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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비평]팬데믹 이후, 교실의 역할은 무엇인가

팬데믹 이후, 교실의 역할은 무엇인가

손현원(천남중학교 체육교사)

1. 코로나19와 스마트폰 세대

10살이 채 되기 전부터 컴퓨터를 접하고 자란 저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고, 소프트웨어도 깔았다 지웠다 하며 놀았습니다. 제 삶에 아주 자연스럽게 컴퓨터가 녹아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자격증 시험을 보거나, 공부하지 않았음에도 한글 오피스, 엑셀부터 영상 편집까지 컴퓨터로 잘 해냅니다. 반면 제가 신규시절 나이스 로그인조차 어려워하셨던 40대 후반 선생님은 10여 년이 지나고 코로나19로 인한 원격수업이 어렵다며 명예퇴직을 하셨습니다.
2010년 저는 첫 스마트폰을 장만했습니다. ‘휴대전화로 컴퓨터에서 하던 일들이 다 된다니!’ 정말 신세계를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12년이 지난 지금은 컴퓨터를 거의 쓰지 않을 정도로 스마트폰이 대부분의 역할을 더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2022년 중학생인 2009년~2011년생들은 조금 과장해서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태어난 세대입니다. 스마트폰으로 게임도 하고, 영상도 보고, 친구도 사귀고, 궁금한 건 물어보는 것보다 검색하는 게 익숙한 세대지요. 코로나19로 인해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었을 때도 걱정보다 빠르게 학생들은 적응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원격수업은 낯선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코로나19 확산 이후로 학교에서는 원격수업, 회사에서는 재택근무 등 공간의 제약을 넘어 학습과 업무가 사회에 자리잡히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있지요. 그렇다면 스마트폰을 손에 잡고 태어난 지금의 학생들은 원격수업에 실질적으로 잘 적응하고 있을까요? 저는 사실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코로나19 이후 학력이 떨어지고, 확진자가 30만 명을 웃도는 이 시기(2022년 3월)에 전면 등교를 하는 거겠지요. 이들이 원격수업에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2. 요즘 학생들에게 교실이 필요한가?

