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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운영의 꽃 “학급문집” 제작하기

학급운영의 꽃 학급문집제작하기

조원행 (서산여자고등학교 영어교사)
"아이들은 더 이상 교사를 진정한 어른으로 신뢰하고 기대지 않는 것 같고 학교는 갈수록 숨막히게 힘들고 지겨운 공간이 되어 가는데, 그 속에서도 뭔가 비온 뒤의 청명하게 쨍한 아침 햇살이나 더운 여름날 느티나무 아래 시원한 한 줄기 바람처럼 숨통을 틔워주고 웃음을 줄 수 있는 작은 어떤 것들이 필요했고 다양한 활동들을 찾아서 하다 보니 마지막 결정체로 하나의 문집이 완성되어 있었다."
2003년 임용 첫해, 1년 먼저 교직에 와있던 국어선생님과 함께 우리교육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빛깔이 있는 학급운영 연수를 신청하였다. 겨울방학 3일 동안 실시했던 연수에서 현직 선배교사들의 그야말로 정말 보석 같은 학급운영의 팁들을 전수받고 벅차하며 그 다음해 첫 담임을 맡고 나의 온 열정을 쏟아 부었다. 학급문고, 월별 학급행사, 학급문집, 타임캡슐, 가정방문까지.......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된 학급운영의 여러 가지 시도들이 이어져 담임 경력 18년 동안의 생생한 증거로 학급문집 17권이 나의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다. 중3 남학생들이나 고3 남학생 반 담임을 맡으면서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문집을 만들어 올 수 있었던 것은 문집이 무엇보다도 아이들과의 소통창구로써 큰 역할을 담당해주었고 서로에 대한 진정성과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교사를 진정한 어른으로 신뢰하고 기대지 않는 것 같고 학교는 갈수록 숨막히게 힘들고 지겨운 공간이 되어 가는데, 그 속에서도 뭔가 비온 뒤의 청명하게 쨍한 아침 햇살이나 더운 여름날 느티나무 아래 시원한 한 줄기 바람처럼 숨통을 틔워주고 웃음을 줄 수 있는 작은 어떤 것들이 필요했고 다양한 활동들을 찾아서 하다 보니 마지막 결정체로 하나의 문집이 완성되어 있었다.
교직생활 19년차 담임인 나는 오늘 아침 조회시간 교탁 앞에 서자마자 학급일기를 찾는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그 자리에 출석부와 함께 나의 아침을 반기는 것은 우리 반 아이들이 돌려가며 쓰는 학급일기다. 그 일기장을 공강시간에 꼼꼼하게 읽고 댓글을 달아주는 것이 나의 루틴 중 하나다. 일기를 쓴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오롯이 마주서서 마음을 들여다보고 함께 위로하고 기뻐하는 나눔의 시간을 갖는다. 어느 날은 피식피식 웃음이 올라오고 어느 날은 너무 안쓰러워 마음이 저만치 가라앉기도 하는데 이런 나의 감정을 나 혼자만이 아니라 반 친구들 모두 공유하면서 서로 어루만질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상으로 다가온다.
학급 일기
문집 목록

언제 준비할까?

새 학년 첫날, 담임으로 아이들과 만나는 첫 시간에 나는 지난해에 만들었던 문집을 가지고 교실에 들어간다. 내 소개를 한 후에 학급운영에 대한 대강의 이야기를 하면서 학급문집을 소개하고 아이들의 첫 날, 첫 마음을 글로 쓰도록 한다. 그것부터 시작이다. 그렇게 만남의 첫날부터 시작된 기록을 모아 학년말에 문집으로 출간하는 것이다.
학급일기는 우리 반 학급문집의 메인이다. 학급일기도 첫날부터 매일 매일 학번 순으로 돌아가면서 쓰는데 학급 인원 수에 따라 1년에 4, 5차례 개인 일기를 쓰게 된다. 주제글은 월별 행사에 맞게 주어진 주제에 대한 글쓰기를 하여 자료를 수집해 놓는다. 학급 행사는 학급자치부서(인권부, 행사부, 문집부, 에코부, 학습부)별로 월별 주제에 맞게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여 실시한다. 매달 주제에 적절한 행사를 1~2개 정도 실시하는데 주제글은 그 중에서 더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행사 후에 쓰고 있다. 올해 우리 반의 주목할 만한 활동은 세계시민교육, 학급신뢰서클, 문화재지킴이, 텃밭가꾸기 등이 있다.
학급운영계획서1
학급운영계획서2
학급특색활동 - (세계시민교육) - 인권부
학급특색활동 - (신뢰서클) - 행사부
학급특색활동 - (텃밭 가꾸기) - 에코부
학급특색활동 - (문화재지킴이 봉사) - 학습부

무엇이 필요할까?

