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배울 때 가장 효과적일까: 문제 기반 학습과 탐구 학습에 대한 오랜 논쟁
박준일(온양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어떻게 배워야 가장 효과적일까?" 이 질문은 교육 심리학 분야의 아주 오래고 뜨거운 화두입니다. 특히 최근 교육 현장에서 자주 언급되는 문제 기반 학습(PBL)이나 탐구 학습(IL)처럼 학습자가 주도적으로 지식을 구성해나가는 방식이 과연 모두에게, 항상 최선의 방법일까요?
여기, 이 질문에 대해 정반대의 입장을 내놓은 두 편의 중요한 연구가 있습니다. 2006년, 폴 커슈너(Paul Kirschner), 존 스웰러(John Sweller), 리처드 클라크(Richard E. Clark)는 최소 지도 학습 방식은 비효율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바로 다음 해인 2007년, 신디 흐멜로-실버(Cindy Hmelo-Silver), 라빗 골란 던컨(Ravit Golan Duncan), 클라크 친(Clark A. Chinn)은 그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PBL과 IL은 결코 지도가 부족한 학습이 아니라고 맞섰죠.
오늘 이 글에서는 두 연구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따라가며, 이 흥미로운 논쟁의 핵심을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 이 글에서는 Guidance를 맥락에 따라 ‘지도’ 또는 ‘안내’로 번역합니다.
1라운드: "뇌는 힘들어한다!" - 최소 지도 학습에 대한 비판
커슈너 연구팀의 주장은 명확하고 도발적입니다. 그들은 PBL, IL, 발견 학습 등을 모두 ‘최소 지도 학습(minimally guided instruction)'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습니다. 그리고 결론 내리죠. 이 방식들은 명확하게 개념과 절차를 알려주는 '직접적 교수 안내' 방식보다 효과도 떨어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즉 비효율적인 방법이라고요.
이 주장의 핵심 근거는 바로 우리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즉 ‘인간의 인지 구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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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기억 vs. 작동 기억: 우리의 장기 기억(long-term memory)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정보 창고와 같습니다. 학습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장기 기억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정보를 의식적으로 처리하는 작업 공간인 작동 기억(working memory)입니다. 이 공간은 용량과 지속 시간에 심각한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처음 접하는 정보는 한 번에 서너 개밖에 처리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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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부하의 문제: 최소 지도 학습 환경에서 초보 학습자는 문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스스로 탐색해야 합니다. 커슈너 팀은 바로 이 '탐색' 과정 자체가 제한된 작동 기억에 엄청난 부담, 즉 인지 부하(cognitive load)를 유발한다고 지적합니다. 작동 기억이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정작 배워야 할 핵심 원리를 처리해 장기 기억으로 넘길 여력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빈손으로 복잡한 기계를 조립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과 같습니다.
이들은 지난 수십 년간의 연구 결과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말합니다. 명확한 지도를 제공한 교수법이 지도 없는 학습법보다 꾸준히 더 나은 성과를 보였으며, 특히 '풀이 예제 효과(worked-example effect)'가 강력한 증거라고 제시합니다. 초보자에게는 그냥 문제를 풀게 하는 것보다 잘 짜인 풀이 예제를 먼저 공부하게 하는 것이 문제 해결 능력 향상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죠.
2라운드: "오해다! '비계 설정'이 핵심" - 반론의 등장
커슈너 팀의 논문이 발표된 바로 다음 해, 흐멜로-실버 연구팀은 그들의 주장이 PBL과 IL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오해한 결과라고 반박합니다. 그들은 커슈너 팀이 이 학습 방식들을 아무런 지도 없는 '발견 학습'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하죠.
흐멜로-실버 팀 역시 안내가 전혀 없는 순수한 발견 학습은 비효율적이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옹호하는 PBL과 IL은 절대 그런 방식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그 핵심 개념으로 '비계 설정(scaffolding)'을 제시합니다.
