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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 수업 해보자!

융합 수업 해보자!

- 욕망을 다루는 융합 수업 -

양철웅(온양용화중학교 국어교사)

도시의 큰 학교에서 융합수업을 시도하기까지

교직 신규 발령 받았던 원이중학교는 태안군 원북면 산 중턱에 있는 소규모 학교였다. 한 학년에 2개 학급이었고, 한 교무실에서 15명의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서 함께 업무하는 나름 가족 같은 분위기의 학교였다. 신규 발령지였지만, 신규 교사의 뭣 모르는 패기로, 원이중학교에서 이것저것 여러 일들을 시도했는데, 그 중에서 학교 밖, 학교 안 학습공동체 운영이 있었다.
원이중학교에서 있었던 3년 동안, 1년 동안은 적응하느라 바빴고, 2년 차에는 태안 지역 신규 국어과 선생님들과 학교 밖 학습공동체를 만들어 운영했고, 3년 차에는 ‘원이 수업 발전소’라는 학교 안 학습공동체를 운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주로 독서토론과 수업 나눔을 했고, 워크숍을 통해서 친목도 도모했다. 교내에 학습공동체가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동료 선생님들과 융합 수업도 진행했다. 국어와 역사 과목이 융합하여, 역사 시간에는 조선 시대 후기를 공부하고, 국어 시간에는 홍길동전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조선 시대 후기와 현대 사회의 공통점을 보고서 형식으로 작성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국어와 사회 과목이 융합하여, 사회 시간에는 문화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공부한 후, 국어 시간에는 ‘개고기를 먹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라는 주제로 토론 활동을 하기도 했다. 미술-역사-국어 융합 방과후 활동으로 ‘미역국 캠프’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중심으로 국어와 미술 활동을 녹여서 하루 종일 역사 주제를 놓고 게임도 하고 토론도 하고 미술로 표현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산의 온양용화중학교로 왔다. 온양용화중학교는 학년당 10개 학급 규모의 전형적인 도심 지역의 큰 학교였다. 학습공동체는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고, 함께 융합수업하자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기는 매우 어색한 교무실 분위기였다.
첫해에, 융합 수업을 시도해보고 싶어서 쿨 메신저로 ‘저랑 융합 수업 해보실 분 계신가요?’라는 메시지를 50여명의 전체 선생님들에게 뿌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장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첫해에는 융합수업을 할 수 없었다.
둘째 해에는 직접 선생님들과 대화를 해보며 배움중심수업에 관심이 있는 선생님들을 찾았다. 그러던 중에 진로 선생님과 대화가 잘 통해서, 진로 시간에 했던 다양한 진로 검사, 진로체험활동의 배움일기 등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종합하여 국어 시간에 자신의 진로 계획을 프레젠테이션으로 발표하고, 학급별로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표창장을 수여하고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하는 진로-국어 융합수업을 진행했다.
셋째 해에는 정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정보 교과의 내용을 국어 교과로 끌어와서 ‘문제해결 프로젝트’ 수업을 했다. ‘정보’ 교과서에 있는 ‘알고리즘을 통한 문제해결 절차’를 국어 시간의 문제해결 프로젝트 과정의 일부로 끌어와서 학생들이 구안한 문제해결 절차를 논리 구조도로 그려보게 하는 활동을 했다.
넷째 해인 2020년도에는 적극적인 동학년 동교과 선생님과, 뜻이 맞는 영어, 미술 선생님을 만나서 세 교과가 융합하는 ‘다양한 관점에서 욕망을 바라보는 수업’을 진행했다. 영어 시간에는 이카루스 신화를 통해서 욕망을 생각해보고, 미술 시간에는 미술사를 훑어보며 시대에 따른 예술가들의 표현 욕망을 살펴보고, 국어 시간에는 ‘나는 나의 욕망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을 진행했다.
넷째 해에 시도했던 ‘욕망’에 관한 융합 수업을 글로 풀어내보고자 한다. 이 수업은, 긴 수업이었고, 세 교과의 협의와 고민이 녹아든 수업이다. 부족한 점도 많지만 ‘융합 수업’, ‘욕구에 대한 수업’, ‘대화, 토론 수행평가’에 대해서 고민하는 선생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어, 미술, 국어 선생님들의 수업 협의회

보통 융합 수업을 할 때에는 어떤 주제를 정해놓고 만나지 않는다. 모여서 각자의 교과서나 교육과정을 함께 공유하며 보다 보면, 각 교과를 모두 엮을 수 있는 교집합인 공통 주제를 찾게 된다. 융합 수업을 위한 협의회는 목적지를 모른 채 떠나는 여정과 같다. 이 내용, 저 내용 함께 공유하고 살피다 보면 멋진 주제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융합수업을 위해 모인 협의회에서 우리가 그랬다. 영어 선생님 1명, 미술 선생님 1명, 과학 선생님 1명, 국어 선생님 2명이 함께 융합 수업을 해보자고 각자 교과서를 들고 교무실 책상 위에 앉았다. 그리고 교과서를 돌려봤다. 다른 교과의 교과서를 보면서, 내 교과와 연결지을 수 있는 다른 교과의 단원을 유심히 살펴봤다. 이런 저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같이 공유하고 토론했다. 네 교과가 같이 모여서 그런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토론이 무르익었다가도, 네 교과를 모두 아울러서 융합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아이디어를 폐기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던 중, 영어 교과서에 ‘이카루스 신화’가 본문으로 실려 있는 것을 보고, 미술 선생님이 미술 작품에도 ‘이카루스 신화’를 서로 다른 느낌으로 표현한 두 작품이 있다고 했고 미술 시간에 이를 다룰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나도 ‘이카루스 신화’를 통해서 ‘욕구’를 다루면서 토론하는 수업을 진행해볼 수 있겠다고 했다. 이카루스가 자신의 욕구를 주체하지 못해서 날개가 녹아서 죽었는데, 이를 어떻게 보는지 토론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미술 선생님은 ‘미술사’ 수업을 해야 하는데, 이 미술사라는 것이 각자 진정한 예술을 향한 서로 다른 욕망이라는 관점으로 볼 수 있다고 하며, ‘미술사’와 욕망을 연결지을 수 있다고도 했다. 과학 선생님이 ‘이카루스의 날개인 밀랍이 어떤 온도에서 녹았을까?’라는 질문으로 실험하는 수업을 해볼 수 있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했는데, 모두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과학 선생님은 아쉽게도 진도나 다른 여건의 문제 때문에 융합 수업에서 중도에 빠지게 되었다.)

