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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를 빌려서 하는 이 세계의 이야기

다른 세계를 빌려서 하는 이 세계의 이야기

유은영(천안월봉고 국어교사)

추천 책: 클라라와 태양(가즈오 이시구로, 민음사)

SF는 상상하는 문학이다. 하지만 더는 신기한 아이디어로만 승부를 거는 문학은 아니다. SF에서 가치 있는 상상이란 다른 것과 동떨어진 재미있는 발상이 아니라, 삶과 세상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통합적 상상을 말한다.*
좋은 글을 읽으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A도 그런 제자 중 한 명입니다. ‘같이 읽으면 좋겠다’하고 떠오르는 얼굴, 읽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궁금해지는 얼굴. 그런 A가 SF소설 공모에서 수상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은 지난 가을입니다. SF라니 조금 놀랐어요. 최근 몇 년 한국 문학계에 불고 있는 SF소설의 바람에 조금 시큰둥하기도 했던 터라서 더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어느 자리든 SF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이야기의 말미에 저는 꼭 이런 말을 덧붙이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좋아...”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들을 펼쳐 보이는 게 신나기도 했지만 어지럽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소설이 실린 계간지를 가져온 A를 만나 소설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저런 말을 꺼냈던 것 같습니다. 그때 A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선생님도 SF의 매력을 아셨으면 좋겠다고. SF는 너무나도 지금 여기의 이야기라고.
그런 A의 말이 계속 맴돌아 A를 만나고 온 날부터 SF 소설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소개해드릴 ‘클라라와 태양’도 그때 읽은 SF 소설 중 하나입니다. 가즈오 이시구로가 쓴 이 소설은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 로봇 친구인 ‘클라라’와 인간 ‘조시’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우정이라니. SF 소설이나 영화에서 많이 다루는 주제이지요.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선생님들도 디즈니 애니메이션 ‘고장난 론’처럼 당장 떠오르는 작품이 하나씩 있으실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많이 다루어지는 건 우리가 인간만이 가진 그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궁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너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니? 신체 기관을 말하는 건 아냐. 시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야. 인간의 마음.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해?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
소설 ‘클라라와 태양’은 반려 로봇인 클라라의 눈으로 보는 세상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편견 없는 눈으로 다르게 보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세상에 대해, 인간의 고유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게 이 소설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인간의 감정, 행동에 대해 낯설게 보는 지점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빠르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천천히 읽어야 하는 책이지요.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이 책에 대한 인터뷰를 찾아 함께 보내드리니 선생님들도 자기만의 질문을 던지면서 이 책을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우리의 특별함을 다소 과대평가한 건 아닐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특별할까? 수백 년 동안 우리는 각각의 인간이 보이지 않지만 아주 특별한 영혼과 같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장치안에 어떤 영혼 같은 게 있다고요. () 우리가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르게 생각한다면, 서로에 대한 사랑과 다른 감정들의 본질은 바뀌게 될까요? 이것이 바로 제가 묻는 질문입니다. 정답은 없기 때문에 답변하고 싶지 않지만, 이 책 전체가 이 질문을 다루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 배명훈, 『SF 작가입니다』, 문학과지성사, 2020. ** 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민음사, 2021. *** 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한국어판 발간 한국 언론과의 합동 서면 인터뷰,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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