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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 이대로 괜찮은가

고교학점제, 이대로 괜찮은가

- 우리는 무엇을 걱정하고, 집중해야 하는가 -

이광현(천안신당고등학교 역사 교사)
저는 지난 숲소리 2호에서 새로 도입되는 고교학점제의 가능성과 우려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여 시간이 지난 지금, 당시 제가 우려했던 지점들은 실제 어떤 모습으로 개선 또는 구현되고 있을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 대전환’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전면적인 교육과정 개정을 통한 중등교육 시스템 전반의 변화를 시도하는 제도인 만큼, 무엇을 추구했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아는 것도 현장 교사가 알아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고교학점제 시스템을 연구하고 또 시스템이 도입된 학교를 몇 년간 경험한 입장에서 우려되는 지점과 개선해야 할 방향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선 고교학점제의 정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2021년에 수정, 발표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고교학점제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학생이 기초 소양과 기본 학력을 바탕으로 진로·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누적하여 졸업하는 제도(교육부, 2021)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크게 진로교육과 책임교육입니다. 고교학점제 도입 배경은 여기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 진로교육과 책임교육을 위해 고교학점제가 내세운 시스템이 실현 과정에서 어떤 변화를 초래하고 있으며, 그러한 변화로 야기되는 우려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진로 교육의 방향 학생의 과목 선택권 확대가 불러온 학교의 혼란

2020년 11월 발표된 조사에는 미래사회 학교의 모습에 관한 질문에 대해 학생·학부모·교사가 아래 그림과 같이 답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학생들은 학교가 ‘학생들이 자신들에 맞는 진로를 설계하도록 돕는 곳’으로 역할 해야 한다고 가장 많이 답했습니다. 현실과의 괴리가 살짝(?)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무튼 전국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는 학교가 상급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진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공동체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가르치고 기르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응답한 것입니다.
국가교육회의, 「미래교육 탐색을 위한 조사」 결과 보고서, 2020. 11.
고교학점제는 이처럼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 그리고 학교가 갖는 사회화 기능 등에 맞춰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도록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 운용의 큰 틀을 ‘진로교육’으로 설정했습니다. 이를 위해 학교는 교육과정으로 다양한 과목들을 편제하고, 학생들이 신청한 과목을 개설하여 수업을 운영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선택권이 주어진 학생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으니 이전에 비해 비교적 만족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저도 학생들의 만족도와 수업 참여도가 높아진다는 점은 지난 회지에서 긍정적으로 보았고, ‘이상적이다’라고 표현했던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운영 방식은 학교 사회에 다양한 변화를 초래하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다음의 3가지 지점을 우려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학생들의 수요를 반영한 교육과정 편제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정말 학생들의 수요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가’라는 학교 교육과정 편제 그 자체에 대한 문제입니다. 수업을 하다 보면 분명 자신들이 신청해서 수업을 듣는 과목인데 수업을 어려워하거나 포기하기도 다반사일 때가 많아 의아했습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 정도로 생각하기엔 그 수가 너무 많아, 연구학교를 운영하던 때 학생들에게 수강하고 싶은 과목이 무엇인지를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응답에서 학생들은 원하는 과목이 보통교과에만 그치지 않고 전문교과Ⅰ·Ⅱ 군에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자신이 원하는 진로·진학에 더 근접한 과목명과 교육과정을 희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고에서는 보통교과 과목들을 개설하기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기에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종합고가 아닌 이상 모든 교과군을 운영할 수 없는 학교의 현실이 수요자의 요구와 어긋난 현실적 한계가 드러난 대목이었습니다. 애초에 일반고, 특성화고, 특목고라는 학교 특성이 구분되어있는 우리의 교육 현실, 학문 중심의 교과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일반고의 수가 훨씬 많은 현실, 우리 사회에서 특성화고가 갖는 사회적 기능과 지위의 문제 등, 기존 체제로 인한 현실적 상황들을 고려할 때 직업교육을 원하는 다수 학생의 수요를 일반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변화를 추구하는 정도로는 ‘교육 대전환’을 이뤄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둘째, 설사 학교 특성에 맞는 교과군의 과목들만 편제한다고 할지라도, 학교마다 수업할 수 있는 교과 교사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다는 현실적 문제가 교사들의 부담을 가중합니다. 