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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에게서 듣는 학생자치 사례와 바람

학생에게서 듣는 학생자치 사례와 바람

-천안신당고등학교 학생자치회장들의 뒷담화를 통해

이광현(천안신당고등학교 역사 교사)
학교라는 사회에는 흔히 그것을 구성하는 세 주체가 있다고 합니다. 교사, 학생, 학부모(또는 양육자). 정확한 학문적 정의는 아니지만, 주체라 하면 적어도 주관적 자의식을 바탕으로 결정 또는 행위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학교를 들여다보면 과연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학교의 주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애초에 학교의 주체가 셋이라는 논의 자체가 틀렸다고 말씀하는 분도 계십니다. 전적으로 전문가인 교사만이 학교 운영의 중요한 의사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리 있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화의 기능을 하는 교육 기관으로서의 학교는 어떻게 그러한 가치를 실현할 것인지에 대해서 먼저 충분한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가 민주적 시민성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교육내용으로서의 공식적 교육과정뿐 아니라 학생이 학교생활에서 익히는 잠재적 교육과정에서도 실현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해 보입니다.
본 글은 민주적 시민성이라는 정치적 가치를 ‘학생자치의 구현’이라는 방식으로 학생들이, 그중에도 22년도와 23년도의 학생자치회장이 학교의 운영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며 배워갔던 일련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 간의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에 관한 성토를 담았습니다. 그 때문에 학생들의 성토에서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겠지만 특정 학교에서의 사례임을 고려해 함께 고민할 사례로만 읽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1.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교 수업에 집중하기에도 벅찰 것 같은데, 학생자치회에 참가하고 운영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학생자치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어떤 특별한 목적이나 동기가 있는지 답해줄 수 있을까요?
A1. 저는 1년간 학교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행사들에서 학생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제법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 체육 대회나 학년별 교외 체험 학습, 학교 축제 등도 그렇고 여러 캠페인이나 학생자치 리그, 소규모 공연 등도 학생들이 기획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현하며 신나고 의미 있는 행사를 하고 싶어서 학생자치회에 참가했습니다.
A2. 저는 1년간 학교생활을 하며 다양한 면에서 학생들의 복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적으로 학교에 학생들이 간식을 사 먹을 수 있는 매점도 없고 교실에 웃옷을 걸어둘 옷걸이도 없어서 많이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복지를 보장할 방법은 없는지, 정말 실현하기 어려운 것인지 교장 선생님, 여러 선생님과 논의하며 우리 학교 학생들의 복지를 키워보고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
학교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복지를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니 여러분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본인들의 생각이나 목표를 실현하고자 중점적으로 노력한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1. 저는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에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주변 또래 친구들은 ‘학생회’에 대한 정보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학생회 임원 간에도 소통이 부족하고 연결이 이뤄지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전 소통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소통 시스템을 개선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가장 먼저 시도한 방법은 학생들의 이동이 가장 많은 곳에 ‘소통 게시판’을 만들어 의견을 듣고 소식을 알리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소통 게시판’은 단순 불만 사항이나 단편적인 요구, 또는 험한 말들만 기록되는 공간으로 이용되었기에 욕받이가 된 느낌이 들어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요구를 들으면서 그것을 수치화하여 요구도를 측정하고, 해결 방안까지 제안함으로써 단순 요구를 넘어설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여러 사례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천안월봉고등학교 학생회가 학칙에 학생 청원을 만들어 절차를 규칙으로 제시하고 활용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해당 규칙에 따르면 학생회가 의견을 접수해서 교장 선생님께 제안하면 다시 해당 업무 담당 선생님이 접수 의견에 대해 답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학교의 사례처럼 당장 규칙으로 도입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사례를 참고해 SNS 채널을 개설해서 요구사항을 접수하고 게시물의 ‘좋아요’ 수를 동의 여부로 안내한 뒤 청원 접수와 요구 정도의 수치화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구체적 해결 방안의 제안도 같이 받고 싶었지만, 학생들의 부담을 고려해 실제 문제 상황만 구체적으로 제시하도록 안내하고 학생회가 방안을 토론한 뒤 제안자와 소통하는 방식으로 소통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A2. 저는 학생자치회 대표 구성원 모두가 같이 의논하여 사소하지만 불편함을 느끼는 점을 포함해 여러 결점을 보완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불만 접수를 포함해 대면 소통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사소하다고 여겨진 부분들, 옷걸이 문제라던가 우산꽂이 문제, 화장실 디스펜서 설치 문제, 화장실 문화 개선 문제 등 학생들이 몸소 와닿을 수 있는 직접적인 문제부터 해결해 가고 있습니다.
3.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것도 멋지지만 현실의 문제들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민한다는 것도 멋지고 훌륭합니다. 이야기 중에도 언뜻 보인 것 같은데, 학생자치회가 하고자 했던 일들을 추진하면서 어려움은 혹시 없으셨나요?
