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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소리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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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고한다!

그대에게 고한다!

‘무엇’을 잊은 그대에게
황정아(배방고등학교 국어 교사)

멈출 것인가? vs 도전할 것인가?

2021학년도 1학기, 평.범.한. 국어 교사의 수행평가 이야기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을 교직 생활을 돌아보면, 새 학기 고등학교의 풍경은 매해 비슷하다. 3-4명의 교사가 한 학년에 우연인 듯 인연인 듯 만나 시수를 나누고, 평가기준안 제출일에 맞추어 평가를 계획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성장을 이끄는, 잠재력을 키워주는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는 공통된 출발선에 서 있지만, 실현 방법에 대한 생각은 모두 다르다.
기술의 발달만큼 커뮤니케이션 환경도 개선되어야겠지만, 공동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협의의 장은 다양한 이유로 쉽사리 마련되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멈출 것인가? 도전할 것인가?

협력을 위해 중요한 것?

도전을 선택하는 순간! 나는 땀이 삐질삐질 난다. 머릿속에 온갖 협력의 기술이 떠오른다. 하지만, 서로의 생각 차이는 협의회장을 부담스러운 공기로 가득 채운다.
‘짧게, 그냥, 작년처럼’ 이런 단어들이 오고 간다.
학생들에게도 늘 협력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교사지만, 협력은 기술만으로 일어나는 합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몸소 깨닫는다. 하나씩 내려두고 앞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간다. 현명한 교사들은 나의 언어를 이해하고, 또 한 발짝 다가와 준다. 죄송하고 감사한 순간이다.
그렇게 평가를 계획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면 구상으로 머리는 아파도, 일단 마음이 가볍다. 그날부터 4명의 교사가 모두 동의하고 진행할 수 있는 과정을 세워본다. 또,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과정별 설명을 꼼꼼하게 달겠다 다짐한다.
<그림1>채점기준 및 영역별 성격 안내
<그림3>수행평가 유의사항
<그림2>수행평가 일정 달력
<그림 4>학습지 단계별 활동 안내

이번 학기는 문학!

이제 성취기준과 학생들을 바라본다. 문학의 성취기준 중에는 매번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하는 게 있다. 바로“[12문학02-05] 작품을 읽고 다양한 시각에서 재구성하거나 주체적인 관점에서 창작한다.”이다.
문학 창작 평가라니. 문학은 하나의 예술인데,
‘나는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창작 교육은 또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
‘백지도 예술이 될 수 있지 않나?’
많은 물음표들이 나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그래도 문학 수업에서 학생들이 성장하는 길은 ‘문학의 수용 – 소통 – 창작 단계’를 차곡차곡 밟아가는 데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잡는다.

그대에게 고한다!

몇 해째 배방고 학생들을 봐왔다. 시험 문화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매일 정신없이 탑을 쌓는다. 내면이 튼튼한 학생들은 뭘 해도 잘하지만, 탑이 모래 위에 있는 아이들, 탑을 쌓느라 지친 아이들이 보인다. 나는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자신의 내면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단단해질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러다 떠오른 책이 정호승 시인의 ‘내 인생에 힘이 되어 준 한마디’라는 책이다. 성숙한 작가의 경험과 깨달음이 담긴 30가지 인생 이야기와 시들이 반짝인다. ‘좋은 어른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공감으로 치유 받고 내면이 풍성해지는 경험을 하면, 학생들도 독자에게 말을 건네고 싶지 않을까 생각했다. ‘00을 잊은 그대에게 고한다’라고!

형태는 패러디 시 에세이!

