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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별 수업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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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연재]슬기로운 환경 시민 프로젝트 제4화

프로젝트 탐구활동 - 모르는 것들에서 허우적대기2

박준일(온양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채점기준표 확인하기

일반적으로 프로젝트 학습에서 교사가 학생의 수행을 평가하는 데 활용되는 채점기준표는 수업의 전반부에서 제시됩니다. 수업 전에 학생들과 채점기준표를 분석하면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자신이 기르고 발휘해야 하는 역량이 무엇인지, 이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현재 내 수준은 어디에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볼 수 있습니다. 좋은 채점기준표는 학습의 전-중-후에 학생들이 메타인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가 됩니다.
하지만 전 토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들을 학습하기도 전에 학생들에게 국어 선생님들과 함께 제작한 채점기준표를 안내한다면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안그래도 토론에 대한 부담이 큰 학생들에게 타당성, 신뢰성, 입론, 반론, 재반론 등의 까다로워 보이는 용어들이 가득 들어 있는 채점기준표를 제시했을 때 학생들이 프로젝트에 대한 마음의 벽을 만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채점기준표를 확인하는 과정은 조금 뒤로 물러 기본적인 지식 학습이 끝난 후로 배치했습니다.
슬기로운 환경 시민 프로젝트 환경 정책 토론 채점 기준표
채점기준표 확인하기 과정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먼저, 채점기준표를 학생들이 충분히 뜯어 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같이 수업을 들어가는 국어 교사들 모두 시험 기간이 다가오자 수행평가를 빨리 마치고 교과 진도를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학생들이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 계획대로 잘 참여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덜 중요하다고 판단한 과정을 축소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평소의 수업처럼 채점기준표를 K-W-L차트로 분석해보는 활동을 하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채점기준표를 확실히 인지하지 못해 수업 과정 중에 채점 기준과는 관련이 없는 부분(교사가 이번 수업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부분)에 집중하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2학기 수업에서는 기존에 해왔던 K-W-L 차트 분석을 넘어 학생들에게 직접 채점기준표를 만들어보게 하는 수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곧 학교에 태블릿 PC가 보급될 예정인데 이 기기를 활용하면 띵커벨이나 패들렛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반 전체 또는 모둠이 협업하여 수행평가의 채점기준표를 직접 만들고 서로의 것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충남외고의 이지근 선생님께서 이번 학기에 이런 수업을 하셨는데 수업 방법을 제대로 여쭤봐야겠습니다.

토론 준비하기

반드시 알아야 할 토론의 핵심 지식을 학습하고, 수행평가의 채점기준표까지 확인했으니 실제 토론을 준비할 채비를 모두 한 셈입니다. 토론 준비는 우리 모둠이 선정한 논제에 대한 찬성측과 반대측 모두의 입장에서 입론, 반론, 예상되는 반론, 재반론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구성했습니다. 학생들에게 환경 정책 토론회에는 청중으로 우리반 친구들뿐만 아니라 환경에 매우 매우 관심이 많은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참석하실 수 있다고 이야기해뒀습니다. 많이 놀라긴 했지만 ‘선생님들이 토론회에 오시는 이유는 우리를 평가하거나 감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소 환경 정책에 관심이 많았고, 우리 토론을 보고 함께 공부하고 싶어서’라고 이야기하니 ‘절대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학생은 없었습니다.
입론서를 작성하기 전에 교과서를 활용해 쟁점을 분석하는 방법을 시범을 통해 가르쳤습니다. 학생들이 논제에 대한 쟁점 분석을 먼저 해야 아무생각 없이 누가 정리해 놓은 토론문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논증을 구성할 수있습니다. 정책 논제의 필수 쟁점은 보통 아래의 3가지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찬성측은 현재 상태가 변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니 현재 문제가 심각하며, 해당 정책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이를 도입하면 부작용보다 효과나 이익이 더 크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반대로 반대측은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으며, 해당 정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이를 도입할 경우 얻는 이익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정책 논제의 필수 쟁점과 그에 따른 논증 구성 방법(창비 국어 교과서)
한편, 학생들에게 환경 정책과 관련하여 신뢰할 만한 자료를 탐색할 수 있는 방법과 출처를 정확히 밝히는 방법도 간단히 안내했습니다. 배움이 느린 학생들을 위해서 직접 빅카인즈 사이트에 접속해 쟁점별로 논제와 관련된 핵심 단어들을 조합하여 신문 기사를 찾고 필요한 정보를 찾는 시범도 보였습니다. 신뢰성을 갖춘 근거 자료를 활용하는 것은 수행평가 채점기준의 요소 중 하나입니다.
[보조자료]토론 준비를 위한 정보 탐색 방법.pdf
1047.0KB
찬성측 입론서 작성 활동지
반대측 입론서 작성 활동지
찬성측과 반대측의 입론서 작성은 2시간 동안 이루어졌습니다. 첫 시간에는 쟁점별로 찬성측과 반대측의 입장에서 이유를 생각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이것이 조금 익숙해졌는지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이유와 근거를 찾을 수 있엇고 모둠별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은 먼저 과제를 마친 학생이나 제가 도움을 줬습니다.
사전에 찬성과 반대의 확실한 입장을 정하지 않고 양측의 입장을 모두 준비하게 한 것은 학생들이 사고의 확장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자료들을 접하는 확증 편향을 가지게 되는데, 양측의 입장을 모두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 기존 생각과 반대된 입장도 충분히 타당한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양측의 입장을 모두 살피면 다음에 이어질 반론과 재반론을 준비할 때 훨씬 수월합니다.
입론 단계에서 발언할 논증을 구성한 후에는 1시간 동안 나의 주장에 대해 예상되는 상대측의 반론과 재반론을 준비하도록 했습니다. 이 과정이 있어야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반론과 재반론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유토론이 가능합니다. 반론을 예측할 때에는 지난 시간에 학습했던 반론의 유형 5가지를 활용하도록 했습니다. 우선 내가 입론 단계에서 발언할 이유와 근거를 요약해서 적고 그것과 반론의 유형 5가지 표를 비교하며 상대측이 어떤 반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 과정 역시 어려움을 느낄 학생들을 위해 반론과 재반론을 준비하는 과정을 예시와 시범을 통해 보여줬습니다.
예상 반론과 재반론 준비하기
확실히 반론 유형에 대한 학습 후에 예상 반론을 생각하니 학생들이 훨씬 수월하게 반론을 만들어 볼 수 있었습니다. 국어 교과서에도 반론에 대한 학습 내용이 보완된다면 보다 많은 교실에서 찬반 토론 수업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연습 토론으로 점검하고 개선하기

