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과학 시리즈2: 학생의 관심을 사로잡는 뇌 과학 기반 6가지 교실 전략
박준일 (온양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이전 글(학습과학 시리즈1: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교사가 알아야 할 기억의 모든 것)에서 우리는 학생들의 뇌가 애초에 '잊어버리도록' 설계되었다는 망각의 역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정보가 잊히기 전에, 먼저 우리 뇌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주의'라는 좁은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교실 문을 여는 순간, 교사의 설명은 창밖의 자동차 소리, 친구의 속삭임, 어젯밤 본 넷플릭스 드라마의 잔상, 그리고 학생 내면에 소용돌이치는 수많은 걱정과 감정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우리 감각기관이 매 순간 뇌로 보내는 정보는 초당 약 1,100만 비트에 달하지만, 의식이 실제로 처리하는 양은 고작 120비트에 불과합니다. 폭포수 아래에서 조그만 컵으로 물을 받는 것과 같은 이 상황 속에서, 뇌는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이것은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일까요? 이번 시리즈에서는 『학습과학 6단계 학습 모형』 2장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 모든 방해 요소를 뚫고 학생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뇌 과학 기반의 교실 전략을 구체적으로 탐색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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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스포트라이트는 무엇을 비추는가?: 주의를 끄는 3가지 신호
우리 뇌의 주의 시스템은 무작위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생존을 위해 진화해 온 뇌는 특정 종류의 자극에 우선적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교사는 이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학생들의 제한된 주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학습 목표로 이끌 수 있습니다.
관심을 사로잡는 6가지 교실 전략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원리를 교실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전략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요? 다음은 선생님의 필요에 맞게 유연하게 조합하여 사용할 수 있는 '관심 끌기 도구 모음'입니다.
전략 1: '안전과 존중의 오아시스' 만들기
학습으로 관심을 끌기 전, 학생의 마음 상태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학생이 교실에서 불안하거나 정서적으로 위축되어 있다면, 뇌의 주의 시스템은 학습 내용이 아닌 위협 신호를 감지하는 데 모든 자원을 할당하게 됩니다. 심리학자 매슬로(Maslow)의 욕구 위계 이론처럼, 기본적인 안전과 소속감의 욕구가 충족될 때 비로소 학생들은 낯선 지식에 마음을 열고 배움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따뜻한 요구자(Warm Demander)는 교육학자 주디스 클라인펠드(Judith Kleinfeld)가 제시한 개념으로, 학생에게 높은 학업 기준을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적으로 따뜻하고 지지적인 관계를 맺는 교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따뜻한 요구자라는 말은 참 좋지만 실제 교실에서 30명 내외의 학생들과 그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이 참 어렵게 느껴집니다. 특히, 관계 형성이 어려운 학생이 있다면 '2x10 전략'을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학생과 10일 동안 매일 2분씩, 성적이 아닌 그 학생의 관심사에 대해 개인적인 대화를 나눠보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선생님이 나에게 관심이 있구나’라는 작은 신호가 관계 개선의 중요한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전략 2: 긍정적 감정과 학습 내용 연결하기
뇌 과학 연구에 따르면, 기분이 좋은 긍정적 감정 상태일 때 우리의 주의 범위는 더 넓어지고 새로운 정보에 대해 더 열린 태도를 갖게 됩니다. 따라서 수업 시작 시, 그날 배울 내용과 관련된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서나 이야기를 먼저 제시하는 '선행 조직자(Advance Organizer)' 전략이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일제강점기 역사 수업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용기와 같은 자긍심을 주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학생들의 마음을 먼저 열 수 있습니다. 또한 복잡하고 어려운 수학 공식을 배울 때는, 이를 '함께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는 도전 과제'처럼 게임 형식으로 재미있게 제시함으로써 딱딱한 공식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학생들의 흥미와 성취욕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전략 3: "왜?"라는 질문이 멈추지 않는 수업 만들기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것, 즉 '정보 공백(Information Gap)'을 발견하면 본능적으로 그것을 채우고 싶어 하는 강한 욕구를 가집니다. 이 본능적 호기심을 강력한 학습 동기로 활용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어 시간에 "세종대왕은 왜 그토록 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와 같이 정답을 바로 알려주기보다 학생들이 궁금해할 만한 미스터리를 던지며 수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냥 그날의 학습 내용을 설명하기보다 학생들이 ‘어 저 질문에 대한 답이 뭘까?’ 하고 궁금하게 만드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당연하다고 믿는 것과 모순되는 현상을 제시하여 "어? 내가 알던 것과 다르네?"라는 인지적 갈등을 유발하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물리 시간에 열전도 개념을 설명하기 전에 ‘같은 온도의 교실에 있던 딱딱한 금속 책상 다리와 푹신한 천 의자 방석 중에 뭐가 더 차가울까?’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대부분의 학생은 이 질문에 대해 ‘금속이 더 차가울 것이다.’라고 대답하겠지만 실제로 온도계로 재보면 두 물건의 온도는 같습니다. 이때 학생들은 ‘어,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다르네? 왜 그럴까?’하며 이유를 알고 싶어 할 것입니다.
