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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PBL을 하게 되었는가

나는 왜 PBL을 하게 되었는가

나는 왜 PBL을 하게 되었는가?
나무학교 편집팀에서 PBL(Project based learning, 프로젝트 기반학습)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저의 개인적인 입장에서 써 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PBL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강의와 원고는 수차례 해보고 써 보았지만, 정작 제가 왜 PBL을 하게 되었는지는 정리해보지 않았고, 재미있는 제안이라고 생각되어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왜 PBL을 하게 되었는지 말씀드리면서 저의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 선생님들께 조금 더 쉽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막상 글을 쓰고 나니 글의 겉모습이 마치 합격자 수기나 이름 깨나 있는 사람의 회고록과 비슷해서 매우 민망하고 부끄럽습니다. 저는 성공한 사람도 무언가를 이룬 사람은 더욱 아니지만, 고민만큼은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런 저의 고민들을 보시고 선생님들께서 공감한다면 참 기쁠 것 같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글을 보냅니다. 제 고민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저의 글재주가 한참 부족한 까닭이니 너른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흔한 교사의 고백. 저경력 교사 시절 나의 착각 세 가지
첫 번째 착각. "나는 교직이 적성에 맞는다."
저는 원래부터 교사가 꿈은 아니었지만 국어교육과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다 보니, 그 내용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과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것을 꽤나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얼핏 학생부 진로특기사항의 글귀 같은 이 구절은 저의 큰 착각이었습니다. 교생실습 때에도 그럭저럭 잘 해내어서인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저의 믿음은 첫해부터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해야 할 크고 작은 업무가 많았고, 수업도 많았고, 담당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예기치 못한 사건들은 빵빵 터지면서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병까지 얻으면서 적응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웠습니다. 신규교사는 담임이나 업무를 최대한 덜어주고 적응기간을 최대한으로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갖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착각. "나는 수업을 잘하는 줄 알았다."
발표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고, 수업 공개도 교생 때부터 큰 공포 없이 했었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국어 과목을 열심히 공부했고, 어려운 내용도 쉽게 잘 풀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작은 성공 경험은 같은 성인들이 대상이거나 어느 정도의 두뇌 성장을 마친 뛰어난 학습자들 앞에서 했던 제한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읽고 쓰고 말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지도해야 하는 학습자들을 가르친다는 것. 그것도 한 명이 아닌 30명을 동시에 가르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용을 잘 정리해서 수업을 잘 전달했다고 생각했지만, 다음날 형성평가를 보면 실제로 아이들에게 유의미한 학습이 일어났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 번째 착각. "화려한 수업이 잘 하는 수업인 줄 알았다."
수업에 대한 목마름은 연수 쇼핑과 교수학습 교재 탐독, 다양한 수업 관찰로 이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활동과 모형을 최대한 적용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수업 시간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지만, 수업을 하고 나면 마치 형형색색의 폭죽이 터지고 난 후 찾아오는 어둠처럼, 과연 이 수업 이후 무엇이 남는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흥미는 그 자체로 학습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수업의 내용과 과정을 흥미롭게 하면 아이들의 참여를 돕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참여하고 경험한다고 해서 배움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교직 생활의 신선한 충격
끊임없이 공동체의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 자신이 가진 재능을 아낌없이 나누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는 사람,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사람, 창의・융합적 인재. 우리 교사는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정작 저는 이런 고민이 투영된 수업을 받은 세대가 아닙니다. 큰 아이러니지요. 수능이라는 제한적인 인지 훈련만 반복하고, 국사책을 통째로 외우면서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나은 성적을 받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 제가 아이들에게 앞서 말한 인재로 키워야 한다니 막연하고, 자기 검열과 아이러니 앞에서 부끄럽고 작아졌습니다. 그런 고민들과 함께 각종 수업모형 적용을 해보고 나서 느끼는 공허함과 허전함을 가질 때쯤 나무학교를 만납니다.
