을 지휘하고 복종하게 하는 권위로서 교육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학생을 교육하고 지도할 수 있는 힘'(정순원, 2011)을 의미한다. '지휘'와 '복종'이라는 단어가 우리가 경험하는 교실 속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와는 이질감이 느껴지니 '지도'와 '순응'이라는 말로 바꿔보자. 이때 '지도'와 '순응'은 강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교사의 권위를 수용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사의 여러 가지 능력과 자질을 보고 나름대로 판단하여 권위를 수용하는 것이다. 교사의 지적·기술적 측면에서의 수월성을 주로 볼 수도 있고, 도덕적·사회적 성숙성, 학습할 수 있는 방법과 태도 및 의욕 등을 보고 판단할 수도 있다. 물론, 교사의 능력과 자질에만 달린 것은 아니다. 학생이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는 데에는 교사의 능력과 자질과 같은 교사 내재적인 요인 외에 제도, 정책·사회적 분위기와 같은 외재적인 요인, 교사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학생과 학부모의 태도 요인도 있다.(서정화, 1994;황준성, 2014에서 재인용)
다음으로 '권리로서의 교권'을 살펴보자. 권리란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표준국어대사전)을 의미한다. 권리로서의 교권은 법령에 의해서 보장된 권리들을 의미한다. 교육부에서 2017년 발간한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에 보면 권리로서의 교권을 3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교육자로서의 권리,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권리,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와 각각의 법적인 근거를 제시했다. 이 3가지 교권 모두 중요하지만, 현재 쟁점이 되는 권리는 '교육자로서의 권리'에 해당하는데, 이를 '교육할 권리'라고 칭하겠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권은 보편적인 공무집행권 그 이상으로 중요하게 여겨진다. 개인의 인간성을 성장시키고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교육은 국가 차원에서도, 전 인류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교육할 권리를 보호하고 교사의 교육활동을 지키기 위한 국내법과 국제 권고 등이 존재한다.
교육할 권리는 '교육과정편성권, 교재 채택 및 선정권, 교육 내용·방법 결정권, 평가권, 학생 지도 및 징계권 등 교사로서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행사되는 교원의 교육할 권리'이다. (교육부, 2017) 교사는 법적으로 초중등교육법 제20조 제3항에 따라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하는 자이다. 이 '교육'이라는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권리가 바로 교육할 권리이라고 볼 수 있다. 학생의 학습권은 교원의 수업권에 대하여 우월한 지위에 있는데,(대법원 2007.9.20. 선고2005다25298 판결.) 교권(교육할 권리)은 기본권(인간이 태어나면서 천부적으로 부여받는 권리)이 아니라, 이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적인 성격을 지닌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교육할 권리의 세부적인 권한들의 법적인 근거들을 살펴보자. 교육할 권리의 세부적인 권한들이 법률상에 충분히 보장되어 있을까? 교사의 다양한 교육할 권리의 근거가 되는 법령 조항들을 찾아보았다.
구분
근거 조항
교육과정편성권
초중등교육법 제23조(교육과정 등)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한다. ② 국가교육위원회는 제1항에 따른 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며, 교육감은 국가교육위원회가 정한 교육과정의 범위에서 지역의 실정에 맞는 기준과 내용을 정할 수 있다. <개정 2013. 3. 23., 2021. 7. 20.>
교재 채택 및 선정권
초중등교육법 제29조(교과용 도서의 사용)학교에서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거나 교육부장관이 검정하거나 인정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여야 한다. <개정 2013. 3. 23.> ② 교과용 도서의 범위ㆍ저작ㆍ검정ㆍ인정ㆍ발행ㆍ공급ㆍ선정 및 가격 사정(査定)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초중등교육법 제32조(학교운영위원회 기능) ① 학교에 두는 학교운영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심의한다. 다만, 사립학교에 두는 학교운영위원회의 경우 제7호 및 제8호의 사항은 제외하고, 제1호의 사항에 대하여는 자문한다. <개정 2021. 9. 24.> 4. 교과용 도서와 교육 자료의 선정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3조(교과용도서의 선정) ① 학교에서 사용할 교과용도서는 학교의 장이 선정한다. 다만, 신설되는 학교에서 최초로 사용할 교과용도서는 해당 학교를 관할하는 교육감 또는 교육장이 선정할 수 있다.
