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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력 없는 저자’의 시대,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글쓴이
박준일(온양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카테고리
교육 앞담화
키워드
생성형AI 시대의 교육
비판적 AI 리터러시
작성일
2025/12/11 05:47
호수
10

감응력 없는 저자의 시대,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박준일(온양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1. AI리터러시 연수에 참여하며 느낀 불편함

얼마 전 'AI 리터러시' 교사 연수를 유튜브 라이브로 시청했다. 강사는 열정적으로 요즘 핫한 ‘Gemini’의 활용법을 시연했다. 프롬프트를 이렇게 쓰면 수업 활동 자료가 뚝딱 나오고, 저렇게 쓰면 평가 문항도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실시간 채팅창에는 탄성이 쏟아졌다. "와, 진짜 신기하다", "이거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감탄했다. 그런데 동시에 어떤 불편함이 느껴졌다. 연수가 끝나고 모니터를 끈 뒤에도 그 불편함의 정체를 곰곰이 생각했다.
연수 내내 우리는 'AI를 잘 쓰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정작 'AI가 쓴 글은 무엇인가', 'AI가 쓴 글과 사람이 쓴 글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AI가 생성한 수업 활동 자료는 분명 그럴듯했다. 문장은 매끄러웠고 구성도 논리적이었다. 그런데 그 글에는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언어화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나는 생태전환교육 연구자와 나눴던 이야기에서 만난 '감응(感應)'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2. '생성(becoming) 없는 생성(generation)'

김성우 선생님은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에서 생성형 AI의 글쓰기를 '생성(becoming) 없는 생성(generation)'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장난처럼 보이는 표현 안에 본질적인 통찰이 담겨 있다.
들뢰즈가 말하는 '생성(becoming)'은 단순히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상호작용이다. 내가 타인의 고통을 마주할 때, 나는 그 고통에 '응답'하고, 그 응답 속에서 나 자신도 변화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바로 이 과정이다. 세계를 느끼고, 그 느낌에 응답하며, 그 과정에서 쓰는 주체 자신이 변모한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다르다. AI는 방대한 텍스트 패턴을 학습하고 재조합하여 그럴듯한 출력물을 '생성(generate)'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AI는 세계와 관계 맺지 않는다. 세계에 의해 변화하지도 않는다. 텍스트는 생산되지만, 거기엔 '되기(becoming)'가 없다.
김운용 연구자는 이를 '감응력 없는 저자'라고 명명했다. '감응(感應, affect)'이라는 단어는 '느끼다(感)'와 '응하다(應)'의 통합이다. 인간의 글쓰기는 세계를 느끼고, 그 느낌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AI에게는 이 '감응'이 없다.

3. AI는 고통을 '기술'할 수 있지만, 고통에 '응답'할 수 없다

이 차이가 왜 중요한가?
AI는 빈곤에 관한 소설을 쓸 수 있다. 그러나 AI는 빈곤을 상상하지 않는다. 차별받는 이의 서사를 생성할 수 있지만, 그 고통에 '함께 거주'하지 않는다. 마사 누스바움은 『시적 정의(Poetic Justice)』에서 문학적 상상력의 핵심을 '현명한 관찰자(judicious spectator)'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현명한 관찰자란 타인의 처지에 상상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판단하는 주체다. 이 능력이야말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에게 필요한 핵심 역량이라고 누스바움은 주장한다.
생성형 AI는 이 '현명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AI에게는 '참여'도 '거리'도 없다. 오직 패턴의 재조합만 있을 뿐이다.
구분
인간의 글쓰기
AI의 글쓰기
관계
세계와 관계 맺음
패턴과 데이터만 처리
변화
쓰는 과정에서 주체가 변화
출력 후에도 모델은 동일
응답
타인의 고통에 응답
고통을 '기술'만 함
상상
타인의 처지에 상상적 참여
통계적 유사성 생성
판단
거리 유지하며 판단
판단 주체 부재

4. 우리가 가르치는 'AI 리터러시'는 충분한가?

현실을 돌아보자. AI 리터러시를 주제로 한 교사 연수에서, 혹은 학생들에게 'AI 리터러시'를 가르친다고 할 때, 우리는 대부분 프롬프트를 잘 쓰는 법, AI 도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 AI로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법과 같은 'AI를 잘 활용하는 기술'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이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니, 이것만 가르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AI가 생성한 텍스트와 인간이 감응을 통해 생성한 텍스트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면, 학생들은 AI가 쓴 '그럴듯한' 글을 '좋은 글'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매끄러운 문장과 논리적 구성, 완결된 서사가 글쓰기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점차 자신의 어눌하고 불완전한 목소리를 부끄러워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이 경계해야 할 지점이 아닌가.

