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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소리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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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왜 생활교육을 공부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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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왜 생활교육을 공부해야 할까요?

먼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추상적이기만 한 ‘생활교육’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체육 교사인 저는 학생부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인연입니다. 사실 체육 교사나 생활지도 교사가 아니어도 학생들의 기초생활습관이나 학교생활 전반을 관리하는 '생활지도'는 모든 교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특히 담임 역할은 생활지도의 책임까지 떠안게 되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많은 부담을 가지는 업무입니다.
​ 신규 발령을 받았을 때 좋은 체육 선생님도 되고 싶었지만, 그보다 좋은 담임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2009년 3월 2일 첫 담임이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교탁에 섰을 때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너희들을 절대로 때리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 이후로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초임 교사인 제가 때리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화를 내지도 때리지도 혼내지도 않으니, 건강한 물고기들처럼 팔딱이는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은 제멋대로 통통 튀었고 통제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참다 참다 결국 두 달이 지나고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동안 쌓아뒀던 화를 한 번에 쏟아내 버린 겁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저를 찾아오기 전까지 종례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이들이 찾아와서 사과하고 롤링 페이퍼를 써주고 하는 모습에 화가 풀어지게 되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철없는 신규 교사를 아이들이 달래준 건 아닌가 싶습니다.
​ 군대 전역 후 7월에 복직하여, 한 학기 정도 담임을 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담임을 맡지 않으니 학교에 제자가 없는 듯이 서운하고 정붙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부담임이었던 학급의 담임교사와 친해져서 자율시간에는 늘 교실에 들어가 담임 역할을 하곤 했습니다. 다음 해부터 담임을 맡게 되었고 PDC, 비폭력 대화, 회복적 생활교육, 버츄 프로젝트 등 '생활교육'을 공부하고 교실에 적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처음 교단에 섰을 때처럼 제 마음 속의 나침반은 좋은 담임교사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올해, 2020년에는 교직 생활을 한 이후 두 번째로 담임을 맡지 않는 해가 되었습니다. 담임이 아닌 채 어떻게 일 년을 보낼지 벌써 마음이 허전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마음 한켠에는 '생활지도'의 부담에서 벗어났다는 작은 안도감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담임교사를 하고 싶어도 어렵게 만드는 생활지도는 생활교육과 어떻게 다른 걸까요?
​'생활지도'의 관점은 1. 학생들의 잘못하면 교사가 가르치고 통제합니다. 2. 학생의 잘못은 교사의 책임이 됩니다. 3. 책임을 가진 교사는 학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자신의 능력을 불신하게 됩니다.
​'생활교육'의 관점은 1. 학생들이 잘못하면 학생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교사가 돕습니다. 2. 학생의 잘못은 함께하는 공동체(교실 or 가정) 전체의 책임이 됩니다. 3. 여러 사람이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회복됩니다.
'생활지도'와 '생활교육'은 모두 문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에 주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차이점을 살펴보면, '생활지도'는 교사의 힘과 학교규칙으로 아이들을 통제하는 반면 '생활교육'은 아이들과 교사가 연결된 관계 속에서 함께 정한 규칙들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관계'와 '규칙', 이 두 가지가 학교에서 말하는 인성교육과 연결되어 있으며,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영역과 연관이 있습니다. 따라서 교사들은 생활교육 관점으로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담임이 아닌데도 생활교육을 공부해야 할까요?
저는 어려웠던 첫해를 지나고 2년 차부터는 아주 무서운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 학교에서는 ‘체벌’, 즉 폭력이 당연하게 인식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각했다고 한 대, 다른 반 교실에 들어갔다고 한 대, 수업시간에 지적받았다고 한 대,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저를 보면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생활지도를 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선배 교사들도 ‘아이들을 꽉 잡아줘서 좋다’, ‘선생님 덕분에 생활지도가 편하다’는 등의 칭찬도 받았습니다. 저 경력 교사였던 저는 그런 칭찬들 속에서 교사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들이 또 어떤 잘못을 하는지 꼼꼼하고 예리하게 살피고 다녔습니다. 아이들이 규칙을 어기거나 잘못해서 교무실에 오면 “규정대로 처리하면 너에게 불이익이 생기니까 그냥 몇 대 맞고 끝내자.”라며 체벌을 선택하도록 강요했고, “다 선생님이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라며 아이가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도록 최면을 걸었습니다.
