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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별 수업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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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첫 해

“그래봤자 안 바뀌어.”
처참한 실패를 겪고 있는 나에게 한 선생님께서 다정하게 상담을 해주셨다. 힘들게 하는 아이 때문에 너무 마음 쓰지 말라는 것과 남은 시간만 참아보라는 위로였다.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해주시던 때였다. 여유가 있었다면 ‘이겨내야 하는 일이 아니야. 쉬어도 괜찮아.’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때의 나에게는 말의 의도와 관계없는 생각이 따라오고 말았다. ‘그래.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첫해 기억의 시작은 한 아이가 꺼낸 말 “담임 못 바꿔요?”이다.
나는 아직도 이 이야기의 발단을 모른다. 학급의 첫 단추를 단순히 잘못 끼운 정도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다른 선생님들과 나를 다르게 대하려고 힘을 모았다. 혹시라도 내가 상처를 안 받을까 전전긍긍이었다. 눈치채지 못할까 봐 걱정했는지 친절히 설명하고는 했다. “우리가 일부러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건 선생님 잘못이에요.” 아이들의 이름도 다 외우지 못한 학기 초였다.
아이들의 마음을 알고 싶어 받은 익명 설문지에 한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나에게 바라는 점을 적어서 냈다. ‘그냥 꺼졌으면 좋겠다.’ 상황에 대해 깊이 들여다볼 줄 몰랐던 나는 내가 공격을 받는다는 판단밖에 내릴 수 없었다. 흔히 표현하는 숨이 막힌다는 표현의 의미를 그때 처음 알았다. 처음에는 궁금했다. ‘왜 이렇게 나를 나쁘게 대하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알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은 사라졌다. 나를 싫어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매일 교실에 들어가야 하는 일은 혼자서 극복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일이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반 아이들의 나를 향한 응원. “애들이 어려서 그래요.” 그리고 “걔네 진짜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자신들도 친구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다른 반 아이들의 공감에 마음이 더 아팠다. 나 때문에 이 아이들까지 이런 상황에 신경을 쓰게 됐다는 죄책감, 아무 방법도 찾지 못해 생긴 부끄러움, 앞으로도 이런 일은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2학기가 시작되었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그때까지도 아이들은 나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표현할 말을 뚜렷하게 찾지 못했다. 나는 아이들이 내 단점을 뚜렷하게 찾아낼까 봐 오기가 났다.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굳이 지친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더 열심히 했다. 담임 반 아이들은 이상하게도 수업에는 잘 참여했고 때로는 즐거워하기도 했다. 교과 수업에서만 마음이 맞는 교사였는데 그게 너무 이상하고 무서웠다.
주변 선생님들께서 평소에 내가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덜 상처받을 수 있도록 충분히 도와주셨다. 생활지도를 위한 동아리에서 선생님들의 대화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 있다. 내가 겪은 일이 직업이 교사라고 해서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과 직업이 교사라고 해서 아이들에게 상처받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것. ‘내가 상처받은 게 내가 나빠서가 아니구나.’ 조금은 안심이 됐다. 문제는 당시의 나였다. 아이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가득하고 모든 시도가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길었던 1년이 끝났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2년이 지난 스승의날까지 사과가 이어졌다. 장문의 메시지들이 띄엄띄엄 도착했고 손편지를 들고는 머뭇거리는 모양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못난 자신들을 끝까지 존중해주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 자신과 친구들도 선생님을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 자신의 마음은 달랐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휩쓸렸다는 말, 늘 밝고 긍정적인 선생님이셨다는 기억, 좋은 선생님이라는 것을 고등학교 진학하고서야 깨달았다거나 하는 내용들이었다. 자신을 되돌아본 아이들도 있었다. 사춘기였다거나, 이유 없이 반항하고 싶었다거나. ‘아, 내 유치한 오기가 아이들에게는 진심 같은 걸로 전달이 됐나봐.’ 용서를 구하는 아이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도닥여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사과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들 진심이 어떻든 내 마음이 어떻든, 어쨌든 아이들의 사과는 내가 전쟁에서 완벽히 패배했다는 것을 알렸다. 초라했다. 내가 바라는 모습과 거리가 먼 시간을 보내고 만 것이다. 여기까지가 첫해의 기억이다.
그해 이후는 평화로웠다.
나에게 무엇이 채워져서 학급에 평화가 왔을까? 치열하게 원인을 분석해낼 능력이 없다. 혹시 그 반이랑 안 맞았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앞날이 떠올라 더 힘들다. 그래서 지금도 첫해 이야기의 결말을 짓지 못했다. 원하지 않는데 실패한 일 년이 머릿속에서 꾸준히 복습됐다. 행복하게 지내다가도 ‘첫해 때와 같은 아이들을 다시 만나면 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까.’를 수차례 떠올렸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준비된 교사였다면 그 아이들도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일 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자 생활교육에 다시 호기심이 생겼다.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생활교육을 공부할 기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감과 위로를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넓은 시각을 가지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그 모습을 보며 배우는 내용은 마음 깊이 와닿았다. 교사의 사소한 변화에 학생의 감정과 행동이 얼마나 크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공부한 바로 다음날이면 아이들과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조금 알게 됐을 뿐인데 갈등이 생길 때 상처를 받는 순간이 적어졌다. 대신 고요한 마음으로 왜 그런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어떻게 하면 이 학생이 나은 선택을 하도록 안내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때가 늘어났다.
언젠가 선생님들께서 온갖 방법을 다 써본 것 같은데 변화가 없는 학생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긴 대화를 나누신 적이 있다. 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의 방법이 그 아이와 맞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그 아이에게 맞는 방법이 있을 거예요.” 나는 여전히 일이 생길 때마다 방법을 몰라서 찾아 헤맨다. 하지만 첫해보다 조금 성장한 점이 있다면 날 받쳐 주는 안정감이다. 진심이 있다면 내 눈앞에서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이 생겼다. 이렇게 조금씩 변화하다보면 마음 편히 첫해 이야기의 결말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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