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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연재]슬기로운 환경 시민 프로젝트 제2화

[수업연재]슬기로운 환경 시민 프로젝트 제2화

- 프로젝트 도입활동: 토론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어?

박준일(온양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학생의 관심을 사로잡을 도입활동

3월 첫 오리엔테이션 시간, 학생들에게 1학기에는 국어 시간에 어떤 것들을 학습할 것인지를 안내하면서 첫 번째 수행평가는 토론 활동을 할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3월 첫날부터 오미크론에 확진되어 저는 집에서 수업을 하고, 학생들은 교실에서 수업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는데, 제 입에서 토론이라는 말이 나오자 노트북의 작은 화면에도 침을 꼴깍 삼키는 몇몇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프로젝트의 시작을 매력적으로 하지 않으면 자칫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프로젝트 도입활동을 구상하는 일은 항상 어렵습니다. 프로젝트의 문제 상황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면서 왜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득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능력을 기를 수 있는지 안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몇날며칠을 고민하다 토론과 관련된 한 가지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제1회 나무학교 수업 축제에 외부인으로 참여했을 때 토론 수업 교실에서 했던 ‘피라미드 토론’의 장면이었죠. 그 당시 교실에는 찬반 토론의 경험이 있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분들이 큰 어려움 없이 열정적으로 토론에 참여하셨습니다.
‘아, 나도 도입활동으로 피라미드 토론을 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피라미드 토론은 제시된 논제에 대해 먼저 1:1로 토론합니다. 그리고 나와 방금 전까지 토론을 했던 상대와 한 팀이 되어 2:2로 토론합니다. 이어서 4:4, 8:8등으로 토론을 하고 교실을 반으로 나눠서 최종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피라미드 토론은 보통 ‘우리 교실에 필요한 수업 규칙은 무엇일까?’와 같이 전체 구성원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합의하는 토의의 수단으로 활용되는데, 찬반 토론에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피라미드 토론이 도입활동으로 적합한 이유는 일반적인 찬반 토론에서 느끼는 상대와 경쟁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적(?)이 현재의 아군이 되고, 현재의 적이 미래의 아군이 된다는 생각은 토론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학생들도 ‘그럼 한번 해볼까?’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토론을 시작하기 전에 제시된 논제에 대해 미리 이유와 근거를 생각하고 기록할 시간을 주는 것도 학생들이 마음을 열게 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피라미드 토론 활동