5. AI도 공감적인 글을 쓸 수 있지 않은가?

여기서 예상되는 반론이 있다. "AI도 감정적인 글, 공감적인 글을 쓸 수 있지 않은가? 실제로 AI가 쓴 위로의 메시지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받기도 하는데?"
맞다. AI가 쓴 글에서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공감적 효과(empathic effect)'와 '감응적 과정(affective process)'은 다르다.
AI의 글이 독자에게 공감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그 글이 생성되는 과정에 감응은 없다. 이것은 마치 녹음된 자장가와 엄마가 직접 불러주는 자장가의 차이와 같다. 녹음된 자장가도 아이를 재울 수 있다. 그러나 엄마의 자장가에는 '지금 이 아이의 상태를 느끼며 응답하는' 관계가 있다. 아이가 보채면 속도가 느려지고, 아이가 잠들어가면 목소리가 작아진다. 이 '응답'은 녹음에는 없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물만이 아니라 과정이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공감적 효과를 내는 글을 생산하는 기술'이 아니라 '감응하며 쓰는 과정 자체의 가치'다.

6. '비판적 AI 리터러시(Critical AI Literacy)'를 제안하며

따라서 나는 학교 교육에서 사용하는 'AI 리터러시'라는 명칭을 '비판적 AI 리터러시(Critical AI Literacy)'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비판적 AI 리터러시란 AI를 단순히 '사용'하는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을 포함하는 복합적 역량이다.
역량
내용
이해
AI가 생성하는 것의 본질과 한계를 이해한다
분별
AI 생성물과 인간 창작물의 본질적 차이를 분별한다
성찰
인간 고유의 감응적 글쓰기·사고·창작이 왜 대체 불가능한지 성찰한다
실천
감응하는 주체로서 읽고, 쓰고, 사유한다
이것은 AI를 배척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AI는 분명 유용한 도구다. 그러나 도구를 잘 쓰는 것과 도구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두 가지 모두를 가르쳐야 한다.

7. 국어 교실에서의 실천: 수업 사례

비판적 AI 리터러시는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국어 수업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몇 가지 활동을 제안한다.

활동 1: 나란히 읽기

같은 주제로 AI가 쓴 글과 (익명 처리한) 학생이 쓴 글을 나란히 제시한다. 학생들에게 두 글을 읽고 '느낌의 차이'를 말로 표현하게 한다. "어떤 글에서 '사람'이 느껴지는가? 왜 그렇게 느꼈는가?"
핵심 질문
두 글의 문장력, 구성력은 어떤가?
그런데 왜 느낌이 다른가?
'사람이 느껴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활동 2: 감응의 흔적 찾기

문학 작품(시, 소설, 수필)의 특정 문장을 골라, 그 문장이 어떤 '감응'에서 비롯되었을지 추측하게 한다. 작가가 무엇을 느꼈기에 이런 문장이 나왔을까? 그리고 AI에게 같은 주제로 글을 쓰게 한 뒤 비교한다.
예시: 윤동주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문장은 어떤 감응에서 비롯되었을까? AI에게 '부끄러움'을 주제로 시를 쓰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활동 3: '응답'으로서의 글쓰기

실제 사회 문제(빈곤, 차별, 환경 등)를 다룬 기사나 수기를 읽고, 그 글의 주인공에게 '답장'을 쓰게 한다. 이때 AI도 같은 답장을 쓰게 한 뒤 비교한다.
핵심 질문
내 답장과 AI의 답장은 무엇이 다른가?
'응답'한다는 것과 '반응'한다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내 글에는 '나'의 무엇이 담겨 있는가?

활동 4: AI와 협업 글쓰기

AI와 함께 글을 쓴 뒤, 자신이 쓴 부분과 AI가 쓴 부분을 색깔로 구분하게 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AI가 쓴 부분을 읽을 때 기분이 어떤가? 내가 쓴 부분과 뭐가 다른가? 이 글은 '나의 글'인가?"

8. 감응하는 주체로 살아가기

감응력 없는 저자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누구나 버튼 하나로 '그럴듯한' 글을 생성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이 시대야말로 감응하는 주체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가장 절실하게 물어야 하는 시대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AI를 잘 '사용'하는 법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세계를 만나고, 그 만남에 응답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 변화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 리터러시 교육의 진짜 목표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최근에 무엇에 감응했는가? 나는 여전히 세계를 느끼고, 그 느낌에 응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가 잠시 멈추고, 함께 생각하는 시간. 그것이 '비판적 AI 리터러시'의 시작이다. 학생들에게 감응하는 주체로 살아가라고 가르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감응하는 주체로 살아야 한다.
참고 문헌
김성우. (2024).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유유.
조아라 & 전지윤. (2023). 생태 감응력(Ecological Affect)의 관점에서 본 현대시 활용 환경교육 프로그램 사례 연구: ‘나의 환경독립시집’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환경교육. 36(2). 53-68.
김운용. (2025). 감응력 없는 저자 - 생성형 AI 시대의 리터러시와 비판적 사고. 리터러시연구. 16(5). 389-416.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연대하고 싶은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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