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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삶을 만드는 것들

무의미한 삶을 만드는 것들

이선경(천안동중 국어 교사)

추천 책: 스콧 니어링 자서전(스콧 니어링, 실천문학사)

이 책을 읽기 전에 스콧 니어링에 대해 일부만 알고 있었다. 서구 자본주의 시스템을 거부하고 자급자족하는 조화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 운 좋게도 이런 삶을 함께할 헬렌이라는 동반자를 만난 사람. 그리고 백 세가 넘어 단식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한 사람. 내게는 그가 이렇게 삶을 마감한 방식이 유독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내가 몰랐던 그의 삶 전반부와 그의 삶을 피상적으로 훑은 탓에 하지 않았던 질문의 답이 나와 있었다.
그의 삶 전반부는 안락한 상류층 가정, 자식 교육에 헌신적인 어머니, 독학으로 성공한 기술자이자 탄광 마을의 실질적 보스 할아버지, 묵묵히 지켜보는 아버지, 열정적인 대학 교수 생활로 요약된다. 그러다 미국 사회의 급격한 보수화 물결 속에도 1차 대전 미국 참전을 반대하다 기성 사회와 학계에서 추방된다. 그는 함께 일하던 대다수가 한결같이 개인감정은 없다며 함께 일하기를 거부할 때 이런 삶의 급격한 전환기를 원망으로 보내지 않고 인생 역경 대학에서 새로운 주제의 학위를 따는 과정으로 보았다. 자기 개인사의 어려움까지도 과학자로서 객관적, 거시적 눈으로 바라보는 초연함을 잃지 않았다. ‘아, 대인배!’
이런 추방을 계기로 그의 삶 후반부가 시작된다.
전국을 도는 사회주의 강연자, 미국 내 매카시즘 고조로 사회주의 강연이 어렵게 된 이후로는 동반자 헬렌과 함께 버몬트와 뉴잉글랜드에서 자급농으로 살았다. 그의 무소유, 자급자족 생활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노년에는 의도치 않게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된다.
그럼 “그의 이런 삶의 방식은 무엇에 대한 대답인 걸까?”
이 책에서 내가 찾은 결론은 “서구 문명을 만든 서구 강대국이 지배해온 세계 정치, 경제 시스템은 파렴치한 사기이며 위선으로 포장되어 있다. 서구 제국주의 강대국 최고의 외교술은 전쟁이다. 현대 세계가 민주주의 원리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허상이다. 자연과 다른 존재를 착취하는 방법으로 얻은 대부분의 물질적 부를 각국의 소수 독재체제가 독점한다. 이 소수 독재체제는 대중을 현혹시킬 수 있을 만큼만 물질적 부스러기를 던져준다. 대중은 물질적 부가 인간 행복의 전부라는 대중매체의 세뇌에 의문을 품지 않고 불공정한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의 종속변수로 살아간다. 시스템의 종속변수가 아닌 자기 삶의 주체가 되어, 노력하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사는 방법은 서구 자본주의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이다. 그리고 이런 결론은 그가 사회학자로서 오랫동안 관찰, 견학, 연구한 결과일 뿐 아니라 신념을 열정적으로 실천하다 학계와 기성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그 자신의 체험이 뒷받침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뒤이어 따라오는 질문. “그럼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은 한 인간으로서 내 삶의 방식을 묻는 것이기도 하고 지금 내가 교사로 살고 있기에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이 질문은 세상을 파악한다는 이유로 코로나 이후 몇 년간 유튜브에 취한 생활을 하다 문득 조용히 성찰할 시간도 없이 하루가 건조하게 사라져버린다는 생각이 든 끝에 유튜브를 절제하자는 결심, 목표도 소망도 없이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사는 나태,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자는 결심을 한 터에 온 것이라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말하자면 지나간 내 인생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문장을 써보자는 그런 마음이 이루어질 즈음에 이 책이 내게 왔다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내 처지에 꼭 맞는 책을 발견했을 때 ‘어머 어머’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이건 신의 가호야. 내가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어? 잘못인 줄도 모르고 할 뻔했잖아?’라는 생각이 들어 정독하던 옛적을 떠오르게 했다.
