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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별 수업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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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앞에서 함께, 울어주기

고통 앞에서 함께, 울어주기

나는 생활교육이 신뢰와 연결,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참 쑥스럽다. 담임을 맡지 않은지 벌써 5년. 담임 쌤! 이라고 정겹게 부르며 다가오던 아이들이 내 인생에서 사라진지 어느덧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참 신기하다. 5년이라는 기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공들여 시간을 내고 몰입해서 즐겁게 공부하는 분야는 바로 생활교육이라는 사실이. 업무에서 벗어나 담임으로 아이들 앞에 설 수 있는 순간을 어느덧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처음 혁신학교에 매료되었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저경력 교사들은 학생들과 관계 맺기에 열중하며 수업 혁신에 집중하고, 고경력의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 업무를 맡아 불필요한 업무는 걷어내며 교사들을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그런 학교. 햇병아리 교사였을 때 혁신학교를 만났던 나는 아이들을 만나 복작복작 신나게 놀고 친해지며 수업혁신에 매진하는 학교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꿈과는 다르게 너무 빨리 선생님들을 지원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앞서 쑥스럽다 서술했듯 이 글쓰기 의뢰는 한편으로는 매우 난감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교육의 현장에서는, 비담임 교과 교사로 아이들을 만날 때는 생활교육이랄 게 특별한 영향을 미치지도, 두드러지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자주 만나며 부딪힐 일이 많은 담임교사들은 때로 잔소리도 해야 하는 부모의 입장에 서기 마련이었지만 교과 교사로 아이들을 일주일에 대개는 한 번, 많게는 두 번 만나는 게 고작인 나는 소위 말하는 이모나 고모의 위치에 있었는지 마냥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했다. 충고를 할 일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외로웠다. 인간의 심리라는 게 어찌나 청개구리 같은지 담임일 때는 그렇게 귀찮고 번거로웠던 먼지투성이 체육대회마저도 소속된 반이 없어 붕 뜨다 보니 배는 더 즐거워 보였다. 담임 선생님일 때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하며 상담을 바라고 원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사라지니 나도 덩달아 마음 붙일 대상이 없어져 허했다. 아이들이 내게 의지했던 만큼 나도 아이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마음속 깊이 깨달았다.
사막에 방치되어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한 고목 같은 아이, 밀려오는 깊은 우울감에 잠겨 버린 바윗돌 같은 아이, 둥지에서 떨어져 나온 새알처럼 덩그마니 홀로 남겨진 아이들이 눈에 밟혔지만 담임이 아닌지라 어디까지 개입해도 될지도 아리송했다. 때로 담임 선생님들은 부담임 선생님이나 교과 선생님이 아이들과 깊게 친해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도 같았다. 아마 내가 담임이었어도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소소하게 아이들과 친해지는 방편을 찾았다. 담임을 맡았 을 때는 교실에 상담 달력을 붙여 놓고 아이들과 시간을 정해 만났었지만, 이제는 10개 이상의 반에 들어가다 보니 모든 반에 달력을 붙여 놓고 챙기기가 버거웠다. 수업시간에 쓰는 개인 칭찬판을 활용해 14개 이상의 칭찬 도장을 모은 학생들에게 상담 쿠폰을 제공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쿠폰을 받으면서도 반신반의했고 내 교무실 책상에 직접 찾아오기까지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욕망이 강한 외로운 아이들, 이런 저런 고민에 쌓인 아이들이 하나 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런 때를 준비해 미리 배워놓은 타로 카드와 비폭력대화에서 느낌과 욕구를 찾을 때 활용하는 그로그 카드를 살짝 꺼내 놓으면 꿀 먹은 벙어리마냥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던 아이들도 조금씩 말문을 열었다. 나는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이미 아이들 안에는 누군가에게 털어 놓고 싶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던 여러 고민들이 목 끝까지 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에. 또한 카드를 매개로 활용하다 보니 평소라면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이 아닐까 걱정되어 언젠가 기회가 생긴다면 꼭 해주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염려의 말을 자연스럽게 슬쩍 얹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평소라면 잔소리처럼 느껴질 수 있었을 말들도 상담 시간에 하게 되면 아이들은 진지한 눈빛으로 받아 들였다.