여기서 ‘충분히’라는 수식어는 주관적인 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교사들이 수업을 준비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데 필요한 물리적 시간이 확보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야 할 터인데, 현실은 1인 교사의 다 과목 지도와 상치교사 운영제도에 따른 비전공자의 과목 할당식 수업으로 교사의 부담은 커지고 수업의 질은 나빠지는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무리 수업에서의 전문성이 확보된 고경력 교사라 할지라도 대상 학생들이 바뀌면 그에 맞는 수업 준비에 많은 시간을 투여해야 함에도, 그러한 과정들은 무시하고 실제 수업 운영과 운영할 교사만 확보하면 된다는 식의 행정으로 인해 정작 수업의 질을 확보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셋째, 시장 논리가 크게 작동하는 고교학점제는 학생 수요에 따라 교사들의 인사가 보장되지 않고, 교사 간 경쟁을 확대해 반목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과목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수요는 수요자 대상인 학생 그 자체가 변한다는 데에서 이미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수강 요구에 따라 교사들의 수업 시수도 들쭉날쭉 움직이게 되어서 업무 환경도 매우 유동적이죠. 유동적이라는 말이 유연하다는 말로 치환될 수도 있겠지만 안정성 측면에서는 불안정함 그 자체입니다. 안 그래도 교사들의 수업 시수가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들쭉날쭉 하는데,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충분한 시수가 보장되지 않으면 근무하는 학교에서 근무하기도 어려운 인사이동의 압박을 받으니, 어떤 교사들이 이 제도를 좋아할까요? 게다가 수업 시수 확보를 위한 교사 간 경쟁까지 불러오니 공동체의 유대는 더욱 나빠지는 상황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의 답은 간단합니다. 인력의 확보, 즉 교사의 확충입니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가르칠 교사가 없다? 해당 교사를 양성하고 임용하면 되겠죠. 다 과목 지도에 대한 부담, 상치교사 제도로 비전공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부담도 마찬가지 문제이고, 학생들의 수요가 적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교사 인력을 보장해주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즉,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교육에 시장 논리가 들어와 경제적 효율성을 따지는데, 정작 수요와 공급이라는 아주 간단한 문제에서 수요에만 집중하고 있는 점이 문제이지 않을까요? 물론 교육부는 거대한 구조에서, 미래에 대한 계획까지 고려하며 이 문제를 다루고 있겠지만, 이렇다 저렇다 하는 조건들이 붙더라도 이러한 현장의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지나치게 몰아가는 점은 많은 유감을 낳게 합니다. ‘교육부는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기재부는 그렇지 않다’라는 식의 주장과 ‘(도농 상황 고려 없이) 지역마다 임용된 전체 교사의 시수를 합쳐서 평균을 따져보면 고등학교 교사들의 보통 평균 시수(15~16)에 달해 교사를 충원할 수 없다’라는 식의 주장은 현재 운영상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묵인하고 갈 수밖에 없다는 변명처럼 들려 매우 아쉬울 따름입니다. 제도가 성공하려면? 학교의 모습을 상상하면 찰리 채플린 주연의 ‘모던타임즈’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시 한번, 답은 명료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임교육을 구현하기 위한 학점제와 현실의 괴리

‘잠자는 교실을 깨운다.’ 좋은 취지입니다. 현행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학생의 졸업 요건은 수업의 2/3를 출석하는 것이기에 등교해 교실에 있는 그 자체가 졸업 요건을 충족하게 됩니다. 고교학점제는 잠자는 아이들, 잠자는 교실을 변화하기 위해 책임교육 방향을 제시하며 학점제를 이야기합니다. 즉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누적하여 졸업하는’ 것이 학점제입니다. 그렇다면 이수 기준은 무엇일까요?
고교학점제 연구학교가 시작된 2018년 이후 학점제를 도입하기 위한 ‘이수 기준’에 대한 연구는 계속 미뤄져 왔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현실 학교의 평가 체계가 유지되고 있는 점에서, 또 일선 학교 교사의 역량에선 연구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들이 원인이었을 겁니다. 실제 연구학교들이 해당 주제로 보고서를 제출한 경우는 83개 학교 중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극히 드문 경우였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2022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연구로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 운영 매뉴얼』이 국어, 영어, 수학 기초 교과들에 맞춰 개발됨으로써 방향을 드러냅니다. 이 매뉴얼에서 제시하는 과목 ‘이수 기준’은 ‘최소 성취수준’입니다. 해당 매뉴얼 5쪽에 최소 성취수준은 ‘각 과목의 교수·학습이 끝났을 때 학생들이 성취하기를 기대하는 지식, 기능, 태도에 최소한으로 도달한 정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최소 성취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가 미이수 상태이기에 최소 성취수준을 진술하고 그러한 진술에 부응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이수 기준 충족 요건이 될 것입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 운영 매뉴얼(국어, 영어, 수학)』, 2022. 3.