교육내용·방법 결정권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8조(수업운영방법 등) ① 삭제 <2005. 1. 29.> ②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학년 또는 학과 등을 달리하는 학생을 병합하여 수업할 수 있다. ③학교의 장은 방송프로그램을 수업에 활용할 수 있다. <개정 2001. 1. 29., 2008. 2. 29., 2011. 3. 18.> ④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경우에는 원격수업 등 정보통신매체를 이용하여 수업을 운영할 수 있다. 이 경우 교육 대상, 수업 운영 방법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교육감이 정한다. <개정 2013. 10. 30.> ⑤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경우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교외체험학습을 허가할 수 있다. 이 경우 학교의 장은 교외체험학습을 학칙이 정하는 범위안에서 수업으로 인정할 수 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8조의2(자유학기의 수업운영방법 등)중학교 및 특수학교(중학교의 과정을 교육하는 특수학교로 한정한다)의 장은 자유학기에 학생 참여형 수업을 실시하고 학생의 진로탐색 등 다양한 체험을 위한 체험활동을 운영해야 한다. <개정 2020. 2. 25.> ② 제1항에 따른 학생 참여형 수업 및 체험활동에 관한 세부 사항은 교육부장관이 정한다. [본조신설 2015. 9. 15.]
평가권
초중등교육법 제25조(학교생활기록)학교의 장은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인성(人性)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ㆍ평가하여 학생지도 및 상급학교(「고등교육법」 제2조 각 호에 따른 학교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학생 선발에 활용할 수 있는 다음 각 호의 자료를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작성ㆍ관리하여야 한다. <개정 2013. 3. 23.>
학생 지도 및 징계권(생활지도권)
초중등교육법 제20조의2(학교의 장 및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학교의 장과 교원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교원의 교육활동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지도할 수 있다.
표의 법령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교육 행위의 주어가 '학교의 장'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사에게 흔히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교육할 권리들은 대부분 학교의 장이나 상급기관에게 부여되어 있고, 그 권한을 교사가 위임 받는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육과정편성권을 보면, 국가교육위원회가 학교 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정한다고 되어 있고, 그 운영의 주체도 '학교'로 명시되어 있다. 교재 채택 및 선정권도 이미 교육부 장관이 검정하거나 인정한 도서를 사용해야 하며, 그것도 교사들이 교과협의회를 통해서 의견을 제시하면,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학교의 장이 선정한다고 되어 있다. 교육내용방법 결정권, 평가권도 모두 주체가 학교의 장이다.
생활지도권의 경우는 유일하게 '학교의 장과 교원'이라고 명시하여, 교사에게 권리를 부여했는데, 이것도 교권 침해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2022년 12월 27일에 신설된 조항이다. 그 이전에는 초중등교육법 제18조 1항에 '학교의 장은 교육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징계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 다만, 의무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은 퇴학시킬 수 있다.'라고 하여, 법적으로 교사에게 생활지도의 권한이 명시된 것이 아니라, 학교의 장에게 부여된 징계와 지도의 권한을 교사가 위임 받아서 사용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교사의 생활지도를 일부 학생들이 거부하고, 이에 따라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사례가 많아짐에 따라서, 교사의 생활지도 권한을 법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거의 모든 교육할 권리가 학교의 장에게 부여되어 있고, 문제가 되자 교육할 권리 중 일부(생활지도권)만 교사에게 부여한 지난 과정을 되돌아보면, 교육할 권리가 법적으로 교사에게 제대로 부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법령이 왜 이렇게 되어 있는지, 최근의 교육활동 침해와 같은 부작용은 없는지 살펴보고, 교사가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할 것이다.

지금 중요한 교권은 '교육할 권리'이다.

최근 교권 관련한 사건들을 앞서 언급한 권위로서의 교권과 권리로서의 교권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보면, 지금 쟁점이 되는 것은 권리로서의 교권이다. 그 중에서도 '교육할 권리', 특히 '생활지도권'에 대한 것이다.