수업의 의도

결국, 수업의 주제는 이카루스 신화와 예술가들을 통해서 인간의 욕망, 나의 욕망을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주제로 귀결되었고, 주제는 ‘다양한 관점으로 욕망을 보면 무엇이 달라질까?’라는 주제가 되었다. 협의회 과정을 통해서 모든 선생님들이 공감했던 점은, 삶에서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욕구를 건강하게 추구하는 것이 삶에서 매우 중요하며, 학생들이 자기 욕구를 이해하고 건강하게 추구하게 하는 수업을 해보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욕망은 모두 다르다고 생각한다. 개인은 자기만의 고유한 욕망을 추구한다. 누군가는 물질적인 안정과 자기보존을, 누군가는 소속감과 유대감을, 누군가는 사회적인 인정과 명예를, 누군가는 힘과 권력을, 누군가는 이상의 실현을 더욱 추구한다. 욕망은 모두에게 똑같이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 삶에 따라서 서로 다른 욕망을 지니고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자기 안의 고유한 욕망을 알아차리고, 그 욕망이 나 자신과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건강하게 추구하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살아있는 욕망을 눈치채지 못한 채, 헛된 욕망만을 추구하는 안타까운 삶을 살아갈 수도 있지만, 자신의 욕망을 잘 찾아내어 건강하게 추구할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의 진짜 욕망을 찾아내고 그 욕망을 추구하면 삶이 한 방향으로 정리되고, 에너지가 모아져서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온양용화중학교의 2학년 학생들은 욕망, 욕구라는 단어를 어떻게 생각할까? 욕구와 욕망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잘 이해하고 있을까? 자신의 다양한 욕망을 인식하고 있을까? 자기 욕망을 어떻게 추구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학생들이 이카루스 신화를 통해서 욕망을 이해하고, 미술사와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을 통해서 욕망을 이해하고, 자기 삶을 성찰하고 토론하면서 욕망을 이해했으면 했다.
먼저, 이 수업을 했던 때는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20학년도 2학기로, 격주로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을 번갈아 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수업을 설계할 때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의 특성을 고려해야 했다. 온라인 수업을 할 때에는 콘텐츠 활용 수업과 줌(ZOOM)을 활용한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주로 활용했다.
수업 내용적으로 보면,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단계는 국어, 영어, 미술 각 교과에서 핵심 주제인 ‘욕구’에 대해서 다루는 단계다. 국어 시간에는 욕구와 관점에 대해서 소개했고, 영어 시간에는 이카루스 신화 본문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이해하는 활동과 욕구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활동을 했고, 미술 시간에는 미술사와 예술가들의 활동을 통해 욕구를 이해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둘째 주에는 앞서 환기시킨 ‘욕구’라는 주제를 더 심화시켜 국어 시간에 ‘욕구’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학생들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게 했다. 셋째 주에는 앞선 내용을 바탕으로 인간의 욕구에 대해 대화를 하게 하고, 이를 수행평가에 반영하였다.

수업 장면 1: 수업의 흐름 안내하기

1차시에는 학생들에게 온라인 영상을 통해서 수업의 전체 흐름을 알 수 있게 했다. 15차시에 이르는 긴 수업이고, 세 교과가 연결을 지어 수업을 하는 만큼, 아이들이 큰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3분 정도의 길이로 영상을 만들었다. 선생님들이 수업 협의회를 하는 대화 형식으로, 왜 융합수업을 하고, 어떤 흐름으로 수업이 진행되는지 알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원격 수업을 하는 주간이었기 때문에 이 영상을 EBS 온라인 클래스에 업로드했다.
▲ 융합 수업 소개 영상 바로가기

