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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별 수업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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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개학과 늙은 담임 이야기

“어, 그 화면 오른쪽 위에 사람 모양 아이콘 눌러 봐. 됐니? 거기서 로그인 하고 우리반 찾아와라.”
“과학 과제 문서 제일 밑에 봐! 구글 링크를 누르고 들어가서 답안 작성하는 거야.”
“영어 과제 한글 문서가 안 열린다고? 지금 컴퓨터로 하는 거 아니니? 태블릿이라고? 그럼 문서 열리는 앱을 따로 깔아줘야 하는데...”
“이 톡 보는 대로 샘에게 전화해라! 오늘 네가 강의에 안 들어와서... 그러면 출석인정이 안 된대.”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이 시작된 날 중학교 1학년 교무실의 흔한 풍경입니다. 교무실이 아니라, 거의 재난대응본부 콜센터 수준이지요. 신기한 건 지난 한 달 만에 저의 엄지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생겨서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엄지손가락이 마치 토슈즈를 신은 발레리나의 발끝처럼 자판 위에서 소리를 내면서 통통 튀듯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국민들이 동요하거나 불만을 갖지 않도록 ‘다 될 것 같은’ 인상을 주면서 온라인 개학을 발표했지요. 그 입장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의 상황은 전혀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도 않고, 어떤 플랫폼으로 온라인 개학을 해야 하는지 아무런 인식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벼락이라도 맞은 듯 일은 시작되었습니다.
수업이야기나 서로 나누던 교사들의 단체 대화방에 갑자기 회원수가 3천 명 이상 늘어나고, 대화방 자체가 온라인 플랫폼별로 급속히 가지치기를 해나가더니 하루에 톡만 수백 개씩 쌓이는 일이 벌어졌지요. 그 며칠 사이에 교사들은 평소에 들어본 적도 없을 수많은 앱과 프로그램 정보를 나누고, 며칠 새 가격이 폭등한 장비를 사들이기도 하고, 사용법을 배우고, 오류를 개선하면서 거대한 집단지성을 발휘해 나가는 모습이 이 대화방에 쌓이는 톡의 내용만으로도 선연히 눈에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올해 60세, 정년을 바라보는 교사인 저도 영상의 인트로 부분을 만들어준다는 앱과, 컴퓨터 화면을 녹화해주는 프로그램과, 인공지능 자막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 그리고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몇 가지씩 줄줄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교사들이 온라인 개학에 매달려 수업콘텐츠를 만드느라 바쁜 동안에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실제의 삶을 살고 있는 걸까요? 지난 1월부터 따지자면 4개월 째 집에서 지내고 있는 아이들이 제 때 일어나고 제 때 밥은 먹는 걸까요? 그건 다 부모들이 알아서 챙기고 있을까요? 심리적으로는 과연 어떤 상태에 있을까요? 학교와 학급에 소속감은 갖게 되었을까요? 얼굴도 모르는 담임 선생님에 대해서는 어떤 인상을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가 모두 기계와 기술과 프로그램에 미친 듯이 매달렸어야 하는 그 시간 동안 실제로 우리가 놓친 것은 없었을까요?
제가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교육은 기계나 장비가 해주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며, 기술로 교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교육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그리고 부족의 원로에게서 직접 배웠습니다. 아이들의 뇌에 내장된 나침반은 그들이 사랑하는 부모와 어른들을 지향하고 그들에게서 배우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아이들의 생존에 가장 안전하고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치 아기 새들이 깨어나자마자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새로 ‘각인’하는 것이 유전자 내장 프로그램인 것처럼 말입니다. 문명은 진보해왔지만, 실제 우리와 아이들의 뇌는 아직 부족공동체사회 때만큼만 진화해 있고요. 그래서 아이들은 이토록 진보한 문명의 시대에도 자신들을 사랑해주는 부모와 믿을 만한 어른에게서 배웁니다.