물론 권위로서의 교권은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철학적으로, 교육이라는 것이 이루어지려면 교사와 학생 사이에 교육을 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교육적 관계의 요소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주관성이 크기 때문에 현장 교사와 연구자별로 의견이 다양하다. 이를 나열해보면, '진실성, 무조건적 존중, 공감적 이해, 지도력, 우호성, 이해성, 학생 책임감/자유, 불확실성, 불만족, 훈계, 엄격성, 신뢰감, 친밀감, 존중감, 유능감' 등등 매우 다양하다. 나열한 교육적 관계의 특성들은 상급자의 권리와 하급자의 의무만 갖고는 불가능하다. 그 안에 서로에 대한 인정과 존중, 신뢰가 있을 때에만 진실성, 무조건적인 존중, 공감적 이해, 신뢰감, 친밀감 등의 특성들이 피어난다. 권리와 의무의 관계만으로는 교육적 관계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근본적으로는 권위로서의 교권이 필요한 이유다. 교사가 높은 전문성과 인격을 지니고, 학생이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교육을 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권위로서의 교권만 갖고는 공교육 제도 내에서 교육이라는 것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왜냐하면 모든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와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평균적인 특성을 갖는 표준정규분포를 이루는 시대가 아니다. 각자의 특성과 옳음을 갖고 있는 다극화의 시대다.(김난도 외, 2022) 지식이 더 빠르게 유통되기 때문에, 이제 교육에 대해서도 각자 갖고 있는 '옳음'이라는 것이 있고, 이것을 지지해주는 유튜브·책 속의 전문가가 있으며, 학생과 학부모 각자 갖고 있는 '옳음'은 학교와 교사의 '옳음'과 다르다. 의미 있는 '옳음'을 갖고 있는 학부모도 있지만, 왕의 DNA 이론을 갖고 있는 학부모, 칭찬 스티커가 아동학대라는 관점을 갖고 있는 학부모, 학생을 훈육할 때에는 무조건 '마음읽기'를 해야 한다는 학부모가 있고, 각각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과 전문가가 있다. (물론 이론과 전문가로 근거를 삼는다고 그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맥락에 맞게 적용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지식의 유통이 적었기 때문에 각자의 옳음이 적기도 했지만, 권위주의적 시대 분위기 때문에 각자의 옳음을 주장하는 일이 현재보다 적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탈권위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교사의 권위가 가능할까?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아이의 행동을 훈계하는 데 있어서 이 모든 것을 포괄하려면 도대체 교사가 얼마나 높은 도덕성과 성자적 품성을 지녀야 할까? 교원양성기관 4년 또는 교육대학원 2년을 거치면서 말이다. 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공교육 제도 내에서는 교사의 권리, 법적인 권리가 필요하다. 교사가 모든 주장을 포괄하는 교육을 할 수는 없다. 설령 이런 노력을 교사가 한다고 할지라도 모두를 포괄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일부는 자녀에 대한 과열된 사랑으로 왜곡된 욕망과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 교사의 교육할 권리를 침해하고, 교사의 인권까지 침해하기도 한다. 교사의 교육할 권리 침해로 인해 교사의 교육적 적극성이 위축되면, 권위로서의 교권도 성립하기 힘들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교사가 사회적 기여와 교사로서의 자아실현 욕망을 갖기는 어렵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전문성을 실현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교사의 전문성과 인격을 학생과 학부모가 인정하고 존중하기는 어렵다. 교사의 교육할 권리를 침해하는 일부에게서 교사의 교육할 권리와 인격을 보호하고, 적극적인 교육을 할 수 있게 하는 교육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학생 인권 보장의 범위가 넓어지고, 학생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교육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의 인권 보장의 범위가 더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면서 보편적인 인권을 보장하려 노력했고,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려는 노력도 지속됐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권은 '인류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갖는 고유한 존엄과 평등하고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UN 세계인권선언문, 1948)로, 과거 봉건 사회에서는 인권이라는 의식조차 희미했고,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과 같이 인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봉건 시대에,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모두 소유했던 왕의 절대적인 권력을 제한하고 귀족과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 기본적인 권리인 인권을 보장하고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 온 역사가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일제강점기의 군국주의, 해방 이후의 독재 정권과 군사 정권에서 벗어나 민주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은 자유권, 평등권, 사회권, 참정권, 청구권 등의 기본권을 보장하고자 노력했던 과정이고, 이 과정에서 국민의 인권 의식은 높아진다.
학생 인권도 민주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강화되었다. 체벌을 예로 들어 학생 인권의 성장을 살펴보자. 일제강점기에는 교사가 몽둥이로 체벌했으며, 해방 후 독재정권 시대에도 체벌은 계속되었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의 정착과 함께 사회 곳곳에서 소외되거나 억압되었던 인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교육계에서도 학생인권을 보장하고자 노력했던 교사들과 인권운동가들이 있었다. 그 결과 1999년 공포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학교의 장은 지도를 하는 때에는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 훈계 등의 방법으로 행하여야 한다."라는 규정을 두어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기는 했으나, 원칙적으로는 체벌을 금했다. 2010년 2월에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체벌금지를 명문화한 학생인권조례를 발표했고, 뒤이어 2012년 서울특별시, 2013년에는 전라북도가 학생인권조례를 제·공포하였다. (2020년에는 우리 충남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2011년 3월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제8항 에 "학교의 장은 지도를 할 때에는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하되,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여 체벌을 금지했다. 체벌 금지가 대표적인 학생 인권의 보장은 차별 금지, 사생활과 개인정보 보호, 사상과 양심의 자유, 개성과 표현의 자유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를 통해 보면, 학생의 인권이 과거에 비해 더 보장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생인권은 교권과 충돌하는가?