하나만 더 짚고 제가 걱정하는 점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짚을 점은 바로 선생님들이 쉽게 오해하시는 것이 ‘책임’교육의 주체가 학생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학생이 과목에서 성취해야 할 성취기준과 그에 대한 성취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책임’은 학생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하실 텐데요, 제도가 이야기하는 ‘책임’의 주체는 학교입니다. 학교는 수업 및 평가 계획에서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 계획을 수립하여, 학기 초 진단평가를 통해 최소 성취수준 미도달 예상 학생을 미리 파악하고, 방과 후 지도나 보충 과제, 멘토링 등을 통해 미도달을 예방할 뿐 아니라, 학기 말 평가 결과 미도달 학생에 대해서는 보충 지도 프로그램을 운영해 최소 성취수준에 도달하게 하는 ‘책임’의 주체입니다. 저는 이러한 일련의 계획과 방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미래의 제 하루가, 저의 일 년이 더 빡빡해(?)질 것 같은 답답함과 두려움은 왜 생기는 걸까요?
이제 학점제 도입과 관련해 제가 우려하는 점 2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근본적인 문제로 ‘미이수’가 정말 미이수를 고려한 것인가입니다. 지면으로 나눌 순 없지만, 제가 아는 바로는 미이수는 정말 학생이 이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 대학처럼 ‘F 학점(Fail)’을 부여해 이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책임’을 학생이 질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초기 의도(?)는 ‘고등학생에게 적용 가능한가’라는 현실적 질문을 만났고, 공교육 기능에 대한 철학적 고민도 함께 따랐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어쨌든 다양한 논의와 고민 끝에 ‘I 학점(Incomplete)’이 도입되고 적어도 학생을 ‘최저 성취수준’에는 도달하게 함으로써 책임교육을 완성하겠다는 방향으로 전환된 점은 공교육의 기능과 목적에 부합하는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미이수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취지의 부담이 온전히 학교가, 다시 과목 담당 교사가 짊어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짊어진다’라는 표현이 어색해 보입니다. 당연한 교사의 책무인데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알고 있었음에도 왜 못하고 있었을까요? ‘안’하고 있던 걸까요? 저는 다시 현실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 명의 교사에겐 너무 많은 학생과 너무 많은 행정 업무가 함께 있습니다. 교사는 수업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육이란 이름 아래 행해지는 수업이라는 행위와 더불어 수업 연구와 평가와 기록이라는 정말 많은 절차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존재니까요. 성취기준을 분석하고, 성취수준을 정해서, 진단평가를 통해 학생 수준을 파악하고, 맞춤형 교육을 통해, 학생이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고, 교사도 성취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지 않은 것인지, 못한 것인지, 개인도 반성해야겠지만 시스템 역시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새로운 제도, 시스템이 도입될 때는 현재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현재 시스템이 새로운 시스템을 수용할 수 있는지가 충분히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엔 고교학점제는 대책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둘째, 학점제의 또 다른 핵심은 성취평가제의 구현입니다. 우리는 E 수준과 I 수준을 어떻게 구분할지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사실 고교학점제의 성패는 성취평가제의 구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취평가제의 의미는 아래와 같습니다.
성취평가제는 준거참조평가 개념을 기반으로 한 학생평가 체제이다. 준거참조 평가는 준거에 비추어 학습자들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관심을 두는 평가이며(성태제, 2010), 학생의 성취점수를 정해진 준거에 비추어 직접적으로 해석하는 평가이다(Nitko, 1980). 즉, 학생이 무엇을 어느 정도 성취하였는가에 대하여 그 영역의 준거에 비추어 평가하는데, 영역의 준거는 교육과정에 근거하여 개발된 교과별 성취기준을 의미한다. 성취기준은 각 교과목에서 학생들이 학습을 통해 성취해야 할 지식, 기능, 태도의 능력과 특성을 진술한 것으로 교수 학습 및 평가의 실질적인 근거가 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중등학교 성취평가제 운영과 안정적 정착을 위한 과제』, 2012. 6.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평가의 준거는 국가 수준에서 제시한 성취기준이고, 학생이 그러한 성취기준을 얼마나 달성했는가를 판단하는 준거는 성취수준이 될 것입니다. 고교학점제는 성취수준을 근거로 학생의 학습 결과를 판단해 학점을 부여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각 지역과 학생들의 상황이 모두 달라 국가에서 개발한 성취수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교사가 성취기준을 근거로 학생의 상황을 반영해 성취수준을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문제는 이러한 교사의 판단 결과를 상급 기관이 온전히 수용할지에 있습니다.