제가 처음 본 나무학교의 인상은 아직도 남아있습니 다. 그야말로 쇼크였어요. 수업, 학급활동, 공부 등등을 해볼 수 있을 때까지 다 해본 사람들이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고민을 끊임없이 이어나가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또, 그런 자리를 만들기 위해 서로 협업하고 돕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이러지?’ 충격을 안고 집에 돌아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이듬해 나무학교 성장교실에 참여하게 됩니다. 1년 동안 서로 배우고 실행해 본 것을 공유하고, 함께 학교문화 전반의 개선을 위해서, 자기가 속한 더 큰 공동체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배웠습니다. 저는 그때 배운 협업과 공유, 성장의 경험을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나누어주고 성장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때부터 제 수업은 이전과 확실한 차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교육철학, 아이들을 보는 가치관이 달라졌고, 그에 따라 수업의 디자인 방식이 달라졌고, 특히 스스로 아이들을 관찰하고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더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부족한 부분이 더 많지만, 스스로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업 변화를 위한 고민
가장 먼저 했던 고민은 나무학교를 만나기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주로 교실 안의 학습에 관한 고민이었는데, 수업 상황 중에 아이들의 집중 여부를 확인하고 체크하는 다양한 방법, 아이가 정말 교사가 계획한 내용과 기능을 학습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 학습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하는 방법 등을 고민했습니다. 특히, 같이 근무하는 수석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수석님은 영어과로 과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교수・학습에 관해 굉장히 풍부하고 많은 것을 배우도록 저를 안내하셨습니다. 전공과목보다 우선하여 배울 것이 있고 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과목 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배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 단원 매 차시 만든 학습지를 가지고 수석님을 찾아가 말씀을 여쭙고, 달라진 학습지로 아이들을 만나며 수업에 대한 효능감을 얻고, 수석님과 수업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저의 수업 철학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것은 세계시민교육 중앙선도교사로 활동하면서부터였습니다. 세계시민교육은 더불어 살기 위한 학습(Learning to live together) 교육목표 가운데에 두고 학습자가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공유하고, 실천하는 데까지 교수・학습을 설계하고 실행하며, 그 과정에서 비판적 사고력, 문제해결능력, 의사소통능력 등을 강조하는 변혁적 교수법을 요구합니다. 세계시민교육에서 말하는 변혁적 교수법을 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문제들이 더 이상 단선적인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상호연계성을 띠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문제를 교실로 가져오는 이유는 교육의 목적이 사회화가 아니라 아이들의 입장에서 미래의 '생존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환경과 평화 문제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시대에 꼭 필요한 역량을 아이들에게 키워주는 장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요.
교사라는 직업 자체도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데어 빠른 시일 내에 명예 퇴직을 하려는 선배들, 때로는 이해하기 힘든 학교 조직의 경직된 모습들 가운데서 많은 괴리를 느꼈습니다. 교사가 전문직이라고 하는데 과연 전문직의 특성과 처우가 있는지에 대한 괴리감. 아이들을 위한 소명감과 인터넷 여론에서 볼 수 있는 교사에 대한 오명과 손가락질 사이의 괴리. 이러한 괴리 앞에서 가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교육이라는 특성상 성과나 보람을 바로 얻기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교사로서 생존하기 위해 어떤 관점과 전망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교사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레 학습자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학습자에게 부모보다는 멀고 다른 사람들보다는 가까운 어른인 교사가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또 얼마만큼인지, 새로운 세대들의 특징은 무엇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런 고민의 답은 대개 책에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은 학습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안내해주었고, 포노사피엔스, 소년의 심리학, 교사가 들려주는 부모 코칭은 요즘 아이들, 아이들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었습니다.
유전적 특성과 인지발달, 아이들 심리에 대해 알게 되니 얻게 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마음의 여유였습니다. 이전에는 제가 배워왔던 대로, 해왔던 대로, 아이들을 평균 이상으로 만들려고 애쓰고 마음이 바쁘고 무언가에 쫒기는 듯 했는데,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아이들에게 관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공포와 긴장은 학습의 적이라고 하는데, 저 또한 긴장과 두려움을 걷고 난 후 더 유연하고 빠르게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예전 충남 학교혁신 초기에 보령비치팰리스에서 들었던 연수에서 들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수업 방법보다 중요한 것은 수업 철학이다."
그 이후로 '내 수업 철학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 수 있지?'의 생각이 늘 과제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다 2018년 UNESCO 한・일 교사대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만난 한 일본인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제 나름대로의 답을 찾게 됩니다. 그 선생님은 스스로 마라톤과 등산을 즐기며 인내와 끈기를 삶의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수업과 다양한 동아리 활동으로 이어져 아이들에게 삶에서 꼭 필요한 한 가지 가치를 일깨워주려고 노력한다는 말을 듣고 생각의 망치를 맞은 듯했습니다.
'교사로서 갖추어야 할 철학은 무엇인가?'는 답을 찾기 위해 요약정리된 교육 철학자들의 주장을 비교하던 스스로가 부끄럽게 생각되었습니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큰 교육 목표를 벗어나지 않거나 선함과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모든 교사의 가치관과 삶의 양식, 때로는 교사가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철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모든 행동과 마음 씀씀이의 기저에 각자의 철학이 있고, 모두가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으로서의 철학이 아닌 삶의 양식으로서의 철학과 그 다양성 자체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려보았습니다.