4명의 교사가 맞닥뜨린 객관성의 확보를 위해, 형태를 고민해본다. 그동안의 시 창작 평가의 실패를 디딤판 삼아 어느 정도 제한된 창작 조건을 제시했다.
1.
패러디 시 쓰기
2.
패러디한 시에 대한 에세이 덧붙이기
모든 교사가 백지, 한, 두 줄 시를 써내더라도 예술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예술을 타당성 있게 평가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변별력 있는 기준 마련이 필요했고, 그 중 하나가 원작을 재구성하기, 그리고 패러디 시에 대한 명확한 의도를 담은 에세이 쓰기였다. 생각보다 학생들도 시만 쓰는 것보다 에세이를 함께 쓰는 것을 좋아했다. 교사들이 자신들의 함축적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에 하는 우려 때문이라고 했다.
평가 방법 및 내용
1.
평가 방법: 패러디 시 에세이 창작 [그대에게 고한다 ‘00을 잊은 그대에게’]
2.
평가 내용:
1) 원작 시와 패러디 시의 유기적 관계 탐구 ➝ 주체적 재구성 알기
2) 시 에세이 감상 및 비경쟁 토론 ➝ 자신과 타자의 삶 이해하기, 시 에세이 알기
3) 시 에세이 창작

수업 시작!

