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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혼자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야

무대는 혼자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야

충남외국어고등학교 국어 교사 이민수
‘인생은 한 편의 연극과 같다.’ 연극과 관련한 명언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명언입니다. 인생이라는 무대에 제가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지요. 무대에서 주인공인 ‘나’는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고, 많은 갈등과 시련을 극복하여 연극이 막을 내릴 때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관중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교직 생활도 한 편의 연극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실이라는 무대에 서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 갈등과 시련을 극복하여 학기 말에 행복한 웃음을 짓게 될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무대 위 주인공인 저는 혼자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려 노력했습니다. 조연인 학생들을 위해 주연인 제가 늘 앞에 나서서 교훈을 주려 했고 아이들도 잘 따라주어 나름 성공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무대 위에 학생들은 사라지고 텅 빈 관중석을 향해 소리만 지르는 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늘 수업이 끝나면 목이 쉬어 있었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지쳐 쓰러지곤 했습니다.
이렇게 무대 위에서 조명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남겨진 저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였습니다. ‘연극’이라는 빛이었습니다. 혼자만 열심히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던 제게 연극 동아리 운영은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2년 동안 굉장히 많은 갈등과 시련들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저를 성장하게 해 준 일화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연극 동아리 일루소리

아이들이 연극축제에 올릴 무대를 만들어가던 중의 일입니다. 어김없이 그날도 12시까지 학교에 남아 아이들이 연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축제의 주인공은 아이들이었기에 이들을 뒷받침해야 할 교사인 저는 그저 물끄러미 아이들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사실 감시를 했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일 듯합니다. 혹시 도망가는 아이는 없는지, 연극 선생님 말씀을 잘 듣지 않는 아이는 없는지... 무대의 주인공이 아닌 저는 아이들을 그저 형식적인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비난하는 아버지의 말에 딸이 화를 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대사 그리고 동선과 제스쳐가 오고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여러 번 반복되어 왔던 장면이기에 그 장소에 있던 저뿐만 아니라 아이들 모두 집중도가 떨어진 상태였지요.
“내가 아빠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이야?”
평상시와 같으면 그저 아빠에 대한 반항심만이 가득한 대사인데 순간 아이가 감정이 북받쳤는지 울음인 섞인 목소리로 정말 아빠를 원망하는 듯 대사를 내뱉었습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감탄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아이도 자신이 내뱉은 대사에 놀랐는지 어안이 벙벙한 채였고 연극 지도 선생님께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저 역시 아이의 대사에 큰 감명을 받았고 그때 처음으로 연극에 몰입해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감시하고만 있던 저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은 전혀 바라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날 이후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무대에 저 역시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무대 배경, 배우의 동선, 목소리, 세세한 손짓과 몸짓 등 모든 것들을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만들어나갔습니다. 진심으로 아이들과 무대를 만들어가니 정말 많은 것들이 보였습니다. 무대 뒤 스태프 아이들의 노력, 주연뿐 아니라 조연 개개인들의 연기에 대한 열정. 알고 보니 무대는 주인공 혼자만이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더군요. 주연, 조연 그리고 보이지 않는 스태프들 모두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 스태프 아이들
▼ 아이들이 만들어낸 무대
정말 긴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연기에 대한 지도뿐 아니라 아이들의 일상과 고민과 같은 것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교사와 학생이라는 수직적 관계를 뛰어넘어 인간과 인간이라는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고 나아가 동아리 내 소속감, 무대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동료 의식이라는 것도 형성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소속감과 동료 의식을 갖게 됩니다.
아이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어간 경험은 교직 생활에 임하는 저의 태도를 변화시켰습니다. 아이들을 세세하게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수업 중 하는 말, 행동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조금씩 보이더라구요 아이들의 관심사와 열정 등. 아이들이 저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서 시간이 지난 뒤 언급해 주면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더라구요. 관심받고 있구나, 나를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구나를 느끼는 것일까요?
교사와 학생이라는 수직적 관계 속에서만 아이들을 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친한 친구로 때로는 어른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인간적으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사로서 지루한 교훈을 먼저 주기보단 인간적으로 다가가 아이를 이해하고 격려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처음에 마음을 열지 않고 꾹 닫아놓았던 아이들도 언젠가부터 제게 웃음을 보이더라구요. 항상 무뚝뚝하던 아이가 처음 제게 미소를 보여주었을 때 느낀 성취감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혼자 모든 것을 이끌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학급 운영이든 수업이든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고자 노력합니다. 그랬더니 이전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더군요. 수업 진도가 잘 나가지 않고, 학급 회의를 진행하면 결론이 도출되지 않을 때도 굉장히 많았지요. 분명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학급 운영이나 수업에 점점 아이들이 애정과 책임감을 갖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옳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인생은 한 편의 연극과 같다’. 인생이란 무대 위 주인공들은 다양한 갈등과 시련을 함께 이겨내고 연극이 막을 내릴 때 더불어 웃을 수 있다는 의미임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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