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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연재]슬기로운 환경 시민 프로젝트 제5화

프로젝트 결과물 발표하기 - 탐구질문에 대한 우리의 생각 박준일(온양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들어가며

슬기로운 환경 시민 프로젝트는 두 가지의 탐구질문을 해결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 첫 번째 탐구질문은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 지구에 어떤 환경 정책이 필요할까?’였습니다. 학생들은 지금까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찬반 토론에 필요한 핵심 지식과 기능을 학습하고, 자료 조사와 토의를 토해 모둠에서 선정한 환경 정책 논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생각을 마련했습니다.
탐구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교실 안팎의 청중들에게 특정한 결과물의 형태로 표현하는 ‘결과물 발표하기’ 과정은 학생들의 배움을 이끌어내는 핵심 요소입니다. 우선 누군가에게 결과물을 발표해야 한다는 사실은 학생들이 자신의 배움에 책임을 느끼게 합니다. 결과물 발표를 위해서는 허우적대기의 과정에 성실히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이 과정이 있어 학생들은 우리의 배움이 세상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환경 정책 토론의 교실 밖 청중으로 참여하는 학교 선생님들은 ‘환경 문제에 매우 관심이 많은 시민’의 역할을 맡아 ‘환경 문제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에 대한 정보를 얻는’ 목적으로 토론회에 참여합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토론회가 누군가에게 배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편, 교실 밖 청중이 주는 피드백은 학생들의 배움과 삶의 태도에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특히 청중들의 긍정적 피드백을 받은 학생들은 앞으로의 배움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프로젝트에서 배운 것들을 학교를 떠난 삶에서도 실천하려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프로젝트 결과물 발표하기에 청중을 초대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고, 교실 밖 청중이 참여한 환경 정책 토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결과적으로 이것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실 밖 청중 섭외하기

이 프로젝트를 설계할 때 섭외하려 했던 교실 밖 청중은 천안아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환경 운동가였습니다. 그래서 방학 때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의 공식 계정으로 메일을 보내 프로젝트 수업에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를 여쭈었습니다. 프로젝트 수업의 활동지와 함께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 목적, 활동가님들께 요청하는 내용 등을 메일에 담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직접 전화를 드려 메일 확인을 부탁드리고 논의 후 답장을 보내주신다는 말씀까지 들었는데 답장은 없었습니다. 차후에 천안 지역에서 환경 교육사로 활동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환경 교육과 관련된 요청은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이 아니라 ‘광덕산환경교육센터’로 보내면 더 빠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대체로 지역의 시민단체 활동가님들은 학교와 협업하는 것에 매우매우 긍정적이십니다. 혹시나 이 글을 보시고 연락을 취해보겠다는 마음을 접지는 않으시길 바랍니다 ^^;;)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에 보낸 메일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된 건 이미 프로젝트 수업이 한참 지난 후라 다른 청중을 찾아야 했습니다. 학생들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학교의 선생님들을 토론회에 초청한 것이죠. 최근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환경 문제에 대한 대화가 자주 오가는 것을 들었는데 용기를 내 선생님들을 초대하면 분명 와주실 거라 믿었습니다.
우선, 저의 ‘믿을 구석’인 교내 전문적학습공동체 ‘교실 이음’에서 함께 활동하시는 선생님들께 수업 나눔을 명목으로 초대 말씀을 드렸습니다. 7명의 선생님들 모두 흔쾌히 학생들을 보러 와주시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공동체 선생님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교내 메신저로 교장, 교감 선생님을 포함한 전체 선생님들께 ‘수업 나눔 전 성찰’ 파일과 함께 수업 초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아래 파일은 배방고등학교 국어 교사이신 황정아 선생님께서 나무학교 숲소리 교육자료실에 공유해주신 것을 변형한 것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선생님들이 초대에 응해주셨고, 어떤 선생님들께서는 교생 선생님들과 함께 1시간 동안 수업을 봐주셨습니다.
수업 나눔 전 성찰(박준일).pdf
156.9KB
프로젝트 수업의 도입부에서 학생들에게 토론회에는 교실 밖의 청중들이 함께 참여할 것이라 언지해두었지만 다시 한번 교실 밖 청중을 초대하는 이유를 안내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수행평가까지 연결되는 수업이다보니 자칫 토론이 두려운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 될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의 환경 정책 토론회에 관심이 있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동의해준다면 프로젝트의 도입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분들을 토론회에 초청할까 합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에이 선생님들이 우리가 토론하는 거에 관심이 있다고요?”
“헉, 선생님 저 너무 떨리는데 선생님들 안오시면 좋겠어요.”
저는 아이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맞아요. 안그래도 토론은 부담을 많이 느끼는 말하기인데, 선생님들께서 보신다고 하니 더 무섭죠? 그래도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공부한 것들을 다른 선생님들께 보여줬으면 해요. 우리 교실에 오시는 선생님들은 정말로 환경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을 평가하거나 잘하고 있나 감시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과 함께 환경 정책을 공부하고 고민하기 위해서 오시는 거예요. 그리고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이미 그 분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느껴요. 또 선생님이 미리 다른 선생님들께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해주시라고 부탁드릴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혹시 이 선생님들이 절대 오지 않으셨으면 하는 친구 있나요?”
다행히 학생들 모두 두렵긴 하지만 해볼만 하다고 생각하는 눈치였습니다.
이렇게 교실 밖 청중을 초청하는 일은 마무리되었습니다.