A1. 저는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선생님들께 전달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경험했습니다. SNS 채널을 통해 접수한 사항을 선생님들과 논의하려 하였으나 선생님들은 대응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하셨는지 문제 사안에 대한 대답은 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특정 학년의 수학여행 추진 여부였는데, 선생님들의 대답이 논리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설명을 재차 요구했었습니다. 특히 부장 선생님께 진행 상황 및 추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였으면 한다고 건의하였지만, 선생님은 매우 불편해하셨고 이후 소통은 잘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있는 그대로를 학생들에게 공지할 수밖에 없었고 학생들은 당연히 잘 납득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어려움은 임기 말로 갈수록 학생들의 요구 실현 이후에서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요구를 100%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볼 수 없을지라도 나름의 실효성이 있는 제도들을 만들고 도입했는데도 학생들의 요구는 점점 차원이 높아져 학생회가 지속해서 고차원적 불만들을 접수하는 창구가 되어갔습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무력감을 심하게 느꼈습니다.
A2. 불만 사항을 학생자치회가 직접적으로 듣다 보니 서운함이 커져 매우 속상해요. 특히 학생자치회가 준비하고 노력하는 부분들이 학생들에 의해 폄하되고 무시될 때 속상함이 더욱 큰 것 같아요. 해야 할 일이 늘어나는 부분도 힘든 점이 있어요. 최근에는 학교에서 구매한 다양한 장비들과 물품들을 학생자치회가 사용하게 되면서 물품 관리의 부담이 생겼어요. 특히 고가의 전자 장비들을 사용하면서 사용을 위한 충전과 고장을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문제 등으로 피로도가 커지고 있어요. 사실 저희는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공부를 우선해야 하는 학생 신분이라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지금은 책임져야 하는 일의 양이 늘어나서 미리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느낌이에요.
A1. A2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도 더 생각나는 부분이 있어요. 학생회가 너무 ‘그들만의 리그’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 말은 특권의식을 의미한다기보다 고립된 것 같다는 의미에요. 학생자치회가 여러 학생을 대표한다는 대표성이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적어도 학생자치회장과 부회장은 학생들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인데, 선출된 사람으로서 갖는 권한이 조금도 없는 것 같아요. 학생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그저 일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요구를 저희가 하는 잘 이뤄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저희 집행부는 면접 과정을 거쳐 선발될 정도로 의욕이 충분한 학생들이었음에도 보상이 충분히 이뤄졌는지 의문이에요. 학생자치회 집행부는 자부심으로 일을 해야 추진력이 생기는데 모집단이 지지한다고 느껴지지 않음을 경험하면서 일을 해도 소용없다는 무력감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4.
여러분이 봉사를 통해 이뤄낸 성과와 그에 대한 내적 보상이 충분치 못해 많이 서운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도 많이 반성하게 되네요. 그렇다면 끝으로 학생자치회가 성장하고 활동에 보람을 느끼도록 하려면 선생님이나 학교가 어떤 도움을 제공하면 좋을지 여러분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A2. 저부터 이야기하면 학생자치회를 처음 하는 학생들을 위해 사전 교육이나 연수, 전년도 임원들과의 인계인수 등이 이뤄지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가 막상 처음에 집행부를 꾸리면 사명감만 있지,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학생자치회를 담당하고 지원하는 선생님이 안 계신 경우도 많이 있던데, 꼭 필요할 뿐 아니라 긴 호흡으로 담당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이 바뀌신 경우 선생님도 업무가 처음인 경우가 있으시고 선생님에 따라 업무 성향도 바뀌셔서 혼란스럽더라고요. 학교 상황을 어느 정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선생님이 학생자치회 업무를 담당해주시면 학교와 학생들의 사정을 고려해 충분히 지원해주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A1. 저는 학생자치회가 좌절하는 경험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생님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 넘는다’라는 표현을 많이 들었는데, 애초에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하는 데 대한 불편함이 학생자치회의 활동과 참여를 저해하는 것 같아요. 물론 학생들도 불만이 있거나 불편한 사항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격적인 자세가 아닌 협력하는 태도로 요청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교사와 학생 모두 서로의 인식과 태도를 개선한다면 보다 원만한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건 제가 ‘정치와 법’ 시간에 민주적 학교 운영을 위해 학교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고민해 봤던 건데요, ‘학교운영위원회’를 확대하는 방안을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해서 어른들의 의사 진행 과정을 학생자치회장으로 참관만 했는데요, 단순 참석을 넘어 학생, 교사, 학부모 대표가 각각 1:1:1의 비율로 구성된 의회 형식의 대의원회가 구성되어 중요 사항을 결정했으면 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그룹별 대표들을 만들어 상·하원 체제로 돌아가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렇게 되면 굳이 운영위원회의 결정을 전달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확산하고 소통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운영위원회에 참가하는 학생 대표들도 실질적인 의결권을 갖고 활동하는 것이니 선출 권력으로서의 자신감과 효능감이 생길 것 같아요. 미래 학교는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을 어린 존재로만 생각하지 않는지 스스로 경계했으면 합니다. 학교라는 사회에서 학생이라는 단일하지 않은 주체들은 서로의 욕구가 있고 그들 나름의 해결점을 사회 속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욕구 해결을 위해 도전할 기회와 과정에서 생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역량을 길러주기 위해 우리는 학교에서 우리가 안고 있던 많은 권한을 넘겨주었으면 합니다. 그들이 앞으로 우리와 동등하게 함께 살아갈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성장하고 더 멋져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동등한 위치에서 듣고 이야기해 보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존중받으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 어려운 길을 즐겁게 가보려는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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