먼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학생인권의 보장으로 인해, 학생인권과 교권이 충돌하느냐는 것이다. 학생인권과 교권이 충돌한다고 볼 수도 있고, 충돌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학생의 인권과 교권은 충돌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내실 있게 인권 교육을 해서 학생들이 나의 인권과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게 된다면, 다른 친구의 인권도 존중하고 교사의 인권과 교권도 존중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학생 인권과 교권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즉, "학생의 인권이 보장되면 교사의 인권이 줄어드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며, "학교에서 인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학생인권뿐 아니라 교사의 인권과 권한 또한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오동선, 2015)
반면, 학생인권과 교권이 충돌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은, 교실 속의 구체적인 상황을 생각했을 때이다. 교실에는 신체의 자유를 주장하며 교실을 돌아다니는 학생, 사생활의 자유를 주장하며 수업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학생, 휴식권을 주장하며 수업 중 잠을 자는 학생도 있다. 선생님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자기 자녀에 대한 정서적 학대라고 주장하는 학부모는 선생님이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법이 보장하는 아동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본 것이다. 이런 현실을 경험한다면, 학생 인권과 교권은 충돌한다고 보게 될 것이다.
두 관점 모두 옳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밀접하게 연관된 사람들의 권리는 서로 충돌할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권리와 권리가 서로 보장되도록, 권리와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 모순적이지만 권리의 보장을 위해 권리는 제한되어야 한다. 학생의 인권과 교권도 마찬가지다. 공교육 제도 내에서 참여하고 싶지 않지만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학생의 인권과, 20~30명의 학생을 이끌고 수업을 이끌 직무상의 의무를 지닌 선생님의 교육할 권리는 서로 충돌할 수 있다. 따라서 학생의 인권도 보장되면서도 제한되어야 하고, 교권도 보장되면서도 제한되어야 한다.
교사의 행위와 학생·학부모의 대응 유형
위 표는 교사의 행위와 그에 대한 학부모의 대응을 간단하게 구분하며 만든 표이다. 모든 교사가 정당한 교육적 행위를 했는데 악성 민원과 신고를 당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교권이 무너진 점이 부각된다고 해서, 학교의 모든 교사가 교육활동 침해를 매순간 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모든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아직도 학교에는 학생에게 폭언을 하는 교사도 있고, 선생님을 진정성 있게 존중하는 학부모도 많다. 이런 현재 상황을 조금 더 구분지어 인식하기 위해서 표를 만들어봤다. 현재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은 복잡한 현재 상황을 너무 거칠게 유형화하는 것일지 모르겠으나, 학생인권 ·교권 관련하여 현재 상황을 한 단계 구체화해서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표에 의하면 교사의 행위에는 정상적인 교육적 행위가 있고, 비정상적인 행위가 있을 수 있다. 정상적인 행위는 인권을 존중하고, 교육적인 목적과 방법을 사용한 행위이고, 비정상적인 행위는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더 나아가 위법적인 수준의 행위를 포함한다. 그리고 이 두 유형의 교사 행위에 대하여 학부모가 인정하고 존중할 수도 있고, 불신하여 민원을 제기하고 신고할 수도 있다.
1번 유형은 교사가 정상적인 교육 행위를 했을 때 학부모가 교사의 행위를 존중하는 것이다. 교사는 학생의 인권을 존중했고, 보편적으로 용인되는 교육적 목적과 방법을 사용했으며, 학부모는 이런 교사의 교육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권위로서의 교권'이 존중되는 유형이다. 이 유형이 많아져야 교사의 사기가 올라가서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으며, 학부모도 학교를 더욱 존중하게 되고, 학생이 성장하며, 교육이 발전할 수 있다.
2번 유형은 교사가 정상적인 교육적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부모가 불신하여 민원을 제기하거나 신고하는 경우다. 2번 유형이 만연하면, 교사의 교육적인 적극성은 매우 위축될 것이다. 교사는 자신의 행위가 교육적이냐 아니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위법적이냐 합법적이냐에 더욱 집중할 것이다. 즉, 교실 속에서 나의 역량을 펼치며 '자아실현'하고, 이를 통해 학생들의 성장에 '기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직업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과 '자기보존'의 욕구를 더 크게 갖게 될 것이다. 나의 수업, 나의 생활지도를 어떻게 할지 생각할 때, '어떻게 해야 더 교육적일까?', '어떻게 해야 아이들의 인지적·정서적·기능적인 면을 더 성장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교사의 교실과, '어떻게 하면 고발 당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내 교직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할까?'를 고민하는 교사의 교실은 매우 다를 것이다.
