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나간 일을 돌아보는 것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망각은 깊어지고, 그 위에 덧붙여지는 새로운 관계와 경험은 오래된 기억을 자꾸 다른 방식으로 불러낸다. 그래서 과거의 사실을 온전히 복원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얽혀 있는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나무학교의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라는 제목은 정말 이루어지기 힘든 말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우리 모임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이유는 우리가 처음 모이고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기억들을 다시 떠올려 보는 작업이 지금 우리 모임의 어려움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줄지도 모른다는 나름의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교사로서,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교직 초임 때부터 여러 모임과 연수를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공부했고, 학생생활부 기획업무, 연구학교 운영, 교육청 출장, 교과서와 문제집 그리고 각종 수업자료 제작 등 정말 하루하루 바쁘게 살았다.
고등학교로 근무지를 옮기고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에서 '좋은' 대학을 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늘 강조했었다. 그래서 나의 수업은 EBS 강의처럼 수능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전략과 방법에 대한 내용이었고, 담임으로서의 나의 역할은 아이들의 획득한 점수 범위에서 최대한 서울권 이름있는 대학의 커트라인에 맞추어 합격시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교사로서의 나의 삶에 의문이 들고 있었다. 교직 경력이 쌓일수록 나의 강의 기술은 늘어났지만 정작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실력에 대해서는 점점 자신할 수 없었다. 특히 나에게 국어를 배운 아이들이 대학에 제출하는 자기소개서를 볼 때마다, 도저히 글이라고 볼 수 없는 그것들에 대해 첨삭해주면서 나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화법과 작문' 시간에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 본 적이 없었다. 그 시간은 EBS 수능 연계 교재를 풀어주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2014년 나는 그 해 개교한 배방고등학교로 전근을 갔다.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에서 신설된 인문계 고등학교는 신입생 모집이 미달되는 경우가 많아 입학 커트라인이란 것이 거의 의미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천안과 아산 지역에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어려운 점수를 받은 중학생들이 주로 모이게 되었고, 내가 이전 학교에서 만들었던 강의 자료를 가지고 진행한 수업은 아무도 보고 듣지 않는, 마치 거대한 벽을 향해 나 홀로 떠들고 있는 듯한 막막한 시간이 연속이었다.
그렇게 그냥 진도만 나가고 있었던 그해 4월, 세월호의 비극은 교사로서의 나의 삶에 거대한 균열을 만들어 버렸다. 나를 비롯해 그 시간을 살아갔던 대한민국의 기성세대 대부분은 무기력함 속에서 우리가 만든 못난 세상에 대한 죄의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교사로서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방식이 제대로 된 것인지 스스로 계속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교사가 된 이후 단 한 번도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임용고사 면접을 준비하며 형식적인 답변들은 수도 없이 외웠지만, 진짜 교사로서 어떤 교육을 목표로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는 내가 학생으로서 12년의 시간을 보냈던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었고, 이곳을 나의 직장으로 삼아 그 익숙함 속에서 나는 교사로서의 나에 대해 묻지 않은 채 그냥 주어진 역할대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무엇인가를 나는 해야만 했다. 거대한 사회적 부조리 앞에서 느꼈던 그 절망감을 나의 교실에서까지 반복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수업을 바꾸기로 했다. '거꾸로 수업', '배움의 공동체', '하브루타', 'PBL' 등 온갖 새로운 수업 방법들을 공부하고 수업에 적용했다. 내가 잘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들이 진짜 배웠는지가 더 중요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이러한 수업을 지속하는 것에 대해 불안했고 걱정스러웠다. 결국에는 학교 내신과 수능 시험을 준비시켜야 하는데 이런 방식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 고민에 대해 상의할 사람이 없었다. 학교에 친한 동료 선생님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너무나 낯설고 두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연수에서 만난 선생님들 몇 분과 함께 수업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각자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소주 한 잔에 그날의 망한 학습지를 안주 삼아 함께 위로하며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그 당시 전국적으로 선생님들의 자발적인 모임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아마 많은 선생님들이 그 비극 앞에서 깊이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픔은 제거해야 할 문제의 대상으로 인식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픔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진심으로 대화할 수 있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지만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자주, 그리고 많이 모이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교수자 중심의 강의식 수업에서 학습자가 주도하는 활동 중심 수업을 주제로 모임은 계속 이루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임의 방향과 성격에 대해 우리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모임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의 숫자가 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만큼 떠나가는 선생님들도 적지 않았다. 많은 선생님들이 오가며 다양한 의견과 폭넓은 배움이 있었지만 반면에 수업 연구의 깊이와 체계를 더할 필요성도 점점 커졌다.