수업 장면 2: 욕구와 관점에 대한 강의와 생각 공유 활동

2차시에는 욕구와 관점에 대해 설명하고, 욕구를 비유하는 활동을 했다. 먼저 강의를 통해서 욕구나 욕망의 의미와, 다양한 종류의 욕구를 알아보는 활동을 했다. ‘우리 삶에서 욕구가 없다면?’, ‘우리 삶에서 욕구가 너무 과잉된다면?’, ‘욕구를 긍정적으로 추구한다면 내 삶이 어떻게 변화할까’, ‘욕구를 부정적으로 추구한다면 내 삶이 어떻게 변화할까?’, ‘나의 욕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욕구 목록표에서 현재 나의 욕구에 해당하는 것을 고른다면?’ 등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욕구가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나의 욕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보는 활동을 했다.
▲ 욕구에 대한 소개 활동지: 욕구 목록표
▲ 욕구에 대한 소개 활동지: 자신의 욕구 찾아보기
관점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소개했다. 이 수업의 주요한 목표는 욕구에 대하여 서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었다. 개념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고, ‘왜 세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을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면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등과 같은 질문을 통해서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봤다.
▲관점에 대한 소개 활동지
욕구와 관점에 대한 활동 후에 ‘인간의 욕구는 ∼다. 왜냐하면 ∼기 때문이다.’ 문장 형식으로 ‘욕구’를 비유하는 활동을 했다. 이 활동을 통해서 학생들이 ‘욕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표현하고, 공유하기를 바랐다. 어떤 학생은 욕구를 ‘칼’이라고 했고, ‘약’, ‘밥’, ‘길’, ‘별’ 등 매우 다양하게 비유했다. 학생들이 욕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양한 관점을 알 수 있었다. 욕구를 탐욕과 동일시하는 학생도 있었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로 생각하는 학생도 있었고, 삶의 방향성으로 생각하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의 비유를 보면서 나의 관점을 벗어나 다양한 관점을 접할 수 있었다.
▲강의 후 각자 욕구를 비유하게 하여 욕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공유했다.

수업 장면 3-4: 영어로 이카루스 신화를 말하고, 듣고, 읽고, 해석하고

34차시에는 영어 시간에 이카루스 신화 본문을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온라인 활동을 했다. 영어 선생님께서는 다양한 온라인 수업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셨다. 원격 수업이라는 제약이 있었음에도 영어 본문을 말하고, 듣고, 읽고, 해석하는 활동을 다양한 온라인 수업 도구를 활용하여 진행했다. 먼저 워드 클라우드 활동을 통해서 본문의 내용을 예측하게 했다. Icarus, Paintings, Myth, Wax, Different 등의 단어들을 통해서 학생들은 배경지식을 활성화하거나 내용을 예측하는 사고 활동을 했다.
그 이후에는 그림자처럼 영어 본문을 따라 읽는 활동을 했고, 이후에 학생들이 본문의 내용을 자신의 발음으로 녹음하게 한 후, 패들렛에 업로드하게 했다. 그리고 패들렛에 업로드된 다른 친구들의 발음에 피드백을 하게 했다.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에게 공개되는 녹음인지라 열심히 연습해서 업로드했다. 휴대폰에서 녹음하고, 패들렛에 업로드하는 방식은 간편해서 학생들이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직접 학생들이 영어 문장을 해석하게 하고, 주요 문장 해석과 관련한 퀴즈 활동을 진행했다. 영어 시간에 학생들은 영미 문학의 일종인 이카루스 신화의 내용을 예측하고, 말하고, 듣고, 읽고, 생각하는 활동을 충분히 진행했다.

수업 장면 5: 미술사를 예술가들의 표현 욕구 관점으로 보기

5차시에는 미술 시간에 온라인 강의 영상으로 미술사’, ‘예술가를 통해서 욕구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진정한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그림에서 ‘진짜’를 찾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욕망을 시대 순서대로 훑어보면 미술사가 된다. 학생들은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미술 사조를 ‘예술가의 욕구’라는 관점에서 배웠다. 르네상스 미술은 2차원의 평면 속에 3차원의 입체를 담고자 하는 욕구가 투영된 사조로, 원근법이나 명암법이 발달했다는 것을 배웠다. 입체파 미술은 3차원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 여러 시점에서 본 형태를 한 화면에 조합하고자 하는 욕구가 녹아 있는 미술 사조라는 것을 배웠다. (미술사는 잘 모르던 나는 ‘예술가의 욕구’로 미술사를 풀어내는 미술 선생님의 강의 영상이 매우 흥미로웠다.)
5차시까지 국어, 영어, 미술 시간을 활용해 각각의 교과에서 ‘욕구’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이제 6차시부터는 국어, 영어, 미술 시간에 다뤘던 ‘욕구’와 ‘관점’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고, 이를 수행평가로 연결지었다.

