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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별 수업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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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도를 가르치며, 만학도께 배우다

만학도를 가르치며, 만학도께 배우다

김두리(남면중학교 역사 교사)
저는 나무학교 성장교실 3기로 태안 남면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두리입니다. 저는 지난 1년 간의 육아휴직을 마무리하고, 2022년 3월 남면중학교로 복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학년 학생들과 일주일에 3시간을 사회 수업에서 만나는데요, 14명의 1학년 학생 중에는 2009년생이 아닌 1960년생의 ‘박태영 님’이 계십니다. 박태영 님은 저희 교장 선생님보다 연세가 많으세요. 처음에는 제가 만학도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고 교감 선생님께 전화를 받고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요. 복직하는 것만으로도 심적 부담이 상당했는데, 만학도라니...(T_T) 하지만 학교 사정으로 인해(?) 제가 2학년 담임이 되면서 박태영 님의 담임이 되진 않았지만, 소규모 학교다 보니 오며 가며 자주 뵙고 일주일에 3시간은 꼭 만나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박태영 님과의 만남으로 인해 생겨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호칭에 대한 논의(?)

처음에 만학도가 입학한다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선생님들과 호칭에 대해서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박태영 선생님? 박태영 님? 박태영 학생? 등등 어느 호칭이 가장 부르기에도 적절하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부담스럽지 않고 좋을까를 생각했을 때 ‘박태영 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게 가장 좋겠다는 의견이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신 분이기에 높임말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박태영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왔었는데, 그렇게 되면 교과 교사와의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어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어요.
지금도 호칭과 함께 박태영 님을 부르는 것이 어색해 수업 시간에 최대한 박태영 님을 부르지 않으려고 스스로 노력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호명해야 할 때는 ‘박태영 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2. 자꾸 신경 쓰이는 사회 수업 시간

저는 역사 전공자로서 1학년 사회를 가르치고 있기에 사회 과목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아마 중학교 사회과 선생님들이라면 다들 느끼실 거에요. 중학교에 근무하는 사회/과학과의 애환입니다.) 역사는 제 전공이다 보니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은 이야기도 마구 끄집어내어 자세하고 재미있게 설명해줄 수 있지만, 사회 교과는 솔직히 제가 고등학교 사탐 시간에 배운 내용으로 돌려막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어 박태영 님 앞에서는 자꾸 신경이 쓰입니다. 게다가 박태영 님은 전라남도 신안에서 나고 자란 분이라 염전, 바닷가의 생태계 등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알고 계신데요, 그런 박태영 님 앞에서 제가 ‘해안 지형’, ‘우리나라의 자연 경관’ 등을 설명할 때 제 스스로가 너무 작아지는 게 느껴집니다.

3. ‘우리나라의 자연 경관’ 갤러리 워크 활동 / 연륜과 경험을 느끼다

사회 수업 시간에 ‘우리나라의 자연 경관’ 중 희망하는 자연 경관 하나를 정해 자료를 만들어 갤럴리 워크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박태영 님의 모둠은 ‘설악산 국립공원’을 주제로 설악산의 자연 경관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여행 계획서를 작성해 발표하였는데, 박태영 님은 설악산에 여러 차례 다녀온 실제 경험을 토대로 모둠장이 아님에도 모둠원을 이끌며 효율적으로 발표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다른 모둠은 ‘북한산 국립공원’을 주제로 삼아 발표 자료를 준비했는데, 발표하는 친구보다 더 자세히 북한산에 대해 조언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역시 연륜과 지혜는 뛰어넘을 수 없음을 교사로서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3. 박태영 님이 좋아하는 나?!

박태영 님은 FM을 강조하는 원칙주의자 성격에 가까운 분입니다. 그런 이유로 다른 선생들에 비해(?) 원칙을 강조하며 학생들을 지도하는 저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합니다.(^^;) 우리 학교 1학년 학생들은 텐션이 하늘을 찌르고 많이 시끄러운 전형적인 중학생의 모습인데요, 박태영 님은 못다한 학업을 이어나가겠다는 부푼 꿈을 갖고 중학교에 입학하셨는데, 이렇게 시끄러운 아이들 속에서 속앓이를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교사-학생의 수직적인 위계가 강했던 예전에 비해(교사가 교실에 들어오면 숙연해지던 옛날의 교실 모습) 교사-학생 사이가 수평에 가까울 정도로 위계가 없어진 최근 교실의 모습(교사가 교실에 들어와도 아랑곳없이 떠드는 최근의 교실 모습)에 많은 충격을 받으신 듯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단번에 조용히 시키고 절제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제 수업 시간에는 스트레스를 덜 받으시는 편이라고 하네요. 박태영 님이 4~5월부터는 매 쉬는 시간마다 복도로 나와 서 계시는 모습을 봤는데, 저는 허리가 안좋으셔서 쉬는 시간마다 운동을 하시는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교실이 너무 시끄러워서 피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힘든 1학기를 지나오셨는데 2학기에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시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어요.

5. 도움반 학생을 품어주는 박태영 님

우리 1학년에는 총 3명의 특수교육대상 학생이 있습니다. 2명의 학생은 통합 학급 수업에서도 교과 교사 수업을 잘 따라오는 편인데, 한 학생은 대소변 실수도 잦고, 통합 학급 수업에 잘 따라오지 못해 모둠 활동 등을 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1학년 담임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박태영 님의 손주 중 특수교육 대상자가 있어서 그런지 평소 창체 시간이나 교과 시간에 그 친구를 할아버지의 마음으로 잘 품어주신다고 합니다. 저도 사회 시간에 갤러리 워크 활동을 할 때 박태영 님이 그 친구의 엉뚱한 설명을 끝까지 들어주시려고 노력하고 그 친구에게 이것저것 질문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6. 마지막으로 박태영 님께 드리고 싶은 말

담임과 담임 반 학생으로 만났다면 박태영 님의 마음 깊숙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을텐데, 담임이 아니라서 다소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이미 사회에서 나름대로 성공하신 분께서 늦은 나이에 학업을 다시 시작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텐데, 코로나 등으로 어느 때보다도 험난했던 2022학년도 1학기를 슬기롭게 마무리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드리고 싶습니다. 2학기에도 잘 부탁드리고 수업 시간에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두리(남면중학교 역사 교사) 태안 남면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11년차 역사 교사입니다. 호기심이 많고 관심사가 다양해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고 싶은 욕심 많은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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