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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별 수업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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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드는 교과 융합 수업(체육&미술&국어)

께 만드는 교과 융합 수업

손현원(천남중학교 체육교사)

1. 수업의 시작 ‘쉽게 던진 한마디’

겨울 방학 늦은 밤, 침대에 누워 SNS를 하고 있었습니다. 릴스 영상으로 올라온 마임을 보며 ‘체육 시간에 표현활동으로 마임을 해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천안에서 제일 작은 중학교인 천남중학교에서 체육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교생 52명, 학년당 1학급, 교무실 1개, 교사 12명의 작은 학교지요. 우리 학교는 혁신학교와 예술꽃씨앗학교라는 커다란 두 개의 축을 가지고 학생과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꽁냥꽁냥 재미있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희 천남중학교는 몇 가지 문화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자연스러운 교과 융합 수업입니다. 제가 천남중학교로 처음 전입했을 때도 이미 국어, 미술, 영어, 과학 선생님이 교과융합수업을 하고 계셨지요. 혁신학교여서 또는 누가 강요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순수하게 선생님들이 더 좋은 수업을 하고 싶은 마음에 수업을 함께하고 계셨지요. 저희는 교무실에서 언제든 편하게 수업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대부분 선생님이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에 참여합니다. 그날도 바로 그랬습니다.
학생들이 없는 방학 중에 학교에 출근한 선생님들과 수업 이야기를 하다가 “저 이번에 마임 수업을 해보려고요”라고 무심결에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국어 선생님이 대답합니다. “마임 수업 재밌겠다. 혹시 주제 없어요? 주제 있으면 국어에서 스토리 같은 거 짤 수 있을 거 같은데.” 옆에 있던 미술 선생님도 말합니다. “스토리 짜면 연극이니까 배경이나 소품 필요하지 않아요? 미술에서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렇게 국어-미술-체육을 융합한 ‘무언극’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저희 학교에는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선택적 함구증이라고 하더군요. 심리적인 이유인지, 정신적인 이유인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말을 하고 싶어도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손짓·발짓으로 소통하거나 필담을 나누었지요. 그 아이가 문득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시각장애가 있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골볼’을 수업내용으로 가져왔었지요. 골볼은 시각장애인 스포츠로 눈을 가리고 방울이 들어 있는 공을 활용한 구기 경기입니다. 저는 골볼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장애가 있는 친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했습니다. 올해도 이번 마임 수업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배움으로 이어지길 바랐나 봅니다.
그날 이후 무언극 단톡방을 만들고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공유하고, 피드백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2. 교육과정에 녹이기

저희 세 사람은 3년째 같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함께 근무한 2년 동안 여러 번 교과 융합 수업을 진행했지요. 이번 무언극 수업을 준비하며 선생님들의 공통적인 바람은 ‘학생들이 수업에 깊이 몰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였습니다.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개학 전 몇 가지 조치를 했습니다.
첫 번째는 시간표를 연속적으로 배치하여 학생들이 긴 호흡으로 수업에 임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월요일 1, 2교시 미술, 3교시 국어, 4교시 체육으로 월요일 오전은 무언극 수업에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두 번째는 코티칭입니다. 무언극을 만들기 위해서 처음에는 국어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연습을 위해 체육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요. 3월은 국어 교사가 중심이 되어 오전 대부분을 스토리보드 만드는데 몰입했습니다. 4월은 미술과 국어가 2시간씩 진행되었고, 5월 이후로는 미술과 체육이 2시간씩 진행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수행평가의 통일입니다. 학생들은 무언극을 통해 국어, 미술, 체육 수행평가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큰 학교에서는 시간표를 연속적으로 조정한다거나, 안 그래도 수업이 많은데 서로의 수업에 참여하여 코티칭을 한다거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수행평가를 계획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저희 학교는 아주 작은 학교라서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어떤 수업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요. 그 학교 상황에 맞는 수업 방법이 있는 거니까요. 저희도 수업을 계획하며 “천남중학교 아니면 언제 이런 수업을 해보겠어요.”라며 즐겁게 임했습니다.