공강 시간이나 점심시간, 근무 후의 시간을 활용해 아이들과 만나야 하다 보니 수고롭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나날이었다. 한참 울던 아이들이 개운하고 홀가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때면 내심 뿌듯하고 기뻤다. 덤으로 때로 여기저기에서 피어오르는 아이들의 흥미로운 하트 시그널을 교내의 어느 선생님보다 빠르게 알 수 있었다. (알아서 대체 어디에 쓸까 싶지만….!)
그리고 아이들의 고민을 속속들이 알다 보니 수업시간에도 더 깊게 연결될 수 있었다. 여러 고민이 많다고 상담했던 아이가 유독 피곤해하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기색이 보일 때에는 마음속에서 짜증이나 화 대신 연민과 걱정이 먼저 올라왔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건 그런 일인가 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아이들 역시 그런 마음을 느껴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최근에는 방과 후 시간 등을 활용해 서클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둥글게 자리를 만들어 서로 느낌도 나누고, 일주일 사이 근황도 나누고, 좋은 시와 글귀를 읽고 어느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침묵을 즐기기도 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며 가만히 멍을 때리기도 한다.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길게 서클을 할 시간이 없으면 최소한 근황 나누기는 하며 서로에 대해 안부를 묻는다. 나는 서클을 통해 내가 정말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국어 시간은, 수업 시간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절실하게 깨닫는다.
섣불리 시를 분석하며 가르치지 않아도 함께 나눈 시에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구절을 찾아 환한 빛을 비추는 그 눈빛을 보면서, 학교에 온 지 어느덧 12시간이 넘어가지만 그래도 다정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웃으며 조잘조잘 한없이 떠들 수 있는 그 힘을 보면서, 이런 감동적인 글은 처음 본다고 놀라워하는 그 표정을 보면서. 평가와 줄 세우기에 대한 부담 없이, 이렇게 평화를 나누고 자기 자신과 연결되며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그런 공간, 그런 시간이 아이들에게 더 많이 주어지길 가슴 깊이 소망한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큰 상처를 받았고 현재까지도 조금은 의기소침해져 있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N번방 사건을 보면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교사이자 젊은 여성으로서 너무나 참담하고 두려웠다. 또한 그 두려움은 원격 개학 시 쌍방향 수업을 선택지에서 지울 만큼 압도적이고 거대했다. 한 번 분노하고 덮어둘 수 있는,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게 지식만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가슴 아프게 깨달았다. 교육의 실패라는 성토 앞에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무기력했다.
아직도 그 상처가 내 안에 치유되지 못한 채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걸 느낀다. 학생들 앞에서 항상 희망을 노래하던 당찬 내 모습을 기억하는 주변의 사람들이 놀라는 걸 보면서 내 상처가 매우 깊은 근원에 닿아 있다고도 생각한다. 지금도 나와 연락을 하고 때로는 영화도 함께 보는 제자, 그 제자가 상담을 요청하고 교실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적인 성희롱과 얼평, 몸평 문화를 이야기하며 그 잔인함에 몸서리치고 울었던 몇 년 적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도 나는 같이 울어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이런 상황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용기를 내서 시도했던 다양한 시도들은 아마 내 접근법이 미숙했던 탓이 크겠지만, 훗날 교원평가에서 메갈 교사라는 평을 듣게 만들었기에 이후 나는 관련된 활동에 대한 시도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었다. 누구인지 짐작 가지 않는, 그 평을 남긴 학생의 몰이해도 근심스러웠지만 내가 의도하지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선입견을 강화하진 않았을까 싶어 더욱 절망스러웠다. 여기에서 그 외 서술형 평은 깊은 감사와 애정이 담겨 있었다고 말해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생활교육이 신뢰와 연결,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를 익히고 자연스러운 습관이자 문화로 체득하는 것이 지식을 학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이제는 정말, 믿는다. 그래서 내가 했던 부끄러운 작은 시도들을 이렇게나마 선생님들께 조심스럽게 펼쳐놓는다.
어느덧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등교 개학을 준비하며 나는 다시 우리가 걸어가야 할 막막한 길을 떠올린다. 우리 아이들이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지 준비하는 이 귀한 시간에 우리가 무엇을 전수하고 어떤 자세로 서 있어야 할지, 같이 고민할 수 있길 바란다. 혼자서는, 너무 쉽게 작아지고 쉬 용기를 낼 수 없기에. 가장 낮고 여린 목소리에 모두 함께 귀 기울이는 학교가 될 수 있길 바라면서. 우리의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면서. 그런 공간에서 나와 네가 안전하고 평화롭게 만날 수 있길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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