수업 장면 6: 앞선 수업 주제를 국어 수행평가로 연결하기

6차시에는 수행평가의 채점기준을 소개했다. 이 수행평가의 성취기준은 듣기·말하기는 의미 공유의 과정임을 이해하고 듣기·말하기 활동을 할 수 있다.’였다.
이 성취기준으로 수행평가를 하고자 한 이유 첫 번째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의미를 공유하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게 하고 싶어서였다. 중학교에서 토의토론 수업을 했을 때, 의미 공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의미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앞사람의 말과 뒷사람의 말이 연관성 없이 분절되거나 어색한 침묵이 길게 흐른다. 의미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예의가 없어서 다투게 되는 경우나, 상대가 말한 내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상대가 말한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모르거나, 비언어적 반응이 전혀 없어서 대화의 분위기가 살지 않는 경우 등 다양하다.
두 번째 이유는 의미를 공유하는 대화를 통해서 학생들이 자신의 욕구를 생각해보기를 바랐다. 의미를 공유하는 대화가 가능하다면, 즉, 말과 말이 이어지면서 의미가 깊어지는 대화가 가능하다면, 학생들이 그 대화를 통해서 주제에 대한 생각의 깊이가 깊어질 것이다. 나와 다른 타인과의 대화는 내 생각의 넓이와 깊이를 확장시킨다. 나와 다른 생각을 만나기 때문에 넓어지고, 대화 중 나와 상대가 구성한 내용 위에 내 생각을 얹어서 전개할 수 있기 때문에 깊어진다. 학생들이 ‘대화’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욕구’라는 내용을 더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대화라는 형식’과 ‘욕구라는 내용’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학생들이 자신의 삶에서 ‘욕구’를 깊이 생각해볼 수 있다면, 성취기준도 달성하면서 학생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수업이 가능하지 않을까?
학생들로 하여금 의미를 공유하는 대화를 평가하기 위해서 채점기준표를 작성했다. 채점 요소는 크게 3가지였다. 첫 번째 요소는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며 들었는가?’였다. ‘의미를 공유하는 대화’에서 ‘의미’란 무엇일까? 매우 추상적인 단어이지만, 이 ‘의미’를 말의 표면적인 의미와 이면적인 의미로 나누어서 생각해봤다. 말의 ‘표면적인 의미’는, ‘말’과 ‘말이 지칭하는 대상(내용)’을 연결짓고, 그 대상(내용)들 사이의 인과 관계 등의 ‘의미 관계를 파악’했다는 말일 것이다. 말의 ‘이면적인 의미’는 그 표면적인 의미 너머의 상대방의 ‘의도’라고 생각했다. 나는 학생들이 말의 표면적인 의미와 이면적인 의도를 모두 파악하기를 바랐는데, 표면적인 의미를 이해해야 이면적인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보고,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면 표면적인 의미도 파악했다고 보기로 했다. 학생들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아닌지는 교사가 학생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보이는 반응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는 앞선 발화자의 말에 대한 반응(질문, 이어지는 발언 등)을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안내했다. 학생들이 이 채점요소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거나, 질문해야 했다.
두 번째 요소는 상대방의 말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였는가?’였다. 대화가 잘 이어지려면 ‘상대’에 대한 존중, ‘상대의 말’에 대한 존중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의미가 잘 연결되더라도, 존중이 바탕되지 않으면 그 대화는 말싸움이 되어버린다. 특히 중학생 사이의 토론이나 대화에서는 더 그렇다. 내 말을 상대가 경청하지 않고, 내 말을 빈정대거나 부정해버리면 말을 하기 싫어진다. 하지만 내 말을 존중해주고, 인정해주고, 상대가 내 말에 대한 반응을 보이면 더 신나서 내 이야기를 더 많이 꺼내놓게 된다. 말이 먼저가 아니라 말을 하는 분위기와 문화 조성이 우선이다. 내가 말을 해도 비웃음 받지 않고, 존중받을 거라는 믿음이 있을 때 내 생각을 내놓을 수 있고, 비로소 교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의미를 공유하는 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분위기와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언어적/비언어적 반응을 보이는 소양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이를 두 번째 채점 요소로 삼았다. 학생들이 이 채점 요소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말을 할 때 고개를 끄덕이거나, ‘응’ 등과 같은 언어적 반응을 적극적으로 보여야 했다.
세 번째 요소는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말하였는가?’이다. 의미가 공유되려면, 일단 말을 하는 사람이 의미를 어떤 구체적인 수준까지 꺼내 놓아야 한다. 대화가 되려면 질적으로 양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의미가 담긴 말을 꺼내놓아야 한다. 앞 사람이 꺼내놓은 말이 매우 피상적이고, 그 말을 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생각을 촉발시킬 수 없는 말이라면, 의미를 공유하는 대화가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의미가 담긴 말’을 온양용화중학교 2학년 학생의 수준을 고려하여 요구한다면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 ‘자신의 생각’이 담긴 말 한 문장,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대한 부연(근거, 세부 설명 등)을 말을 한 문장 이상 덧붙이는 것을 요구했다. 학생들이 이 채점 요소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단발적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더 해서 부연 설명이나 근거를 들어야 했다.
이와 같이 성취기준의 의미, 채점기준표의 의미와 의도를 학생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하고, 수행평가의 흐름도 안내했다. 수행평가의 흐름은 ▲이카루스의 신화를 ‘욕구’와 관련지어 깊이 생각해보기, ▲‘욕구’를 주제로 ‘의미를 공유하는 대화’ 연습하기, ▲‘욕구’를 주제로 ‘의미를 공유하는 대화’ 평가하기의 세 단계로 나뉘었다.

수업 장면 7: 이카루스 신화 생각 공유 활동

7차시에는 영어 시간에 배운 이카루스의 날개신화를 활용하여 욕구에 대해서 더 생각해봤다. ‘이카루스의 날개에서 이카루스의 욕구는 무엇이었나?’, ‘이카루스는 자신의 욕구로 인해 어떻게 됐는가?’, ‘이카루스의 욕구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은 무엇일까?’, ‘만약 내가 이카루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의 욕구와 그 욕구로 인해 생긴 일들을 적어본다면?’ 등과 같은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지고, 이를 패들렛에서 공유했다. 보통은 ‘이카루스의 날개’ 신화 속에서 이카루스가 태양 가까이 올라간 것,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추구한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만, 학생들이 그 틀을 벗어나서 이카루스의 욕망의 긍정적인 면도 생각해보길 바랐다. 또한 자신의 욕구와 욕구로 인해 생긴 일들을 적어보기도 했다.