3. 수업 현장에 녹이기

드디어 개학입니다. 3학년을 대상으로 3월부터 넉 달간의 교과 융합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학생들은 3개 조로 나누어 주제를 정하기 위한 독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몇 개의 소설, 시 등을 나누어 읽고 마음에 드는 책을 정합니다. 그리고 함께 읽어봅니다. 목적 없는 독서와 목적 있는 독서는 분명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사실 우리 학교 학생 중 책 한 권 읽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이번에는 무언극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니 열심히 독서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렇게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통해 주제를 정했습니다. 그리고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무언극 스토리보드를 작성합니다. 적게는 8컷에서 많게는 12컷까지, 대사가 없어서 이야기 전달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도 고민해 봅니다.
4월이 되어 스토리보드 초안이 만들어졌습니다. 부족한 표현을 채워줄 배경과 소품들을 미술 시간에 만들기 시작합니다. 어도비 프로그램과 타블렛을 활용하여 직접 손으로 배경을 그립니다. 시대적 배경을 살려줄 소품도 함께 찾아봅니다. 4월 말쯤 미술 선생님이 예술꽃씨앗학교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학생들의 장기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할 학생문화원 공연장을 대관하였습니다.
4월 중순 스토리보드가 완성되고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은 몸으로 표현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표현 자체를 어려워하는 학생이 많았습니다. ‘몸으로 말해요’를 통해 간단한 단어표현부터 시작하여 2명이 함께 문장 표현하기, 3명이 상황 표현하기로 진행하니 부끄러움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학생들이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더욱 잘 전달되는지 궁금해하며 서로 토의하는 모습을 보일 때쯤 스토리보드의 내용을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 학교에서 연습 장면
연습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나고 드디어 6월 16일 공연장에서 무언극을 촬영했습니다. 학생들은 버스를 타고 학생문화원으로 이동하여 공연장에 들어설 때 바짝 긴장한 모습을 보였지만, 1시간 반 동안 예행연습을 진행하며 조명과 동선을 조절하다 보니 어느덧 긴장이 풀리며 이때까지 연습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몇몇 학생들은 촬영이 끝나자 아쉬움과 기쁨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수행평가를 끝냈다고 이렇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걸 보니 정말 깊게 몰입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계획할 때 바람이었던 수업에 깊이 몰입하는 것이 성공했구나 싶었습니다.
▲ 윤동주
▲ 허생전
▲ 만무방

4. 수업의 끝 ‘피드백’

촬영이 끝나고 그다음 주 수업은 영상 편집 수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영상은 전문업체에 의뢰하여 편집을 맡겼지만, 학생 자신도 편집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모두가 동의해서 영상 편집을 이번 교과 융합 수업의 마무리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예술꽃씨앗학교 프로그램(환경디자인)과 연계 진행하여 활동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담당 선생님들과 식사를 계획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못하게 되어 아직 깊은 피드백 시간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아마 2학기 수업 구상을 위해 모였을 때 나누겠지요. 이번 무언극 교과 융합 수업을 진행하며 제가 느낀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시간과 정성이 충분하다면 학생들은 교사가 생각한 이상으로 잘 해낸다는 것, 둘째, 여러 선생님이 함께 수업하면 그 시너지 효과는 곱셈 이상이라는 것, 셋째, 교과 융합 수업은 정체되어 있는 나의 수업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체육수업에서 신체활동을 빼면 체육수업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교과 융합 수업은 어쩔 수 없이 신체활동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어서 깊게 발을 담그기가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제 압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교과의 경계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체육수업의 표현활동만으로 마임 수업을 했다면 표현 기술과 방법을 익히는 데 초점을 두게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무언극 수업은 아이들이 평생 추억할 수 있는 좋은 수업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선생님도 기회가 온다면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 발 내딛어보는 건 어떠신가요?
“선생님! 같이 수업하실래요?”
손현원(천남중학교 체육교사)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은 체육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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