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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별 수업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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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워드 설계 이야기 1부

목 차 제1부. 누구를 위한 수업인가? 제2부. 학생들이 내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뭐지? - 백워드 설계 1단계 제3부. 학생들이 정말 배우고 있는 게 맞나? - 백워드 설계 2단계 제4부. 그럼 어떻게 배움을 만들 수 있을까? - 백워드 설계 3단계 제5부. 진작 말해주지 그랬어요 – 백워드 설계 템플릿 제6부. 진작 말해주지 그랬어요 – 평가 루브릭 제7부. 교사는 평가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제1부 누구를 위한 수업인가?

신규 교사의 패기

2016년 9월 1일, 아산의 어느 중학교로 첫 출근을 했다. 복장은 나름 패기 넘쳤다. 두 번 접어 올린 청바지에 스트라이프 셔츠를 욱여넣고, 흰 색 아디다스 운동화에 패션의 완성인 흰 양말을 신었다. 학교 바로 앞에 자취방을 얻었기에 노트북을 편하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네모난 검정 백팩도 새로 장만했다. 하지만 교무실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은 지 5분이 지나지 않아 나는 학년부장님의 차를 타고 집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교장 선생님의 눈에 복장이 거슬렸던 것이다. 나는 흰 양말을 그대로 신은 채, 2년 전 임용시험 2차를 위해 구입했던 정장으로 갈아입고 다시 첫(?) 출근을 했다. 3년이 더 지난 지금, 이날을 생각하면 교직 문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내 모습에 웃음이 나면서도 억울한 감정이 든다.
<사진1> handsome, Pixabay(https://pixabay.com)
첫 출근의 패기만큼이나 첫 학기 수업도 용감했다. 학부생 시절, 교수님들 앞에서 수업 실연을 하면서 칭찬을 받은 기억도 있고, 무엇보다 젊은 선생님으로서 학생들과 공감하며 즐겁게 수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꿈꾸던 수업은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운 활동들로 가득한 수업’ 이었다. 지금에 와서 왜 이런 수업을 하고 싶었냐고 스스로 물어보면, 고등학생 때 경험했던 ‘50분 내내 강의를 듣거나, 50분 내내 반복해서 수능 기출 문제를 풀어야 했던 수업’에 대한 반발심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발령을 받기 전 군대에서 비주얼씽킹, 하브루타, 재미있는 협동학습과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정리했던 내용들을 적용시켜 활동지를 제작했다. 시나 소설을 비주얼씽킹으로 정리하기도 하고, 어려운 국어의 품사를 보드게임으로 익히기도 했다. 확실히 이 수업들은 내가 고등학교 때 경험했던 수업과는 달랐다.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한 명도 없었다. 교실은 학생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했고, 나는 그 모습에 흡족했다. 대학 선배가 운영하고 있던 교사학습공동체 ‘천안수업연구모임(줄여서 천수모라고 부름)’의 선생님들께도 내 수업을 신나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나의 첫 학기는 성공적인 줄로만 알았다.

누구를 위한 수업이었을까?

지난 수업들이 부끄럽게 느껴진 것은 바로 다음 해부터였다. 2017년부터 나는 천안수업연구모임을 운영했던 그 대학 선배의 권유로 ‘배움의 숲 나무학교’에서 활동했다. 이때도 넘치는 패기로 나무학교 성장교실이 시작되기도 전에 경남의 교사 성장 학교인 ‘구름학교’의 워크숍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좋아하는 즐거운 수업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나무학교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가지 질문이 나를 계속 괴롭혔다.
내 수업에서 학생들은 정말 배우고 있는가?
이 질문에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있죠?’, ‘지난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요?’, ‘우리가 이것을 배운 이유는 무엇일까요?’라고 질문하면 30명의 학생 중 2-3명만이 대답했다. 이 학생들은 아마 내 수업을 듣지 않아도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천수모와 나무학교 밴드에서, 성장교실에서 자신있게 내 수업을 떠들었던 전과가 있기에 혼자 끙끙 앓아야 했다. 내 수업은 누구를 위한 수업이었을까?