'비계'는 건축 현장에서 높은 곳 작업을 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발판을 의미합니다. 학습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계 설정이란, 학습자가 현재 능력만으로는 해내기 어려운 복잡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도록 돕는 모든 형태의 지원과 안내를 뜻합니다. 흐멜로-실버 팀은 잘 설계된 PBL과 IL 환경 안에 다음과 같은 정교한 비계들이 녹아있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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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교사의 역할: 교사는 단순히 지켜보는 관찰자가 아닙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와 같은 질문으로 더 깊은 사고를 유도하고, 전문가의 사고 과정을 시범 보이며 인지적 모델이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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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화된 도구와 절차: PBL에서 문제 분석, 학습 과제 도출 등 정해진 절차를 따르도록 안내하거나, 생각을 정리하도록 화이트보드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탐색 과정의 인지 부하를 덜어주는 비계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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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적절한(Just-in-time) 지원: 학습자가 특정 지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때, 바로 그 순간에 미니 강의를 제공하거나 관련 자료로 연결해주는 방식은 매우 효과적인 비계가 될 수 있습니다. 슈워츠와 브랜스퍼드의 연구(1998)는 스스로 탐구한 뒤 설명을 들은 학생들이 처음부터 설명만 들은 학생들보다 훨씬 더 깊이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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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활용: 복잡한 데이터를 시각화해주거나 계산을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는 학습자가 부수적인 작업에서 벗어나 핵심 개념 이해와 추론에 집중하도록 돕습니다.
결론적으로, 흐멜로-실버 팀은 PBL과 IL이 최소 지침 학습이 아니라, 오히려 풍부한 비계가 내재된 '강하게 안내된(strongly guided)' 학습 환경이라고 재정의합니다.
논쟁의 핵심: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봐야 할까?
두 연구팀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이 논쟁의 핵심은 단순히 '어느 쪽이 맞다'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다음 두 가지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1.
'지도(안내, Guidance)'의 정의: 커슈너 팀은 '지도(안내)'를 교사가 정보를 명확히 설명해주는 '직접적 교수'라는 좁은 의미로 해석합니다. 반면, 흐멜로-실버 팀은 학습을 돕는 모든 형태의 정교한 지원, 즉 '비계 설정'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지도(안내)'를 바라봅니다.
2.
'학습 목표'의 초점: 커슈너 팀은 초보 학습자가 지식을 '효율적으로' 습득하는 과정과 인지 부하 문제에 집중합니다. 반면, 흐멜로-실버 팀은 단순히 지식을 아는 것을 넘어, 그 지식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는 능력, 협업 능력, 자기주도 학습 능력 등 훨씬 넓은 범위의 역량 개발을 중요한 학습 목표로 삼습니다.
흥미롭게도, 커슈너 팀이 언급한 '전문성 역전 효과(expertise reversal effect)'는 이 두 주장을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효과는 학습자의 전문성이 높아질수록, 초보자에게 효과적이던 직접적 교수 행위가 오히려 학습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는 절대적으로 우월한 단 하나의 학습법은 없으며, 학습자의 수준과 학습 목표에 따라 필요한 교수 행위의 종류와 형태가 달라져야 함을 시사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오늘 우리는 두 연구팀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잘 배운다'는 것의 의미를 다각도로 고찰해 보았습니다. 이 논쟁은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학습'과 '교수'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할 질문들을 던져주었죠.
흐멜로-실버 팀이 결론에서 제안했듯, 이제 우리는 "PBL이 효과가 있나?"가 아니라, "어떤 목표를 위해, 어떤 학습자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종류의 비계 설정을 제공할 때 가장 효과적인가?"라는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마칩니다. 두 연구팀 모두 '아무런 지도(안내) 없이 방치하는 식의 학습'은 문제가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교실에서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일까요? 학생의 '생산적인 어려움'과 학습을 저해하는 '과도한 인지 부하'를 구분하는 교사의 눈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까요? 학생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 우리는 언제, 어떻게 개입하여 최적의 비계를 제공하는 '교육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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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일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연대하고 싶은 교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