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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별 수업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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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연재]슬기로운 환경 시민 프로젝트 제3화

프로젝트 탐구활동 - 모르는 것들에서 허우적대기1

박준일(온양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들어가며

2019년 특성화고등학교인 아산전자기계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고1 학생들과 노동인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토론 수업을 했었습니다. 한 문장 쓰기도 어려워했던 학생들이 ‘학교에서 학생들의 아르바이트를 제재해야 한다.’, ‘편의점의 사용주는 아르바이트생의 일을 감시하는 목적으로 cctv를 설치할 수 있다.’ 등의 논제로 토론한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었지만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가장 아쉬움이 컸던 건 ‘신뢰성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한 논리적인 말하기’였습니다. 당시 학생들과 노동인권과 관련된 도서를 읽고 책대화를 두 차례 한 후 PREP 기법으로 논증을 구성하여 토론을 했지만 학생들은 그 전에 읽었던 도서와 이번 토론의 논제를 잘 연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책이나 신문기사에서 읽었던 정보들을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활용하지 못하고 개인의 경험에 의존하여 토론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입론 후에 활발한 반론과 재반론을 이끌어 내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반론 과정에서는 상대측의 논증 구조를 잘 파악하여 주장이나 이유, 근거의 한 지점이나 그들 간의 관계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를 찾아야 하는데 학생들은 이 부분을 매우 어려워했습니다. 또한 재반론 과정에서는 예상 반론을 생각해볼 시간을 줬지만 이에 대한 재반론까지 준비시키지는 못해 축구의 티키타카와 같은 토론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었던 건 교사인 저의 책임이 컸습니다. 토론의 과정에서 학생들이 만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들을 제가 꼼꼼하게 안내하고, 연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이를 가르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공부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학교 교육에서 찬반 토론은 ‘어려운 것 → 몇몇 뛰어난 학생들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찬반 토론 수업은 실제 토론까지 이어지지 않고 입론서를 쓰는 단계에서 끝나거나 찬반 토론 대신 부담이 적은 비경쟁 토론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언어 능력이 뛰어난 학생이든 부진한 학생이든, 경쟁을 좋아하는 학생이든 싫어하는 학생이든,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간에 모든 학생들이 교육토론을 경험하고 이 과정에서 배움을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양측의 논거를 검토하고, 나만의 논증을 마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능력은 민주시민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역량이기 때문입니다.
이번과 다음 글에서는 학생들이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입론과 반론, 재반론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수업했는지를 이야기하겠습니다.