나아가 중요한 순간에 이야기를 멈추거나 규칙적인 패턴의 마지막 부분을 비워두는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조성하면, 마치 드라마 예고편처럼 다음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전략들을 사용할 때는, 호기심이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을 때보다 관련된 내용을 어느 정도 알 때 더 강하게 발현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학생들의 사전 지식 수준을 고려하여 질문을 던지는 세심함이 필요합니다.
전략 4: 사전 지식 활성화 및 지식 공백 드러내기
효과적인 학습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명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때로 학생들은 자신이 실제보다 더 많이 안다고 착각하는 '행복한 무지 증후군'에 빠지기도 하는데, 이 착각에서 벗어나 배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정확성 피드백'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배울 주제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져 학생들이 스스로 답하게 한 뒤 실제 정답을 알려주어, 자신의 지식 공백을 스스로 확인하고 정답에 더 큰 관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도 질문을 던지거나 퀴즈를 낼 때 학생이 느끼기에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오늘 배울 내용은 너무 어려울 것 같다.’라고 좌절감을 느끼지 안도록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적절한 난이도의 질문이나 퀴즈를 제시해야 합니다. 또한 틀려도 괜찮다고 격려하면서 도전 의식을 북돋아주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효과적인 질문 방식은 '알고 있죠? 그런데 이것도 알아요?' 패턴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활약한 건 다 알죠? 근데 이름 없는 수많은 의병들도 함께 싸웠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요?"처럼 익숙한 내용에서 새로운 정보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입니다.
전략 5: 학문적 논쟁 구조화하기
잘 설계된 논쟁은 학생들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고 주제에 깊이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민감한 주제를 피하기보다, 학생들이 다양한 관점을 균형 있게 접하고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소통하도록 수업을 세심하게 설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특정 주제에 대해 단순히 자료를 함께 찾는 그룹보다 찬반 양측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논쟁하도록 구조화된 그룹의 학생들이 해당 주제에 훨씬 더 큰 흥미를 보이고 자발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탐색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같은 주제로 토론할 때, 각 입장의 과학적, 경제적, 환경적 근거를 충분히 탐색하고 건설적으로 반박하는 과정 자체가 매우 깊이 있는 학습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전략 6: 주기적으로 수업에 변화 주기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이라도 학생들의 집중력은 보통 수업 시작 후 10분~15분이 지나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때 의도적인 '변화'를 주어 주의를 다시 끌어당겨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학습 내용과 무관한 농담이 아니라, 그날 배운 내용과 관련된 짧은 활동으로 변화를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 시간에 새로 배운 동작 동사들을 30초의 짧은 노래로 불러보게 하거나, 과학 시간에 배운 분자 운동의 원리를 학생들이 직접 몸으로 표현해보는 활동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활동은 주의를 환기시킬 뿐만 아니라, 학습한 내용을 다양한 감각(시각, 청각, 신체 활동)과 연결하여 나중에 기억을 인출할 단서를 더 많이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습니다.
관심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속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수업 초반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정해진 진도를 나가야 하는 교사에게는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는 강력한 주장을 펼칩니다.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데 들이는 시간은, 장기적으로 전체 학습 과정을 더 즐겁고 효과적으로 만들어 오히려 학습 목표 달성을 '가속화'한다는 것입니다.
당장 몇 분을 아끼려다 학생의 학습 동기 전체를 잃어버린다면, 결국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지 모릅니다. 호기심이 충족될 때 우리 뇌에서는 즐거움과 보상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이는 학습 자체가 뇌에게는 매우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호기심을 가진 학습자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뇌는 세상을 탐구하고, 질문하고, 배우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박준일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연대하고 싶은 교사입니다.
참고 문헌
브라이언 굿윈, 토니아 깁슨, 크리스틴 룰로. (2024). 학습과학 6단계 학습모형. (이찬승 역).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원본 출판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