저도 4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입니다. 처음 육아를 공부할 때 이런 내용을 봤습니다. 아이에게 절대 쥐여주면 안 되는 1순위가 스마트폰이라고 합니다. 꼭꼭 숨겨놨다가 최대한 늦게 사용하도록 하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끄덕였지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그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 제가 집에서 스마트폰을 해야 하거든요. 저의 아이는 두 돌이 채 되기 전에 스마트폰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선택해서 보고 뒤로가기를 눌러 나가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이게 잘못된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가 자라서 배우고 일할 세상은 지금과 분명 다를 테니까요.
학생들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스스로 학습지를 풀고 틀린 문제는 풀이를 보고 공부합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책이나 그림책 등 독서를 합니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알고 싶어 늦은 시간까지 탐구합니다.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고 자신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표현합니다. 이런 학생은 어떤 학생일 것 같나요? 이런 학생이 많이 있을까요? 사실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이렇습니다. 이미 학생들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어릴 때부터 태블릿으로 학습지를 풀고, 틀린 문제는 원격으로 풀이를 봅니다. 웹툰과 웹소설을 통해 하루에도 몇 시간씩 독서를 합니다.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SNS로 소통하며 그 어떤 세대보다 넓은 인간관계 만들고 있습니다. 유튜브로 자기가 관심이 있는 채널을 구독하고 늦은 시간까지 탐구합니다. 부모님이 스마트폰을 뺏거나 금지해야 할 정도로 말이죠.
스마트폰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언제 주느냐가 아니라 사용 방법을 어떻게 알려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시대에 학생들이 100년 전처럼 교실에 앉아 똑같은 내용을 똑같은 속도로 배워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런데도 학생들이 교실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학교의 역할은 무엇일까?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하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장소가 바로 학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초등학교보다는 중학교, 중학교보다는 고등학교에서 지식을 배우는 학습의 기능을 많이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현장에서 경험한 중학교는 학습 부분보다 돌봄의 기능이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돌봄이란 아이 또는 학생이 일정한 공간에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학생일 때인 1990~2000년대의 학교는 학습을 위한 역할이 훨씬 컸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입시를 위해 수업을 열심히 들어야 했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교사들은 일명 ‘사랑의 매’를 활용해서 채찍질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활지도까지 되는 일거양득의 방법이었지요. 이후 2010년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되면서 교사들은 사랑의 매를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진통을 겪으며 사랑의 매를 내려놓은 교사들이 손에 든 것이 바로 ‘교육학’입니다. 학교가 정한 규칙을 통해 학생을 통제하던 방식에서 함께 약속을 정하고 지키는 방법으로 변했고, 학생들의 성적향상만큼이나 정서적 안정과 학교 적응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실에서 제왕적이던 교사는 권위를 내려놓고, 학생 개개인에게 마음으로 다가가는 방법을 통해 학생들을 만납니다. 바로 돌봄의 역할에 더욱 힘을 쓰게 된 것이지요.
어쩌면 당연한 순서인지도 모릅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나서 빠르면 1~2년 안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기도 합니다. 이처럼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교육 서비스를 경험한 부모는 학교의 역할에 돌봄이라는 개념이 크게 자리잡혀 있습니다. 당연히 원하는 수준도 높습니다. 공부를 위해 학교에 가던 국민학교 시절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학교가 돌봄의 기능을 맡아주지 못하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아이가 안전한 공간인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야 마음 놓고 일도 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는데 그것이 안 되니 참 어려운 거지요. 거기다 학교에 가지 않으니 아이의 학력이 떨어질까 걱정도 큽니다.
실제로 코로나19를 겪으며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떨어졌습니다. 그 원인을 찾아보았을 때, 학교 교육은 온라인 학습 등으로 제공되었기 때문에 학습의 부재만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등교하지 않는 학생의 불규칙한 생활에서 오는 돌봄의 부재가 크다고 봅니다. 실제로도 전면 등교를 요구하는 부모들은 학습적인 부분보다는 돌봄에서 오는 어려움 때문에 전면 등교를 원했습니다. 22년 새 학기 개학을 앞두고 대부분의 학교가 등교 방식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중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중학교 이상 고학년 자녀를 둔 부모의 전면 등교 희망 비율이 80%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교육부도 맞벌이 부모처럼 돌봄이 어려운 사람들의 요구를 묵인할 수 없었는지 2022년은 확진자가 폭증하는 상황에서도 전국 모든 학교가 전면 등교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요즘 학생에게 학교는 더 이상 학습만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학원은 학습을 위한 공간으로 인식하지만, 학교는 친구들과 만나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자신이 좋아하는 예체능이나 독서, 동아리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생활공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매일 다녀야 하는 학교에서 공부만 해야 한다면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며 학교의 돌봄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학생도 학부모도 학교의 돌봄 기능에 더욱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중학교의 경우 학습의 기능보다 돌봄의 기능이 더 중요합니다. 사춘기의 감정선이 요동치는 시기의 학생들이 가득하니까요. 또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도심에 있는 학교보다는 시골에 있는 학교에서 돌봄의 기능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그렇다면 학교는 돌봄을 위한 준비가 얼마나 되어있을까요? 그 돌봄을 맡아야 하는 교사는 어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까요?