수업 장면 8-9: 개인의 삶, 우리 사회 속에서 욕구탐색하기

8∼9차시에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욕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영상으로 보여주고, ‘인간의 욕구가 나의 삶,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봤다. 이카루스의 신화 속에서 이카루스는 떨어져 죽지만, 사실 우리 삶은 그렇지 않다. 욕구를 추구하다가 실패해도 죽지 않는다. 욕구 추구에 실패하기도 하지만, 성공하기도 하며, 개인의 욕구 추구가 사회와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 영상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일론 머스크라는 기업인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테슬라라는 전기차 기업을 세우고, 스페이스 X라는 우주탐사기업을 세우는 과정에서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여줬다. 멋진 연극 배우를 꿈꾸다가 이제는 그 꿈을 포기하고, 다른 욕망을 위해서 살아가는 작은 개인의 이야기도 보여줬다. 인간의 ‘간편함’, ‘아름다움’이라는 욕구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패스트 패션과 환경오염’에 대한 영상으로 보여줬다. 인간의 편리함, 안락함에 대한 욕구가 기술을 얼마나 발전시켰고, 그 기술이 인간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시킨 사례도 보여줬다. 우리의 욕구가 개인의 삶에, 사회와 주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몇 가지 이야기를 제시했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눠봤다.
▲‘욕구’에 대한 생각을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한 수업 활동지
이렇게 욕구와 관련된 여러 생각을 많이 한 후에, ‘인간의 욕구, 욕망, 욕심은 나의 삶, 그리고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질문을 주고 패들렛에 짧은 글쓰기를 하게 했다. 질문이 추상적이고, 중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어려운 수준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앞선 영상 자료를 최대한 보여줬고, 그 영상 자료를 보며 생각한 내용을 정리하는 의도로 짧은 글을 쓰게 했다. 짧은 글을 쓰게 할 때, (나는 조건을 주지 않았는데) 동학년 동교과의 국어 선생님은 패들렛에 글을 쓸 때 10줄 이상 써야 한다는 조건을 주셨다. 결과는, ‘10줄 이상’ 써야 한다는 조건을 준 반의 짧은 글쓰기가 훨씬 생각이 구체적이고 풍성했다. 글쓰기가 분량이 전부는 아니지만, 적정한 분량을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학생들이 더 세부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욕구가 나의 삶과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짧은 글쓰기

수업 장면 10: 모둠 편성하기

10차시에는 모둠 토의를 위한 모둠 편성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이제 ‘욕구’와 관련된 ‘의미를 공유하는 대화’ 수행평가를 모둠별로 진행하게 된다. 적절한 모둠 편성을 위해 1차시를 할애하여 모둠을 편성했다. 모둠 편성 방식은 32명 학급 기준으로, ‘모둠장’을 8명 추천 또는 자천으로 뽑고, 8명의 모둠장이 나머지 모둠원을 뽑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모둠을 구성하는 전체 과정은 아래와 같다.
<선발된 모둠장이 모둠 구성하는 방식>
학생들에게 모둠 편성의 방식을 설명한다. -모둠장의 역할을 안내한다. 모둠장의 역할은 모둠의 대화를 진행하는 역할에 한정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둠장의 역할이 과중하면(모둠원들의 과제 수합하기, 모둠원들의 생각을 종합해서 보고서 쓰기 등) 모둠장을 기피할 수 있다. -모둠장을 했을 때 좋은 점을 최대한 강조한다. (리더십 계발, 역할 수행을 잘 해낼 경우 생활기록부에 기재 등) 모둠장을 자천, 또는 추천으로 선발한다. -모둠장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을 경우, 투표를 통해서 8명을 선발한다. 이때 1인당 2~3명을 투표하도록 하는 게 좋다. 1인당 1표씩 투표하면, 동률인 경우가 자주 나온다. 모둠장이 선발되면, 모둠장은 복도로 나와서 모둠원들을 선발한다. 나머지는 교실에서 독서나 자습하도록 한다. -모둠장 1명이 나머지 3명의 모둠원을 뽑는다. -누가 먼저 뽑히고 나중에 뽑혔는지 등, 모둠원을 뽑는 과정에서 나눈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친구들에게 하지 않도록 약속한다. 선발되거나 추천된 모둠장들은 성실하고 배려할 줄 아는 학생인 경우가 많다. -뽑는 순서는 1모둠에서 8모둠의 순서로 1차 선발, 다시 8모둠에서 1모둠의 순서로 2차 선발, 다시 1모둠에서 8모둠의 순서로 3차 선발한다. -모둠별로 총 3명을 뽑을 때, 첫 번째 모둠원과 두 번째 모둠원을 뽑을 때에는 이성인 친구를 뽑아야 한다. 동성인 친구를 뽑으면 친한 친구와 같은 모둠을 해서 시끄러워지는 경우가 많다. 이성인 친구를 뽑아야 한다고 하면, 나와의 친분이 뽑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실도 등이 뽑는 기준이 되어 모둠원들의 성실도나 참여도가 균등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뽑을 때 출석부나 사진 명렬표를 준비하고, 뽑힌 학생들을 체크하면서 진행하면 편리하다. 모둠이 구성되면 교실에서 모둠을 발표한다. 이때, 뽑힌 순서대로 학생들을 호명하지 말고, 뽑힌 순서를 섞어서 호명한다. 그래야 누가 먼저 뽑혔는지 아닌지를 학생들이 모른다.
다양한 모둠 구성 방식을 사용해봤고, 모둠 구성 방식마다 모두 장단점이 있으나, 개인적으로 이 방식을 활용했을 때 학생들의 불만이 적고, 모둠원들의 참여도가 나았다. 모둠원인 학생들의 불만이 적은 이유는, 자신들이 추천하고 투표한 친구가 모둠장이라는 점, 자신들이 선발한 모둠장이 모둠을 구성했다는 점, 모둠원인 자신을 자신의 모둠장이 뽑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모둠장 입장에서도, 모둠원을 자신이 뽑았기 때문에 모둠 구성에 대한 불만이 적은 편이다. 이렇게 모둠 구성을 했을 때, ‘선생님 그래도 모둠 토의 진행하기 어려워요.’라는 하소연은 있을 수 있지만, ‘선생님, 왜 저랑 쟤랑 같은 모둠이에요?’라는 불만은 없었다.

