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소리 읽기
home
교과별 수업 및 평가
🪑

[수업연재]삶과 철학 토론 프로젝트 제1화

-도전하기 어려운 찬반 토론-

김선명(배방고등학교 윤리 교사)

수업 연재를 시작하며

수업을 기록하는 일은 저의 습관도, 취미도 아니었습니다. 수업 계획을 위한 기록은 어렵지도 않고 꽤 즐거운데, 수업 과정과 결과를 돌아보는 글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작성을 시작하기까지 꽤 어려웠습니다. 아무래도 그동안 열심히 계획하고 우당탕탕 실천해왔으니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수업을 기록하기 시작한 건 단순히 나무학교 선생님들과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잘한 부분이든 부족한 부분이든 경험을 나누며 주고받는 대화에서 교사로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혼자서는 수업 기록에 대한 다짐이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제가 몸담고 있는 PBL센터와 나무학교 편집팀을 통해 지속적으로 수업을 나누고 기록하는 습관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2년도 채 되지 않은 습관이지만, 꾸준히 기록해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 응원하려고 합니다.
작년과 올해 같은 과목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2학년 ‘윤리와 사상’ 과목입니다. 윤리와 사상은 삶에서 필요한 철학적 지혜를 배우는 매력적인 과목입니다. 하지만 학습량이 많고 자칫 삶과의 연관성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매력을 이끌어내기가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저는 많은 것에 욕심내지 않고 ‘철학적 지혜’를 머리와 마음, 몸으로 배우는 수업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동양 윤리 사상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제시하고 있는 다양한 이론과 수양 방법을 자기 삶의 고민에 적용해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책 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교 사상과 도가 사상은 책 쓰기에 많이 인용된 반면, 유교 사상은 큰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인간이 선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유교 사상을 좀 더 능동적으로 탐구해보고 싶었습니다.
시대별로 대립하는 두 사상을 비교하여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육과정 성취기준에 따라 평가 기준을 만들고, 삶과 연결하여 유교 찬반 토론을 벌이는 프로젝트 수업을 준비했습니다. 아이들은 성선설과 성악설, 성즉리와 심즉리, 사단칠정 논쟁, 성즉리와 성기호설을 각각 비교하고 삶의 모습에 적용해보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좀 더 높은 관점에서 유교 사상의 의의를 파악하고, ‘인간의 선함’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유해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프로젝트 목적

학생들은 동양 윤리 사상가의 제자가 되어 토론을 벌입니다. 그들의 지혜를 빌려 인간의 행복과 사회적 질서에 대해 고찰하고, 상대되는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탐구합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상대의 논증을 비판하기 위해 필요한 근거도 수집합니다. 그 근거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드러나내는 사례’, ‘세상의 이치는 바깥 사물에 대한 객관적 탐구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 등이 있을 것입니다. 근거를 찾는 일이 어렵겠지만, 동양 윤리 사상을 텍스트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해석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주장과 이유, 근거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과 사고를 통해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는 맥락을 깨닫습니다. 논쟁의 필요성도 인식하죠. 준비한 토론 내용을 입론과 주장, 반론을 통해 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표현하는 일에 대한 재미와 자신감을 얻습니다. 상대의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이고 경청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이고 유의미한 의사소통 경험을 얻습니다. 모둠원과 함께 논증을 구성하고 토론 전략을 세우는 과정에서 집단지성의 힘과 협업의 기쁨을 느낍니다. 토론 종료 후 자기와 동료의 활동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자기관리 역량을 기릅니다.
목적은 (제가 생각하기에) 거창하지만, 프로젝트 시작 전에 결과물이 거창하면서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해 볼 만한 목표를 나눴을 때 학생들의 학습 동기가 잘 촉진되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아래 프로젝트 배경에서 이야기하는 큰 목표와 활동별 작은 목표를 세웠을 때, 방향을 잃지 않고 상황에 따라 학습 활동을 더하고 덜어내는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프로젝트 배경