실전 토론 전에 토론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고, 모둠 안에서 토론 준비가 잘 되었는지 함께 점검해 볼 수 있도록 연습 토론 과정을 마련했습니다. 원래 실전 토론은 4:4 모둠 대항으로 이뤄지는데 연습 토론은 이 실전 토론을 간추려 모둠 안에서 2:2로 토론하는 것입니다. 모둠 안에서 눈과 귀 학생이 찬성 역할을, 입과 손 학생이 반대 역할을 맡아 토론했습니다. 저는 각 모둠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이 발언하는 내용들을 듣고, 필요 시에는 피드백을 제공했습니다.
연습 토론 절차
연습 토론 장면
연습 토론 기록지
학생들은 연습 토론을 통해 ‘말하기’를 연습할 수 있었습니다. 눈과 입 학생이 주도하여 연습 토론에서 자신의 생각을 완성된 문장으로 표현하기를 어려워하는 친구들에게 ‘여기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게 어때?’라고 도움을 주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모둠원의 토론 준비도를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3시간 동안 입론과 반론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는데도 이를 완성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는데 연습 토론 중간에 서로 논증 내용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았습니다.
하지만 모둠원 중 논증에 오류가 있거나 쟁점과 반론 유형에 대한 오개념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다른 모둠원들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해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교사인 저는 8개의 모둠 모두를 살펴야 했기 때문에 하나의 모둠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는데, 모둠 안에 이런 문제가 있는 경우 실전 토론 단계에 들어가서야 논점을 벗어난 발언을 하거나 자신의 입장이 아닌 상대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논증을 펼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수행평가 채점기준표를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연습 토론 후에는 수행평가 채점기준표를 변형해 제작한 배움 확인표를 작성했습니다. 배움 확인표의 성취 수준에서 잘함, 보통, 노력 필요가 채점기준표의 상, 중, 하 수준에 해당하고 매우 잘함 수준은 상 수준을 뛰어넘은 수준을 의미합니다. 학생들이 수행평가에 참여할 때 자신의 수행을 딱 상 수준에 맞추기보다는 더 높은 단계를 바라보길 원해 배움 확인표를 이런 형식으로 제작했습니다.
연습 토론 후 배움 확인표
학생들은 배움 확인표의 체크리스트를 작성한 후 자신의 수행에 대한 성찰과 모둠원의 수행에 대한 피드백을 서술형으로 기록했습니다. 자기 성찰을 작성할 때에는 부족한 점이 무엇이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활용할 예정인지 구체적으로 작성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모둠원의 수행에 대한 피드백을 작성할 때에는 피드백의 기본 원칙인 ‘구체적으로, 친절하게, 도움이 되도록’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이에 따라 작성하게 했습니다. 친구가 잘한 점과 부족한 점을 함께 이야기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친구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을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친구에게 부족한 점이 보이지 않을 경우에는 연습 토론을 통해 친구에게 자신이 무엇을 배웠는지를 구체적으로 작성하게 했습니다.

나오며

진짜 배움이 있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저는 학생들을 ‘배움의 구덩이’ 안으로 빠뜨리려 합니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친구, 선생님과 함께 모르는 것들에서 허우적거리도록 탐구 활동을 구성합니다. 교실에서 단 한 명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만의 구덩이에서 나오기 위해 열심히 허우적댔으니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깊은 이해’까지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탐구의 과정에서 학생 한 명 한 명의 사고 과정을 들여다 보고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제공하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특히 학생의 수행이 순간적으로 표현되고 사라지는 화법 수업에서는 이 부분이 더 어렵습니다. 교사 한 명이 이 일을 다 하기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 스스로가 비평과 성찰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시켜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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