제가 학생들에게 제시한 논제입니다. 도입활동의 논제를 떠올리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영수증은 종이로 분리배출해야 한다.’, ‘PET병은 뚜껑을 따로 분리배출해야 한다.’와 같이 분리배출의 방법과 관련된 논제를 생각했었는데 PBL센터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 논제들은 너무 답이 명확히 정해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학교 생활 중에 내적, 외적 갈등을 겪을 수 있는 환경 문제를 고민했습니다. 아래 논제는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매년 겪는 환경과 관련된 일이고 찬성과 반대가 모두 타당한 논증을 펼칠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논제를 제시하고, 앞뒤 친구와 짝을 지어 찬성과 반대의 역할을 맡게 했습니다.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손 크기가 큰 사람, 머리카락 길이가 긴 사람, 생일이 빠른 사람이 찬성’처럼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해줬습니다. 그래야 토론에서 나의 생각을 강화하는 쪽으로만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신념 체계를 일부러 흔들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찬성과 반대의 역할을 정했으면, 토론 시작 전에 내가 제시할 이유와 근거를 생각합니다. 이 학생은 처음엔 찬성 역할을 맡았는데 찬성의 이유와 근거로(아직 이유와 근거의 차이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 아직 우리 반이기 때문이다 - 불리해서 버리지 않으면 환경 오염이 되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반 친구들과 협동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 다 같이 만든 쓰레기이므로 다 같이 책임져야 한다 를 떠올렸습니다.
토론 전 이유와 근거 구상 활동지
1:1 토론 장면
학생들은 1:1 토론, 2:2 토론, 4:4 토론을 거쳐 교실을 반으로 나눠 토론을 했습니다.
전체 토론 장면
찬성측 입론, 반대측 입론 후 반론과 재반론을 자유롭게 진행했습니다.
전체 토론의 수업 장면을 글로 옮겨봅니다. 교사: 찬성 측부터 입론해주세요. 찬성1: 함께 분리수거를 하자고 제안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우리 교실을 후배들에게 온전하게 물려줘야 하고, 분리수거를 하지 않으면 환경 오염이 됩니다.(주변에 앉은 친구들이 도움을 줌) 이렇게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 한 개 반이 두 개 반이 되고, 두 개 반이 네 개 반이 되는 식으로 전국적으로 퍼진다면 많은 양의 재사용 가능한 쓰레기들이 그냥 버려지고 말 것이에요. 교사: 좋습니다. 그럼 반대 측 입론 들어보겠습니다. 찬성 측은 경청해주세요. 반대1: 반별로 분리수거 담당이 따로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왜 반장이 분리수거를 하자고 굳이 제안을 해야 할까요? 이미 반장은 해야 할 역할이 너무 많습니다. 분리수거는 분리수거 담당 학생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 네 분리수거는 반장의 역할이 아니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반론할 학생 있나요? 찬성2: 분리수거는 누가 해야 한다고 어디 정해져 있나요? 반대1: 일반적인 교실에서는 1인 1역으로 분리수거 담당 학생을 정해 놓습니다. 반대2: 분리수거는 환경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이미 다양한 쓰레기가 섞여 버린 후에는 다시 분리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이미 종이가 음료수에 오염되고, 먼지가 붙어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분리수거는 어려운 일입니다. 일반쓰레기로 한 번에 버리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일입니다. 교사: 네! 연습 토론은 여기까지입니다. 다들 고생했으니 박수 쳐줄까요? 학생들: 짝짝짝짝짝!
학생들은 아직 토론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입론을 할 때 주장-이유-근거로 이루어진 논증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고, 반박 시 상대 논증의 오류를 논리적으로 지적하기보다는 목소리만 높이는 식으로 토론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토론 장면이었지만 도입활동의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교실의 모든 학생들이 논제에 대해 고민하고, 찬성 또는 반대의 입장에서 입을 열었고, 전체 토론 과정에서는 옆 친구를 도와주거나 ‘오~’하며 상대 측 토론자의 발언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과정은 이제부터입니다. 피라미드 토론을 하며 느꼈던 점을 쓰고, 함께 공유하며 토론의 의미를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흥미로웠던 점으로 나온 이야기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와 근거들이 친구들의 입에서 나오는 걸 들으며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게 느껴졌다.’, ‘찬성과 반대 모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재밌었다.’, ‘처음엔 한 쪽이 당연히 맞다라고 생각했는데 깊이 생각해보면 다른 쪽도 충분히 그에 맞는 이유와 근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등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이야기한 어려웠던 점은 ‘내 생각과는 다른 입장에 서서 토론해야 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특히, 반대를 하는 이유가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다.’, ‘친구들의 분위기가 이미 찬성이나 반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어려웠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근거를 떠올리는 게 어려웠다.’, ‘반론과 재반론 과정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등이었습니다.
토론 소감 적는 중
이렇게 나온 학생들의 소감을 정리하며 자연스럽게 토론의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내 생각과는 다른 입장에서 토론에 참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이건 정말 의미있는 일이에요. 우리가 살다보면 점점 생각이 굳어져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만 점점 강화하고, 다른 견해는 들어보려고 시도도 안하거든요. 우리는 토론을 통해 균형 잡힌 생각을 하는 연습을 할 수 있어요. 또 토론의 목적은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에요. 토론의 진정한 목적은 어떤 가치관이나 정책이 현재의 시점에서 수용 가능한 것인지를 면밀히 검증해 보는 거예요. OO이가 해준 이야기도 중요해요. 세상에 100% 옳은 절대 진리는 별로 없어요. 찬성이든 반대이든 그에 맞는 나름대로의 이유와 근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검증이 더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요.”
학생들이 토론 수행평가에서 걱정하는 점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찬성이나 반대의 입장에서 떠오르는 생각이 별로 없어 어려움이 있었던 친구들도 있고, 내가 한 말이 사실인지 검증하지 못해 자신있게 생각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친구들도 있고, 친구의 반론에 크게 당황했던 친구들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입론, 반론, 재반론하는 방법처럼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 알아야 요소들을 하나하나 연습해 볼 거고, 논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자료를 조사하는 시간도 있을 겁니다. 선생님은 이번 수행평가에서 여러분들이 얼마나 말을 화려하고 있어 보이게 하는가가 아니라 논제를 깊이 생각했는가를 평가할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제 말에 안도감을 느끼는 학생들, 아직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학생들이 보였습니다.

악의 평범성

피라미드 토론만으로도 학생들에게 프로젝트에 대한 강렬한 첫인상을 남길 수는 있었지만 왜 우리가 ‘슬기로운 환경 시민’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과 아돌프 아이히만의 이야기를 다룬 지식채널e <너무 평범한 사람>을 함께 시청했습니다.
영상을 보고 제가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아돌프 아이히만은 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6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일을 저질렀을까요?’였습니다. 영상을 통해 악은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나 증오심이 가득 찬 사람들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성찰하지 않는 ‘멍청한’ 사람이 저지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그럼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한 ‘시민 되기에 실패한 평범한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요?였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이 왜 악을 저질렀는지를 생각해봤기 때문에 학생들은 어렵지 않게 이 질문에 답했습니다. ‘나만의 주체적인 생각이 없는 사람이요.’, ‘나의 행동을 되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이요.’ 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질문은 ‘국어쌤이 우리의 프로젝트 이름을 ‘슬기로운 환경 시민’이라고 짓고 환경 정책 토론 활동을 제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였습니다. 위 두 질문에 대해서는 즉각 대답하던 학생들이 이번에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은 잠시 깊이 고민하는 것 같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종이 울리기 2분 전이었습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추가로 질문했습니다.
“우리가 환경 문제를 손놓고 보고만 있다면 우리 다음 세대나 그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할까요?”
“멍청한 조상들?”
한 학생이 말했고 다른 학생들은 웃었습니다.
“맞아요. 그들은 우리에게 참 우리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멍청했어. 환경 문제가 심각한 줄도 모르고, 그때 어떤 환경 정책이 필요했는지 별로 고민도 안했잖아.’라고 이야기할 거예요. 그게 선생님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슬기로운 환경 시민이라고 지은 이유예요”
종이 울리고 저는 황급히 활동지 5쪽에 있는 프로젝트 탐구질문을 확인시켰습니다.
“자, 이것만 확인하고 마칠게요. 우리 프로젝트의 탐구질문은 활동지 5쪽에 있어요. 다들 확인했나요? 큰 소리로 같이 읽어볼까요?”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 지구에 어떤 환경 정책이 필요할까?”
“이 질문은 우리가 프로젝트를 마칠 때까지 항상 확인하고 기억해야 하는 질문이에요. 오늘 수업 참여하느라 고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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