수업 장면 11: 채점기준표와 예시 자료 확인

11차시에는 실시간 온라인 수업으로 어떻게 토론해야 하는지 예시 영상을 보면서 확인했다. 앞선 채점기준표로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준을 제시했으나, 학생들 입장에서는 그 채점기준표만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구체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그 장면을 비평하는 방식으로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 학생들이 어떤 수준으로 해야 하는지 감을 잡는다. 서로 존중하지 않는 대화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찬/반 시사 토론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공감과 반응이 풍부한 대화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서로 존중하지 않는 대화 영상은, 반면 교사를 삼기 위함이었고, ●찬/반 시사 토론 영상에서는 나와 반대 입장인 의견이라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고, ●공감과 반응이 풍부한 대화 영상에서는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언어적/반언어적 반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학생들은 세 영상을 보면서, 무엇이 경청인지, 언어적/비언어적 반응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고 질문하거나 말을 이어가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미생 영상(존중하지 않는 대화 분위기)
▲시사 토론 영상(반대 의견도 존중)
▲방구석1열 영상(자연스러운 경청과 반응)

수업 장면 1213: 의미를 공유하는 대화 연습과 피드백

12∼13차시에는 줌 소회의실 기능을 활용해 예시 질문으로 서로 토론해봤다. 10차시에서 정한 모둠별로 소회의실을 배정했다. 그리고 앞서 공부한 내용과 관련한 질문을 제시했다. (활동지 이미지 참조) 앞선 차시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패들렛을 통해서 공유한 질문들 4가지(아래 이미지에서 가∼라)와 학생 스스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묻는 질문 1가지(아래 이미지에서 마)를 조합하여 토론 연습용 질문으로 제시했다.
▲수행평가 연습 토론을 위해 제시한 질문 5가지
이 활동에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연습용 질문의 마지막 질문인 ‘이카루스처럼 자기의 욕구를 무모하게 추구하는 삶, 또는 안전을 추구하고, 도전하지 않는 삶은 어떤 삶일까? 어떤 삶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질문은 학생들에게 ‘욕구를 무모하게 추구하는 삶’, ‘안전만 추구하는 삶’이라는 2가지 선택지를 제시하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한 뒤, 그 이유를 답하게 하는 질문이다. 사실 이 질문 이전에 처음 생각한 질문은, ‘당신은 당신의 욕구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이카루스 신화에서 시작해 개인과 사회의 욕구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접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욕구를 어떻게 추구할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삶에서 어떻게 욕구를 추구할 것인지, 욕구를 추구하는 방식을 묻는 질문인데, 이 질문은 중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토론 질문으로 적절하지 않아보였다. 학생들이 너무 막연하게 느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가지 선택지, 욕구를 무모할 정도로 끝까지 추구하는 삶과, 욕구보다는 자기 보존과 안전만을 추구하는 삶이라는 선택지를 주고, 둘 사이에서 고민하게 하고, 대화의 과정에서 두 꼭지점 사이에 있는 자기만의 지점을 찾거나, 또는 두 꼭지점 사이를 벗어난 제3의 선택지를 찾아가기를 바랐다. 또한 대화의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의 생각에 영향을 주기를 바랐다. 예를 들어, 안전을 추구하고 싶다는 학생은, 자신의 욕구를 위해 도전하는 삶을 살겠다는 학생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욕구를 위해서 자신을 던지는 삶의 가치를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고민들을 바탕에 둔 5가지 질문을 학생들에게 제시하고, 온라인 상의 줌 소회의실에서 토론하게 했다. 실제로 평가를 하는 토론은 학교에서 오프라인으로 하고, 줌 소회의실에서 하는 토론은 연습하는 과정이다. 상대의 말에 반응해보고, 상대의 말에 자기 생각을 덧보태 보기도 하고, 자기 말에 구체적인 부연 설명도 해보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다. 이 연습 토론도 오프라인으로 했으면 좋았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원격 수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줌 소회의실을 활용했다. 2차시 동안 진행한 이 수업에서 1차시 당 4개의 모둠에 교사가 직접 피드백을 해주었고, 실제 수행평가 장면에서 개선해야 할 점을 제시했다. 피드백을 주고, 연습할 시간을 주고, 피드백 내용을 활용할 기회를 주고자 했다. 1개 모둠은 교사에게 피드백을 받고, 7개 모둠은 토론을 해보고 상호평가와 자기평가를 했다. 어떤 모둠은 열심히 토론을 하고 있었고, 어떤 모둠은 침묵 속에 있기도 했다. 열심히 하는 모둠은 토론을 2회 이상 반복하며 상호평가와 자기평가를 하면서 자신들의 대화를 발전시켜 나갔지만, 그렇지 않은 모둠은 짧은 토론을 1∼2회 해본 후 각자 자습(?) 시간을 가졌다. 열심히 하는 모둠과 그렇지 않은 모둠 사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있었다. 교실에서 토론을 시키면, 교사가 앞에서 한눈에 모든 모둠의 토론 상황을 조망하면서 파악할 수 있고, 대부분의 모둠이 더 열심히 하지만, 줌 소회의실은 그렇지 못한 점이 불편했고, 온라인 쌍방향 수업의 한계로 느껴졌다.
▲상호평가지와 자기평가지. 채점기준표의 내용을 반영했다.