스스로 사고하는 힘 그리고 나의 사고를 말로 표현하는 힘은 사람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능력입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1교시부터 7교시까지 각각 다른 과목의 수업 활동을 수행하며, 해야 할 일은 너무 많고 누군가 시키는대로 따르기만 하는 것도 학생들에게는 벅차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사고하는 일을 귀찮아하기도 합니다. 나의 사고를 만들어내기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짧은 시간 안에 학습하고 복사하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죠.
아이들에게 왜 공부를 하는지 물었을 때, 3초 안에 자신만의 이유를 떠올리고 조리있게 설명할 수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보통은 ‘해야 하니까’, ‘해야 한다고 하니까’, ‘똑똑해지니까’ 정도의 이유만을 떠올립니다. 자신이 지금 여기에서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설명하는 일도 힘든데, 인간과 사회에 대해 사유하는 일은 얼마나 더 힘들까요? 그래서 학생들은 사회를 자극적으로 해석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커뮤니티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거나 근거 없는 SNS 콘텐츠에 생각을 맡겨버리곤 합니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배운 내용을 다시 한 번 고찰하고, 재개념화하며, 알고 있던 지식과 엮어 의미있게 받아들이는 사고 과정은 학생들의 정신적 자유와 자존감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자기 언어로 자기를 돌볼 수 없는 사람은 옳은 판단을 내리기 어렵고,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쉽게 휘둘리곤 합니다. 대책 없이 남의 부탁을 모두 받아들이거나, 자극적인 워딩에 매혹되거나, 늘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과의 차이로 우열을 가리고 차별하는 행동이 그 결과일 수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정신적 자유와 높은 자존감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 이유가 되는 경험과 배움을 고찰할 수 있으며, 이를 기준으로 도덕적 판단을 내려, 말로 표현하고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과 철학의 연결 지점을 찾고 사상가의 입장에서 인간의 행복과 사회적 질서를 토론할 수 있는 ‘삶과 철학 토론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프로젝트 개요

삶과 철학 토론 프로젝트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과목 윤리와 사상
학년 고등학교 2학년
기간 15차시
성취기준
[12윤사01-01~02] 인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비교하고 우리 삶에서 윤리 사상과 사회사상이 필요한 이유, 역할, 사례, 관계 등을 탐구하여 토론할 수 있다. [12윤사02-01] 동양과 한국의 연원적 윤리 사상들을 탐구하고, 이를 인간의 행복 및 사회적 질서와 관련지어 토론할 수 있다. [12윤사02-02~03] 각 동양 윤리 사상의 상대되는 관점을 비교하여 토론할 수 있다.
탐구질문
어떻게 하면 유교의 관점에서 우리 삶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사유할 수 있을까?
프로젝트 주요 활동
주요 결과물 유교 사상에 대한 모둠별 토론 개요서 및 찬반 토론(개인 및 모둠 결과물)
이 프로젝트에서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유교의 관점에서 우리 삶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사유할 수 있을까?’라는 탐구질문을 해결하며 유교 사상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삶의 문제에 적용합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사고하여 말로 표현하는 역량을 기릅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표현하고, 실천하는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1화 마무리

겨울방학 때 수업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이 프로젝트를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찬반 토론을 준비하는 동안 고민도 많고 힘들기도 했지만, 나아갈 길이 정해져 있으니 어떻게든 버티게 되었습니다. PBL센터의 ‘어쩔토론’ 스터디 멤버로 찬반 토론 수업을 함께 준비한 박준일 선생님, 이지근 선생님 그리고 함께 고민해준 강은영 선생님, 정윤희 선생님이 계셔서 더욱 든든하고 감사했습니다.
수업 연재를 하는 동안 기회가 된다면, 이 프로젝트에서의 학생들의 성장을 함께 관찰해주시고 피드백 해주신 배방고 선생님들의 수업 나눔 이야기도 담고 싶네요. 2화에서는 프로젝트 안내부터 도입활동 과정까지 나름 행복했던 순간들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수업 연재를 시작하다보니, 이 기록으로 선생님들과 수업 대화를 꼭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2화에서 뵈어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