성취평가제와 관련한 뉴스를 보면 ‘자사고는 이제 메리트가 없어졌다’라거나 ‘교사들의 성적 부풀리기가 재연된다’라는 식의 비판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후자인 ‘성적 부풀리기’는 교사의 평가권에 대한 사회의 불신을 반영한 용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는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야 하는 대학의 목소리를 대변합니다. 입시기관처럼 운영되는 고등학교의 내신 등급제가 폐지되고 절대평가 체제로 전환된다면, 게다가 성취수준을 교사가 판단하고 성적을 부여하는 시스템이라면 성적이 부풀려져 더더욱 변별이 어렵다는 생각을 담은 듯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점은 교육부도 우려하고 있는 지점이기에 절대평가 체제로의 전환이라는 성취평가제의 시행이, 자칫 여러 보완책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오는 상대평가 요소들로 인해 그 본래의 취지와 기능을 상실하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가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잊은 고교학점제의 핵심 교육과정 자율화와 학교 혁신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근본적 문제의식은, 학교의 사정이 다 다름에도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일반고 교육과정의 보통교과 과목들이 모든 고등학교가 동일하게 편제하고 따라가는 모습을 보며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떤 학교는 교사가 30명뿐이고 어떤 학교는 교사가 90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어떤 학교는 전체 학급이 9개이고 어떤 학교는 전체 학급이 40개를 넘어가는 상황에서, 어떤 학교는 도시에 어떤 학교는 농촌에 있는 상황에, 과연 모든 고등학교가 국가 수준 교육과정의 과목을 모두 편제하며 획일화되는 상황이 과연 고교학점제가 추구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역뿐이 아닙니다. 전국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물론 운영 방식은 다릅니다. 하지만 모든 학교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일괄 편제하고 선택권 보장이라는 이름으로, 고교학점제 구현이라는 이름으로 무비판적으로 획일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수요자를 생각했다는 주장도 맞지 않습니다. 수요자인 학생들이 모두 같은가요? 학생들의 꿈이, 진로가 그렇게 일률적이었을까요? 모든 학교가 변하고 있는 교육과정의 모습, 그거면 되는 걸까요? 다시, 고교학점제가 추구했던 의도와 취지를 고민해보고 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성하면서 조금은 보다 천천히 준비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은 무엇인지, 지역 사회와 학교가 함께 만들 수 있는 교육과정은 무엇인지, 학교를 운영하는 교사들의 욕구는 무엇이고 어떤 수업을 하고 싶은지. 교사들은 지치고, 평가 도입은 성급하고, 교육과정은 획일화되는 이러한 변화가 옳은지, 다시 한번 신중히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 글을 준비하며 숲소리 2호에 실었던 글을 다시 읽었습니다. 2년 전 저는 글에서 고교학점제의 다양한 이상도, 한계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교학점제의 그러한 이상들이 구현되기 위해 가장 전제되어야 할 점은 학교의 혁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을 마치는 지금도 그때의 말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교육의 변화는 고교학점제라는 제도적 변화도 필요하겠지만, 학교 문화 혁신을 통해 비전을 세우고 구성원이 협력하지 않으면 어떤 제도가 도입되어도 성공하기 힘들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그리는 학교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학교가 바라는 인재상은 무엇일까?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욕구는 무엇인가? 수업에 대한 교사들의 욕구는 무엇인가? 원하는 교육과정을 구현하려면 필요한 요건은 무엇인가? 공동체는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가? 제약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다양한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질문들을 함께 해결하면서 만들어가는 교육과정. 그것이 고교학점제가 추구하던 교육과정 자율화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그것이 학교 혁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혼란할수록 본질을 물으며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가 되길 바라며 마칩니다.
모두가 존중받으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 어려운 길을 즐겁게 가보려는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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