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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보는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

글쓴이
이예솔(이순신고등학교 영어 교사)
카테고리
책 추천
키워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작성일
2025/07/29 04:48
호수
9

미래에서 보는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

이예솔(이순신고등학교 영어 교사)

추천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허블)

<선입견은 깨지는 것>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제가 속한 독서 소모임인 숲터디에서 가장 최근에 다룬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이 사실 SF소설(science fiction)인 줄도 모르고 읽었습니다. 이것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표지에 그려진 밤하늘이 무언가 오묘하고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나타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공상과학소설’이라는 장르를 즐겨 읽지 않았습니다만 이 책을 통해 ‘내가 과학소설을? 로봇? 기술? 이런 주제 안 좋아해’라는 생각이 깨지기 쉬운 한낱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을 닮은 미래>
이 책은 미래를 배경으로 미래의 과학·기술들을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 책에는 7개의 단편들이 실려있는데 각각의 편이 주로 다루는 신기술(유전, 배아, 행성 개척, 뇌 판독, 우주여행, 데이터, 신체 개조 등)이 있고 이와 연관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소설의 과학·기술들은 우리가 뉴스 등의 매체로 접할 수 있는 진행 중인 연구들이기 때문에 마냥 허황된 것이 아니라 정말 ‘곧 일어날 수도 있는 것 같다’라는 점에서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합니다. 배아복제로 신인류가 탄생하기도 하고, 외계생명체와 소통하기도 하며, 사고 언어를 판독하며, 인간을 개량하여 터널 너머의 우주로도 보내는 그런 시대 배경을 어색함 없이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SF소설이 다루는 과학·기술 자체에 대한 설명이나 배경지식을 따라가다가 정작 중요한 메시지들은 놓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작가가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풀어낸 등장인물들의 뜨거운 갈등과 고민의 이야기를 보며 이 걱정이 무색해졌습니다. 특히, 작가가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의 앞선 과학·기술을 이뤄낸 미래의 세상에서도 지금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을 녹여낸 점이 참 좋았습니다. 전혀 다른 세상이 아니라 지금 즉시 공감할 수 있는 세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몇 편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 유전과 배아복제의 기술로 신인류가 태어나지만 새로운 기준들로 사람들은 계급이 나뉘고 세상엔 여전한 차별과 배척,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우주정거장과 우주 대합실이 ‘오래된 교통수단들’이라고 표현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런 시대에도 거대 기업과 정부의 경제적 효율성의 논리로 소수의 목소리는 쉽게 묻힙니다. 특정 우주 노선들이 없어지고 그들의 아픔은, 우주를 배경으로 더 아득하고 깊은 그리움으로 그려집니다.
동시에 미래의 시공간에서도 사랑과 연대, 존중에 대한 추구가 이어집니다. ‘스펙트럼’에서는 주인공이 지구 밖 지성의 존재를 발견하고 외계생명체에게 보살핌을 받게 됩니다. 이 생명체는 우리와 너무도 다른 존재여서 인간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해라는 것이 불가능해도 우리는 여전히 그 대상을 아름답고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차별과 혐오가 넘쳐나는 지금을 사는 저에게 주인공이 외계생명체와 맺은 이 관계가 더 특별하게 와닿았습니다.
‘관내분실’은 죽은 사람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화 하여 시뮬레이션으로 만날 수 있는 기술이 구현된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신선한 소재와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였습니다. 죽은 엄마와 딸이 가졌던 갈등과 화해의 과정에서 임신과 출산으로 사회와 쉬이 단절되던 여성들에 대한 위로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미래의 세상은 현재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행복한 유토피아도 아니겠지만, 참담하게 고통스럽기만 할 곳도 아닐 것이라는 안도감을 이 책을 통해 갖기도 했습니다. 물론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아주 그럴듯한 과학적 상상력으로 치밀하게 엮어 놓은 허구의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졌다고 할까요?
그리고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고 상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나와 세상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관습적으로 배척하는 대상은 없는가, ‘잘못된 것’이라고 도장 찍는 것은 없나, 당연시되는 억압과 차별이 있는가, 내가 어떤 순간에도 놓지 않아야 기준은 무엇인가, 이 사회가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스스로에게 떠올랐습니다.
<희망이 필요한 우리들에게>
저는 가끔 50년, 100년 후의 세상이 굉장히 무섭고 불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소설은 미래의 모습을 정말 참담하게 그리기도 하여 책을 덮고 난 후에 한동안 충격과 공포가 가시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미래사회의 여전한 갈등, 소외, 공포와 함께 그래도 여전히 지속될 아름다운 것들을 그리고 있어 희망적인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가 바쁘고 현실의 문제가 당장 코앞에서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가끔은 먼 미래의 이야기로 들어가 지금의 관계를, 세상을 바라보는 건 어떨까요. 저기 저 미래에서도 지금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혹은 더 심각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지금 어떤 것들을 지키며 헤쳐나가야 하는지 오히려 먼 곳에서 이곳을 바라볼 때 알게 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역설적으로 이 책이 그린 미래의 허구 세상을 통해 지금의 실제 세상을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스스로 꽤 값지고 힘이 되는 경험이었고 어두운 전망이 가득한 지금 선생님들께 좋은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 같아 추천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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