▲ 2010년 제자들의 편지 내용
창고를 정리하다 발견한 2010년도에 받은 편지들에는 아이들이 “선생님 제발 때리지 마세요.” “선생님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때리지 말아주세요.”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 편지를 보고 “네가 잘하면 되잖아.”라며 학생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편지 속에서 아이들의 절규를 읽을 수 있습니다. 편지를 다시 읽으며 아이들에게 참 미안했고 죄책감이 올라왔습니다.
중등교사는 자신의 과목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 수업 연구를 열심히 합니다. 많은 선생님들께서 주말에도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써가며 연수에 참여하고 자발적 모임을 만들어 공부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실에서 수업 방법과 내용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어떤 훌륭한 수업을 가져가도 참여하지 않는 아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히 수업 참여를 회피하던 아이들도 교실에서 종종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수업 방해 행동을 넘어, 교사와 직접적인 마찰이 발생하고 심지어 교사를 폭행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아이들 참 무서워.”
‘교사’는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할까요?
국어사전에 ‘교사’는 ‘주로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따위에서,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사는 무엇을 가르치는 사람일까요? 가르칠 교(敎)에 스승 사(師)를 사용합니다. 일 사(事)가 아니라 스승 사(師)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승이라는 말을 찾아보면 ​학문이나 인간의 도리를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따라서 교사는 수업과 함께 인간적 도리를 가르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요즘 선생님들과의 생활교육 워크숍에서 이 질문을 던집니다.
​"교사가 왜 생활교육을 공부해야 할까요?"
​ 그러면 선생님들께서는 ‘교권이 무너졌다는 생각이 들어 회복할 방법을 찾고 싶어요’, ‘체벌을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필요해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발달로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쉽게 오픈되어 더 신경을 쓰게 돼요’ 등 학생 인권이 높아지고 교사의 권위가 하락해서 생기는 문제의 대안이라고 많이 대답합니다. 저도 선생님들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답변들처럼 세상이 변하는 만큼 교사가 학생을 만나는 방법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즉 생활교육을 공부하는 이유는 '교사가 학생을 만나는 방법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 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사가 생활교육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입니다.
첫 번째, 학교는 똑같은 사람을 찍어내는 공장이 아니며, 학생이라는 재료도 똑같은 것이 없습니다. 학생은 한 명, 한 명 다 다른 우주이며, 가장 소중히 대접받아야 할 어린 사람입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 학생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감정과 상황이 고려되지 않은 채 행해지는 생활지도는 아이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순종적이거나 반항하게 만듭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순종과 반항을 넘어 방황하는 아이들을 많이 만나봤습니다.
두 번째, 교사도 똑같은 제품을 찍어내는 기계가 아닙니다. 학교에서 주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존재가 교사입니다. 학생의 말 한마디, 수업시간 교실의 분위기, 학부모들의 시선, 주변 교사들의 평가 등 다양한 요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교사를 흔듭니다. 그 안에서 교사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힘과 권위를 내세우고 학생들을 찍어 누르거나, 친절함을 가장한 방임적 교사 혹은 무기력한 교사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세 번째, 학교의 목표가 우수한 성적을 가진 학생을 배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학교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워크숍에서 만난 많은 선생님들께서는 '인성이 바로잡힌 사람을 키워내는 것,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이 학교의 목표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들도 이미 잘 알고 계시듯이 학교는 국어교사가 국어만 잘 가르치고, 체육 교사가 체육만 잘 가르치면 되는 곳이 아닙니다. 인성이 바로 잡히지 않은 똑똑한 사람이 사회의 리더로 나섰을 때 그 책임은 참으로 무겁습니다.
​ 생활교육은 교사가 학교에서 교과 지식과 함께 가르쳐야 할 가장 근본적인 내용입니다. 따라서 교사는 생활교육을 공부하고 그에 따른 전문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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