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이 배움으로 이어지려면 1부
재미있는 활동이라는 신화
재미만 있고 배움은 없는 활동
2016년 9월, 신규 교사로 아산의 한 중학교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시, 소설, 문법을 아이들에게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직 여름의 온기가 남아있던 첫 출근길은 참으로 두근거렸습니다. 긴장 8, 설렘 2의 비율로 교실 문을 열고, 어색한 미소로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전날 밤까지 고민 고민해서 만든 PPT 퀴즈로 저에 대해 소개했던 첫 수업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나름 뜨거웠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재미있는 수업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각종 연수에 참여하여 비주얼씽킹, 하브루타, 다양한 게임 활동들을 배우고, 배운 것을 즉시 제 수업에 적용했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혼자하기엔 한계가 있는 것 같아 학교 밖 교사학습공동체인 <천안수업연구모임>과 <배움의 숲 나무학교>에도 가입했습니다. 제가 설계한 수업, 제가 직접 제작한 활동지, 학생들의 결과물을 보고 많은 선생님들이 감탄하셨습니다. 저 스스로도 ‘신규 교사 치고는 잘하고 있잖아?’라고 우쭐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엔 찜찜한 무언가가 남아있었습니다. 1년 반 정도 이렇게 수업을 하니, 그 찜찜함의 원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 수업에서 아이들은 진짜로 배우고 있나?”라는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선배 선생님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저에게 “그래도 준일샘 수업에서 아이들은 뭐라도 하고 있잖아. 꼭 수업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친구들이랑 웃고 떠드는 과정에서 배움이 일어날 거야. 걱정 마.”라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참 따뜻하고 감사한 말씀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위로 덕분에 수업 속 학생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사실을 바라 볼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제 수업은 언제나 아이들의 목소리로 가득찼습니다. 그래야 좋은 수업인 줄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소설의 장면을 비주얼씽킹으로 표현하고, 종이를 잘라 단어의 품사들을 분류해서 시각화하고, 시를 읽고 질문을 만들어 짝과 인터뷰를 하는 활동들 속에서 교사가 의도한 배움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대화는 매우 단편적이었습니다. 바쁘게 그림을 그리고 손을 움직였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명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오개념을 형성한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학습한 내용을 다른 상황에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학기 말에 “선생님 수업은 활동을 많이 해서 재미있긴 한데, 제가 뭘 배웠는지는 모르겠어요. 재밌긴 했어요.”라고 제 심장을 후벼 파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재미만 있고 배움은 없는 활동으로 가득 찬 수업이었음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수업이 좋은 수업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용어의 문제
‘활동 중심 수업’, ‘학생 중심 수업’, ‘학생 참여 중심 수업’, ‘배움 중심 수업’ 등 미래 교육, 수업 개선, 학교 혁신을 위해 교사가 만들어 나가야 할 수업의 형태를 표현하는 용어가 너무나 많습니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도 이런 용어들의 의미를 명확히 알고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특히 ‘활동 중심 수업’이라는 용어는 주의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활동 중심 수업’이라는 말에는 ‘강의 중심 수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미래에는 지식과 정보가 넘쳐날 것이고, 이러한 지식과 정보의 기억은 컴퓨터, 휴대전화, AI가 알아서 할 것이므로 미래 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지식과 정보의 기억을 강조하는 강의 중심 수업은 의미가 없다는 논리죠.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현재 학교교육의 80~90%는 아이들이 40대가 됐을 때 전혀 쓸모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하면서 이 논리는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위험한 논리이기도 합니다.
이 논리는 교사가 수업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활동 중심 수업’은 좋은 수업이고, ‘강의 중심 수업’은 나쁜 수업이라는 이분법, ‘협업능력, 문제해결능력, 의사소통능력, 창의력’은 미래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고리타분한 지식’은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라는 이분법은 오히려 수업에서 교사와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배움은 매우 복잡한 과정에서 일어납니다. 교사의 강의, 학생들 간의 토의토론,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와 실패, 성찰 등의 과정이 있을 때에 진짜 배움이 일어납니다. 여기에서 교사의 강의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핵심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이 가지고 있던 오개념을 바로잡아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활동 중심 수업’을 선(善)으로, ‘강의 중심 수업’을 악(惡)으로 이야기하면서 학생들의 오개념을 바로잡을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강의만 있는 수업은 지양해야겠지만 좋은 강의는 좋은 활동만큼 가치있습니다.
또한 역량은 지식과 전혀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OECD 교육 2030에서는 역량을 “복잡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식, 기능, 태도와 가치를 동원하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하고 있습니다. 지식 없는 창의성, 지식 없는 문제해결능력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역량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 교사는 학생들이 특정 맥락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식, 기능, 태도 및 가치 등을 조화롭게 발휘할 수 있도록 교수학습을 설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OECD 교육 2030에서도 학습나침반을 제시하며 역량을 함양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기초적인 인지적, 사회·정서적, 신체적 기초가 있다는 전제로 “핵심 기초(core foudations)”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우리는 수업을 1차시 단위로 바라봤습니다. 그동안의 공개 수업도 교사의 철학이나 성취기준과 관련없이 교과서에 제시된 지식을 교사가 1시간 안에 어떤 특별한 활동으로 가르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으로는 지식을 바탕으로 특정 맥락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인 역량을 길러줄 수 없습니다. ‘활동 중심 수업’이라는 용어의 또다른 문제점은 교사가 수업을 ‘수업 기법’ 측면에서만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즐겁고, 특별한 활동을 1시간 수업에 적용하느냐는 진짜 배움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수업을 넓은 안목에서 단원 단위로 설계해야 합니다.
함께 생각해 볼까요?
1. 내 수업에서 아이들은 진짜로 배우고 있을까요?
2. 진짜 배움이란 무엇일까요?
3. 수업에서 배움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