모둠 세우기

슬기로운 환경 시민 프로젝트는 한 학기 동안 주1회 모둠 활동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장기간의 프로젝트 수업에서 모둠 활동이 서로의 배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모둠 세우기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서로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는 1학년 학생들이었으니까요.
우선 모둠 구성 방법은 교사인 제가 제안했습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슬기로운 환경 시민 프로젝트 모둠 구성 방법 1. 모둠원의 역할은 눈, 입, 손, 귀 4가지 역할로 나누어진다. 2. 눈은 모둠장으로서 우리 모둠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파악하여 모둠원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입은 모둠 토의의 내용을 잘 정리하여 모둠을 대표해 전체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손은 모둠 토의의 내용을 모둠원들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글로 정리하는 역할을 하고, 귀는 모둠 토의 시 긍정적인 리액션을 통해 모둠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모둠원 역할을 이렇게 신체부위로 명명하는 방법은 나무학교 중등국어교사모임 선생님들의 아이디어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고 나눠주시는 선생님들께 항상 감사합니다.) 3. 눈 역할을 맡을 학생 8명을 자원받는다. 눈은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입 학생을 마음대로 뽑을 수 있다. 4. 눈은 입을 뽑고, 눈과 입 짝꿍은 복도로 나가 교실 안을 보지 않도록 조용히 바닥에 앉는다. 5. 교실에 남은 학생들은 교실 뒤로 나갔다가 모둠 책상에 두 명씩 짝을 지어 앉는다. 6. 교사는 모둠 번호가 적힌 제비를 가지고 복도로 나가 눈과 입 짝꿍이 뽑게 한다. 7. 눈과 입 짝꿍과 나머지 학생들이 만나 4인 1모둠을 완성한다. 8.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토의를 통해 손과 귀의 역할을 누가 맡을 것인지 정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반드시 모둠 구성 방법에 대한 모든 학생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교사가 먼저 모둠 구성 방법을 제안하되, 학생들에게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거나 수정하고 싶은 절차가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안내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있어야 차후 모둠 활동에 문제가 생겻을 때 학생들 스스로의 힘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도할 수 있습니다. 모든 학생이 이 방법에 동의를 했다면 20분 정도 모둠 구성을 합니다.
다음으로, 모둠원 간의 어색함을 풀고 협동을 연습할 수 있는 활동으로 ‘이면지탑 쌓기 게임’을 했습니다. 이 방법을 저에게 제안해주신 건 나무학교 PBL센터의 김선명 선생님인데, 모둠 세우기의 목적을 짧은 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좋은 활동이었습니다. 활동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면지탑 쌓기 활동 종료 후 기념 촬영
이면지 탑 쌓기 게임 방법 1. 모둠별로 이면지 10장 내외와 풀을 준다. 2. 제한 시간 동안 모둠원이 협력하여 가장 높고 튼튼한 이면지 탑을 쌓는 팀이 승리한다. 3. 탑을 쌓기 전 1~2분 동안 모둠 안에서 탑 쌓기 전략을 회의한다. 이때 어떻게 하면 높고 튼튼한 탑을 쌓을 수 있을지,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 대안은 무엇으로 할지 등을 논의하게 한다. 4. 전략 회의 시 종이를 손으로 만질 수 없다. 이 규칙이 있으면 학생들이 손짓과 표정을 활용해 활발히 토의한다. 5. 5분 동안 모둠원과 협력해 탑을 쌓는다. 6. 가장 높이 쌓은 팀부터 순위를 매긴다.
교실의 모든 학생들은 짧은 시간 동안 이면지 탑 쌓기에 몰입했습니다. 눈 역할을 맡은 학생이 활동을 주도했고, 귀 역할을 맡은 학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거나 탑이 쓰러지는 경우에도 긍정적인 말을 해 모두가 과정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물론 학생들이 이런 역할들을 연습할 수 있도록 저는 계속해서 돌아다니며 역할 수행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게임을 이겼을 시 주어지는 보상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야 협력의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탑 쌓기가 끝난 후 1등부터 8등까지의 순위를 매기고, 게임에 대한 보상을 이야기했습니다. 게임 보상은 환경 정책 토론의 논제를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5가지의 환경 정책 논제를 제시했습니다. 게임에서 꼴찌를 한 모둠도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 5가지의 논제의 난이도가 거의 비슷했고, 하나의 논제를 두 개의 모둠이 선택하는 것이므로 선택지의 개수도 다양한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슬기로운 환경 시민 프로젝트 환경 정책 논제
논제를 다양하게 준비한 이유는 첫째, 학생들이 환경 문제의 다양한 측면들을 탐구하고, 그 과정에서 이 측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둘째, 학생의 의사와 선택권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학생들이 프로젝트의 주체로 서기 위해서는 수업의 과정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야 합니다. 교사인 우리도 학교 업무 중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보다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하고 만든 일에 더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것처럼요.
겨울 방학 동안 이 논제들을 선정하고, 찬반 양측이 모두 충분히 논증을 구성할 수 있는지를 검토했습니다. 환경과 관련된 다양한 책과 신문 기사를 읽고,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환경 정책 토론 자료들을 살폈습니다. 도구적인 성격이 강한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제가 프로젝트의 내용을 공부하는 과정은 참으로 고단합니다. 학교 안에서 교과 간 융합이 이루어질 수 있는 쉽고 편안한 방법은 없을까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교사 개인의 성장이 있는 건 확실합니다. 원래도 환경에 관심이 있었지만 이제 위 논제들에 대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논증의 구조 탐구하기