배움 중심 수업과 백워드 설계

이때부터 월급날만 되면 교보문고와 YES24에서 교육 서적들을 사들였다. 그 중에는 ‘백워드 설계’, ‘이해 중심 교육과정’과 관련된 책도 있었다. 이 책들을 읽고 나서야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내 문제는 이 두 가지였다.
① 강의 위주의 수업에 질색하고, 흥미로운 수업 방법에 집착한다.
② 학생들이 정말 배우고 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 동안 ‘학생 중심 수업’이란 말에 아주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학생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를 ‘학생이 원하는 수업, 학생이 재미있는 수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한 것이다. 수업을 강의 중심 수업과 활동 중심 수업으로 이분화해서 생각한 것이었다.
백워드 설계에서 교사가 수업의 중심에 놓는 것은 ‘학생의 이해와 배움’이다. 진정한 학생 중심 수업의 의미는 수업 안에서 학생의 배움이 일어나야 하고, 학생의 삶과 수업이 유의미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교사는 학생이 무엇을, 왜 배워야 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성찰하고, 학생들의 성장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과정 속에서 교사도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수업 사례나 다큐멘터리 등의 자료를 보면 ‘학생 중심 수업’이라는 용어는 나뿐만 아니라 여러 선생님들과 교육 관계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최근 EBS에서 방영되어 대한민국 교사들을 큰 고민에 빠뜨린 ‘다시 학교’ 시리즈에서도 이와 같은 실수를 한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는 학생 중심 수업이라는 용어보다는 ‘배움 중심 수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면 좋겠다.
수업의 중심에 학생의 이해와 배움을 위치시킨다는 것은 교사가 끊임없이 ‘학생들이 내 수업을 통해 정말 배우고 있는가?’를 질문하고 관찰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백워드 설계는 ‘평가’를 중시한다. 백워드 설계라는 말 자체가 기존의 타일러 모형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에 있었던 평가를 수업을 설계하는 단계 앞으로 가져왔다는 의미이다. 학생의 배움을 관찰하고,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배움의 증거를 미리 설계하고 수집하는 평가자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간·기말고사 기간이 되어서야 평가를 고민했던 과거와 달리, 백워드 설계에 대해 알게 된 지금은 방학 동안 학생들이 무엇을 배워야 하고, 배움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를 긴 시간 동안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깊이 고민한다.

백워드 설계의 세 단계 훑어보기

백워드 설계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 단계를 따른다.
<그림1>백워드 설계(BackWard Edsign) 절차, <그림2>타일러의 합리적 모형 절차, 유튜브 채널 애듀스페이스(www.youtube.com/eduspace)
백워드 설계의 1단계는 바람직한 학습 결과를 확인하는 단계이다. 타일러 모형의 첫 번째 단계와 같다. 이 단계에서 교사는 교육과정 문서와 교과서 등의 자료를 검토하고, ‘학생들이 무엇을 알고, 이해하며, 할 수 있어야 하는가?’, ‘그것이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질문하고 단원 수준의 목표를 설정한다.
2단계는 ‘다양한 이해의 증거 결정하기’로 평가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가 백워드 설계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교사는 앞에서 설정한 학습목표를 학생이 달성했는지의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고, 평가를 상세하게 설계한다.
백워드 설계는 마지막 3단계에서 학습 활동을 계획한다. 학습 활동을 계획할 때에는 반드시 1, 2단계와의 연관성과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교수-학습-평가 일체화와 같다. 학생들이 1단계에서 설정한 학습 목표를 달성하고, 2단계에서 설계한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면 학생들의 배움과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학습 활동을 계획할 수 있다.

1부를 마무리하며

1부에서는 백워드 설계를 연구하고 실천하기까지의 성찰들과 함께 백워드 설계가 추구하는 몇 가지 특징들을 알아봤다. 백워드 설계는 학생의 진정한 배움을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평가를 강조한다. 또한 백워드 설계의 세 단계를 정말 간단히 살펴보기도 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백워드 설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교육의 목표나 교수-학습-평가의 일체화는 백워드 설계와 일맥상통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새로 도입된 ‘핵심 지식’이라는 용어도 백워드 설계에서 온 것이다.
앞으로는 이번 글에서 간단히 훑었던 백워드 설계의 세 단계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앞으로 3년이 지난 후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며 혼자 끙끙 앓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글이 배움 중심 수업을 실천하고자 하는 많은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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