3번 유형은 교사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지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부모가 교사의 행위를 존중하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물리적인 고통을 가하는 방법으로 지도를 하거나, 욕설 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행위를 옳다고 인정해버린다면, 교사의 잘못된 지도를 받은 학생의 성장과 발달에 매우 큰 악영향을 미치고, 교직에는 잘못된 교육적 방법이 용인되고 확산될 우려가 있다. 3번 유형이 위험한 이유는,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의 비정상적인 행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는 몸에 병이 악화되고 있는데, 그 병의 고통을 모르고 있는 것과 같다. 병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환자는, 병이 매우 심각하게 악화되고 나서야 병을 알아차릴 것이고, 알아차린 후에는 병을 고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4번 유형은 교사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고, 위법적 행위를 했을 때 학부모가 이를 불신하여 민원을 제기하거나 신고하는 경우다. 이 경우는 학생과 학부모가 자신의 합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오히려 교사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고 위법적 행위를 했다면 당연히 그에 합당한 징계와 처벌을 받는 것이 교육의 발전과 사회적 정의를 위해서 옳다고 생각한다.

학생인권 강조의 성과: 3번 유형의 교육 행위가 4번 유형의 자리로

위의 표로 학생인권의 성장을 다시 생각해보자. 앞서 언급한 학생인권의 성장 과정, 체벌 금지의 과정을 위의 표로 생각해보자.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체벌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체벌은 인간의 사고, 정서, 몸과 의지 등이 성장하도록 돕기보다는, 타율적이고 수동적인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안다. 과거에는 '사랑의 매'라는 명목으로 학생에게 체벌하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려는 노력과 관련 법령의 개선에 힘입어, 체벌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점과 교육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이제 학생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논리적 설득, 정서적 공감, 합리적 절차에 의한 징계 등으로 지도한다. 만약 체벌이 일어나면 민원, 신고 등이 이어진다. 이제 학교에서 체벌하는 장면은 거의 보기 힘들다. 그리고 체벌 이외에도 과거에 당연하게 여겨지던 인권침해적인 행위들이 이제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이 과정을 위의 표를 통해서 보면, 이 과정은 3번 유형에 있던 일들을 4번 유형 자리로 옮기는 과정이었다. 잘못된 행위를 잘못된 것인지 몰랐거나 잘못된 행위를 잘못되었다고 말할 근거가 없었는데, 이제 잘못된 행위를 잘못되었다고 깨닫고,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각종 법령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학생인권 성장에 적응해야 할 우리 사회의 과제

그런데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과정에서 정당한 교사의 지도까지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 위의 표를 바탕으로 보면, 2번 유형의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을 오해하거나 남용하는 학생·학부모가 생겨났고, 이런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학생 인권의 성장으로 3번 유형의 교육 행위를 4번 유형의 자리로 옮기는 성과가 있었지만, 1번 유형의 교육 행위를 2번 유형의 자리로 옮기는 부작용도 있는 것이다. 학생 인권을 성장시키고 인권 교육을 하려는 의도, 노력의 과정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한 부작용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복잡하기에, 어떤 영역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함께 수용하고 고치려 노력해야 할 때다.
부작용을 초래한 여러 문제점들이 있지만 핵심적인 문제점 2가지는 ▲아동의 인권을 보장하고자 했던 아동복지법의 '정서적 학대' 조항이 모호하다는 것, 이에 더해 ▲범위가 넓어진 학생의 인권을 교육활동 중 제한해야 하는 교사의 권리까지 모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령이 모호하다.

최근 교사들은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법에서 보장하는 아동의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악성 민원과 신고를 당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동복지법 제17조(금지행위) 5호의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이다. 이 정서적 학대행위는 유형이 다양하고 범위가 모호하며, 이로 인해 학부모·학생·교사가 인식하는 바가 서로 다르고, 서로 인식하는 차이가 크기 때문에 현재의 혼란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법령이 모호하기 때문에, 학부모와 교사에게 혼란이 있으며, 이로 인해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이 모호함이 해결되어야 한다.