그럼 직접 만날 수 없는 온라인개학의 시대에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온라인으로라도 아이들과 심리적으로 연결하고, 그 부모들과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건 우리 마음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달린 문제일 뿐 아주 단순한 소통 도구만으로 충분한 일입니다. 오히려 기계와 기술과 프로그램 등은 지나치게 개발되어 있지요.
온라인 개학 두 번째 날 학급 대화방에 출근 전 6시 45분에 기상 톡을 날립니다.
“오늘은 금요일! 3교시엔 체육 들었다. 체육복 갈아입고 집에서라도 따라해 보렴. 영상 잘 보면 체육선생님 양말 뒤꿈치에 구멍 난 거 볼 수 있을 거야. ㅋㅋ 오늘은 오늘의 강의와 과제가 또 쌓여 있단다. 어서 일어나요! 아가씨들!”
낮엔 첫날인 어제만큼은 아니지만, 수많은 질문과 질문에 답해주는 톡이 쌓입니다. “샘은 지금 죽을 듯이 바쁘단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르쳐 줄 수 있지?” 이렇게 짐짓 엄살을 부리니 녀석들이 서로 자기 과제를 사진 찍어서 올리고, 파일 여는 법도 서로 알려줍니다.
퇴근 후 저녁 7시에는 낮에 부드럽게 엄포를 놓은 대로 강의와 과제를 완료했는지 온라인클래스에 들어가 확인을 하고는 종례로 톡을 날립니다.
“7시 24분 현재, 우리반은 오늘의 모든 강의와 과제를 미션 클리어 했네! 다들 오늘 고생했어. 그리고 칭찬받을 만하다! 불안하고 서툴고 낯선 온라인 개학도 무사히 했고, 멀리서도 서로를 도왔으며, 스스로 시간을 들여 공부하는 경험을 했으니 그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란다. 모두 정말 의젓하고 책임 있는 모습이었다. 참 대견하다.^^* 행복한 주말 보내렴. 샘은 우리반이 정말로 좋다!”
마지막으로 어제 혼자만 완강 미션 성공 축하선물을 못 받은 우리반 연희(가명)에게 카톡 선물로 편의점 아이스크림을 보내줍니다.
“연희야, 정말로 해냈더구나! 정말 대단해! 약속대로 선물 보낸다. 이제부턴 스스로 배우는 것이 최고의 보상이니, 스스로 찾아서 공부할 수 있겠지? 난 연희가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거라고 믿는다! 행복한 주말 보내^^*”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굳이 연희 부모님께도 따로 따로 카톡 선물 아이스크림을 보내며 톡을 날립니다.
“연희가 어제 오늘 전 강의, 전 과제를 너무나 열심히 해서 특별히 부모님께도 선물 보냅니다. 원래 아이들에게 보내는 선물이라 너무 작은 것이지만, 연희의 효도라고 여겨주세요^^”
지난 두 주 동안 학급 전체 부모님들과 전화 상담을 한 결과 연희 엄마가 우울증이 심해 아이를 거의 방치하듯이 길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부부가 그다지 화목하지 못하다는 것도, 아이가 이해력이 좀 떨어진다는 것도 눈치로 알게 되었지요. 세 가족이 각자 폰을 들고 함께 편의점엘 가야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게, 그 동안이라도 즐겁고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벌인 담임의 깜짝 이벤트입니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전화요금 문자를 확인하니, 아뿔싸 이번 달 음성통화 요금이 폭탄입니다. 진즉 음성통화 무제한으로 요금제를 바꿨어야 하는데... 왜 그런 건 깜빡하고 생각이 안 나는 걸까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톡 보내기로 혹사한 엄지손가락에 굳은살만 생긴 게 아니라 청개구리 발가락마냥 손가락 끝부분이 조금 더 커진 것도 같습니다. 기술만 진화하는 게 아니라, 늙은 담임의 엄지손가락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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