유튜브에 취한 생활의 결과로 ‘스콧 니어링 자서전’에 집중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세 아이가 옆에서 라면과 초코파이를 먹으며 떠들고 있고 나는 저녁을 배불리 먹었음에도 찬장 안에 든 과자 중 한 가지를 오늘 저녁에 꼭 먹어야겠다며 군침을 흘리고 있다. 심지어 ‘과자를 먹으며 이 글을 쓸까?’ 하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평화로운 풍경이라 생각했겠지만, 이 글을 읽었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될 수밖에 없다. 제과 회사에서 파는 과자는 소비자의 건강이 아닌 그들의 이윤이 목표이므로 내가 이 과자를 먹으면 방부제와 첨가물 등에 의해 건강이 조금씩 나빠질 것이다. 과자가 미치는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제과 회사의 지속적 이윤 창출을 위해 자극적인 맛을 연출했을 것이므로 나는 이 과자 맛에 중독될 것이다. 이것은 내 식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비만과 다이어트로 넘쳐나는 현대 사회. 기업의 이윤 창출로 이어지는 이런 현상들. 우리가 먹는 약도 그렇다. 현대 의료 체제에서 권하는 약의 효과는 대증요법이 많다. 증상 없애기가 목표인 감기약들. 이 감기약의 지속 복용 결과는 자연 면역력 감소, 약물 의존성 강화. 이 또한 기업 이윤 창출로 이어진다. 교육도 그렇다. 주입식 사교육으로 효과를 보는 교육 시스템이 본말전도의 부작용에도 바뀌지를 않는다. 이런 현상 역시 아이들의 바람직한 성장이 교육의 목표가 아니라 기업의 이윤 창출이 목표라면 설명이 된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명확한 성찰 없이 내 아이들을 시스템의 유능한 부품이 되도록 키우지 않았나 싶다. 이런 방식 외에 대안이 없다는 듯이. 결국은 주체가 아닌 종속변수가 될 것 아닌가?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앞서 한 질문의 답이 자연스레 나온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종속변수가 아닌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 또 따라오는 하위 질문. 그렇다면 사람을 종속변수가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성 사회 시스템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학교 안팎의 교육.(정확하게 표현하면 세뇌이다. 불리한 것을 이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니까.) 필요한 것을 자급자족하지 못하게 하는 생산, 유통 시스템. 월급과 승진을 주는 자에게 복종하도록 하는 사기업과 관료 조직. 소수 독재체제가 장악한 대중매체의 선동. 생각하고 보니 종속변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선택권, 결정권은 애초에 제한적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 역시 불가능하다.
이렇게 ‘스콧 니어링 자서전’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읽는 안목을 깊게 해주었다. 이 책을 읽은 나에게 실천 과제를 제시한다. 살아가는 이유를 명확히 할 것. 스콧 니어링처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질 것. 스스로를 사랑하는 정의롭고 진실한 방법을 연구할 것. 몸과 마음, 생활에서 나태를 근절할 것. 그리고 따라오는 하위 질문. 동생이 옆에 두고 간 ‘제크’를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 현대 사회의 일원으로 오십 년 넘게 살아온 나는 ‘제크’를 먹을 것이다. 그러나 ‘제크’를 먹지 않을 근본 방법을 연구할 것이다. 하는 일, 사는 공간, 함께 하는 사람을 바꾸는 것도 검토할 것이다. 스스로에게 제시한 실천 과제를 지키는 선에서.(어제는 동생이 준 ‘제크’ 한 봉지를 먹었다. 그러나 이 글을 퇴고하는 오늘만큼은 수납장 과자를 먹지 않기로 결심한다.)
내가 이런 결심을 하는 이유는 살아온 것처럼 산다면 삶이 계속 무의미하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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