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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생이 자치의 주체가 되려면

모든 학생이 자치의 주체가 되려면

김선명(이순신고등학교 윤리 교사)

1_학생들은 학교에서 자치를 경험할까?

[초중등교육법 제17조(학생자치활동)] 학생의 자치활동은 권장·보호되며, 그 조직과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학칙으로 정한다.
[충청남도 학생인권 조례 제19조(학생자치활동과 참여의 보장)]
① 학생은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자치활동을 위한 학생회, 학급회, 종아리 등 학생조직(이하 “학생자치활동조직”이라 한다)을 민주적으로 구성·운영할 권리를 가진다.
② 학교의 장은 학생자치활동조직의 자율적 구성·운영 등 자치활동을 보장하고,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
…(생략)…
⑦ 학생자치활동조직은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계획, 예산 및 시설의 범위에서 다음 각 호의 권리를 가진다.
1.
학생자치활동에 필요한 예산과 공간, 비품을 제공받을 권리
2.
학교운영, 학칙 등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할 권리
3.
학생자치활동조직이 주관하는 행사를 자율적으로 개최할 수 있는 권리
4.
학생자치활동조직 운영 및 역량강화를 위해 교육받을 권리
5.
학교축제, 체육대회, 학예외 등의 기획·운영·평가에 참여할 권리 …
우리 학생들이 자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위와 같은 법령과 자치법규에서 보장하고 있다. 학생회 임원이거나 학급 대표(정부반장 등)를 맡은 학생들은 위와 같은 권리들을 충분히 실현하고 있다. 특히 혁신학교로 운영되는 작은 학교에서는 학생 대부분이 민주적인 협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고, 익숙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근무했던 30학급 이상의 큰 학교에서는 아주 소수에 해당하는 학생회 임원을 제외한 90% 이상의 학생들이 민주적 협의 과정에 참여해보거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조리 있게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민주시민 역량’은 각 학교의 리더들만을 위한 교육목표가 아닐 텐데도 말이다.
배방고등학교에서 혁신학교 운영 담당자로서 2년차를 맞이한 어느 날, 2학년의 남학생 한 명이 찾아왔다. 혁신학교로 운영된 중학교 재학 중에 경험했던 교육 시스템이나 협의 문화가 너무 좋아서 혁신고에 진학했는데, 현재 반장도 아니고, 학생회 임원도 아닌 위치에서 교육과정에 대한 자기 생각을 표현할 기회가 없는 점이 고민이라고 이야기했다.
학교생활 중에 문제를 발견하거나 교육과정 평가와 개선을 위한 안건을 제기하거나 자신이 가진 문제의식을 친구들과 공유하기마저 어렵다는 것이다. 상담하다 보니, 전교생 1,300명 안에서 자기 존재감이나 효능감이 위축되는 느낌마저 받은 듯했다. 민주적 협의 문화를 이미 경험한 학생이 고민이라고 말했던 지점을, 여타의 학생들은 이미 익숙해져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교사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학생이 자치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학교에서 잘 보장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무실에서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이유는 이러했다. 첫 번째, 학생들이 학원에 다니느라 일과 후에 시간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 두 번째, 학생들은 아직 미성숙한 존재이고, 자치 역량이 부족하다. 세 번째, 학교에서 자치활동을 위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네 번째, 교사도 민주적 협의 경험이 많지 않아 민주적 학급 회의를 이끌 역량이 부족하다.
이러한 탓에 학교에서의 자치활동은 선도부 활동처럼 교사의 업무나 권위를 학생에게 맹목적으로 넘기는 방식, 또는 학생회를 중심으로 ‘그들만의 리그’가 생겨 학교가 운영되고 나머지 학생들은 의사결정의 과정과 결과에서 소외되는 방식으로 운영되곤 한다. 그러니 학교 안에서 소속감이 강한 공동체인 ‘학급’에서 이루어지는 자치활동이 학교의 교육과정으로 이어지는 경험마저 없다면, 아이들 대부분은 자신에게 자치활동에 대한 권리가 있는 것도 모른 채, ‘주변인’으로 남게 된다.