[수업 흐름 1-2차시] 원작과 패러디 시의 유기적 관계 탐구
제일 먼저, 교과서에 수록된 ‘꽃(김춘수)’과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장정일)’에 대해 수업했다. 패러디 시 창작 전에 원작과 패러디 시의 관계를 통해 시를 재구성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였다.
개념 학습도 오롯이 시를 느끼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시를 암송할 만큼 충분히 낭독시키고, 온라인 수업 기간을 활용해 낭독 녹음 파일을 제출하게 했다.
<그림5> 구글 클래스룸 – 학생 녹음 파일
천천히, 또박또박, 상상하며! 3가지 기준으로 낭독하게 했고, 비공개 댓글로 피드백했다. 수업 중에는 읽기를 부끄러워하는 학생들도 제법 열심히 녹음해 제출했다.
[수업흐름 3-5차시] 문학의 수용: 시 에세이 감상
드디어 독서를 시작했다. 산문집의 30가지 이야기 중 학생들이 창작할 시 에세이 형태의 21가지 이야기들을 골라 읽게 했다. 100번의 설명보다 나은 예가 될 글들이었다. 긴 설명 필요 없이 작가의 경험을 따라 우리도 창작을 해보자고 안내했다. 그럼에도 시와 에세이를 어떻게 연결할지 어려워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거의 모든 학생들이 의도한 바를 어려움 없이 파악했다. 5단위의 수업이라 매주 1시간씩 ‘마음의 서재’ 책 읽기 시간을 운영했는데, 3주 동안은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을 함께 읽은 것이다. 1차시를 30 : 15 : 5로 배분했고, 차례로 책 읽기, 일지 작성, 읽은 내용에 대한 간단한 소통을 이어 나갔다.
교과서에서 벗어나 꾸준히 작가와 교류하며 독서 경험을 쌓는 학생들을 보니 뿌듯했다. 세계에 대한 확장된 인식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가득 찼고, 21가지나 되는 이야기를 읽었으니 뭔가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놓친 부분이 있었다. 1차시에 7가지 이야기를 읽게 한 것! 1가지 이야기가 2장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읽기 속도로 꾸역꾸역 집어넣은 이야기들을 성공적으로 읽어낸 학생들은 한 반에 1/3 정도밖에 되질 않았다. 읽기 속도가 느린 학생들은 내용을 온전히 담기보다 시간 내에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저, 7개의 이야기를 다 읽지 못해도 되니 자기 속도에 맞추어 1가지라도 제대로 읽으라고 했다. 교실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왜 또 잊은 걸까? 학생들에게는 좀 더 넉넉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림6> 책 수레
<그림7> 마음의 서재 일지 작성
[수업흐름 6-7차시] 문학 경험으로 소통하기
단계 1: 책 대화 기억에 담은 구절과 변화된 생각 나누기
학생들의 독서 일지를 피드백하다 보니, 유독 이번 작품은 ‘무엇을 기억에 남았다.’, ‘어떻게 생각이 변했다.’라는 구절들이 많았다.
그래서, 3차시에 걸친 독서 후 책 대화 시간에는 ‘기억에 남은 구절과 변화된 생각’을 주제로 소통하게 했다. 먼저, 책 대화를 위한 마음가짐과 규칙을 안내하고, 돌아가며 말하기 형태로 가볍게 꼬리를 무는 대화를 이어가게 했다. 세 가지 꼬리로 ‘공감’, ‘궁금’, ‘덧붙임’을 제시하고, ‘00의 생각에 덧붙여 보면~’과 같은 예시 문장을 제시해 주었다. 기록은 대화에 방해되지 않는 수준으로 가볍게 한 줄 정도만 하게 했다.
책 대화 시작 전에는 ‘대화 준비’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며칠 전, 몇 주 전 읽고 기록한 내용을 바로 기억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책 대화를 시작하니 작품 속 힘이 되어 준 말들이 서로의 입에서 오간다. 서로 같은 부분이면 어쩜 똑같다며 맞장구친다.
단계 2: 모둠 논제로 비경쟁 토론하기
가치 있는 글 주제 고민을 위해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시간이다. 지금까지 수행 과정을 거치면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논제가 있었는지 떠올려 보고, 각자 3가지씩 생성해 보게 했다. 질문도 훈련이니 떠오르지 않더라도 꼭 3가지를 만들라고 했다. 질문 만들기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은 순회지도하며 생각을 이끌어 주었다.
개인 논제 생성이 끝나면, 돌아가며 말하기로 자신의 논제를 소개하게 했다. 그리고 학습지를 모둠 책상 가운데 모아두고, 자신의 것을 포함해 마음에 드는 논제 2가지에 하트 표를 하게 했다. 유사한 것들은 유목화해 최종 선정된 논제들 세 가지를 우선 순위로 정해 두고, 1시간 동안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논의하게 했다.
역시나, 잘 되는 모둠도 있고, 아닌 모둠이 있다. 매번 비경쟁 토론 수업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까다로운 절차가 없으니 오히려 가장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토론이라는 생각을 한다. 토론자의 적극성, 사고의 깊이, 진행에 유능한 대표 사회자가 존재해야 의미 있는 수준의 대화가 오가기 때문이다.
최대한 대화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1차 발언 내용을 미리 정리하게 하고, 구체적으로 꼬리를 무는 반응의 예를 4가지로 제시해 생각을 이어보게 했지만, 그래도 대화를 깊이 있게 잇지 못하는 모둠들이 여전히 많았다.
좀 더 많은 차시를 할애할 수 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또, 추후 비경쟁 토론 평가를 하게 된다면 잘하는 모둠의 영상을 보여주며 스스로 방법을 찾게 하고, 여러 차례 연습 과정을 피드백해 깊이 있는 말하기로 이끌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일 이번처럼 창작을 위한 토론을 한다면 짧게 1차시에 마무리하는 책 대화 수준으로도 충분했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아쉬운 토론을 마무리하고, 창작의 기반이 될만한 것들을 떠올려 보며 결과를 정리하게 했다.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가치로운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개선하고 싶은 문제가 있었나요?
<그림8> 문학 경험으로 소통하는 학생들 1
<그림9>문학 경험으로 소통하는 학생들 2
비경쟁 토론이란?(화살표를 클릭해 자세한 설명을 살펴보세요.)
[수업흐름 8] 창작: 패러디 시 초고쓰기
드디어 창작! 창작은 개인차가 심한 영역이라, 주제 선정부터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의 예시가 디딤판이 될 수 있도록, 주제를 정한 사람들은 잼보드에 올려 공유하게 했다. 잼보드에 속속 주제가 올라오니 미리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즉각적인 교사 피드백이 가능했다.
<그림10> 잼보드 주제 공유
이후 원작을 선정해 감상 결과를 정리하고, 어떤 매력을 느껴 원작으로 선정했는지 생각해 보게 하며 패러디 시 초고를 작성을 안내했다.
원작의 내용, 표현, 형식상 특징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 원작과 또렷하게 다른 주제로 표절과는 차이가 있는 창작을 할 것! 시어나 시구, 사회문화적 맥락을 참신하게 재구성해 가치있는 주제를 담아낼 것!
[수업흐름 9] 창작: 에세이 초고쓰기
에세이 초고를 쓰는 시간이다.
패러디 시 창작 의도를 명확히 제시할 것!
진솔한 경험과 생각을 드러내 인식적 윤리적 감동을 담을 것!
타당성, 통일성, 응집성을 갖춘 짜임새 있는 글, 매끄러운 글을 쓸 것!
개조식으로 개요를 작성하고, 1시간 동안 1차 초고를 쓴다. 사실 초고를 완성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서로의 글에 대한 충분한 피드백이 오가는 시간도 마련할 수 없었다. 아쉬웠지만, 학습지에 간략한 동료 피드백 진행을 안내하고, 교사가 순회하며 피드백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하기로 계획했다. 한번 구상해 보는 시간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수업흐름 10] 창작: 패러디 시 에세이 완성 및 공유
1시간 동안 초고에 기반해 본고를 완성하는 것으로 수행평가는 끝이 났다.
학기 말이 되니, 창작한 패러디 시 중 혼자 보기 아까운 것들이 아른거려, 간단히 시화로 만들어 모둠에서, 학급으로, 학년으로. 서로의 작품 감상 결과를 나누며, 대면 전시, 온라인 전시회를 열었다. 평가도, 점수도 잊은 문학 문화 즐기기! 별것 아니지만 언제라도 기억에서 꺼내 볼 수 있는 장면이 되길 바랐다.
<그림11> 패러디 시 완성
<그림12>에세이 완성
<그림13> 학기말 시화 만들기
<그림14>온라인 전시회

