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ieminen과 Yang의 2024년 논문은 평가에 관한 익숙한 질문 하나를 비틀면서 시작된다. 우리는 평가를 흔히 학생이 무엇을 배웠는지 확인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두 연구자는 평가가 그보다 훨씬 멀리까지 작동한다고 말한다. 평가는 학생을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평가는 학생을 구성한다. 평가는 학생이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이해하고, 주변이 그를 어떤 사람으로 바라보는지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두 연구자는 평가가 학생을 구성하는 방식을 두 갈래로 나누어 읽는다. 하나는 타자형성(other-formation), 다른 하나는 자기형성(self-formation)이다. 둘 다 학생을 구성하지만, 누가 그 구성을 주도하는지가 다르다.
타자형성 — 누군가 나를 대신 구성할 때
타자형성은 평가가 학생을 바깥에서 빚어내는 방식을 가리킨다. 학교, 교사, 교육과정, 루브릭, 성적표가 먼저 있고, 학생은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어떤 학생인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점수와 등급이 말해준다.
Nieminen과 Yang은 이 과정에서 학생이 점차 수행자(performer)로 길러진다고 본다. 수행자는 자신의 지적인 성장을 눈에 보이는 것, 측정 가능한 것으로 바꾸어내야 하는 사람이다. 생각의 깊이도, 배움의 망설임도, 평가 가능한 형태로 번역되지 않으면 학교 안에서 존재하지 못한다. 그래서 학생은 점점 전략가가 된다. 어떤 과제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쓸지, 어느 선까지 위험을 감수할지, 어떻게 하면 점수를 최대로 끌어올릴지를 계산한다.
이런 논의는 한국 교실에서 특히 낯설지 않다. 성취기준마다 루브릭을 마련하고, 채점 결과를 세특에 옮겨 적고, 한 학기의 배움을 몇 개의 등급으로 환산하는 일이 수행평가의 익숙한 풍경이다. 교사 입장에서 이 작업은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성실함이다. 다만 학생 입장에서 이 모든 장치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거울이 된다. 한 학기가 지나면 학생은 자신을 '글을 꽤 쓰는 아이'나 'B쯤 되는 아이'로 이해하게 되어 있다. 그 이해는 다음 학기의 글쓰기에 고스란히 따라 들어간다.
자기형성 — 내가 나를 구성하는 길
자기형성은 반대편에서 움직인다. 학생이 외부 환경의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성찰성(reflexivity)을 가진 주체로서 스스로를 구성해간다는 관점이다. Nieminen과 Yang은 이 개념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님을 짚는다. 독일의 빌둥(Bildung), 영국 자유교육의 전통, 동아시아의 수신(修身)에 이르기까지, 교육을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본 오랜 사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평가는 측정 도구가 아니라 되어감(becoming)의 재료가 된다. 학생은 자신의 글, 자신이 받은 피드백, 자신이 쓴 성찰문 속에서 "나는 지난 학기와 무엇이 달라졌는가", "나는 어떤 배움을 원하는가"를 묻는다. 이때 평가는 바깥에서 학생을 규정하는 장치가 아니라, 학생이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가는 통로가 된다.
둘은 대립하지 않는다
주의할 점은, Nieminen과 Yang이 두 형성을 대립 구도로 세워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타자형성이 없는 교육은 없다. 학교가 학생에게 사회의 언어와 규범을 전달하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의 평가가 거의 전적으로 타자형성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데 있다. 학생이 자신을 구성할 여지, 평가 안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틈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자기형성은 바로 그 닫힌 틈에 관한 물음이다.
되어감이란 무엇인가
자기형성은 학생을 다르게 본다. 학생은 외부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존재다. 자신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배움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물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Nieminen과 Yang은 이 능력을 성찰성(reflexivity)이라고 부른다. 성찰성은 단순히 되돌아보는 습관이 아니다. 자신을 둘러싼 조건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갈지를 스스로 정해가는 힘이다.