4. 마스크가 가져온 교실의 변화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학교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개학이 미루어지고 대면 수업이 원격수업으로 전환되고, 다시 대면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는 모두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2022년 코로나19 사태 3년째인 올해 중3이 되는 아이들은 중학교 생활 내내 마스크를 쓰고 생활했습니다. 마스크는 교실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원격수업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교사가 영상을 찍어서 보여주고 학생들에게 과제를 받는 방식인 과제제시형 원격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충남교육청에서는 ‘어서 와! 충남 온라인학교’를 통해 과목별 수업을 찍어 원격수업을 처음 겪는 교사들을 지원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에 준비되어 있지 못한 상태에서 개학을 맞은 교사들에게 단비 같은 자료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수업을 다른 교사가 수업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교사의 얼굴도 모르고, 어떤 친구들과 같은 반인지도 모른 채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과제제시형 원격수업에 적응할 때쯤부터 줌(zoom), 구글 밋(meet) 등의 화상 프로그램을 활용한 실시간 쌍방향 원격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지요. 이어서 쌍방향 원격수업을 하기 위한 지원들이 교육청에서 이루어졌고, 학생 대부분이 쌍방향 원격수업에 접속이 가능해졌을 때, 교사들의 첫 번째 과제는 바로 아이들을 원격수업장으로 불러들이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수업은 출석만 부르다 20분이 지나가는 때도 있었고, 접속하지 않는 학생을 부르기 위해 얼굴도 잘 모르는 학생에게 전화하여 접속하라고 채근해야 했습니다. 교사의 성화에 못이긴 학생들이 접속은 했지만 바로 수업을 위한 두 번째 과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화면을 켜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쌍방향인데 학생들이 화면을 켜지 않으니 오히려 영상과제를 주는 것보다 못한 일방통행 수업이 되는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잘 되는 날은 대면 수업 못지않게 수업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대면 수업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고 학생들과 선생님이 매일 만나는 날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모든 학생이 마스크 뒤에 표정과 자신을 숨기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재난의 시대, 교육의 방향을 다시 묻다.」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스마트폰 세대로 상당수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온라인으로 많은 것을 접하고 또 익히고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음식점에서 조용히 하라고 엄마가 쥐여준 스마트폰 덕분에 취향도 뚜렷해지고, 일찍이 학습지를 해왔기 때문에 학습지 회사가 개발한 태블릿 PC 학습 방식에도 익숙하다. 구구단도 온라인으로 외우고, 영어나 수학, 국어 공부도 스스로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자신이 알고 싶은 관심사를 아주 깊이 파고들 줄도 안다.
저는 이 부분이 와 닿았습니다. 확실히 요즘 아이들은 참 빠릅니다. 예전에 비해 정보가 풍부하니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아졌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스마트폰과 모니터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서로의 표정을 바라보고 목소리를 내며 이야기하는 시간보다 채팅창의 텍스트와 영상을 보는 시간이 많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해 아이들이 점점 더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적인 성향을 보입니다. 상대의 감정을 살피는데 서툴고, 감정을 표현하는데 어려워하며, 감정 통제도 어려워합니다. 그러다 보니 직접적인 만남보다는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 활동하는 것이 더 편하게 느낍니다. 그리고 교실에서 마스크는 온라인 공간처럼 자신을 숨길 수 있는 벽이 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친구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공동체 의식이 없어 교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몇 해 전 중학교 3학년 담임일 때의 일입니다. 종례 시간에 글쓰기로 시 대회 상을 받은 친구에게 축하해주자고 했더니 한 아이가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쟤가 상 받았는데 왜 축하해줘야 해요? 저한테 좋은 일도 아니잖아요.” 종례 후 집에 가기 바쁘다는 그 아이를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라는 것을 이야기했지만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같이 웃고 싶어지고, 슬퍼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위로를 하고 싶어지는 것을 왜 모를까요.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네가 그 말 했을 때 상대방 표정을 봤으면 알 텐데.’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 아이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이런 아이들이 반마다 꼭 있다는 겁니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에서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상대의 감정을 읽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울까요.

5. 부모이자 교사인 30대의 나 그리고 우리

지금 30대 후반인 저는 학창 시절 IMF 사태를 겪으며 자랐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다니시던 직장을 잃게 되었고, 함께 자란 친척의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바늘구멍인 취업을 위해 몇 년을 입시에만 몰두해야 하는 경험도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협동보다는 경쟁을, 공감보다는 이익을,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라 온 것 같습니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가슴 속 깊이 가진 이들이 부모와 교사로 살아가는 지금, 온라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 편한 학생들에게 어떻게 공동체 의식과 공감, 배려, 격려 등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학생들을 잘 돌볼 수 있을까요?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 줄 아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학생들을 잘 돌보기 위해서는 그런 돌봄을 받아본 사람이 잘하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교사가 되기 전까지 학생들을 잘 돌볼 수 있는 경험을 많이 해보지 못했습니다. 초, 중, 고등학교는 물론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학교에서조차 그런 방법들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요. 교사가 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래도 꽤 학생들을 잘 돌보는 교사라고 생각합니다. 방법을 몰랐지만, 부모님이 주셨던 조건 없는 사랑이 제 안에 남아 있고, 부모가 되면서 깨달은 것들과 잘 돌보기 위해 꾸준히 공부한 내용들이 빛을 내고 있습니다. 제 내면에 자리한 고통을 돌아보고, 학생을 이해하고 공감으로 만납니다. 교실을 심리적, 신체적으로 안전하게 만들고, 학생들이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충분한 돌봄이 학생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경험은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한 일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듯이 학교에서 돌봄 기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순기능이 가정으로, 사회로 연결되리라 믿습니다. 아직은 코로나19의 풍파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언젠가 이날들을 돌아보며 잘 버텨왔노라 자부심을 느끼는 날이 얼른 오길 기원합니다. 오늘도 교실에서 학생을 돌보고 있는 많은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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