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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책추천]고기로 태어나서(한승태, 시대의창)

타자를 바라보기, 그리고 연결되기

이은혜(합덕고 국어교사)
추천 책: 고기로 태어나서(한승태, 시대의창)
불완전한 비건 지향의 삶을 산 지 2년이 되어 갑니다. 그동안 저는 육지 동물을 먹지 않게 되었고 우유를 구입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스나 덕 다운 패딩, 가죽 소재의 신발 앞에서도 고민이 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제 주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보다 더 예민하게 메뉴를 고르는 친구들, 명절날 돼지고기 대신 버섯을 넣어 전을 부치는 가족들, 채소 반찬을 가득 쌓아주시는 조리원분들. 이 사람들 덕분에 제가 비루하게나마 비건 지향의 삶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도대체 왜 그러냐는 말도 가끔 듣습니다. 하루아침에 고기를 끊은 저를 어떤 종교나 사이비 단체에 빠진 줄로 의심하는 사람(놀랍게도 우리 아빠)도 있고요. 이렇게 아주 많은 호의와 약간의 시련 속에서 저는 제가 이기적인가 싶고 미안한 마음이 들다가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강한 확신을 느낍니다.
지금까지는 동물을 고기로 만드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과 그 속에서 평생 고통받는 개별 동물들을 주로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동물과 고기 사이에서 일하는 인간 동물들의 노동과 삶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물론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으며 수많은 물리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건 대강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승태 작가는 너무도 자세하고 적나라하게 심지어는 문학적으로(때로는 사실 그 자체보다 비유가 훨씬 충격적이지요) 그들의 일과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저는 가끔 그의 관찰과 묘사가 지나치게 섬세함을 원망해야만 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은 『일의 기쁨과 슬픔』에 이렇게 썼습니다. ‘2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이나 소유하고 있는 한정된 수의 물건 하나하나의 정확한 역사와 유래, 나아가서 그 생산에 관여한 사람이나 연장까지 알았을 것이다. … 현재 우리는 많은 물건을 실제로 손에 넣을 수는 있지만, 그런 물건들의 제조와 유통 과정이 어떠한지는 전혀 상상할 수 없다. 이런 소외 과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경이, 감사, 죄책감을 경험할 수많은 기회를 박탈당한다.’ 우리는 손쉽게 내가 만들지 않은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그것을 누군가가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얀 접시에 담겨 마트의 환한 조명 아래 진열된 삼겹살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카트에 담지만, 누군가가 돼지를 전기봉으로 몰고 목을 찔러 죽이고 그것을 부위별로 잘라 포장했다는 사실을 잊습니다. 저는 현대의 축산업을 생각하다가 종종 조선시대의 백정(白丁)을 떠올리는데, 백정은 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동물을 찌르고 살을 바르는 일을 했지만 가장 천시 받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들이 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었는데도 그랬습니다. 남들이 기피하는 일들을 한 대가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주홍 글씨처럼 옷에 백정 표식을 달고 사는 것과 결혼할 때는 가마를, 죽어서는 상여를 탈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비건 지향인으로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더 많은 순간에 더 많은 타자를 바라보도록 해주었다는 겁니다. 비건은 동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다른 존재들을 생각하게 했고 나의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상상하게 했습니다. 1년 동안 자신의 무게의 30배나 되는 칼슘을 알 낳는 데 쓰는 닭들, 평생 자기 몸에 딱 맞는 스톨에 갇혀 새끼를 낳다가 생산성이 떨어지고 나서야 죽기 위해 걸어 나가는 돼지들을 알게 된 후 인간 여성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쓰는 욕설 속에 동물을 비하하는 말들이 가득하다는 걸 발견했고, 이러한 말들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온갖 차별과 부조리를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축산업이 가장 큰 빚을 지고 있는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으며 기후 위기를 가벼이 여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는 믿음과 ‘나라도’ 해보자는 마음이 평범한 저의 일상을 빛나게 해주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동물에 대해, 비건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때 저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집니다. 비건 지향인들의 목표는 ‘한 명의 완벽한 비건 만들기’가 아닌 ‘여러 사람이 비건에 우호적인 사회 만들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망설이며 말을 고르는 저인데, 아이들은 기대 이상으로 따뜻한 반응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책을 찾아 읽기도 하고 토론을 해보기도 하고 저보다 더 깐깐하게 비건에 도전해 보기도 합니다. 오늘의 급식 메뉴를 보고 저를 걱정해 주는 건 덤이고요. 오히려 어른들보다 감수성이 발달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요즘 것들’의 멋짐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비건이 저를 타자와 연결해 주었듯 선생님들께도 무언가가 다가와 번개처럼 내리쳐 삶의 방향을 바뀌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순간이 온다면 망설이지 말고 두 팔을 벌려 그것을 껴안아 보셔도 좋겠습니다. 참 알맞게도 오늘 아침에 문학 토의 기록장을 채점하던 중 어떤 문장이 날아들었습니다. 저를 울린 한 학생의 문장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내일은 뭘 꼭 해야지, 어떻게 해야지, 이렇게 변해야지라고 하는 다짐들이 있다.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내일은 오지 않고 그다음 내일은 볼 수도 없다. 내일이 뭐라고 언제 오는 지도 모를 애한테 이것저것 미루고 있었을까 싶었다. 내일이 뭐라고. 나는 오늘에만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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