논증이란 주장에 대한 논리적인 이유와 근거를 들어 주장을 타당하게 증명해 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탄탄한 이유와 근거를 마련하여 논증 구조를 구성해야 주장에 설득력이 생기죠. 논증의 구성 요소에는 주장, 이유, 근거가 있습니다.
논증의 구성 요소(창비 국어 교과서)
논증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논증의 구조를 잘 갖추는 것이 토론에서 왜 중요한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tvN 코미디 빅리그의 코너 중 하나였던 <사망토론>의 일부를 편집해서 보여줬습니다. 영상을 시청하기 전, 학생들에게 먼저 토론의 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활동지에 써보고 모둠원들과 이야기나누게 했습니다. 워낙 논제가 현실적이고 재미있어 학생들은 영상을 시청하기 전부터 어떤 회사가 나은지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했습니다.
영상 시청 전 논제에 대한 내 생각 마련하기
영상을 시청하고 나서는 누가 더 설득력이 있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이 이상준 씨(연봉 6천만원 휴가 없는 회사)와 김기욱 씨(연봉 3천만 원 휴가 두 달 있는 회사) 중 이상준 씨가 더 설득력 있게 토론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왜 이상준 씨가 더 설득력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교과서를 활용해 논증의 구성요소를 설명한 후 학생들에게 발문을 하며 각 토론자의 논증 구조를 분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주장과 이유와 근거가 서로 어떻게 구별되고, 이유가 주장을, 근거가 이유를 어떻게 뒷받침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사망토론> 토론자들의 논증 구조 분석
그리고 나서 각각의 논증 구조를 신뢰성, 타당성, 충분성의 기준에 따라 상, 중, 하로 평가해보게 했습니다. 직접 논증을 평가해보고 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토론의 신뢰성, 타당성, 충분성이 무엇인지, 이 기준들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어떤 세부 요소들을 갖추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왜 이상준 씨의 논증이 더 설득력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김기익 씨에 비해 이상준 씨의 논증이 주장과 이유와 근거가 서로 논리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기 떄문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학생들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반에서 6~8명 정도는 논증의 구성 요소와 이를 평가하는 기준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이 보였습니다.
토론 평가 기준
그런 학생들을 위해 한번 더 논증의 구성 요소를 탐구할 수 있는 간단한 활동을 했습니다.
논증 구조 배열하기 활동
A~G의 발언들을 읽고 주장, 이유, 근거의 순서로 재배열하는 활동입니다. 이 활동은 창비 출판사의 <즐거운 토론 수업을 위한 토론 교과서>에 수록된 활동을 변형한 것입니다. 저는 교실을 돌며 학생들이 주장, 이유, 근거를 구분하고 서로 관련되어 있는 것끼리 조합할 수 있는지를 관찰했습니다. 이제 교실에서 2명 정도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논증의 구조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효과적인 반론 방법 탐구하기

토론에서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것은 ‘반론하기’입니다. 하지만 국어 교과서에도 어떻게 하면 반론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빈약합니다. 상대측 주장의 이유와 근거를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질문들만 제시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반대 신문의 예시나 연습 활동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창비 국어 교과서의 반대 신문 준비 활동
그래서 도서 <토론이 수업이 되려면>(경기도토론교육연구회)에 소개된 김준호 선생님의 수업 방법과 <즐거운 토론 수업을 위한 토론 교과서>의 반론과 관련된 내용 지식을 활용해 학생들과 효과적인 반론 방법을 탐구했습니다.
학생들에게 간단한 논증을 제시하고 모둠별로 이 논증에 대한 반론 다섯 개를 만드는 활동입니다. (이 활동에 ‘너도 나도 게임’이나 ‘찢기 빙고’를 적용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충분히 반론을 구성할 수 있는 시간을 준 후 모둠별로 차례대로 돌아가며 입 학생이 본인 모둠에서 만든 반론을 발표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만든 반론을 판서하며 학생들에게 이것이 반론으로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반론의 유형 5가지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학생이 작성한 반론 활동지
나름대로 학생들이 반론의 유형을 쉽게 이해하도록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1회고사 결과에서 처참히 드러났습니다. 토론문을 지문으로 제시하고 찬성측과 반대측이 한 반론이 어떤 유형의 반론에 해당하는지를 찾는 문제를 출제했는데 정답률이 30%대였습니다. 결국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설명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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