법령은 내 행위를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헌법은 '죄형법정주의'라는 원칙으로 국민에게 범죄 여부를 묻고 형벌을 가할 때에는 반드시 법률로만 가능하도록 헌법 제12조 1항에서 규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죄형 법정주의에서 '명확성 원칙'이라는 것이 파생되는데, 이는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원칙이라고 헌법 재판소의 판결문에 제시되어 있다.(헌법재판소 2015. 10. 21. 선고 2014헌바266 결정 ) 즉, 형법으로 어떤 행위를 제한하고, 법으로 금지된 행위를 했을 때 형벌을 가하려면, 그 법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그 금지된 행위에 대해서 최대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행위가 법에 위반되는 것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예견하여, 자신의 행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쉽게 말하면, 어떤 법 조항에 대해서, 내가 할 행동이 그 법에 위반되는지 아닌지 정도는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법이 적용되었을 때, 그 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이 받는 불이익이 큰 경우에는 이 명확성의 원칙이 더 중요해진다.
정서적 학대는 명확하지 못하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서적 학대는 신체적 학대나 성적 학대처럼 피해자의 신체 등에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정서적 학대로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는지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정량화하기가 어렵다. 정서적 학대로 인한 피해는 오로지 학대를 당한 아동의 주관적인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동일한 행위 유형이라 하더라도 당사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서로 다르"다 라며 헌법재판소에서도 정서적 학대의 유형이 매우 다양함을 인정하였다. (헌법재판소 2015. 10. 21. 선고 2014헌바266 결정 )
교사들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 선생님들이 자신의 훈육이 아동복지법의 정서적 학대 조항에 어긋나는지 아닌지를 명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 PD수첩에서 "사용하는 어휘가 기분이 나빴다는 것도 정서적 학대로 연결을 짓기도 하고", "모든 게 아동학대와 이어질 수가 있기 때문에"라며 걱정하는 선생님들의 인터뷰를 보면, 교실 속 선생님들이 '정서적 학대' 조항을 기준으로 자신의 행위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MBC PD수첩, 2023.03.07.)
▲PD수첩(2023.03.07.)의 한 장면. 교사들의 인터뷰.
학부모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아동학대 기소율과 전체 형사범죄의 기소율을 비교해보면, 이 모호함이 드러난다. 2021년~2023년 8월, 교사가 아동학대로 신고 당한 사건 중 기소된 사건은 전체의 11%다.(헤럴드경제, 2023.8.25. 기사) 반면 형사범죄 전체의 기소율은 약 30%다.(출처: 지표누리) '신고된 사건'에 비해서 '기소된 비율'이 다른 형사범죄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는 것은, 신고는 많이 되었으나 정말로 죄가 있다고 판단할 사건이 훨씬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부모가 생각하는 아동학대의 범위, 교사가 생각하는 아동학대의 범위, 사법기관이 생각하는 아동학대의 범위에 차이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 형사범죄 기소율은 30%내외다. (지표누리 사이트(index.go.kr)에서 확인 가능)
또한 뉴스에 보도되는 아동학대 신고의 내용들을 보면, ▲초등학생들에게 칭찬 스티커를 부여한 것이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한다는 것, ▲우는 아이를 충분히 달래지 않고 잠시 혼자 진정하고 있으라고 말한 것, ▲선생님이 발표할 때 손을 높이 들라고 했다는 것 등으로 아동학대로 신고된 사례가 있다고 한다. (JTBC 보도, 2023.08.12.) ▲국어 시간에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적용해보고자 아이들에게 급식 시간에 뒷짐을 지고 뒤꿈치를 들고 걷게 했다는 것, ▲수업 중 공책을 가져오지 않은 학생의 이름을 칠판에 이름을 적고 방과 후에 청소를 시킨 것 등으로도 아동학대로 신고되었다고 한다.(MBC PD수첩, 2023.03.07.) 이 모든 신고 내용에 대해서 모든 학부모가 아동학대라고 동의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수사기관, 검찰 등에서도 명확하게 이해했는지 의문이다. 이는 PD수첩의 내용을 보면, 조사를 담당한 수사 기관이 아동학대 혐의를 인정하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근거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사례회의'를 들고 있다. 그리고 검찰에서도 교사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근거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사례회의 의견서를 근거로 들고 있다.(기소유예는 유죄 판결은 아니나, 아동학대를 했다는 것 자체는 인정하되, 여러 정황을 참작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해당 교사는 기소유예 판결로 인해 '견책' 징계를 받고 1500만원의 급여를 삭감당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정서적 학대의 범위를 넓고 민감하게 보는 기관이고,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은 더 엄격하게 판단하여 교사의 법적인 처분을 결정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의견을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에서 사법적 판단의 근거로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아동학대를 판단하는 수사기관과 사법기관 자체의 논리와 견해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자문 의견을 수용하는 것일까? 만약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학부모와 교사들은 '정서적 학대'의 범위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학대 조항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재판소가 아동복지법 제17조 제5호 등에 제기된 헌법소원에서 판단한 '헌법재판소 2015. 10. 21. 선고 2014헌바266 결정'을 통해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정서적 학대로 인한 피해가 매우 크기 때문에 정서적 학대 조항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정서적 학대가 지속됐을 때 신체적 손상에 비해 치유가 어렵고 ▲그동안 아동 학대행위가 가정 내부의 문제 또는 아동훈육의 문제로 취급되면서 국가의 개입이 소극적으로 이루어졌고 ▲학대행위자가 대부분 부모나 보호자라는 이유로 '원가정보호'라는 목적 하에 비교적 경미하게 처벌되어 아동학대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둘째, 교육목적상 행해지는 정상적인 훈육과 정서적 학대를 구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아동복지법에서는 정서적 학대를 '신체적 학대', '유기' 또는 '방임'을 동일한 법정형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쉽게 말하면, '정서적 학대'-'신체적 학대'-'유기'-'방임'에 대해서 형량을 부여할 때 같은 기준으로 부여하도록 한 것이다. 정서적 학대란, 신체적 학대, 유기, 방임과 같이 심각하게 아동에게 피해를 준 것이니, 교육목적으로 행해지는 정상적인 훈육과는 구별될 수 있다고 보았다.
