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행사는 나무학교 편집팀이 김성우 교수의 저서를 함께 읽고 깊이 있는 독서토론을 나눈 끝에 성사되었다. 편집팀은 사전에 모여 인공지능 도입으로 생활기록부 작성이나 공문 처리 등 행정 업무의 효율이 극대화되는 현상을 짚어보았다. 하지만 동시에 교사가 인공지능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학생 개개인을 깊이 있게 관찰하려는 교육적 노력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대해서도 깊은 토론을 나누었다. 특히 교실 현장에서 ‘할루시네이션(AI가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지어내는 증상)’의 심각성을 경험하며,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능적 활용이 아닌 비판적·성찰적 리터러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편집팀은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이 부족한 학생들이 AI의 편리함에 매몰되어 ‘생성(Becoming) 없는 생성(Generation)’에 그치지 않으려면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자리를 넘어, 우리가 바라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인공지능을 어떻게 사용하거나 멈춰야 할지 선택하고 실천하는 ‘성찰적 리터러시’를 논의하고자 김성우 교수를 초빙하게 되었다.
행사의 문을 연 이광현 선생님은 이러한 취지를 이어받아 “그동안 지식을 전달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해왔다면, 이제는 프롬프트를 작성하고 AI가 준 자료를 다시 읽어내야 하는 시대가 왔다”며 교실의 역할을 다시 물었다. 인공지능을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학생이 주체가 되는 배움이 가능한지, 그 과정에서 교사의 역할은 무엇인지 방향성을 잡는 것이 이번 모임의 핵심임을 분명히 했다.


사례 발제에 나선 교사들은 AI가 교실 현장에 가져온 실제적인 변화와 그 과정에서 마주한 실존적 고민들을 가감 없이 공유했다.
권아영 선생님(천안여고 국어)는 인공지능이 학습자의 역량 평가를 어떻게 무력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충격적인 사례를 전했다. 학생이 Gpt 킬러와 같은 탐지 프로그램조차 우회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완벽한 구조의 글을 제출했을 때, 선생님이 느낀 감정은 경탄이 아닌 당혹감이었다. 권 선생님은 “기계가 쓴 글을 읽지 않기 위해 다시 학생을 교무실로 불러 면대면 대화를 나누며 내용을 확인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는 기술의 발전이 역설적으로 선생님에게 ‘인간 대 인간’의 확인 절차라는 과도한 행정적, 심리적 부담을 지우고 있으며, 기존 평가 시스템의 정당성에 근본적인 균열을 내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세로 선생님(석문중 국어)은 교사의 일상적인 업무와 행정 영역에 파고든 AI의 양면성을 짚었다. 생활기록부 작성이나 학부모 상담 기초 자료 생성 등에서 AI가 제공하는 압도적인 편의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이면에 숨은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 선생님은 “어느 순간 AI의 답변에만 의존하며 스스로 사고하기를 멈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AI 없이는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노예’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자조 섞인 질문을 던졌다. 이는 기술이 교사의 전문성을 보완하는 도구를 넘어, 교사의 고유한 직관과 통찰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드러낸 발언이었다.
조대근 선생님(부석고 국어)은 소설 탐구 보고서 수업에서 AI 활용을 전면 허용했다가 겪은 시행착오를 공유했다. 학생들은 AI가 지어낸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사실(할루시네이션)을 비판 없이 수용했고, 결과물은 화려했으나 그 과정에서 학생의 사유는 증발했다. 조 선생님은 “결과물은 너무나 훌륭한데, 정작 학생은 그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복사·붙여넣기만 반복하는 상황을 보며 ‘재앙의 시작’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는 교사의 철저한 수업 설계와 통제 장치 없는 기술 도입은 교육적 성장이 아닌 배움의 퇴행을 초래할 수 있음을 강력히 경고했다.


반면 정윤희 선생님(충남외고 일본어)은 기술적 제약 때문에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던 학생들에게 AI가 훌륭한 ‘다리’가 되어준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문학 북트레일러 제작 수업에서 영상 편집이나 시각 자료 생성에 어려움을 겪던 학생들이 AI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높은 몰입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정 선생님은 특히 그동안 언어적 표현에 소극적이었던 남학생들이 AI를 도구 삼아 기발한 우수작들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며, AI가 적절히 통제될 때 학습자의 잠재력을 깨우는 강력한 조력자가 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사례 발표 직후 김선명 선생님이 이어 진행한 ‘가치수직선 토의’에서는 인공지능 활용을 둘러싼 교사들의 치열한 가치 판단이 대립하며 현장의 온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교사들은 ‘수업 시간 중 학생들의 인공지능 사용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두고 각자의 교육관에 따라 수직선 위에 자리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가져올 학습 격차와 유료 결제 여부에 따른 교육 불평등, 그리고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에 대한 대응 방안 등 실질적인 고민들이 쏟아졌다. 특히 “인공지능이 사고의 중간 과정을 생략해버린다면 그것을 진정한 배움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은 현장에 모인 교사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며, 오후에 이어질 김성우 교수의 특강으로 논의의 불씨를 지폈다.