2016년 그간 고민을 바탕으로 모임을 함께했던 선생님들과 1년을 단위로 공부의 계획을 짜고 수업 실천을 함께 하는 방향으로 모임의 운영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 그리고 당시 리더였던 나는 이러한 변화와 함께 ‘배움의 숲, 나무학교’ 라는 새로운 모임의 이름을 제안했다. 그 이름에 교육과 수업에 대한 무슨 거대한 철학을 담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러한 교실의 변화를 고민하는 충남 지역의 선생님들이 우리 모임을 중심으로 조금씩 모이고 모인다면 그래서 함께 꿈꾸고 실천을 연결한다면 그때는 더 이상 교실에서 살아가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지치지 않고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소박한 희망을 담은 이름이었다. 마치 폐허였던 땅에 끊임없이 나무를 심어 마침내 거대한 숲을 만들었다는 어떤 소설 속 이야기처럼 말이다.
‘나무학교’ 라는 이름으로 모인 첫해는 모든 것이 새로운 일이었고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공부의 주제를 우리가 스스로 정하고, 모둠으로 나누어서 매달의 공부를 이끌고, 함께 배운 내용을 교실로 돌아가 실천한 뒤 다시 나누는 ‘성장교실’의 형식도 이때 만들어졌다. 그것은 누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연수의 형태가 아니라, 배운 것을 실제로 실천하고 그 경험을 함께 나누는 과정 속에서 교사로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맨땅에 머리를 쾅쾅 부딪치며 ‘나무학교’를 꾸려갔던 시간이었다. 그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결국 모두 함께 최초의 ‘수업축제’까지 서로 붙잡고 이끌며 한 해를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과연 이것이 될까?’ 라는 의문은 자신감으로 바뀔 수 있었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새로운 선생님들이 ‘나무학교’에 합류하면서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이 생겼다. 기존 멤버와 신규 멤버라는, 서로 성격이 다른 두 집단을 동시에 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규 멤버는 첫 해 ‘성장교실’을 운영했던 방식으로, 기존 멤버는 각자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주제에 따라 다시 소모임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두 개의 트랙을 운영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결국 오래가지 못했는데, 기존 멤버들의 욕구와 방법의 다양성을 충족할 수 있는 적절한 재그룹화가 어려웠고, 신규 멤버들의 경우 주도성이 강했던 기존 멤버들에 비해 그 적극성과 참여도가 시간이 흐를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성장교실’에 결석한 선생님들이 많았던 날, 나는 ‘나무학교’ 운영을 중단한다는 선언을 했다. 각자의 자발성에 기초한 모임에서 그것이 사라지면 그 모임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돌발적인 선언은 ‘나무학교’의 의미와 가치를 나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선생님들 덕분에 철회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은 더 이상 ‘나무학교’가 한 사람의 리더십에 기대는 모임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운영을 책임지는 공동의 체제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오늘날 변함없이 ‘나무학교’를 꾸려가고 있는 ‘작은숲’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나는 관계를 통해 성장한다는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고, ‘나무학교’를 통해 만나게 된 많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겪고 나서야 어느 순간 내 안에 믿음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나는 그전까지 누군가와 함께 성장한다는 가치를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우리 세대는 성장기 때부터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온 세대였고,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과 정서적 교감을 할 수 있는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교사로서 ‘나무학교’에서의 내가 했던 공부와 실천 역시 주로 학습자의 인지적 구성의 원리와 발달 과정에 대해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나무학교’를 이끌던 시기에도, 나는 함께하는 교사들 사이의 유대와 관계성보다 다양한 지적 목표를 성취하는 일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무학교’의 운영이 공동의 방식으로 바뀌고, 모임에 참여한 다양한 선생님들의 욕구가 합의를 통해 이루어가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내가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마다 