2_학생들도 처음 해보는 학급 회의

학급 회의는 학교 민주주의의 ‘꽃’이다. 분명 학급 회의가 열리면, 아이들의 의견이 여기저기서 피어오르고, 의사결정을 위한 합의로 이어져야 하는데, 내가 경험한 학급 회의는 그렇지 않았다. 반장과 부반장은 교실 앞으로 나와 학급 구성원에게 안건을 던지고 자유롭게 의견을 달라고 한다. 한동안 적막이 흐른다. 아마도 안건을 이해하고 있거나, 나에게 영향을 미칠 문제인지 재고 있어서인 듯하다.
반장이 한숨을 쉬다가 의견을 달라고 재촉하면, 여론 주도자 몇 명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의견이 다를 경우 팽팽한 긴장감이 돌기도 하고, 효율성을 생각하는 반장의 주도하에 각 의견에 대해 거수투표를 진행하고 다수결로 결정하기도 한다. 그 모든 과정에 교사는 얼마나 개입해야 할지 고민이 되어 결국 아무 개입도 하지 않는다.
의사결정이 이루어졌으니 아무 문제도 안 생길 것 같았는데, 회의를 마친 후 아이들의 볼멘소리들이 들려온다. 의사결정 과정도, 결과도 모두 자기 마음에 안 들기 때문이다. 단순한 의견 차이는 성격 차이로, 성격 결함에 관한 이야기로 번지기까지 한다. 끝까지 무관심한 아이들도 있다. 결국 아이들은 학급 회의를 지루해하고,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 못한다.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학급 회의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지점과 비슷했다. 그리고 학교에 취업한 이후 교직원 회의 때마다 불편함을 느꼈던 지점과도 비슷했다. 이대로 계속 회의를 방관한다면 그 모든 시간이 무의미해질까 봐 무서웠다.
나무학교 2기 교육과정에서 학급긍정훈육법(PDC)을 배우며 모의 회의 과정에 참석했었고, 직접 경험해 본 써클 회의 방식이 꽤 마음에 들었다. 모든 구성원의 문제의식과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할 수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PDC뿐만 아니라 토론, 퍼실리테이팅, 민주시과 관련된 도서들을 공부해보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실습도 해봤다. 처음엔 미숙했지만, 이제는 어떤 안건을 어떤 회의 방법으로 다루면 좋을지 판단하고 진행하는 데 조금은 익숙해졌다.
민주적 학급 회의를 위해 내가 노력했던 것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학급 회의 일정은 학사일정을 고려하여 미리 학생들에게 공지한다. 반장이나 건의함을 통해 미리 안건을 제안할 수 있도록 한다. 대의원회에서 회의를 요구하는 안건이 생기기도 하고, 교사 또한 안건을 제안할 수 있다. 회의 서기도 정하여 반드시 회의 내용을 기록한다.(나는 보통 내가 했다.)
▲ 학급회의 내용 기록(Padlet 활용)
학기 초 구성원 서로가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규칙을 먼저 함께 세운다. ‘어떻게 하면 회의를 망칠 수 있을까’를 역 브레인스토밍할 수도 있고, ‘이렇게 말해요’, ‘이렇게 행동해요’로 나눠 회의 과정에서 서로에게 바라고 스스로 지킬 말과 태도를 정할 수도 있다. 교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의 원칙을 전달할 수도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협의 과정에서의 토론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듣고 생각의 변화를 겪어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임을 가장 강조했다.
회의 방식은 안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학급회를 조직하고 나서 성찰과 개선을 통해 학급 비전이나 학기별 운영계획을 수립할 때는 월드카페토론을, 운영계획을 발표하고 청중의 의견을 들을 땐 갤러리워크 발표 방식을, 각자의 욕구를 반영한 학급 특색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는 피라미드 토론을 주로 활용했다. 수업 시간 규칙이나 교실 문화 등 모두가 공유하는 일상을 안건으로 할 때는 써클 회의를 했다.
아이들이 처음엔 낯설고 신기해하지만, 점점 익숙해져서 회의 방법만 이야기해도 자기가 앉을 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러면 교사가 주도하거나 많이 개입하지 않아도 반장 주도로 회의를 진행할 수 있다. 학교 혁신과 관련하여 모든 학급이 동시에 ‘비전 실현을 위한 자치규약 세우기’를 안건으로 학급 회의를 진행해야 했을 때, 각 학급 반장들을 소집하여 피라미드 토론을 실습하고 진행 방법을 안내하여 직접 회의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었다. 학생들도 직접 경험해보면, 어떻게 회의를 진행해야 구성원들이 기꺼이 참여하는지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
▲ 학급 특색 프로그램에 관한 피라미드 토론 장면
이순신고 1학년 학생들과 올해를 보내고 나서, 학기 말에 학급 생활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봤는데, 학급 회의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고 길었다.
“학급회의가 기존에 해왔던 것처럼 소수의 친구들만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이야기하고 다 같이 들을 수 있어서 평소에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어요. 모두의 의견을 다같이 경청하고 불편한 점으로 이야기한 부분을 고치려고 함께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본인의 의견을 내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직접 알 수 있었어요.”
“목소리 큰 사람의 주장으로 결정되는 회의가 아니라, 모두가 참여해서 색다르고 다양한 의견을 공유할 수 있었던 피라미드 회의 방식을 통해 소수의 의견을 듣고 존중하려는 태도를 기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학급회의를 통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최상의 대안을 모색하는 능력이 길러졌어요. 다른 친구 의견에 제 의견을 덧붙여 더 좋은 의견으로 발전시키는 법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규칙을 세우면 규칙을 어긴 친구에게 줄 불이익이 없더라도 학급 규칙이 잘 지켜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이렇게 다같이 학급 회의에 참여해본 건 처음이었는데, 역시 선생님께서 강압적으로 지키라고 하시는 규칙보다는, 학급 공동체가 서로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주고 이야기하며 심각성을 느끼고, 거기서 직접 산출한 규칙이 훨씬 공감도 잘 되었어요. 친구들이 불편해하는 행동들에 대해 조심성과 경각심도 세게 들어서 효과적이었어요.”
이런 피드백을 천천히 읽다 보면, 가끔은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이라고 느꼈던 잠깐의 회의 순간들도 모두 잊힌다. 우리가 회의에 들인 노력과 서로에게 집중하기 위해 들인 시간은 학급 공동체의 평화와 존중에 가장 크게 공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학급 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려고 한다.
▲ 써클 회의를 통해 합의한 학급규칙_수업시간편