첫 단추를 꿰는 일이 중요하다. 학급일기를 쓰는 방법을 미리 안내하거나 규칙을 일기 첫 장에 인쇄하여 붙여놓는 것도 방법이 된다. 아이들 상당수가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로 일기를 써 본적이 없다고 하면서 어색함과 서툼을 무기로 대충 쓰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럴 때 필요한 몇 가지 규칙을 정해놓는 것도 필요한데 일단 일기의 경우는 매일 매일 돌아가면서 써야하고 분량도 한 페이지 이상 또는 열 줄 이상 이런 조건을 제시해놓으면 나중에 아이들이 익숙해진다. 나는 가끔은 공부이야기 뺄 것, 또는 “나무 그늘에 누워 옥수수 먹으며 만화책 실컷 읽고 싶은 날” 등으로 일기를 시작할 것 등의 주문을 하기도 한다.
자치부서 중 특별히 문집부를 만들어 1년 동안 문집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비하도록 한다. 매달 실시하는 학급행사 후 소감문을 받고 학급일기를 쓰고 학급행사 사진을 찍어 기록한다. 1학기가 끝나면 1차로 워드 작업을 해놓고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본격적으로 모아진 자료들을 가지고 문집으로 엮어내는 것이다.
교직 초반부터 10여 년 동안은 아이들이 문집 비용을 갹출하거나 사비를 털기도 했으나 최근 몇 년 동안은 학교 예산을 미리 신청하여 전액 지원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흑백으로만 제작했던 문집의 사진이나 표지도 컬러로 바꾸어 조금 더 완성도 있는 문집 제작이 가능해졌다.
주제글 양식
월별 주제글 예시
3월-첫날 첫마음, 1년 뒤 나에게 쓰는 편지, 밥비벼먹기 소감문 4월-나의 반려식물에게, 장애인의 날 행사 소감문 5월-부모님께 쓰는 편지, 체육대회 소감문 6월-삼겹살 파티 소감문 7월-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8월-나의 여름방학이야기 9월-추석이야기 10월-수시 면접 기행, 독도 행사 소감문 11월-수능 대박을 기원하며, 가래떡 데이 소감문 12월-10년뒤 나에게 쓰는 편지, 축제 이야기, 여고시절 나의 10대 뉴스

어떻게 만들까?