처음 만나는 PBL
그러다 PBL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배움과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나무학교 초대 교장 심대현 선생님이 그 당시에 했던 말이 그 당시 노트에 있었어요. "PBL은 전 세계적 추세이고 핀란드의 경우처럼 앞으로 PBL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로 나뉠 것이다."고 적어놓았더군요. 그날 이후 PBL에 대해 공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찾아가며 하게 됩니다. PBL센터 출범 멤버에 합류하여 먼저, 구성주의 철학 자체에 대해 공부하고 구성주의 수업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구성주의를 공부(⟪구성주의와 자율성⟫,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지적사기⟫, 양자역학 팟캐스트)하며 객관주의와 구성주의의 이분법으로는 세상을 양분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고, 책 ⟪구성주의 교육 성공인가 실패인가⟫를 보며 구성주의 수업이 빠질 수 있는 함정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PBL은 단순한 유행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다 경남 비영리민간교육단체 구름학교에서 고맙게 열어준 구름학교 PBL 101 워크숍에 참가하여 PBL다운 수업 지혜들과 지식-기능-태도-행동으로 이어지는 역량에 대해 이해하고 공부할 수 있는 힌트를 많이 얻게 되어 지금은 나무학교 PBL센터에서 동료들과 열심히 배우고 배운 것을 열심히 나누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을 거쳐 온라인 회지를 통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왜 PBL을 하게 되었고 왜 PBL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요? 가장 먼저, 가장 전문적인 언어로 학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이 꽤나 발달했습니다. 그러나 수업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구성주의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다시, 학교>⟫ 논쟁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뇌의 작용 전체는 물론 아직도 알 수 없지만, 무엇이 미신인지 정도는 가려내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PBL은 강의식 수업/활동식 수업이라는 이분법에 갇혀있지 않고, 지식-기능-태도-실천으로 이어지는 종합적인 역량을 가장 잘 설명하고 이를 수업에 실현하기 위한 기준을 잘 설명합니다. 소위 '업데이트'가 되어 있습니다.
둘째, 지식과 역량의 경계, 배움의 경계를 따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교육은 창의・융합을 가장 큰 목표로 두고 있지만, 학교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역사 등등 분리된 과목을 각자 배운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융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지식을 잘 배우고 기억한다고 해서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문제는 갈수록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PBL은 실제성 있는 삶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 자체로 역량과 융합을 아이들에게 기대하고 지원합니다.
셋째, 아이들에게 정말 도움이 됩니다. 기존의 학습방법으로는 배우기 어려운 역량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지식 또한 잘 소화하게 합니다. 기존 수업방법과 학업성취도를 비교하는 여러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고민하고 공감하고 행하는 지식은 오래 남게 마련이지요. 또한, 아이들은 프로젝트 환경을 통해 살아가는 힘을 배우게 됩니다. 지금 사회에서는 아이들에게 역량을 요구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역량 있는 아이들이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점에서 더욱 잘 적응하고 '생존'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성장하는데 큰 관심을 둡니다. PBL은 아이들에게 실패할 기회, 개선할 기회, 성찰할 기회를 줍니다. 아이들이 나름의 생각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하고 이를 통해 성장하게 하려면, 앞서 말한 기회를 충분히 주어야 하는데, 아이들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가 다시 학습으로 수렴하게 하는 것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마냥 자율성을 주기만 하거나 체험만 하게 되면 배움이 잘 일어나지 않게 될 수 있고, 반대로 너무 제한적인 교수・학습 상황에서는 아이들이 제한된 배움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 배움을 설계하고 이를 통해 성장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교사가 성장합니다. 긴 호흡의 프로젝트 수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데, 교사 또한, 많은 기획과 검토, 문제 해결, 협업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동료교사와 함께 고민할 수 있다면, 교사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물론, PBL이 모든 정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때는 PBL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공부와 공유를 이어나갈수록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미 많은 선생님들께서는 그 자체로 귀감이 되는 삶의 양식으로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고, 아이들의 성장을 돕고 있지요. 하지만, 여전히 PBL은 많은 선생님들에게 다양하고 새로운 관점과 성장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킬패트릭이 주창한 ”Project method(구안법)”은 당시 교육철학자 사이에서의 논의, 구성주의 초기의 논의, 학습과학의 발전과 새로운 사회의 논의를 거쳐 지금 교육의 화두로 계속 진화하고 정교화되고 있습니다. 언젠가 선생님과 만나 고민을 함께 이어나가길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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