“우리는 사전이나 예문이 아닌, 구체적인 삶의 경험과 관계 속에서 언어를 배웁니다. 반면 인공지능은 데이터로 말을 배우기에 인간과 같은 '삶'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계가 유려한 텍스트를 효율적으로 '생성(Generation)'할 수는 있어도, 학습자가 고통스럽지만 의미 있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존재로 변화하는 '되어감(Becoming)'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김성우 교수(서울대학교, 캣츠랩)는 강연을 통해 AI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리터러시 생태계의 변화를 진단하고, 이에 대응하는 교사의 역할과 교육적 가치를 역설했다.
김 교수는 우선 언어의 본질적인 차이를 지적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사전적 정의가 아닌, 각자의 삶 속에 녹아 있는 구체적인 기억과 경험을 소환한다"며, 삶이 부재한 인공지능은 결코 인간의 언어적 경험을 완벽히 대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현재의 AI 활용 양상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AI를 남보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한 '바벨탑'으로 쓸 것인지, 아니면 타인과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다리(Bridge)'로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김 교수는 "자연과 인간, 혹은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고 이해를 돕는 '다리로서의 인공지능'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생성형 AI 도입 이후 리터러시 생태계에 나타난 변화로 '읽기와 쓰기의 전도 및 실시간 통합'을 꼽았다. 그는 "과거에는 텍스트를 읽어야 과제를 수행하고 글을 쓸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학생들이 AI를 통해 글을 먼저 생성(쓰기)한 뒤 이를 요약해서 보는(읽기) '전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생성의 속도는 빨라졌지만, 인간이 내용을 이해하는 속도는 그대로"라며, 효율성만 강조되다 보니 학생들이 과제를 빨리 끝내고 남는 시간에 숏폼 콘텐츠를 소비하는 등 오히려 학습의 질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교육 격차 심화에 대한 경고도 이어졌다. 김 교수는 읽기 능력이 좋은 학생이 더 많이 읽고 똑똑해지는 '마태 효과(Matthew Effect)'가 AI 활용 능력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배경지식과 문해력이 높은 학생일수록 AI를 더 잘 활용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학생은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며, 교사들이 보편적 학습 설계(UDL)를 통해 기술 불평등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김 교수는 결과물보다는 '과정성'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학습자는 전문가와 달리 암묵지(Tacit Knowledge)가 부족하므로, AI가 산출한 결과물만으로는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며 "단순히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학생이 무엇을 경험하고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수업 방식으로는 AI 번역 결과와 인간의 번역을 비교 분석하게 하거나, AI가 생성한 텍스트의 오류나 편향을 검증하게 하는 등 '수동적 사용자'에서 '능동적 분석가'로의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연 말미에 김 교수는 교육의 궁극적 목표를 재확인했다. 그는 "AI의 '제너레이션(Generation)'은 생성이지만, 교육에서의 핵심은 변화하여 새로운 존재가 되는 '비커밍(Becoming)'"이라며 "나 자신이 변화하지 않는 '생성'은 교육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술이 세계를 재구성할 때, 교육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며,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교육의 본질인 '탐구하는 마음'과 '학습하는 몸'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며 강연을 마쳤다.
강연 이후 교사들은 임찬욱 선생님의 주도 아래 모둠별 토론을 통해 현장에 즉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도출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제안은 ‘사용 순서 뒤집기’였다. AI에게 먼저 묻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질문에 답해본 뒤 AI의 답변과 비교하며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게 하는 방식이다.
또한 최종 결과물뿐만 아니라 AI와 상호작용한 프롬프트 이력과 사고의 변화 과정을 기록하고 평가에 반영하는 ‘과정 중심 평가의 정교화’가 필수적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교사들은 AI를 활용하더라도 텍스트를 정교하게 읽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전통적 문해력’이 모든 배움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행사를 마무리하며 참석자들은 “인공지능과의 공생이 불가피한 시대에 교사로서 어떤 교육적 지향점을 가져야 할지 가늠해 본 유익한 자리였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교실나눔은 기술이 교사의 역할을 대체할 것이라는 불안을 넘어, 결국 교육의 핵심은 학생의 삶과 지식을 연결하는 ‘징검다리’로서의 교사에게 있음을 확인한 자리였다. 인공지능이라는 거센 파도 속에서도 ‘인간다운 배움’이 일어나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교사들은 오늘도 함께 지혜를 모으고 연대하며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교실 안의 작은 울림이 현장의 변화로 피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선생님들의 진심 어린 시간을 오롯이 기록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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