선출하는 ‘대표’ 체제와 기획, 교육, 편집팀으로 역할을 분화한 ‘작은숲’ 그리고 여러 소모임들이 만들어지고 운영되면서 ‘나무학교’는 다양한 방향을 가진 교사 모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임의 확대와 성장보다 나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이 모임의 운명에 대해, 그리고 교사로서 교육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모임 운영 방식을 두고 큰 소리로 부딪히기도 했고, 때로는 너무 답답해 속이 터질 것 같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본질적인 고민과 이상을 위해 오랜 시간을 함께 동료로 머물 수 있었다는 것은 내 삶에 주어진 감사한 선물이었다.
관계를 통한 성장에 대한 ‘나무학교’에서의 경험은 교육에 대한 나의 관점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세월호에서 비롯된,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기존의 ‘가르침’의 방식을 거부하게 만들었고,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 속 ‘자코토’의 이야기처럼 철저한 학습자 주도의 수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나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교실은 학생만의 것도, 교사만의 것도 아니었다. 교실은 학생과 교사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장은 교사와의 건강한 관계 속에서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교차할 때 가장 강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개인이 혼자서도 성취할 수 있는 ‘학습’이 아니라, ‘교육’은 교실 속의 두 주체인 교사와 학생의 진정한 만남과 대화가 이루어질 때야 비로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세월호 이후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학교’의 역할과 ‘교육’의 가치에 대한 실마리였다. 우리나라에서 학교는 해방 이후 자격 부여와 사회화의 장치로서 사회적 계층 이동의 핵심 통로로 역할을 해왔으며, 오늘날 고도화된 산업 사회에서 전문성을 가진 숙련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과열된 대학 입시와 서열화 되어있는 학벌사회의 구조는 초·중·고교 단계의 보통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교실에서의 교사와 학생의 삶을 끊임없이 도구화하고 주변화하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의 교육 문제 해결에 있어 교실 속 삶의 대등한 주체로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와 소통을 복원시키는 일은 무엇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할 과제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 맺음의 성장에 대해 교사가 체득하기 위해서는 ‘나무학교’와 같은 교사공동체에서의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그 깨달음은 절대로 교육학 교재나 유튜브, 생성형 AI가 대신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사 자신이 다른 교사와 함께 교육적 가치와 경험을 나누고 소통하는 ‘겪음’의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사회를 유지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내일의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사유할 기회를 주는 곳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에 머무르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다운 일인지 함께 질문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외로운 교실의 한 명의 교사로서 그 역할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내가 방향을 잃을 때마다 ‘나무학교’의 동료들은 나를 기다려 주었다. 돌아보면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는 것은 늘 설레는 일이었다.
최근 우리는 새로운 ‘작은숲’을 세우는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고, ‘성장교실’ 모집도 늦어지면서 올해는 지원자가 적어 운영이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서른다섯 분의 새로운 선생님들이 ‘나무학교’를 찾아와 주셨다.
십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작은 모임이지만, 우리는 처음과 다름없이 설레며 기다리고, 반갑게 맞이한다. 어쩌면 공동체란 결국 그렇게 서로를 기다려 주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작은 기다림의 마음들이 결국 우리 교실을 바꾸어 갈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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