첫 번째 이유에는 동의한다. 정서적 학대가 한 인간의 성장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고, 이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아동학대와 교육상의 훈육을 구분할 수 있다는 두 번째 이유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현재 교사, 학부모,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서 당면하는 '모호함'이 근거다.
이 모호함으로 인한 부작용은 무엇일까. 이로 인한 부작용을 첫째, 학부모 측면에서 살펴보면, ▲자녀가 집에 와서 토로하는 선생님에 대한 불만에 대하여 '이게 정서적 학대인지 생활지도인지' 판단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있고, ▲정상적인 생활지도인 사안에 대해서도 아동학대 신고를 하고 있으며, ▲일부 학부모는 학교와 선생님에게 사적인 영향력을 끼치고자 하는 왜곡된 욕망 또는 학교와 선생님을 향한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아동복지법의 정서적 학대 조항을 남용하고 있다.
둘째, 학생 측면에서 살펴보면, ▲자신이 어디까지 권리를 주장하고, 어디까지 절제해야 할지 기준이 모호해지며, ▲그로 인해 잘못된 방법으로 잘못된 권리를 주장하게 되어,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고 절제할 배움의 기회를 놓쳐버리며, ▲같은 교실에 있는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된다.
셋째, 교사 측면에서 살펴보면, 이제는 가까운 동료교사에게까지 일어나는 아동학대 신고 사안들을 확인하면서 ▲교실 속 자신의 어떤 행위가 정서적 학대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알지 못하며, ▲그로 인해 교정해야 할 학생들의 행동에 대해서 지도하는 데 위축되고, ▲교사가 적극성을 발휘하기 어려워지면서 학급의 질서를 바로잡기 더 어려워지며,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로 더 많은 민원과 항의, 신고에 시달리게 된다.
▲PD수첩(2023.03.07.)의 한 장면. 교사들의 인터뷰.

교사의 '교육할 권리'도 모호했다.

학생의 인권에 대한 기준이 높아졌고, 이를 보장하는 법령 중 하나인 아동복지법 제17조 5호 정서적 학대 조항의 기준이 모호한 현실 속에서, 교사가 어떻게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지 그 방법과 권한도 매우 모호했다. 교사의 생활지도 행위에 대해서 너무나 다른 관점에서 판단 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사가 어떻게 생활지도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 권리를 명시한 근거는 매우 부족했다. 최근 교사들의 요구에 대해서 교육부에서 '교원의 학생 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생활지도 고시로 칭하겠다.)을 발표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미 이루어졌어야 하는 조치가 이제 이루어졌다.