3_민주적인 학교문화를 만드려면

사실 우리는 앞에서 이야기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알고 있다. 첫 번째, 학생들이 교육과정 내에서 민주적 협의와 자치활동을 누릴 수 있도록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필수’, ‘의무’라는 이유로 수많은 교육 영상을 틀어놓고, 학생은 지루해하고 교사는 밀린 업무를 수행하며 창의적 체험활동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들과 민주적 협의를 하고 그 과정에서 배움과 성장을 경험한다면, 다양한 계기 교육도‘학급 회의’ 형태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어른이 된다고 해서 모두 자연스럽게 민주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민주시민 역량이 부족하다면, 부딪히면서 배워볼 기회가 제공하고 가르쳐야 한다. 학생들은 공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을 위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학교에 자기 의견이 반영되는 과정을 겪으면 존재감과 효능감을 느낀다. ‘학급 회의’는 리더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이 이를 경험하도록 도울 수 있다.
세 번째, 교사는 민주시민 역량을 가르쳐야 하는 어른이지만, 우리도 민주적 협의 문화나 자치활동에 익숙하지 않다. 여전히 교직원 회의가 시청각실처럼 진행자 외에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볼 수 없는 곳에서 진행되는 학교도 많고, 민주적인 (듯 보이는) 협의에서 교사들의 의사결정이 학교 교육과정에 매끄럽게 반영되는 경우도 드물다.
우리가 교과 지식과 역량을 가르치는 데 필요한 교과 전문성을 대학생 때부터 꽤 많은 시간을 들여 길러온 것처럼, 민주시민 역량을 가르치기 위한 전문성도 배우고, 연구하고, 경험해야 한다. 늘 그렇듯 시간과 여유가 부족할 뿐이다.
그러니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교내의 여러 회의, 즉 교직원 회의, 학년 회의, 보직교사 회의, 각종 운영위원회, 대의원회 등부터 우리가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는 회의의 모습으로 바꿔 나가보면 어떨까? 안건 세우기와 진행자의 퍼실리테이팅, 회의 기록과 공유, 이성적 토론 절차, 참여 및 소통 문화 등 노력해야 할 숙제가 많긴 하다. 구조와 문화를 바꾸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 ‘교사와 학생의 민주시민 역량’이라는 목적이 잘 공유된다면 늦더라도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민주주의는 느린 것이니까.
김선명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여 배우는 역동적인 삶을 지향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도전을 즐깁니다.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철학적 지혜를 배우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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