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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알.못. 영어 교사의 원격수업 적응기(feat 기계치)

컴.알.못. 영어 교사의 원격수업 적응기(feat 기계치)

최미나
"돌이켜보면 모두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교사인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었던 가장 큰 힘은 바로 ‘아이들’이었다."

프롤로그: 온라인 개학을 한다고요?!

2020년 2월 23일. 인터넷 뉴스 꼭지를 장식했던 기사 제목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코로나19 확산에 사상 초유 전국 유초중고 개학 연기’
그로부터 일주인 뒤인 3월 2일! 예년 같으면 새 교실에서 새 선생님, 새 친구들과 설레고, 분주한 하루를 보내는 새 학년 첫날인 그날, 아이들과 나는 교사인 내가 개설한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서 서로 낯설고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반갑습니다. 올해 OO중학교 1학년 2반 담임을 맡은 최미나입니다.” “안녕하세요?” “…” “개학은 3월 9일로 연기되었습니다. 추후 변동사항이 있으면 단톡방을 통해서 안내하겠습니다.” “네!” “…”
그 후에도 코로나19의 확산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개학은 자꾸만 연기되었다. 그리고 더는 아이들을 집에서 방치할 수 없었던 탓에 정부는 4월 8일 온라인 개학을 결정하였다. 아이들 없이 학교가 개학을 하고, 원격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었다.

원격수업 적응기: 1단계-근거 없는 자신감

‘컴알못+기계치’인 나에게 온라인 개학은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무엇보다 원격수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 혼자서 이 낯선 상황을 헤쳐나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상황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피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오히려 불안했던 나의 마음에는 다른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일단 해보자. 모르면 물어보고,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되지 뭐.’ 원격수업에 대한 처음의 두려움이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원격수업 적응기: 2단계-우여곡절 나만의 수업 동영상 제작하기

원격수업을 향한 나의 첫 도전은 나만의 수업 동영상을 직접 제작하는 것이었다. 동영상 편집에는 전혀 문외한이었던 내가 스스로 동영상을 제작하다니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이었다. 첫 수업 동영상 제작 전, 먼저 교과서에서 배울 내용을 선정하고, 파워포인트에 그 내용을 정리했다. 나름 아이들의 흥미를 고려하여 재미있는 이미지와 유머 첨가에도 신경을 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작한 파워포인트를 순서대로 넘기며 나 혼자만의 리허설을 마친 뒤, 드디어 동영상 녹화에 들어갔다. 최대한 낭랑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진행으로 스스로 만족하며 (아이들의 집중 시간을 고려하여 정한) 녹화 시간 25분을 정확히 지켜 녹화를 끝냈다. 떨리는 손으로 나의 첫 방송을 감상하기 위해 동영상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시작부터 뭔가 이상했다. ‘소리 없이 영상만 나오네. 아뿔싸, 마이크 확인을 안 했나 보다.’ 아, 울고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매불망 내 영상만 기다리는 50명 시청자가 기다리고 있으니 다시 처음부터 하는 수밖에.......
▲ 교사 제작 콘텐츠, 수업 동영상 일부

원격수업 적응기: 3단계-이제는 나도 아이들도 프로 방송러!

등교 개학 후, 일부 아이들의 고백은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선생님, 영상 수업이 도움이 하나도 안 돼요.” “계속 영상만 보니까 집중이 안 돼요.” “영상 틀고 게임 했는데요.”
‘얘들아, 무슨 말이니. 선생님은 그 영상 70개를 만드느라 며칠 밤을 지새웠는데.’ 이제는 학습 효과가 없는 수업 동영상 제작에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가 없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그런데 때마침 학교에서 줌(ZOOM) 활용 연수를 제공한다고 했다. 옳다구나! 바로 이거다! 그때부터 모든 원격수업은 줌(ZOOM)을 활용한 쌍방향 수업으로 진행하였다. 첫 실시간 쌍방향 수업 때는 아이들을 줌(ZOOM)에 접속시키는 데 한 시간을 몽땅 썼다. 두 번째 시간은 영어 듣기 수업이었는데 아이들이 CD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줌(ZOOM)의 화면 공유 기능 중, 컴퓨터 소리 공유하기 기능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와 아이들은 실시간 쌍방향 수업에 익숙해져 갔다. 이제 나는 능숙하게 듀얼 모니터를 활용하여, 한 화면에서는 수업을 진행하고, 다른 화면으로는 아이들의 수업 태도를 점검할 수 있다. 아이들은 나의 수업을 들을 뿐만 아니라, 줌(ZOOM)의 소회의실에서 그룹별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영어 말하기, 읽기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2020년. 우리는 이렇게 성장한 것이다.
▲ 지난 1월, 마지막 실시간 쌍방향 수업 시간의 아이들과 나

에필로그: ‘아이들의 힘’, 나를 이끌어가는 원동력

처음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2020년은 모든 것이 멈추었다고,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는 한, 더 이상의 나아짐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나는 성장하는 법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달라졌다. ‘컴알못+기계치’인 내가 디지털 기기를 제법 다루며 동영상을 제작할 뿐만 아니라 원격으로 실시간 수업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모두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교사인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었던 가장 큰 힘은 바로 ‘아이들’이었다. 핸드폰 작은 화면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선생님 말씀을 놓칠세라 집중하며 필기하는 아이, 수업이 끝나고 나에게 최고라고 엄지척해주는 아이, 원격수업이었지만 나의 수업을 통해 영어가 더 좋아졌다는 아이. 하나 같이 다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한 아이들이다.
사람은 때로는 지난날의 힘든 시절을 이겨낸 힘을 발판으로 앞으로 더 나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아픔을 함께 이겨낸 사람들과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나의 교직 생활을 돌아본다면, 지난 2020년이 감히 내가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한 해로 기억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 기억에는 항상 나를 지탱해 준 아이들도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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