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정도(正道)
장윤아(천안신방중학교 영어 교사)
추천 책: 모순(양귀자, 쓰다)
요즘은 흔히들 자신의 성격을 MBTI로 빗대어 자신을 소개하곤 한다. 나의 MBTI는 ‘ENFP’로 ‘재기발랄한 활동가’형이다. 그 중 ‘N’의 극단에 있는 듯이 혼자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다. 이렇게 생각에 잠기곤 할 땐 나는 주로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은 그동안 내가 은밀히 혼자 고민하고 선택하였던 것들을 문자로 적나라하게 표현하였고, 내가 고민하던 것들이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의 고민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안진진의 사고의 흐름에 따라 같이 고민하고 그녀의 말과 선택을 통해 나의 정도(正道)를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중 나에게 큰 감명을 준 문구와 함께 이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영규를 만나면 현실이 있고, 김장우와 같이 있으면 몽상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몽상 속에는 현실을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아련한 유혹이 담겨있다.” (p.195)
이 문구는 책의 가장 큰 골자를 이루는 주인공 안진진의 고민이다. 이 책은 1998년에 발간되어 26년이 훨씬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한 사람의 인생을 크게 좌우할 수 있는 결혼에 대한 고민의 내용이 담겨있다. 주인공 안진진 역시 안전한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남자 ‘나영규’와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남자 ‘김장우’ 사이에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사랑을 해 본 적이 있고 그 사람과의 결혼을 고민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진진이 어떤 선택을 할지 몹시 궁금할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어떤 선택이 더 나은 선택인지 답을 내려주기를 은근히 기대했을지 모른다. 책이 끝으로 달하며 독자로서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와 예상이 생겼다. 하지만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안진진의 선택은 나의 기대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진진의 선택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것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으로 느껴졌다. 또한 이 책이 단순히 내가 기대했던 대로 흘러갔더라면 이토록 여운이 깊게 남지 않았을 거 같다.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 한다.” (p 8)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불행이다.” (p 229)
나는 이 두 문구에서 저자가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자신의 불행이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이 악당에게 공격을 당하여 억울하게 희생되었을 상황에 놓인 것처럼 특별하고도 슬픈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슬픔에서 한 발짝 떨어져 보면 그 슬픔과 시련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난 인간의 그런 본성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번째 문구처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시련들이 그 사람의 세계를 넓혀주고 단단한 마음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자신이 생각한 바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사고의 폭을 넓혀가는 경험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한편으로는 주인공 안진진에 빙의하여 고민하기도 하고 주인공을 통해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 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p 22)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p 296)
저자는 주인공의 말을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강조한다. 책의 초반에 안진진이 자신이 인생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의지대로 적극적으로 탐구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후 그런 것들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살아가면서 주어진 매 순간 자신의 선택을 통해 인생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인생에는 정해진 답이 없고, 정해진 길이 없다. 누구에게 맞는 답이 누구에게는 틀릴 수도 있다. 아니 애초에 정해진 답이라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매 순간 주어지는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르며 때론 실패하고 성공하면서 우리는 일생동안 인생이라는 것을 배운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이 책을 찾아보면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은 10대일 때와 30대일 때 읽었던 나의 생각들이 너무 달랐다.’ 나도 이제 막 30대의 초입에 들어온 입장에서 읽을 때와 시간이 더 흘러 앞자리의 나이가 바뀌었을 때 읽을 때가 얼마나 다르게 될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어쩌면 지금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들이 몇 년 후의 나에게 모순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럼 난 지금의 나도 그때의 나도 옳다고 말하고 싶다. 그게 내가 평생을 살아가면 탐색할 인생의 정도(正道)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