이 관점에서 교육의 중심은 바뀐다. 교육은 학생에게 지식과 기능을 얹어주는 일이 아니라, 학생이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일을 돕는 것이다. 학생은 졸업장 위에 찍힌 성적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학생은(우리는) 계속해서 되어가는 중이다.
오래된 뿌리
Nieminen과 Yang이 흥미로운 것은, 이 관점을 최신의 교육이론이 아니라 오래된 교육 전통 속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두 연구자는 독일의 빌둥(Bildung) 사상과 동아시아의 수신(修身)을 나란히 놓는다.
빌둥은 인간이 주어진 조건을 넘어 스스로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가리키는 독일 교육철학의 오랜 개념이다. 빌둥의 관점에서 교육은 시험을 잘 보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학습자가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며 한 사람으로 자라나는 일이다.
수신은 우리에게 더 가까운 말이다. 자기 몸과 마음을 닦는다는 뜻의 이 오래된 개념은, 동아시아 교육 전통에서 배움의 궁극적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유학에서 배움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자기를 돌아보고 가다듬는 일이었다. 수신은 혼자만의 수양이 아니었다. 수신에서 시작된 배움은 가정과 사회로 이어졌고, 결국 공적인 삶에 기여하는 데로 나아갔다.
두 전통은 서로 다른 토양에서 자랐지만 한 가지를 공유한다. 교육이란 학생을 특정한 기준에 맞추어 깎아내는 일이 아니라, 학생이 자기 자신으로 자라나도록 돕는 일이라는 관점이다. Nieminen과 Yang은 이 오랜 사유가 지금의 고등교육에서 거의 잊혔다고 진단한다. 같은 진단이 한국의 중등교육 현장에서도 가능할지 모른다.
되어감을 위한 평가
그렇다면 이런 관점에서 평가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Nieminen과 Yang이 제안하는 이름은 되어감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becoming)다. 이 평가는 학생이 무엇을 아는지 재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학생이 자기 자신과 세계에 관해 더 깊이 묻도록 돕는 데 목적을 둔다.
이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평가가 남기는 흔적이다. 한 번의 수행평가가 끝나고 나면 학생의 손에 무엇이 남는가. 등급 하나만 남는다면 평가는 측정으로 끝난 것이다. 그러나 학생이 자신의 글과 자신의 변화를 다시 들여다볼 재료가 남는다면, 평가는 되어감의 통로가 된다. 성찰문, 동료 피드백, 자기평가 기록은 이 재료의 후보들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평가의 시간이다. 되어감은 한 차시나 한 단원 안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학생이 자신의 첫 글과 마지막 글을 나란히 놓고 그 사이의 거리를 볼 수 있을 때, 평가는 비로소 되어감의 재료가 된다. Nieminen과 Yang은 이를 긴 호흡의 평가(programmatic assessment)라고 부른다. 개별 평가 하나하나가 아니라, 한 학기 혹은 한 학년 전체를 가로지르는 평가 설계를 가리킨다.
이쯤에서 우리의 수행평가를 돌아보게 된다. 한국 교실에서 수행평가는 이미 과정을 본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한 번의 시험이 아니라 여러 번의 과제를 통해 학생의 배움을 따라가겠다는 것이 본래 의도였다. 그 의도 안에 되어감을 위한 평가의 씨앗이 있다. 다만 수행평가가 등급 산출의 또 다른 절차로 자리 잡는 순간, 그 의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되어감을 위한 평가는 먼 이상이 아니다. 이미 우리가 하고 있는 수행평가 안에, 그 관점에 가까운 실천의 가능성이 흩어져 있다. 다만 그 가능성은 제도 전체를 뒤엎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작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제도를 바꾸지 못해도
Nieminen과 Yang은 지금의 평가 구조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한다. 성적과 등급은 여전히 학생의 진로를 가르고, 학교는 평가 데이터를 생산해야 할 구조적 이유를 여럿 갖고 있다. 그러나 두 연구자는 Dave Webb의 말을 빌려, 큰 구조가 그대로일 때에도 작은 숨구멍은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바꾸지 못하는 것을 잠시 덜어내고, 다르게 평가할 자리를 만들어보는 일이다. 이 자리를 두 연구자는 틈(breathing space)이라고 부른다.
