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천남중학교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공문 하나가 있었다. 당시 TV에서나 접하던 ‘거꾸로 교실’을 실제로 운영하는 수학 수업을 공개한다는 내용이었다. 평소라면 여느 공문처럼 일괄처리를 눌렀을 나였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자세히 읽어보게 되었다. 그렇게 수업 시간표를 조정해 공개 수업을 참관하게 되었다. 그날 교실에서 만난 선생님과 아이들은 오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만큼 활기가 넘쳤고, 교실 안에는 배움의 에너지가 가득 차 있었다. 그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다음 해, 나는 그 수업을 이끌었던 김광훈 수석님과 함께 근무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학교를 천안신방중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수석님과 수업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들으며 내 수업이 조금씩 채워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수석님께서 ‘나무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더 많은 배움의 용기와 여유를 갖고 있지 못했다. 대전에서 천안으로 이어지는 출퇴근길은 버거웠고, 어린 아들을 키우는 일상에서 학교 밖의 시간을 돌아볼 여력은 부족했다. 그렇게 수석님이 다른 학교로 가시고 수업에 대한 아쉬움과 부족함을 늘 마음에 품은 채 지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참 신기하게도 다시 한번 ‘나무학교 성장교실’ 공문이 내 눈에 들어왔다. 마치 그동안 미뤄 두었던 아쉬움과 답답함을 해결할 시간이 되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2023년 12월, 나는 그렇게 나무학교와의 인연을 시작해 보기로 용기를 내게 되었다.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외부 활동에 에너지를 쉽게 소진하는 편이면서도, 그런 모습이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을까 고민도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나의 성향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학습된 E의 모습을 보이려 노력도 참 많이 했다. 그런 나에게 처음 성장교실은 다소 낯설고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과연 이 공간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지 많은 질문을 하기도 했다.
내가 만난 성장교실 9기 선생님들은 배움의 열정이 가득하고 무엇이든 긍정적,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분들이었다. ‘내가 과연 이분들의 에너지를 따라갈 수 있을까?’ 더구나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 운영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5월부터 선생님들의 교육과정을 만나보며 걱정은 계속 쌓여만 갔다. 하지만 나와 교사 교육과정을 함께 한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졸업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언제나 유쾌하고 시원하게 활동 정리를 해줬던 효정샘, 재치 있는 말과 수업으로 모두를 사로잡던 나영샘, 호기심과 귀여운 에너지로 분위기에 활기를 더해 줬던 정안샘, 누구보다 어른스럽고 수업에 대한 열정이 깊었던 나연샘. 그리고 퍼실리테이터 선생님들 덕분에 참 행복한 배움의 시간이었다. 서로의 수업이 힘이 되어주고, 영감을 주었던 나의 성장교실은 나의 수업을 한층 더 충만하게 만들어 주었고 2024년의 나를 더 성장하게 해주었다.


성장교실 졸업식 날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이제 무엇을 하죠?’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무학교와의 인연을 그냥 온라인으로만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다. 학교 밖 배움의 즐거움을 여기에서 멈추기에는 아직도 모자란 듯싶었다. 하지만 학교의 업무와 가정, 그리고 시간과 이동 등 여러 현실적 조건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소모임 소개 자료를 살펴보며 ‘이제 무엇을 더 해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PBL 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토요일에 모이고, 모임 장소도 돌아가면서 운영된다는 점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나연샘과 나영샘과 함께 2월 PBL 꿈틀 과정을 듣게 되었다. 역시 함께하는 선생님들이 있어 큰 힘이 되었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방향을 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프로젝트 수업에 대한 관심은 소모임 PBL 센터로 이어가면서 나의 첫 ‘학교 밖 교사 학습 공동체’ 활동이 시작되었다. 선생님들과 함께 PBL이 무엇인지, 프로젝트 수업을 어떻게 계획하고 운영할지 체계적으로 공부해 나갔다. 선생님들과 수업을 나누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 속에서 나의 수업은 더 명확해졌고, 부족하다고 느껴졌던 부분들도 하나씩 채워 나갔다.