드디어 채점!

4인의 교사는 12개 반을 3반씩 나누어 채점에 들어간다. 학생들이 학습지의 안내문만 보고도 진행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만들었다고 자부했지만, 막상 채점 협의를 하다 보니, 교사마다 안내한 내용이 조금씩 다른 일이 발생했다. 다행히 채점 기준에는 크게 어긋나는 부분이 아니었기에 조금씩 맞추어 갔다. 또 각자 1차 채점 결과, 평가하기 애매한 작품들은 4인의 교사가 모두 모여 몇 점이 적합할지 협의했다. 모두 양보와 이해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채점 완료!

마무리

나의 수업 이야기는 국어 과목에서는 어느 정도 일반화된 구조로, 누가 도전해도 실패하지 않을 평범한 사례이다. 오히려 아쉬운 부분이 많고, 특별할 것 없어 사실 이렇게 글을 써, 누구에게 보인다는 것이 부끄럽다.
하지만, 조금은 눈을 돌려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지점은!
연령대도, 성별도 다른! 공통점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4인의 교사가 긴 호흡을 맞추며 진도와 수행평가의 줄다리기 속에서 팽팽한 균형을 맞추었다는 것!
계획, 진행, 채점 단계에서 모두 한 발짝씩 양보하며 합의점을 찾아 나갔다는 것!
선배 교사들의 열린 마음과 무조건적 포용이 있었다는 것!
올 한해의 이런 경험은 나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간결하면서도, 의미 있는,
심화와 확장으로 단계를 밟아 나아갈 수 있는 짜임새 있는 모형을 연구하자.”
독서, 피드백, 토론, 글쓰기 모두, 성장의 탈을 쓰고 있는 출발점의 평가가 되지 않도록! 멈출 것인가? 그래도 도전할 것인가? 늘 기로에 서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내년에는 더욱 발전적 합의의 장에 서고 싶다.
<부록1> 채점기준표
1) 마음의 서재(작품 수용)
2) 그대에게 고한다(소통과 창작)
<부록2> 학교생활기록부 기록 예
황정아(배방고등학교 국어 교사)
학생들과 동행하며 한뼘 성장의 길로 이끄는 교사, 학생들의 삶을 세상과 이어주는 교사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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