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신규 발령을 받아 고등학교 교사로 첫발을 내딛으며, 아이들과 함께한 교실에는 크고 작은 행복들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웃음이 잦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은 즐거웠다. 그러나 1년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과연 어떤 교사였을까.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잘 웃어주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즐겁고 편안한 교실이었지만, 동시에 기준과 방향이 분명한 교실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때부터 ‘친절하지만 단호한 교사’라는 문장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아이들을 존중하되 필요한 순간에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교사, 관계 속에서 질서를 세울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 고민의 끝에서 내가 붙잡게 된 주제가 바로 ‘학급경영’이었다. 특히 훈육을 넘어, 학생들이 스스로 이 교실의 구성원임을 느끼게 하는 학급 운영 방식, 즉 ‘소속감’을 키우는 학급경영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의 첫 교사 생활에서 가장 절실했던 질문은, ‘어떻게 하면 이 교실을 아이들의 공동체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교사와 학생이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배움에 관련된 과정뿐만 아니라 개개인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즉, 학생들이 학교에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학교에 소속되어 있다고 느껴야 한다. ‘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자신이 학교의 일부라는 느낌’, ‘학교와 연결되기’, ‘교사들로부터 지원과 보호를 받고 있다는 느낌’, ‘학교에서 좋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 ‘현재와 미래의 수업 과정에 참여’, ‘훈육법이 공평하고 효과적이라는 믿음’, ‘방과 후 활동 참여’ 이 7가지 요인은 자신과 사회, 친구들이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여 학교생활을 더욱 원만하게 만든다. (제인 넬슨, 린 로트, 스티브 글렌(2014), 학급긍정훈육법, 에듀니티)
고등학교 3학년 담임으로서 나에게 가장 우선된 과제는 분명 ‘대입’이었다. 아이들 역시 현실적인 목표 앞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교실만큼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랐다. 치열한 입시의 한가운데에서도, 우리 반에서만큼은 웃을 수 있고,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했다. 그렇게 나는 담임 자율 시간이 생길 때마다 크고 작은 학급 활동을 기획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아이들 사이에서는 ‘우리 반 한정 이벤트 장인’이 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시작한 활동은 ‘학급 온도계’였다. 아이들과 함께 학급 회의 시간을 통해 우리 반의 온도를 올릴 수 있는 기준을 정했다. 일주일 동안 싸움 없이 지냈을 때, 청소를 책임감 있게 마쳤을 때, 일정을 성실히 지켜냈을 때 등 학급의 온도는 조금씩 올라갔다. 온도가 올라갈수록 청소 3일 면제권이나 간식 파티 같은 소소한 보상이 주어졌다. 중요한 것은 보상이 아니라, 그 과정이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반이 지금 몇 도쯤 될까?”를 이야기했고, 누군가 규칙을 어기면 서로 조심스럽게 제동을 걸었다. 학급 온도계는 통제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라는 감각을 공유하는 장치가 되었다.
또 하나의 활동은 ‘느리게 가는 편지’였다. 졸업식 날 꺼내보는 편지를 미리 써 두는 이 활동은, 바쁜 고3의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는 지금의 불안한 마음을 적었고, 누군가는 스스로에게 응원의 말을 남겼다. 당장은 의미를 알 수 없을지라도, 이 편지가 언젠가 아이들 각자의 시간 속에서 조용히 힘이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행한 활동이었다.


매달 작성한 ‘학급 월지’ 역시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장치였다. 이번 달 가장 행복했던 일, 가장 힘들었던 일, 학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적으며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 달을 정리했다. 짧은 문장 속에는 친한 친구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했고, ‘우리 반’이라는 말도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그 글들을 통해 아이들이 교실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를 조용히 엿볼 수 있었다.
시험 기간에는 고3다운 방식의 응원도 더했다. 스터디 플래너 이벤트를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점검하도록 했고, 목표를 달성한 아이들에게는 작은 선물을 건넸다. 또한 “행운은 언제나 ○○이 편 –민주쌤-”이라는 문구를 새긴 컴퓨터용 사인펜을 제작해 시험 응원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사소한 물건이었지만, 아이들은 그 펜을 필통 깊숙이 넣어 두고 아껴 썼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이들 몰래 부모님께 부탁드려 받은 ‘마지막 시험 응원 편지’를 전해주었을 때였다. 편지를 읽으며 고개 숙여 눈물을 닦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교실 안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온기가 흘렀다.
이 모든 활동의 중심에는 단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아이들이 이 교실을 ‘지나가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버틴 공동체’로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친절함 속에 기준을 세우고, 즐거움 속에 질서를 담으려 했던 나의 학급경영은 그렇게 소속감을 키우는 방향으로 조금씩 다듬어져 갔다.



1년의 끝자락, 졸업식에서 아이들에게 마지막 선물로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 건넨 ‘대학교 과잠을 입은 우리 반 캐릭터 키링’은, 사실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인사이기도 했다. 각기 다른 색의 과잠을 입고 있지만, 모두 같은 교실에서 같은 시간을 견뎌 낸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누군가는 아직 목표에 닿지 못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예상보다 먼 길을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교실에서만큼은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었고, 같은 온도를 올리기 위해 함께 애썼으며, 같은 불안을 나누고 같은 응원을 건넸다. 나는 그 시간을 통해 ‘학급경영’이란 결국 무언가를 더 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는 아이들이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친절함만으로는 부족했고, 단호함만으로는 닿을 수 없었던 자리에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기준’을 세워 가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 키링이 언젠가 아이들의 가방 속에서 우연히 손에 쥐어질 때, 고등학교 3학년의 어느 교실에서 자신이 누군가의 곁에 있었고, 누군가가 자신의 편이 되어 주었다는 기억이 조용히 떠오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기억이 앞으로의 삶에서 또 다른 공동체를 만들어 갈 작은 용기가 되기를, 담임으로서 조심스레 소망해 본다.
제인 넬슨, 린 로트, 스티브 글렌(2014), 학급긍정훈육법, 에듀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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