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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의 순간, 글을 그리다

울림의 순간, 글을 그리다

김혜정(충남외국어고등학교 영어교사)

울림의 순간 #1

대한민국의 교육을 바꿔보리라!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리라!
나는 이렇게 원대한 포부와 거창한 꿈을 안고 교사가 된 것이 아니었다. 작은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에 날려 여기저기 떠다니다가 어쩌다 보니 학교라는 텃밭에 날아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직업들이 몇 되지 않았고, 학교에 다니면서 매일 만나는 분이 선생님이었고, 주변 어른들로부터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어야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을 수십 번도 더 들었고, 기업에서의 근무환경보다 학교에서의 근무환경이 조금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어쩌다 교사가 되었기 때문에 모든 일이 서툴다. 아이들에게 어색하지 않게 다가가는 것도, 수업을 멋지게 해내는 것도, 학급운영을 하는 것도, 학부모들과 상담하는 것도,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것도,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것도,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그리고 동료교사와 잘 지내는 것도... 그냥 교사가 된 나에게 전문가로서 요구하는 것들이 아주 많았다.

울림의 순간 #2

교직 4년 차 때 처음으로 담임을 맡았다. 신규교사 혹은 2년 차 때부터 담임을 줄곧 맡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는 발령 직후 결혼, 출산, 육아휴직으로 교사로서의 삶보다는 개인적인 인생의 과업을 이루는 데 에너지가 집중되었다. 연년생으로 아이 둘을 낳고 학교로 돌아왔더니, 모든 것이 뒤처진 기분이었다. 학교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면, 또 다른 일터인 집에는 2살 된 큰 아이와 태어난지 6개월 된 둘째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다 교사가 되었지만 이왕 하는거 잘 해내고 싶었다. 수업 잘 하는 교사, 아이들과 소통하는 교사, 학부모들 마음을 잘 헤아리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놓치지 않고 기억해야 할 자잘한 일들이 참으로 많았다. 메모가 적힌 수많은 포스트잇을 머리에 붙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 가지 일을 해결하고 포스트잇을 떼어내고 나면 두 개의 포스트잇이 또 붙는다. 한 번은 너무 힘들고 답답하고 외로워서 눈물을 왈칵 쏟았다. 경륜이 있으신 한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건네셨다. “꽃봉오리가 터질랑 말랑 할 때가 가장 힘든 시기예요. 예쁜 꽃을 피워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거죠. 힘들지 않다는 것은 꽃을 한 번 피워보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과 같아요.” 그래, 조금 늦으면 어때. 어차피 예쁜 꽃은 필테니! 하며 나를 다독여본다.

울림의 순간 #3

비 맞고 있는 누군가에게 내가 쓰고 있던 우산의 한 켠을 내어주는 것이 그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으레, 당연히, 별 생각 없이, 그렇게 생각했다. ‘함께 맞는 비’(故 신영복 「담론」 p.296), 이 다섯 글자는 나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비 맞고 있는 친구에게 우산을 씌워 주는 것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우산을 접어 한 손에 들고 기꺼이 함께 비를 맞는 친구.
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휘말리면서 지하까지 떨어져 온 세상이 흑빛으로 어두울 때가 있다. 몇 년 전, 여러 학급과 얽힌 학교 폭력 문제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던 때가 있었다. 정말 힘든 순간에는 “힘내세요”라는 말보다 “저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는지 우리 같이 알아봐요,” “학부모님 상담 때 같이 있어 줄게요”라는 말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였다. 때로는 우산을 함께 쓰고, 때로는 함께 비를 맞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면 아무리 거센 비도 곧 그친다.

울림의 순간 #4

학교 일들 중 나 혼자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학생, 학부모 또는 동료교사와 연결되어 있다. 엄두가 나지 않는 일도 옆자리 짝꿍쌤, 교무실 선생님들과 커피를 마시거나 산책하며 이야기 나누는 중에 우연히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처음에는 ‘나’라는 잎사귀 하나이지만 하나, 둘 머리를 맞대고 함께 움직일 친구쌤이 생기면 그 때부터는 셋, 넷, 다섯.... 점점 지지자와 응원자가 늘어나면서 못할 것 같던 일도 해 내게 된다. 그래서 지금 바로 내 옆에 있는 선생님이 참으로 고맙다. 우리 모두 어쩌다 학교라는 공간에 뿌리를 내려 싹을 틔우고 줄기를 힘차게 뻗다보면 해가 날 때도 있고 비바람이 몰아칠 때도 있다. 날이 좋으면 같이 웃으면서 여유롭게, 날이 궂으면 서로 더 부둥켜 안으며 각자의 꽃을 멋지게 피우길 희망한다.
김혜정 / 충남외국어고등학교 / 영어
“우리 같이 산책 갈래요?”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어하는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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