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교 2학년 영어 시험 감독을 할 때였다. 문득 시험지 속 단어에 시선이 머물렀다. ‘빈도부사’라는 단어였다. 내가 생각하기엔 꽤 어려운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가르치는 국어 교과에서는 한자어를 우리말로 풀이하는 용어 순화가 꽤 시도됐기 때문이다. 경구개를 ‘센입천장’, 화자를 ‘말하는 이’처럼 말이다.(‘화자’는 2022에서 다시 부활했다.) 궁금한 나머지 다른 교과서도 찾아봤다. 놀랍게도 사회, 과학, 기술·가정 등 여러 교과에서 국어 시간보다 훨씬 밀도 있고 어려운 한자어들이 즐비했다.
2021년, EBS ‘당신의 문해력’이 방영된 이후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읽을 줄 알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학교는 문해력 신장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당시에도 한자어에서 비롯된 어휘력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지만 다들 새롭게 등장한 ‘문해력’이라는 개념에 더 주목했던 것 같다. 하지만 문해력을 논하기 전에, 글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어휘력’은 여전히 문해력의 거대한 그늘 아래 여전히 가려져 있다.
학생들이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지능의 문제가 아니다. 학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고도구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고도구어’란 일상생활에서 쓰는 일상 어휘와 달리, 교과 지식을 습득하고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 사용하는 필수 어휘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더하다’, ‘합치다’가 일상 어휘라면, ‘결합하다, 완성되다’와 같은 어휘가 바로 사고도구어다.
사고도구어와 일상 어휘의 중요한 차이는 습득 방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상 어휘는 우리가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반면에 사고도구어는 학습을 통해서만 습득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어휘 교육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대부분의 사고도구어는 한자어다. 고유어는 감각적인 표현에는 유리하지만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학문적 개념을 담기에는 한자어가 유리하다. 또한 한자어는 글자 자체가 형태소처럼 의미를 갖고 있기에 확장성이 넓다.
학습에 사용되는 단어들의 뜻을 명확히 모르는 학생에게 고차원적인 문해력을 기대하는 것은 설계도를 읽지 못하는 이에게 집을 지으라는 것과 같다. 사고도구어의 학습은 다른 학습으로의 전이에 필수적인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부족한 어휘력을 보완하기 위해 학교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온생각’ 앱과 ‘온독지수’를 활용해보았다.
먼저 ‘온생각’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단어를 학습할 수 있는 단어장 같은 앱이다. 망각곡선과 뇌새김 이론을 바탕으로 모른다고 자가진단 했거나, 문제를 틀린 단어들이 일정량만큼 반복되어 나온다. 문제를 풀 수 있는 도전마당 같은 게임 형식의 메뉴는 학생들이 재밌게 단어를 학습해볼 수 있는 요소다. 앱뿐만 아니라 학습지도 제공되어 인쇄하여 나누어 주기에 좋다. 하루치 학습 분량이 5분~10분 정도여서 아침 조회 활동이나 점심시간 소모임 활동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에 제격이다.




다만, 현장 적용 과정에서 깨달은 핵심은 ‘학기 초의 루틴화’에 있었다. 학생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자율적인 아침 활동을 하다가 학기 중간에 활동을 제안하면 반발을 사기 쉽지만, 학기 시작과 함께 아침 활동의 기본 규칙으로 정립했을 때 저항이 적고 몰입도는 높았다. 연중 반복에 따른 피로도를 고려하여 월별로 독서와 어휘 학습을 번갈아 하는 등 운영 방법을 다양화 한다면 더욱 지속 가능한 모델이 될 것이다.
온독지수 도서 또한 어휘 학습과 관련하여 좋은 동기를 제공했다. 온독지수란 충남교육청에서 사고도구어를 기반으로 도서에 읽기 난이도를 부여한 지수이다. 온독지수 목록의 도서를 활용한 ‘문해력 신장 독서교육 지원자료’는 온독지수 도서의 일부분을 필사하고, 어휘를 학습하며, 생각해볼 질문을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온생각과 온독지수는 아침활동 외에도 활용이 다양하다. 기초학력 학생들을 위한 기초수업의 자료로 활용하기에도 좋다. 특히 온독지수 도서에는 여러 분야의 책이 선정되어 있어 어느 교과나 관심을 기울이면 독서 수업도 함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국어과라면 더 말할 것 없이 수업에서의 활용도가 높다.


누군가는 어휘 학습이 강제적인 것처럼 느껴져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건강을 위해 쓴 채소도 골고루 먹듯,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지식은 때로 의도적으로 학습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 역시 어린 시절 영문도 모른 채 외웠던 한자가 성인이 되어 복잡한 텍스트를 읽어낼 때 큰 자산으로 되살아나는 경험을 했다.
당장 이해되지 않는 지식이라도 머릿속에 저장해두면, 훗날 다른 지식과 결합하며 폭발적인 이해의 경험을 선사한다. 지연된 이해에서 오는 쾌감이겠다. 한자어 교육의 방향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이, 우리 아이들의 어휘 창고는 텅 비어가고 있다.
문해력이라는 그럴싸한 단어로 현상을 포장하기보다, 이제는 투박하더라도 '기초 어휘 학습'이라는 정공법을 선택해야 한다. 아이들의 사고가 멈추기 전에, 바로 지금부터 어휘 교육의 정체성을 바로잡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온생각’ 앱: 플레이스토어 및 앱스토어
‘온생각’ 학습지: 충남교육청누리집-평가정보원-학력향상지원센터-각지역별센터-‘온생각’ 메뉴
‘온독지수 기반 문해력 신장 독서교육 지원자료’: 충남교육청누리집-교직원 메뉴(교육과정/자유학기)-독서교육-독서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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