수업 장면 1415: 실전 수행평가

14∼15차시에는 오프라인으로 ‘의미를 공유하는 대화’ 수행평가를 진행했다. 2∼3차시 정도 시간이 걸렸고, 1차시당 3∼4모둠이 평가를 받았다. 학생들이 몇분 대화해야 하냐고 물어봤는데, 대화는 7분 정도 하면 적절하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채점기준표에 7분을 넘겼냐, 넘기지 못했냐의 기준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은 절대적인 기준은 되지 않았다. 대화의 주제는 2가지였다. 앞선 수업에서 다뤘고 연습도 해봤던 질문인 이카루스처럼 자기의 욕구를 무모하게 추구하는 삶, 또는 안전을 추구하고, 도전하지 않는 삶은 어떤 삶일까? 어떤 삶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와 수행평가에서 새롭게 주어진 질문인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욕구를 추구하며 살아갈 것인가?’의 2가지 질문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욕구를 추구하는 방식을 생각해보게 하는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은 ‘나’의 삶에 그 욕구 추구의 방식을 적용해보게 하는 질문이었다.
긴 수업 후의 열매를 보는 수업이었기에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평가를 시작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쉬운 모둠도 있었고, 잘하는 모둠도 있었고, 그 비율은 반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말과 말이 이어지고, 서로가 서로의 생각에 영향을 주는 과정들이 보이는 모둠도 있었고, 긴 주제 탐구의 과정과 피드백과 연습에도 불구하고 짧은 피상적인 대화에 그치는 모둠도 있었다. 잘한 모둠의 대화 내용을 아래 지면에 기록해봤다. (잘하지 못한 모둠의 대화도 싣고 싶었으나, 영상이 남아있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표면적/이면적 의미를 대부분 이해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반응했으며, 최대한 구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부연하는 모습을 보였다.
학생4: 이카루스처럼 자기의 욕구를 무모하게 추구하는 삶하고 안전을 추구하면서 도전하지 않는 삶 둘 중에 뭐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학생1: 일단 나 먼저 얘기해 볼게. 나는 일단 이카루스처럼 욕구를 무모하게 추구하는 삶이 더 낫다고 생각을 해. 왜냐하면 사람이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변화되는 분화구가 없을 테고, 그리고 그 사람이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텐데, 아무런 욕구도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까 싶어.
학생2: 욕구가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는 거야?
학생1: 그러니까, 욕구가 없다면 그 사람이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못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어떻게 살아가냐고.
학생3: 욕구가 없다면 발전이 없다는 이야기야?
학생4: 욕구를 추구하면, 발전이 있다는 이야기야?
학생1: 응. 나는 안전을 추구하는 삶이 오히려 더 힘들 것 같아.
학생2: 나는 자신의 욕구를 추구하면, 발전은 하지만 지나치면 다친다고 생각을 하고, 안전을 추구하고 도전하지 않는 삶은 안전하지만 발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래도 나는 안전을 추구하기 때문에 안전을 추구하고 도전하지 않는 삶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학생4: 나랑 의견이 살짝 비슷하네.
(중략)
학생4: 이제 당신은 당신의 욕구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답해볼까?
학생4: 나는 욕구를 무모하게 추구하면서 발전하는 삶보다는 안전을 추구하는 것이 길게 봤을 때 좋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원래부터 나는 도전을 해보지 않았고, 안전하게 똑같이 사는 것이 편한 것 같아. 그런데 이제 나는 앞으로는 내가 좀 무모하게 추구하면서 살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해서, 이제 도전을 무모하더라도 해보려고 해.
학생1: 응원할게. (웃음)
학생3: 나도 응원할게. (웃음)
(중략)
학생2: 나는 지금까지 계속 안전을 추구한 것 같아서, 남에게 최대한 피해를 안 주는 범위 내에서 욕구를 추구하며 살아갈 것 같아.
학생1: 예를 들어서 어떤 걸 해보고 싶어?
학생2: 일단, 청소년 지도사 자격증을 따보려고 해. 아마 나에게도, 도전이나 목표 같은 욕구가 있겠지?
학생1: 오∼ 멋지다.
학생3: 그런데 청소년 지도사 자격증 따는 거 어렵지 않아?
학생2: 응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아.
학생1: 마지막으로 주인공인 내가 이야기해볼게. (웃음) 나는 지금 상태로는 내가 어떤 것에 재능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내가 막상 좋아하는 거라도 갑자기 싫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서 나는 내가 재능이 생기고 그것을 점점 하다보면, 내가 그것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일단, 내 재능을 찾아보고, 내 재능과 연관된 학과를 찾아본다든지, 관련된 사람을 연구해본다든지 해보고 싶어.
학생4: 그럼 도전해본다는 거네.
학생1: 아무래도 그렇지. 지금 나는 15살밖에 안되긴 했지만, 앞으로 미래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해.
학생3: 그럼, 그 재능을 찾기 위해서 희생 같은 것도 할 수 있어?
학생1: 나는 할 수 있어
학생4: 오 멋있다.
학생2: 혹시 지금 해보고 싶은 것 있어?
학생1: 나는 일단… 여러 분야에 대해서 연습? 같은 것을 해보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공부해보고 싶고, 내 재능에 대해서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아.
학생4: 뭐 악기라든지 운동이라든지 이런 것에 대해서?
학생1: 그런 것도 있고, 기술이라든지, 자연 분야 등에 대해서 한 번쯤은 체험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
학생3: 일단 경험을 다 해보고, 가장 적절한 것을 찾아서, 그걸 자신의 재능으로 만들어서 한다는 거야?
(후략)
▲학생 토론 영상 바로가기
이 모둠은 채점기준표의 모든 채점 요소를 만족하였고, 모두 만점을 받았다. 이 모둠의 대화에서 흥미로웠던 점이 2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역시나 경청과 호응이 이루어지는 모둠의 대화가 잘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위 사례에서 이 모둠은 서로의 말에 반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상대의 말에 언어적 반응(아∼ 음∼ ), ●앞 친구의 말을 재진술하거나 자기 언어로 해석하는 모습, ●상대의 말에 격려하거나 호응하는 모습, ●앞 사람의 말에 추가적인 질문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이런 모습들은 토론 연습을 시작할 때에는 잘 보이지 않는 특징이었는데, 연습을 통해서 발전한 점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렇게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호응하는 모둠의 대화가 더 연결되고, 내용의 넓이와 깊이가 더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두 번째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모둠에서, 학생들의 입체적인 생각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입체적이라는 의미는, 학생이 전형적인 하나의 생각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과정에서 생각이 바뀐다거나, 하나의 관점만이 아니라 두 가지 관점을 모두 갖게 된다는 의미다. 이 모둠에서 학생1과 학생3은 무모하더라도 도전하는 삶을 살겠다고 했고, 학생2와 학생4는 안전을 추구하는 삶을 살겠다는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대화의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이 바뀌는 모습을 보인다. 학생2는 안전을 추구하는 삶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도전하는 삶을 살겠다고 하고, 학생4는 지금까지 안전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고 했지만, 이제는 무모하더라도 도전하는 삶도 살아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토론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았기 때문에 생각이 조금 변화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수 있다.
▲ 1개 모둠은 복도에서 평가를 받고, 나머지는 교실에서 독서를 했다.