D-day

교실에 들어가니 미리 안내한 대로 학생들은 ‘토론 대형’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논제별로 8명의 토론자가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토론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머지 학생들과 교실 밖 청중들은 주위에 앉아 어떤 토론이 벌어질지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수업 촬영을 위해 교탁에 고프로를 설치하고 사회자로서 토론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토론회 책상 배치도
먼저, 프로젝트의 탐구질문을 소개하며 오늘의 토론회가 개최된 이유와 목적을 토론자들과 청중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슬기로운 환경 시민 프로젝트의 탐구질문
이어서 오늘의 논제를 소개했습니다. 논제가 동물원이나 일회용 플라스틱, 비건 급식처럼 학생들도 평소에 접해봤을 문제인 경우에는 논제만 소개했고, 탄소세 도입이나 원자력을 그린택소노미에 포함시키는 것처럼 문제를 이해하는 데 약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한 경우에는 청중들을 위해 간단히 핵심 개념들을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논제가 ‘우리나라에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라면 ‘탄소세’와 함께 ‘탄소 배출권 거래제’, ‘탄소 국경세’와 같은 정책이 무엇이고 서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했습니다.
환경 정책 토론회 논제 예시
논제를 설명한 후에는 토론 순서를 안내했습니다. 먼저 찬성측 토론자 4명이 9분 동안 입론을 하고, 이어서 반대측 토론자 4명이 9분 동안 입론을 합니다. 양측의 첫 번째 토론자는 눈 학생이 하고, 이 학생은 찬성 또는 입장의 논거를 제시하기 전에 논제의 배경과 관련 개념을 이야기하게 해 청중들이 논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입론이 끝나면 8분 동안 팀별로 모여 반론과 재반론을 준비하는 작전회의 시간을 줬습니다. 이때 청중들은 종이에 메모한 양측의 입론에 대해 질문을 만들었습니다. 회의가 끝나면 반대측부터 5분씩 반론을 하고 재반론을 하는 자유 토론을 했습니다. 토론의 마지막 단계는 청중 질의 응답이었습니다. 토론자들에게 질문이 있는 청중은 손을 들어 질문을 하고, 토론자들은 답변을 했습니다.
환경 정책 토론회 토론 순서표
입론부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준비했던 것보다 더 탄탄한 논거를 들어 주장을 뒷받침했습니다. 아마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토론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 탓에 수업 외의 시간에도 책과 신문 기사를 읽으며 입론서를 준비한 것 같습니다.
입론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다른 모둠원이 세세하게 알려준 내용을 따라 이야기하는 몇몇 학생들도 보였습니다. 대략 32명 중 5명 정도의 학생이 이런 모습을 보였는데 이 학생들은 논거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 토론과 청중 질의 응답 시간에서 적절한 재반론과 답변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입론에 대한 평가는 토론 당일에 발언한 내용이 아니라 토론 전에 작성한 입론서를 가지고 평가했으므로 이런 학생들은 입론과 관련된 평가 기준에서 높은 점수는 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토론 참여도에서는 점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렵지만 친구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발언을 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입론을 할 때 상대측 토론자의 얼굴을 보지 않고 미리 준비한 입론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발언하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 시간의 토론에서는 “입론의 내용이 전문적인 내용이 많고, 양 또한 많기 때문에 미리 준비한 입론서를 참고하는 건 좋지만 나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가끔 상대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입론 시간이 충분하니, 천천히, 그리고 큰 목소리로 상대의 얼굴을 봐가면서 입론해주세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확실히 입론부에서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환경 정책 토론 장면
작전 회의 시간에는 모둠별로 모여 상대에게 어떤 반론을 제기할지, 상대가 우리에게 어떤 반론을 제기할 것 같은지, 그런 반론이 들어왔을 때 어떻게 재반론할 것인지를 상의했습니다. 미리 찬성측과 반대측 모두의 입장에서 토론을 준비했고, 예상 반론과 재반론까지 준비한 상태라 작전 회의는 원활하게 진행된 편이었습니다. 저는 교실을 돌아다니며 입론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듣지 못한 청중들의 질문에 답을 해줬습니다.
자유 토론과 청중 질의 응답은 토론의 수준을 한층 높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자유롭게 이어진 반론과 재반론, 질의와 응답을 통해 입론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던 환경 정책의 세세한 부분들을 검토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라는 논제에 대해 찬성측이 입론에서 ‘기존의 동물원이 하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라고 추상적으로 이야기했다면, 이어진 자유 토론과 질의 응답 과정에서는 동물원이 하던 교육의 기능과 멸종 위기종을 보호하는 기능을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대체할 수 있는지, 그 대안이 정말 효과적으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대안인지를 면밀히 살필 수 있었습니다.

