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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글로 연결 짓는, 현장 교사들의 교육 담론

글로 연결 짓는, 현장 교사들의 교육 담론

양철웅(나무학교 편집팀장, 온양용화중학교)
사람들은 교육에 대해 다양하게 인식합니다. 설날 친척끼리 모이면, 교사인 저에게 친척 어르신들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교육이다.’라며 인성을 가꾸는 것이 교육이라 말하지만, 교육 관련 프로그램에 나오는 논설 위원들은, ‘교육은 창의성을 키우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학부모 상담을 하다보면, ‘학교는 공부를 하는 곳’이라며 학업 성취를 강조하는 학부모도 있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즐겁게 생활하는 것이 최고’라며 행복한 학교를 원하는 학부모도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 환경 운동가는 ‘학교에서 환경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하고, 인권 운동가는 학교에서 ‘학교는 인권에 대한 인식을 길러주는 곳’이라고도 합니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혼란에 빠집니다. 도대체 학교는 뭐하는 곳일까요? 교육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혹시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자기 관점에서만 교육을 바라보지만, 혹시 교육의 전체를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아닐까요?(최성욱, 2004)
사람들이 교육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에, 교육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습니다.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적절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해결 방안을 고민하고,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평가’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을 때, ‘평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부터 모두 다르기 때문에, ‘평가’의 문제가 무엇인지, 왜 ‘평가’가 문제인지에 대해 공감대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평가를, ‘선발과 배치’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학생의 학습을 돕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평가 과정 그 자체가 학습 과정’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평가’는 ‘선발과 배치’만 잘하면 된다는 사람과 ‘평가는 학습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현재 학교의 ‘평가’를 개선하고자 논의한다면 어떤 대화가 이루어질까요? 아마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평행선을 달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대화’입니다. 서로의 경험과 입장을 경청하고 표현하며, 토론해야 합니다. 대화하고 토론할수록 공유하는 영역이 커지고, 공유하는 영역이 커질수록 생산적인 해결책에 도달할 가능성은 커집니다. 서로 모여서 대화를 해야 ‘코끼리의 전체’를 볼 수 있고, 비로소 발전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나무학교 숲소리는 이 대화를 촉진하고, 더 연결해보려 합니다. 연결되는 대화란, 글을 통한 대화입니다. 연결의 과정은 대략 이렇습니다. 누군가 교육 현장에 관한 글을 씁니다. 이 글을 읽은 누군가는 그 글에 동의해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서 다시 글을 쓸 것입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앞선 글의 내용과 관련해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누군가’가 선생님이 될 수도 있지만, 학생‧학부모가 될 수도 있고, 연구자와 정책 입안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글을 연결 지으며 담론을 발전시켜 나간다면, 괴리가 큰 교육에 대한 인식과 가치관에도 조금씩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코끼리의 전체를 이해하고, 코끼리의 어디가 아픈지 비로소 알 수 있지 않을까요?
▲Pixabay로부터 입수된 Clker-Free-Vector-Images님의 이미지입니다.
말은 사라지지만, 글은 물리적인 실체로 누적되고, 누적된 글은 그 이후의 글에 영향을 미치며 담론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담론을 통해서, 기존의 연구자 중심, 정책 입안자 중심의 교육 담론을 교육 현장으로 끌어내려, 더 현실적이고 창의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요즘은 ‘집단지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집단지성이란, 지성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여기고, 그 지성의 가치를 인정하며, 그 지성들이 서로 교류하게 하고, 그 결과 현실 세계에서 지성이 힘을 발휘하도록 돕는 지성입니다.(피에르 레비, 2002) 이 관점에서 보면, 대학교수‧연구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 지식의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도, 과거에는 지식의 소비자로 인식됐던 교사들이 이제 지식을 생산하는 주체로 여겨집니다.(서경혜, 2015) 교사들이 교육 현장을 탐구하고, 연구하고, 대안을 찾고, 성찰하며, 가치 있는 지식을 생산하는 시대입니다.
브루너는 “시대는 각각 독특한 형태의 꿈을 안고 있으며 이 꿈이 그 당시 교육의 모양을 결정한다.”라고 말하며 “교육의 과정”(J.S.브루너, 1973) 서론을 시작합니다. 나무학교 ‘숲소리’ 편집팀은 이 시대의 꿈이 다양한 교육 주체들의 소통과 네트워크를 통해서 더 나은 교육을 만드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과 다양한 교육 주체가 서로 소통하며 교육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나무학교의 선생님, 바로 우리가 교실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그 담론의 영역을 학교와 교육 전반으로 확장하는 과정을 상상해봅니다. 너무 거창한 것을 상상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무학교가 어떤 곳입니까? 우리들이 어떤 교사들입니까? 실패하든 성공하든, 상상한 것은 일단 배우고 끈질기게 도전해보는 사람들입니다. 온갖 부담을 떨치고, 그 빡세다는(?) 성장교실의 문을 두드린 선생님들이 모인 집단입니다. 작은 수업 나눔 모임에서 시작해 지금의 멋진 교사 네트워크를 이뤄낸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나무학교에서는 이런 상상이 비웃음 받지 않고, 오히려 도전과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한 문헌-
서경혜(2015) 교사학습공동체(집단전문성 개발을 위한 한 접근), 학지사
최성욱(2004) 교사-학생 관계의 비판적 고찰, 교육원리연구 9(1)
피에르 레비(2002) 집단지성(사이버 공간의 인류학을 위하여), 문학과지성사
J.S.브루너(1973) 교육의 과정, 배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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