수업 장면 15: 배움일기 쓰며 배운 점 성찰하기

15차시에는 배움일기를 작성했다. 수업의 전체 과정이 길었고, 3과목에 걸쳐서 배웠기 때문에 수업 전체의 흐름 속에서 학생 개인이 배운 내용을 스스로 갈무리하지 않으면 배움이 수증기처럼 흩어져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수업의 전체 과정을 성찰해보고, 자신이 배운 것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생각해서 쓸 수 있도록 아래 활동지와 같이 조건을 제시했다.
▲성찰하는 글쓰기의 조건
▲학생들의 배움일기1
▲학생의 배움일기2

왜 굳이 융합 수업을 하는 게 좋을까?

이 융합수업을 준비하고 실행하면서 스스로, 그리고 함께 한 선생님끼리 지속적으로 던졌던 질문은 ‘굳이 융합 수업을 해서 좋은 점이 무엇일까?’였다. 학생들도 ‘왜 융합 수업을 해요?’라고 물어보는 친구가 있기도 했다. 왜 인간의 욕구를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수업에 ‘교과 융합’이 필요했을까? 교과 융합을 해서 좋은 점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욕구’에 대해서 다양한 교과에서 다뤘기 때문에 더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었다. 국어시간에만 ‘욕구’에 대해서 다뤘다면, 그리스 신화인 ‘이카루스의 날개’와 욕구의 연결고리도 없었을 것이고, ‘예술가들의 표현 욕구’에 대해서도 연결짓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술 시간과 영어 시간에 다룬 ‘욕구’라는 주제를 국어 교과에서 이어받아 대화하고 토론하는 수업으로 연결지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둘째, 시간이 단축된다. 하나의 주제를 여러 교과에서 다루기 때문에 주제의 넓이와 깊이는 심화되지만, 시간은 단축된다. 국어 교과에서만 ‘욕구’라는 주제를 다뤘다면, 관련된 단편 소설이나 설화 등을 새롭게 검색해서 2∼3차시에 걸쳐 다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와 미술 교과에서 관련된 주제를 다뤘기 때문에 국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셋째, 교사의 협업 과정에서 파생되는 유익한 점들이 많다. 융합 수업을 위해 협의회를 하고, 수업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나누는 대화가 교사를 성장시킨다. 다른 교과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고, 다른 선생님의 수업 철학과 방향과 만나서 교사로서의 내 생각의 범위도 한뼘 더 넓어지게 됐다.
물론, 함께 모여서 협의회를 하고, 누군가는 그 협의회 내용을 정리해서 하나의 표로 완성하고, 수업 자료를 수합하고 조정하는 작업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한다. 수업을 하는 과정 중에서 지속적으로 소통도 해야 한다. 바쁜 학교 생활을 조금 더 바쁘게 한다는 단점도 있다.

맺으며

내 수업에 대한 글을 기록하자고 했지만 사실 육아 핑계를 대고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글 요청을 받아서 글로 남기게 됐다. 사실 글을 쓰면서, 수업의 부족한 점들이 많이 보여서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도 분명히 있는 수업이고, 혹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2020년도의 기억을 끄집어내 열심히 글로 풀어봤다.
삶이 보여주는 새로운 장면 속으로 뚜벅뚜벅, 한 걸음씩 제대로 걸어가려 노력하는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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