거창하지 않다. 한 학기 전체를 갈아엎는 것이 아니라, 한 차시나 한 번의 수행평가에 다른 결을 들여보는 일이다. 교사가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자리는 여기에 있다.
평가를 덜어내는 자리
첫 번째 틈은 평가 자체를 잠시 멈추는 자리다. 학생이 쓴 글을 받되, 점수를 매기지 않는 시간. 활동을 하되, 등급이 따라오지 않는 시간. Nieminen과 Yang은 이를 평가의 부재가 아니라 평가의 다른 형태라고 본다. 점수가 빠져나간 자리에서 학생은 자신의 글을 다르게 읽는다. 점수를 의식하지 않을 때, 학생은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쓰고 싶었는지를 스스로 묻게 된다.
모든 수행평가를 이렇게 할 수는 없다. 다만 한 학기 중 한두 번은 점수 없는 글쓰기를 설계해볼 수 있다. 피드백만 돌려주는 글, 동료와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글, 기록으로는 남되 등급으로는 번역되지 않는 글. 이런 자리는 교사에게도 드문 선물이 된다. 채점이 아니라 읽기로 학생의 글 앞에 앉는 경험.
함께 평가하는 자리
두 번째 틈은 평가를 개인의 일에서 공동의 일로 바꾸는 자리다. 지금의 평가는 철저히 개인화되어 있다. 각자의 점수, 각자의 등급, 각자의 세특. Nieminen과 Yang은 이 개인화가 학생을 세상으로부터 떼어놓는다고 본다. 학생은 자신의 배움을 자신만의 것으로 여기게 되고, 동료는 경쟁자가 된다.
동료 피드백과 협력적 평가는 이 개인화에 균열을 내는 틈이다. 학생이 서로의 글을 읽고 의견을 건네는 시간, 한 편의 과제를 함께 완성하는 시간은 평가가 개인의 성취 확인에서 벗어나 함께 배우는 과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연다. 여기서 학생은 자신이 다른 학생의 배움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 배움이 각자의 점수 경쟁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는 감각은, 점수표로는 전해지지 않는다.
기준을 함께 만드는 자리
세 번째 틈은 평가의 기준을 교사가 혼자 세우지 않는 자리다. 루브릭은 대개 교사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학생은 그 기준에 따라 평가받는 대상일 뿐, 기준을 만드는 일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학생이 평가의 기준을 함께 정하는 자리가 열릴 때, 학생은 처음으로 자신을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평가에 관여하는 사람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 실천은 생각보다 멀지 않다. 수행평가 전에 학생들과 함께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인가"를 의논하고, 그 의논에서 나온 항목을 루브릭에 반영하는 일. 이미 완성된 루브릭을 나누어주는 대신, 루브릭의 초안을 학생과 함께 다듬는 일. 이런 자리에서 학생은 자신이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을지를 스스로 이해하게 되고, 평가는 그에게 학생 바깥에서 부과되는 기준이 아니라 자신이 참여한 약속이 된다.
세 가지 틈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일을 한다. 학생이 평가 앞에서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는 순간을 만드는 일이다. 이 틈들은 평가 제도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 학생이 자기 자신으로 자라날 작은 공간을 낸다. 거창하지 않지만, 그 작은 공간이 반복되면 학생이 학교를 떠날 때 들고 나가는 것이 달라진다.
다시 그 밤의 책상으로 돌아간다. 펜 끝은 여전히 B 칸 위에 있다. 이 글을 읽고 나서도 나는 그 칸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알지 못한다. Nieminen과 Yang의 논문도 그 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평가를 없애자고 하지도, 등급을 포기하자고 하지도 않는다. 두 연구자는 다만 평가 앞에서 우리가 묻는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처음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이 글에 등급을 매기고 있는가, 이 학생에게 등급을 매기고 있는가.
같은 자리에서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이 학생이 이 평가 안에서 자기 자신이 되어가고 있는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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