1학기 인권 프로젝트 활동부터 2학기 탈폭력프로젝트까지 나의 수업은 이전보다 더 구조화되고 다양한 시도를 담게 되었다. 특히 2학기 탈폭력프로젝트는 학생들과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문화콘텐츠 속에 숨어있는 폭력 요소들을 찾아보고 이를 도덕적으로 재구성해 보는 등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배움이 될 수 있도록 진행할 수 있었다. PBL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감히 해볼 생각조차 못 했던 수업이 선생님들의 조언과 관심으로 고민이 되었던 내용도 더 풍성하게 발전하게 된 것 같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우성중학교는 혁신학교로, 다른 학교에 비해 수업 공개와 수업 나눔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이다. 이를 위해 매년 2월 교육과정 함께 만들기 주간에는 학교의 비전과 중점 주제를 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부서별 활동 계획, 교과 교육과정 재구성을 깊이 있게 논의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2월 교육과정 함께 만들기 주간 우리 학교의 중점 주제인 ‘다양성’을 중심으로 교육과정 재구성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옆자리에 앉아 계시던 나의 멘토 보건 선생님께서 “성 평등 교육을 해야 하는데, 성 소수자나 젠더 갈등을 수업으로 풀어보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 순간, 수업 축제에서 들었던 이광현 선생님의 강의, 「지금, 우리가 함께 나눠야 할 이야기(#젠더 #인권 #정상성 #차별 #다양성)」가 떠올랐다. 당시에 강의를 들으며 우리의 무관심으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수많은 성 다양성 이야기를 내 수업을 듣는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고민만 하고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수업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찾아온 것만 같았다. 그렇게 보건 선생님과 융합 수업을 계획하게 되었다.
먼저 내 수업 시간에 성별 이분법, 성 정체성, 성적 지향 등의 개념을 이해하고 ‘성소수자를 위한 별도 화장실은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미니 토의를 진행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보건 선생님께서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고, 성 다양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이야기 나누는 수업을 이어 가셨다. 융합 수업을 준비하면서 성소수자라는 주제를 아이들이 거부하지는 않을지, 또 어디까지 수업으로 다루는 것이 적절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융합 수업을 마무리하고 만난 우리 아이들은 “너무 좋은 수업이었습니다.”, “다양성은 존중해줘야 하는 것같아요.”,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잖아요.”라고 대답해 주었다. 며칠 동안 이어졌던 보건 선생님과의 고민이 감사의 순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보건 선생님이 참여하고 계신 양성평등‧성교육 연구회에서 운영하는 한국다양성연구소의 혐오 문화에 대한 특강도 함께 들으며 나의 배움을 더 확장해 나갔다. 이번 융합 수업으로 아이들의 변화는 수업으로부터 시작되고 아이들은 수업을 통해 자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되었다.


3월 카톡이 알림이 울렸다. 9기에서 함께했던 윤아샘의 카톡이였다. “10기 교수평기일체화팀의 퍼실리테이터로 함께해 줄 수 있을까요?” “자주 참여하지는 못해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해볼게요.”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참여는 뜸해졌고, 4월 첫인사 이후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10기 선생님들의 모습 앞에서 나는 더 작아졌다. 바쁘다는 말, 출장 중이라는 핑계, 노트북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조금씩 뒤로 물리고 있었다. 선생님들의 단체 채팅방을 보며 ‘작년에 나도 열심히 했었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탓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10월 발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더 이상 이렇게 머뭇거리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작년 교사교육과정 팀에서 함께 했던 퍼실리테이터 선생님들은 언제나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교육과정 운영 방향을 함께 고민해 주었다. 잘한 부분은 아낌없이 응원해 주었고, 아쉬운 부분은 더 채워갈 수 있도록 따뜻한 조언을 해줬다. 그때 내가 받은 고마움을 이제는 10기 선생님들에게도 전달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10월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다. 교수평기일체화팀 선생님들은 그동안 학교에서 운영해 온 수업과 평가의 기록을 다른 선생님들과 나누기에 충분할 만큼 성실히 준비해 오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활동해 보는 것이었다. 선생님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나의 수업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선생님들의 열정은 나를 한 번 더 겸손하게 만들었다. 10월 교육과정 운영 때는 청강생으로 참여해 선생님들의 교육과정을 함께 경험하며, 다른 10기 선생님들과 또 하나의 배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성장교실은 여전히 배움에 대한 설렘과 열정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2025년은 나에게 교사로서의 ‘황금기’라는 생각을 들게 한 해였다. 나의 부족함을 마주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배우며, 새로운 시도를 통해 스스로 성장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여전히 나는 더 많은 수업을 배우고, 다양한 수업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보고 싶다.
예전에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작은 용기만으로도 무엇이든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 옆에는 함께 고민하고, 함께 나아가는 좋은 선생님들이 있고, 그리고 이러한 나의 고민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시 수업을 생각하고, 내일의 교실을 더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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