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령 시즌이 되면 다음 근무지가 어떻게 될지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는 순간이 옵니다. 긴장하고 기다렸던 저도 여고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한결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발령교가 정해지고 저의 소식을 궁금해하던 주변 동료들에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모두 입을 맞춘 듯이 ‘여고라니, 축하한다’라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사실 발령교가 ‘여고라서’ 축하받는 경험은 매우 놀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발령교를 알고 차분해졌던 제 마음도, 단지 발령교를 알았다는 이유만 있었을까요? 아마 저도 여고라는 통념, ‘여고는 이런 모습’이라는 특별한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여교사’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두 기간제 교사의 이야기지만, 한 명은 정규직이 된다는 희망으로 오랜 기간 근무해 왔고, 한 명은 갑자기 찾아온 이사장의 가족으로, 학교의 모습을 그린다기보다 우리 사회의 계급 차별을 그리고 있다는 평이 많이 보이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왜 영화의 제목이 ‘여’교사일까요? 어느 사회에나 사람을 여러 유형으로 분류하여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많이 작동하는 분류 기준이 성별 정체성입니다. 주민등록이나, 출생신고서, 학생생활기록부 등의 인적 사항 양식만 봐도 이름 다음 나오는 기준은 성별입니다. 성별 정체성에 대한 분류는 ‘특정 성별은 이렇다’라는 인식을 담기도 합니다. 제가 그랬고, 저를 축하해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궁금해졌습니다. 여학생들만 생활하는 학교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그렇게 기대와 설렘, 걱정과 호기심을 함께 안고 여고에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제가 처음 여고에서 근무한 1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기에, 단편적 인상이나 반성과 느낌 정도의 글이기에 생각의 수준이 깊지 않고, 특정 성별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그저 제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과 경험을 통해 느낀 문화 차이, 인식의 변화 등을 간략히 다뤄보고자 합니다.
저는 1,800명 정도의 전교생이 남학생으로만 이뤄진 남고를 졸업했습니다. 그렇다고 당연히 여선생님이 계시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특정 계단을 지나가면 유독 여선생님들을 많이 마주쳤습니다. 이유는 그 큰 학교에 여자 화장실이 교직원용으로 딱 하나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학년마다 17개 학급씩, 건물 층고는 5층 높이였으니 가로, 세로로 제법 규모가 큰 학교였는데, 여자 화장실은 1층 제일 구석에 딱 하나만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여고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화장실이었습니다. 공학에서는 모든 층마다 남성과 여성이 각각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었기에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굳이 교직원 화장실을 찾아가려면 자발적으로 다른 층을 찾기도 했지만, 여고에서는 몇 안 되는 남자 화장실을 찾아 나서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사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그 정도의 이동이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 화장실을 별도로 찾아야 했다는 점이나 항상 층을 이동해서야 화장실을 갈 수 있다는 점에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여성이 많은 학교에서 남성인 제가 경험한 소수자의 경험은, 반대로 건물에 엘리베이터도 없던 저의 학창 시절 5층부터 1층까지 이동해야만 화장실을 갈 수 있던 여선생님들의 고충이 어땠을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고, 오늘날 다른 소수자 학생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남녀 공학에서 활동이 주가 되는 수업을 운영할 때 어려웠던 점은 남학생과 여학생의 활동 수준이 제법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활동 후 학습 결과의 수준을 예상하기 어려웠는데, 여학생들만 있으니 제법 수업 구성이 쉬울 것이라는 착각을 했습니다. 여학생이니까 토론을 잘하겠지, 여학생이니까 글쓰기를 잘하겠지, 여학생이니까 그리기를 잘하겠지 같은 선입견으로 수업을 준비했는데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일반적인 남학생보다 활동 참여도는 높았지만, 학습 내용을 이해하거나 학습 결과의 우수함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학습 결과를 통해 제가 내린 결론은 특정 성별의 성향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학습 이해와 성과를 좌우하는 것은 학생 개인의 특성이 더 크다는 점이었습니다. 학생의 사전 지식 여부, 문장과 문맥을 이해하는 능력, 학습자의 상상력이나 또래들과 소통하는 능력 등 학생 개인이 지닌 특성이 성별 특성 보다 학습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확인하면서, 저의 수업 구성과 진행에 대한 편견과 게으름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많이 들어왔고 스스로 지녔던 선입견 중 하나는, 여학생은 공감을 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남녀 공학 학교에서 누군가의 아픔에 더 공감했던 것은 여학생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관계에 더 집중하고, 관계 맺음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확실히 여학생들이 뛰어난지도 모르겠습니다.
관계 맺는 능력이 뛰어나고 상대의 감정을 읽고자 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은 분명 장점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장점으로만 쓰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주체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아직 성장 과정이라 그런지 주체적인 관계 맺음 보다 타인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관계 맺고 있던 사람과의 관계 변화에서 오는 감정들을 상처라 생각하고 견디기 어려워했기 때문일까요?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나 친하게 관계 맺으려는 욕구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니 굳이 남녀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관계 속에서 스스로 느낀 ‘상처’를 관계 맺던 상대에 대한 미움이나 분노로 돌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 ‘상처’를 주변인에게 전이해 ‘내 편’을 만들어 다시 소속감을 얻으려는 모습이나, 만들어진 ‘내 편’과 함께 ‘상처’를 준 대상을 공격하는 모습은 유독 여학교가 횟수도 많고 정도도 심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예 관계가 없는 타인이 아닌 관계 맺어 오던 상대에 대한 공격은 유독 더 매섭고 날카로운 칼처럼 느껴졌고, 상대와의 관계를 끊어 자신이 상처받지 않으려는 발버둥 같아 보여 한편으론 짠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여학생들은 정말 감성 지능, 또는 공감 능력이 더욱 뛰어난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능력도 어떤 가치관을 정립하여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을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쩌면 여학교의 경험으로 저에게 또 다른 연구 영역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년의 경험 중에 느낀 몇몇 일들만 적다 보니 어디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빠져 단편적 모습만 그린 것 같아 걱정됩니다. 개학 첫날 강당에서 선생님들에 환호를 보내던 학생들의 모습이나, ‘골.때.녀’를 연상시키는 박진감 넘치는 체육대회, 시험 결과에 울먹이는 친구를 격려하던 학생들의 모습은 특정 성별에 상관없이 여느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함께 품고 있는 학교의 이야기를 다 적지 못해 생긴 오해가 없길 바라며, 저도 학생들과 생활하며 새로 생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즐겁게 생활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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