모은 글감들은 문집부원 친구들이 총괄하여 워드 작업을 통해 편집, 교정한다. 일반적으로 학급임원들이 꽤 많은 수고를 해주긴 하지만 담임교사로서 나의 업무가 가중되는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조금 더 완성도 있는 문집을 원한다면 담임교사가 교정과 편집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내용은 담임 인사글, 학급임원 인사글, 학부모님 인사글(대표로 몇 분의 학부모님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전체 학생들의 부모님들에게 부탁하여 짧은 글을 받기도 함), 다양한 앙케이트 및 설문, 학급일기, 개인별 주제글(3월부터 12월까지 각자 주제에 대한 글감을 모아 개인별로 편집), 교과 선생님들 이야기(우리 반 수업에 참여하시는 선생님들에게 수업에서 힘들었거나 보람 있었던 시간들, 특별히 기억나는 학생들, 해주실 이야기 등에 대한 말씀), 월별 사진 자료, 편집 후기 순이다. 때론 교과시간에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얻은 작품들도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특히 국어시간에 많이 하는 글쓰기 작품(모방 시 쓰기, 릴레이 소설 등)이나 미술시간에 이루어지는 예술작품 등도 선생님들의 협조를 얻어 수집해 놓으면 좋다. 10문 10답 코너(1. 나의별명, 2. 나를 다섯 글자로 표현하면, 3. 나의 보물 1호, 4. 스무살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것, 5. 나의 이상형, 6. 돈 10억이 있다면? 7. 울반 담임쌤은 000이다, 8.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9. 20년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10. 내 이름으로 삼행시 짓기)나 울반 앙케이트(울반에서 선생님의 ‘장난해?’ 소리를 가장 많이 듣는 친구는? 쉬는 시간마다 매점으로 달려가는 친구는? 지금 당장 토크쇼에 출연해도 될 것 같은 친구는? 우리 반에서 목소리 데시벨이 가장 큰 친구는? 힘들 때 고민 상담을 제일 잘해주는 친구는? 연애를 가장 잘할 것 같은 친구는? 1년 동안 우리 반을 위해 가장 애써준 친구는? 등등)는 아이들의 재치 있고 기발한 생각들을 읽을 수 있어 늘 빠뜨리지 않고 활용하고 있다. 분량은 B5 기준으로 모아진 글감에 따라 250페이지에서 400페이지까지 다양하다. 초반에는 A4 사이즈로 제작으로 했는데 너무 커서 보관도 불편하고 책 모양도 예쁘지 않아서 지금은 B5로 고정을 했고 기본적인 포맷은 거의 위의 내용을 기본으로 가감한다. 나는 표지와 문집 제목에 특별히 더 신경을 쓰고 있는데 문집의 얼굴이기도 하지만 그해 만나는 아이들의 특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특별한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표지는 손재주가 좋은 학생에게 직접 손으로 꾸민 그림을 주문하여 사용하고 제목도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한다. (참고로 올해 문집 제목은 이미 결정했는데 지금 맡고 있는 반이 3학년 8반이라서 “삼팔광땡”을 염두에 두고 있다. 현재 고3이라 아이들 모두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ㅋㅋㅋ) 교정과 최종 편집을 거친 후에 인쇄소에 제본을 맡긴다. 초반에는 주로 겨울방학에 두고두고 편집을 수정하였으나 아이들도 바쁘고 할 일이 많아서 최근에는 가능하면 겨울방학식 전에 모든 작업을 마무리한다. 문집 인쇄본이 나오면 학년말에 작은 파티를 준비한다. 대체로 방학식이나 종업식날이 될 확률이 높긴 한데 그동안 찍었던 사진을 동영상으로 편집하고 약간의 다과나 간단한 떡을 준비하여 문집 출판 기념회를 가지는 것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동안 특별히 고생한 문집부원들과 자장면 외식을 하는 것이다. 문집의 마지막 페이지에 편집위원으로 큼지막한 단체사진과 편집후기가 들어가긴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수고가 그들의 손끝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축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문집표지 예시(2018년)
문집목차 예시(2012년)

왜 문집이어야 할까?

아이들 인생의 어느 날, 어느 한 순간을 간직하여 영원히 머물고픈 행복한 시간으로 오랫동안 추억할 수 있다는 것, 그들이 머물렀던 1년 동안의 발자취를 각자의 시간으로 기록하여 타임캡슐처럼 묻었다가 세월이 훌쩍 지나 불현듯 궁금해질 때 한 번씩 꺼내 볼 수 있는 그 무엇인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근사하지 않은가?
우리 반만의 학급 특색 활동이라서 특별히 반 아이들이 애정을 가지고 참여하기도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협업과 나눔이 온전히 실천되고 그 증거가 되는 것이 학급문집이 아닌가 생각한다. 꼭 출판물의 형태가 아니어도 상관없겠지만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고 전자책보다는 서책을 선호하는 내 개인 취향이 반영된 부분도 있다. 아이들은 학급일기와 주제글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어루만지면서 더 끈끈한 우정을 공유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 차례에 학급일기가 오면 다른 친구들의 일기를 빠짐없이 읽어본다고 한다. 각자 다른 생각과 생활을 엿보는 짜릿함도 있겠고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안도감이나 편안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함께하면서 느끼는 공동체의식이 커지고 학년말쯤 되면 어느새 마음과 몸 모두 훌쩍 성숙해진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의미가 깊다. 나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싱싱한 잎들을 피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멋진 나무로 성장하여 울창한 숲속에서 조화롭기를, 그리고 존재 자체로 우뚝 서 빛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문집을 만들고 있다.
학급문집의 첫 장 담임교사 인사말에 늘 쓰는 구절이 있다. “때로 이 문집 글쓰기 때문에 짜증나고 귀찮기도 했겠지만, 10년 20년 후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때 들춰보며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지기를 기원한다.”는 말이다. 퇴직하는 해까지 담임으로 아이들에게 추억이 담긴 학급문집을 선물해 줄 수 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다.
뭐든 배우는 걸 좋아해서 겁없이 달려드는 열정 만수르 영어교사, 항상 지금 만나고 있는 아이들이 가장 예쁘고 지금 근무하는 학교가 가장 좋다는 신념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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