토론을 마치고

토론의 모든 절차가 끝이 나고, 청중으로 참여해 1시간 동안 토론자들의 발언과 청중들 간의 대화에 귀기울여주신 교내 선생님들의 소감을 들었습니다. 미리 메신저를 통해 청중의 역할에 대한 부탁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환경에 관심이 많은 시민으로서 시민으로서 토론을 지켜보며 무엇을 배우고 생각했는지, 토론회에서 학생들의 어떤 점이 대단하다고 느꼈는지, 이번 시간 학생들이 한 토론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김OO 선생님 ”학생들이 너무 잘 준비를 해서, 치밀한 데이터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토론하고 질문에 답변한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토론자들뿐만 아니라 청중으로 참여한 친구들도 토론자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경청하고 메모하는 모습이 정말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최고예요!”
강OO 선생님 ”저도 환경에 관심이 많은 시민 중 하나인데 여러분들의 토론을 듣고 근거에 대한 명확한 출처를 밝히며 본인의 주장을 이야기한 측면이 매우 인상깊었어요. 또 탄소세 도입과 관련해서 우리 시민이 개인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김OO 선생님 ”먼저, 멋진 토론회를 준비해주셔서 정말 고맙고 고생 많았어요. 여러분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저는 탄소세 문제에 대해서 찬성측 발언을 들으면 그게 맞는 것 같고, 반대측 발언을 들으면 또 그게 맞고, 아직 갈피를 못잡겠어요. 여러분들이 워낙 탄탄하게 논리를 말씀해주시고 풍부한 사례를 들어 말씀해주셔서 그런 것 같아요. 이번 토론을 통해 탄소세 도입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OO 선생님 ”탄소세 도입에 대해 토론한다고 해서 이렇게 청중으로 참여했는데요. 토론을 듣고 탄소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또 반대측의 의견을 들으면서 이것이 정말 최선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어요. 저도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더 면밀히 공부해야겠습니다. 좋은 시간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교실 밖 청중들의 격한 피드백을 듣고 학생들은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토론회를 준비하기까지 모둠원들과 함께 노력한 만큼 토론을 지켜본 청중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토론자로 참여했던 한 학생은 “선생님 저 엄청 떨렸어요. 손이 달달달 떨려서 죽는 줄 알았어요.”라고 말했는데 표정은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토론 논제에 대해 자기들끼리 모여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친구와 복도를 걸으며 “바이오 플라스틱이 상용화되도 이게 제대로 생분해되려면 따로 분리배출해야 하는 거 아니야?” “맞아, 오히려 분리배출이 지금보다 더 복잡해질 거 같은데…”처럼 자발적으로 환경 정책에 대한 생각을 나눴습니다. 또 어떤 학생은 저에게 와서 스타벅스에서 보증금을 내고 다회용컵을 받아 음료를 마시고 반납해봤는데 꽤 괜찮았다는 감상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이것이 프로젝트 수업의 매력입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배움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교실을 떠나서도 개인의 삶 속에서 고민과 실천을 이어나갑니다. 공교육의 최종 목표가 ‘학생들의 자립’이라면 프로젝트 수업은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주체로 서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많은 교실에서 학생들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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