'학칙'으로 학생의 행위를 제한하기 어렵다. 교육부의 생활지도 고시가 나오기 전, 교사가 학생의 학습권 보장과 교육활동 보호를 위해 학생의 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은 '학칙'이었다. 초중등교육법 제18조(학생의 징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학생의 징계 등)에 따르면 학생의 징계는 학칙에 의거해야 한다. 또한 충남학생인권조례 제3조(학생인권의 보장 원칙)에 따르면 '학생인권은 교육 목적상 필요한 경우에 한정하여 학교규칙(이하 "학칙"이라 한다.) 등 학교 규정으로 최소화하여 제한할 수 있다. 다만, 학칙과 학교규정은 학생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 할 수 없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교육 활동을 위해서 학생의 인권을 제한할 때에는 학칙으로 제한할 수 있으며, 그것도 최소화해야 하고,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칙으로 학생인권을 제한하고자 할 때, 학생의 인권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 '최소화'의 내용, 침해할 수 없는 '본질적 내용'이 무엇인지 학교 내부적으로 정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런데 헌법에서 보장하는 인권, 초중등교육법과 그 시행령, 그리고 학생을 특정한 학생인권조례에서 보장하는 학생의 인권을 학칙으로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을까? 침해할 수 없는 본질적 내용은 무엇인가? 만약 학칙을 제개정하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교육활동 중 학생의 인권을 학칙으로 제한했다고 쳐도, 상위 법령인 학생인권조례나 아동복지법, 아동학대처벌법에 위반되면 학칙은 그 힘을 잃는다. 이런 상황에서 학칙으로 학생의 인권을 제한하고, 학칙에 기대어 교사가 적극적으로 학생을 지도할 수 있을까? 우리 학교의 학칙은 믿을 만한 것인가? 법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는가? 만약 학칙에 따라서 지도를 했는데,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구체적으로, 초중등교육법과 그 시행령,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법,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생에게 물리력을 사용할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학칙에 '학생 간에 물리적 폭력으로 싸우는 경우 교사가 물리력을 사용하여 두 학생을 떼어놓을 수 있다.'라고 규정했을 때, 어떤 교사가 학칙을 믿고 두 학생이 싸우는 것을 물리적으로 힘을 사용해 적극적으로 떼어놓을 수 있을까?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은 좋으나, 기본권의 보장과 그 제한은 법의 위계를 생각해야 한다. 학생의 인권을 법령으로 정한 것은 좋으나, 그렇다면 교사가 교육 목적을 위해 학생의 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이나 범위도 적절한 수준에서 법령으로 정해야 한다. 앞서 정서적 학대의 범위가 모호한 것을 지적했는데, '모호한 학생의 인권'에 대해서 그것을 제한할 방법과 권리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이 갖는 공포는, '나의 행위가 정당하더라도 학생의 주관적 감정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면 나도 아동학대로 신고 받거나 처벌 받을 수 있다'라는 두려움일 것이다. 나에 대한 처벌이 나의 행위에 달려 있지 않고, 상대의 주관적 감정에 달려 있다는 두려움이다. 이런 두려움은 소극적인 교육 행위로 연결될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2편에서...

최근 교권과 학생인권에 대해 관심이 생겼고, 이 글, 저 글 읽고 현장 교사의 입장에서 학생인권과 교권에 대한 입장을 글로 정리해봤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한 명의 교사로서 문제점은 지적했으나, 개선 방향의 구체적인 내용은 2편으로 넘겨야 할 것 같다. 최근 교육부에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와 '유치원 교원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고시', '교권회복 및 보호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이 안들이 앞서 언급한 '법령의 모호함'과 '교육할 권리의 모호함'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법령 개정과 교육부의 대안 위에서, 현실적으로 우리 교사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근본적으로, '권리'를 두고 논쟁하는 현재의 불협화음을 넘어서, 교사의 '권위'가 인정되고 교육적 관계가 회복되는 화음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부족한 글인데 끝까지 읽어준 분들께 정말 감사하며, 조금 더 고민해보고 1편의 생각을 연장해서 2편에서 제시하겠다.
---------------------참고한 문헌--------------------------
UN 세계인권선언문(1948)
교육부(2017)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
교총(2022) 2021년도 교권보호 및 교직상담 활동실적
김난도 외(2022) 트렌드 코리아 2023. 미래의 창
서정화 외(1994). 교원의 권위와 교직윤리 확립방안 연구. 서울: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오동선(2015). 아이를 빛나게 하는 학교인권. 아카데미프레스
이수창(2020) 아동복지법 정서적 학대 조항의 명확성 검토, 헌법재판연구 제7권 제2호 201-229쪽
황준성(2014). 법제적 차원에서 본 교권의 의미. 교육철학 제52권 55~79쪽
헤럴드경제(2023.08.25.) "지옥같았던 경찰조사"…아동학대 수사 교원 절반, ‘무고’에 당했다 [교권 울린 무고].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30824000819 (2023.8.31. 인출)
JTBC(2023.08.12.) [인터뷰] 이런 것까지 '학대'라며 신고? "교사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한국일보(2023.08.13.) 세종시 초등교사처럼 아동학대 신고로 직위해제 교사 작년만 35명.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3081315220003324 (2023.8.31.인출)
대법원 2007.09.20. 선고2005다25298 판결.
헌법재판소 2015. 10. 21. 선고 2014헌바266 결정
삶이 보여주는 새로운 장면 속으로 한 걸음씩 제대로 걸어가고 싶은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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