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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피드백했는데, 왜 학생들은 바뀌지 않을까요? -'피드백 리터러시’

글쓴이
박준일(온양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카테고리
수업 이야기
키워드
과정중심평가
교수평기일체화
피드백
작성일
2025/10/14 01:32
호수
10

열심히 피드백했는데, 왜 학생들은 바뀌지 않을까요? -'피드백 리터러시'

박준일(온양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과정중심평가와 교수평기일체화에 맞춰 학생의 성장을 돕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시는 선생님들께서 흔히 겪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밤늦게까지 학생들의 과제 하나하나에 정성껏 피드백을 남겼지만, 정작 학생들은 그 피드백을 제대로 읽지도, 이해하지도, 다음 과제에 적용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일 때의 허탈함입니다. 혹시 '내 피드백 방식에 문제가 있나?'라고 자책하고 계셨다면, 이제 관점을 바꿔볼 때입니다.이 문제의 핵심은 교사의 피드백 '전달' 방식이 아니라, 학생의 피드백 '수용' 능력에 있을 수 있습니다. 교육 연구 분야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프레임워크로 "학생 피드백 리터러시(student feedback literacy)"라는 개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피드백 리터러시란 "정보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활용하여 과제나 학습 전략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이해, 역량, 성향"을 의미합니다. 즉, 학생이 피드백을 의미 있는 정보로 해석하고 자신의 학습을 개선하는 데 사용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이 글에서는 David Carless와 David Boud가 2018년에 발표한 ‘The development of student feedback literacy: enabling uptake of feedback(학생 피드백 리터러시 개발: 피드백 수용을 중심으로)’의 핵심 내용을 바탕으로, 선생님들께서 교실에서 학생들의 이 중요한 역량을 길러줄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 생각을 바꾸다: 피드백은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하는 것'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피드백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피드백을 교사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정보라고 생각하지만, 연구자들은 피드백을 "학습자가 다양한 출처의 정보를 이해하고 이를 자신의 과제나 학습 전략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과정"으로 새롭게 정의합니다. 이 정의는 피드백의 중심에 학생의 능동적인 역할을 둔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교사가 아무리 훌륭한 피드백을 제공하더라도, 궁극적으로 그 정보를 해석하고 행동으로 옮겨 학습을 개선하는 주체는 학생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학습을 개선하기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주체는 오직 학생뿐이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교사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꿉니다. 교사는 더 이상 학생의 실수를 지적하는 '수정자(corrector)'가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피드백을 활용해 성장하도록 돕는 '조력자(facilitator)'가 됩니다. 우리의 역할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피드백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2. 가장 효과적인 전략: 학생을 '평가자'의 자리에 앉히기

피드백 리터러시를 기르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 중 하나는 의외의 지점에 있습니다. 바로 학생이 동료의 과제를 평가하고 피드백을 '주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은 피드백을 '받는 것'보다 '하는 것'을 통해 더 많이 배웁니다.그 이유는 피드백을 제공하는 행위가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인지적 활동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동료의 과제를 평가하기 위해 학생은 평가 기준(루브릭)을 적용하고, 문제점을 진단하며, 해결책을 제안하는 등 고차원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는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의 질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능력, 즉 '평가적 판단(evaluative judgment)'을 직접적으로 기르는 과정입니다.동료 피드백 활동은 학생의 피드백 리터러시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길러줍니다. 피드백에 대한 책임감을 학생 스스로 갖게 합니다.교사 피드백에서 비롯될 수 있는 권력 격차와 부정적 감정 반응을 줄이고, 대화의 기회를 창출합니다. 학문적인 판단을 내리는 연습을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교사의 지원 없이는 동료 피드백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학생들은 효과적인 피드백을 주는 방법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코칭을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교사가 직접 좋은 피드백의 예시를 보여주며 시범을 보이는 등의 적극적인 안내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합니다.

3. '정답' 대신 '좋은 예시'를 활용하기

피드백 리터러시를 개발하는 또 다른 강력한 전략은 '말해주기(telling)'가 아닌 '보여주기(showing)'입니다. 이는 바로 좋은 학생 과제 샘플, 즉 '예시 자료(exemplar)'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예시 자료를 분석하면서 추상적인 평가 기준이나 성공적인 과제의 특징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는 전문가들이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tacit knowledge of the connoisseur)을 학생들이 습득하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즉, 예시 자료 분석은 동료 피드백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평가적 판단' 능력을 기르는 또 다른 강력한 방법이며, 막연했던 '좋은 과제'의 기준을 손에 잡히는 실체로 만들어 줍니다.
또한 예시 자료는 학생들의 정서 관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평가 기준에 대한 불안감을 줄여주고, 예상치 못한 교사의 평가 판단에서 비롯될 수 있는 당혹감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예시 자료를 활용할 때 학생들이 이를 단순히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좋은 샘플을 통해 배우고 이를 자신의 상황에 맞게 응용하는 것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학문적 성장의 핵심적인 과정입니다. 교사의 역할은 예시 자료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수준 높은 토론과 대화를 나누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무엇이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지,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학문적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됩니다.

4. 감정을 다루는 것도 실력: '정서적 균형'의 중요성

우리는 종종 피드백의 정서적인 측면을 간과합니다. 하지만 비판적인 피드백은 학생들에게 방어적인 태도나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감정적 반응은 학생들이 피드백을 수용하는 데 큰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서 관리'는 피드백 리터러시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입니다. 피드백 리터러시가 높은 학생은 "비판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 정서적 평형을 유지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피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피드백을 자신에 대한 공격이 아닌, 성장을 위한 정보로 받아들일 줄 압니다.
이러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 간의 신뢰 관계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교실 안에 신뢰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 학생들은 도전적인 피드백을 받아들일 자신감을 얻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피드백의 정서적 측면을 이해하는 것은 교사가 피드백을 전달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줍니다. 학생 개인을 향한 비판이 아니라 과제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지지적인 어조를 유지함으로써 학생들의 참여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교사와 학생 간의 신뢰를 구축하며, 이는 학생들이 비판적 피드백을 수용하는 데 필요한 정서적 안정감을 기르는 토대가 됩니다.

결론: 학생이 평가와 피드백의 주인이 되도록 수업을 설계하기

피드백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노력의 초점은 이제 교사가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까'에서 학생이 '어떻게 받아들여 활용하게 할까'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그 핵심 열쇠는 바로 학생의 '피드백 리터러시'를 길러주는 데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점은, 정보는 학생이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과제나 학습 전략을 개선하기 위해 행동할 때에만 비로소 피드백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교사의 역할은 피드백을 주는 사람을 넘어, 학생들이 피드백 리터러시를 함양할 수 있는 교육과정 환경을 설계하는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포함됩니다.
학생들이 피드백을 받고 이를 적용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여러 단계로 구성된 과제를 설계하기
동료 피드백이나 예시 자료 분석과 같은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피드백을 활용하는 방법을 직접 경험하도록 코칭하고 안내하기
교사 스스로 비판에 건설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모델이 되기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학생들의 과제 완성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목표와 맞닿아 있습니다. 스스로 피드백을 구하고, 해석하며, 이를 통해 성장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은 학생들이 미래 사회의 유능한 전문가이자 평생 학습자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역량을 선물하는 일입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피드백 리터러시'를 키워주기 위해 어떤 작은 시도를 해볼 수 있을까요?
[참고 문헌]
Carless, D., & Boud, D. (2018). The development of student feedback literacy: enabling uptake of feedback. Assessment & Evaluation in Higher Education, 43(8), 1315-1325.https://doi.org/10.1080/02602938.2018.146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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